모레
오전, 3시 17분.
찰칵.
시계를 보지 않고도 맥비는 오전 3시 17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금 전 시계를 보았을 때 3시 11분이었으니까. 디지털 시계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것으로들 알고 있지만, 귀를 기울여 듣고 있으면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맥비는 생각을 하는 동안 시계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찰칵거리는 횟수를 세고 있었다.
그는 오스본을 만나 본 뒤 빗속에서 에펠 탑 앞을 서성거리다 밤 11시 10분 전에 자기의 호텔로 돌아왔었다. 호텔의 조그만 레스토랑은 이미 문이 닫힌 뒤였고, 룸 서비스는 아예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용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인터폴에서 모든 경비 일체를 제공한다는 그런 여행이었다. 빛 바랜 카페트에 구겨진 침대, 그리고 오전 6시부터 9시까지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인 식사 시간에 댈 수 있다면 식사를 할 수 있는 명색뿐인 호텔.
남은 방법은 비를 맞으며 다시 밖으로 나가 열려 있는 음식점을 찾아보느냐, 아니면 ‘미니 바’, 그러니까 샤워를 할 때마다 바닥에 물이 고이는 욕실과 옷장 사이에 틀어박힌 조그만 냉장고를 이용하느냐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맥비는 빗속으로 다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므로 미니 바냐, 아니면 그냥 굶느냐였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방 열쇠 고리에 붙어 있는 조그만 키로 냉장고를 열어 치즈와 크래커 약간, 그리고 세모진 스위스 초콜릿을 하나 찾아냈다. 또 여기저기 뒤져 보다가 반 병짜리 백포도주도 찾아냈는데, 그것은 알고 보니 썩 쓸 만한 쌍시르 포도주였다. 나중에, 별 생각 없이 미니 바 가격 명세서를 확인하려고 책상서랍을 열었다가 그 쌍시르 포도주가 어째서 그렇게 쓸 만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반 병 값은 150프랑, 미화로는 약 30달러로 고가였다. 미식가에게는 푼돈이지만 경찰에게는 거액이었다.
11시 30분.
그가 씩씩거리다 맥이 빠져서 옷을 벗고 막 샤워를 하러 들어가려는 참에 전화벨이 울렸다. 런던 경찰국의 노블 총경이 첼시에 있는 그의 집에서 건 것이었다.
“잠깐 기다려 줄 수 있겠소, 맥비?”
노블이 물었다.
“다른 회선에다 본청 병리학자 마이클을 연결시켜 뒀는데, 우리 세 사람 모두가 서로 끊기지 않고 삼자 통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소.”
맥비는 허리에 타월을 두르고 침대 맞은편에 있는 호마이카 테이블에 앉았다.
“맥비, 아직 그대로 있소?”
“예.”
“마이클 박사?”
맥비에게도 젊은 의학 조사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듣고 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좋아요, 그러면 마이클 박사, 우리 친구 맥비에게 당신이 방금 전 나한테 했던 얘기를 해주시오.”
“절단된 머리에 관한 건데요.”
“누군지 신원을 알아냈소?”
맥비가 반색을 하고 물었다.
“아직은 아니오.”
노블이 끼여들었다.
“어쩌면 마이클 박사가 지금부터 하는 말이, 신원을 확인하기가 어째서 그렇게 어려운지에 대한 설명이 될 거요. 자, 계속하시오, 마이클 박사.”
“예, 그러죠.”
마이클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기억하시겠지만요, 맥비 형사님, 그 절단된 머리가 발견되었을 때 거기에는 피가 별로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거의 없었지요. 그 때문에 피가 응고된 시간을 추정해서 사망 시간을 알아내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정보가 조금 더 있다면, 그 머리 없는 친구가 언제 살해되었는지에 대해서 합리적인 시간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난 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맥비가 말했다.
“형사님이 떠난 뒤에, 저는 그 머리통의 온도를 재고, 조직 샘플을 조금씩 채취해서 분석을 하도록 실험실로 보냈습니다.”
“그런데요…?”
맥비가 하품을 했다.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어서, 그는 살인 사건이고 뭐고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머리는 냉동됐었습니다. 냉동된 다음에 절단되어서 그 골목길에 버려진 거죠.”
“확실합니까?”
“네.”
“전에 그걸 안 봤다고는 못하겠지만.”
맥비가 말을 이었다.
“당신이라면 대개는 곧바로 알아낼 수 있을 거 아뇨, 안쪽 뇌 조직은 녹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 당신이 그 뇌를 조사해 나가면서 알아낸 바로는 안쪽이 바깥쪽 층보다 더 차갑다고 말이오.”
“그런 게 아니라, 완전히 해빙이 되어 있었습니다.”
“해야 할 말을 끝내시오, 마이클 박사.”
노블이 재촉했다.
“실험실에서 조직 샘플들을 분석해 본 결과 그 머리가 냉동됐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저는 상당히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손가락으로 눌러 본 얼굴 피부가 냉동이 되지 않았던 것처럼 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저는 그 머리통 전체를 왕립 병리 대학의 마이크로 병리학 전문가인 스테펜 리치먼 박사에게 보내서 그 냉동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 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리치먼 박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자마자 제게 전화를 걸었구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맥비는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 두개골에 금속 조각이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몇 년 전에 무슨 뇌수술을 받은 결과겠지만요. 뇌 조직은 아무것도 밝혀 주지 않았지만, 그 금속은 하나의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그 머리통이 그냥 얼었던 게 아니라 절대 0도에 접근하는 온도로 냉동되었다는 사실이었지요.”
“이런 밤 늦은 시간엔 난 이해력이 더딘 편이오, 박사.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절대 0도는 냉동 과학에서 도달할 수 없는 차가운 온돕니다. 한 마디로, 그건 열이 전혀 없는 상태로 정의되는 가상적인 온도지요. 그 온도에 접근하는 데만도 액화 헬륨이나 자기(磁氣) 냉각을 동원하는 극도로 정교한 실험 기법이 요구됩니다.”
“그 절대 0도라는 게 얼마나 찬 거요?”
맥비는 그런 소리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기술적인 용어로 말인가요?”
“아무 용어로나요.”
“섭씨 영하 273.2도, 또는 화씨 459.67돕니다.”
“맙소사, 그러니까 거의 500도로군!”
“예, 그렇죠.”
“절대 0도에 도달했다고 가정한다면 무슨 일이 생겨납니까?”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맥비.”
노블이 끼여들었다.
“그건 어떤 물체의 모든 분자들이 상호 직선 운동을 완전히 멈추게 되는 점이란 뜻이오.”
“그 계(界)의 모든 원자 구조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되는 온도지요.”
마이클이 덧붙였다.
찰칵.
이번에 맥비는 시계를 보았다.
10월 7일, 금요일, 오전 3시 18분이었다. 노블 총경도 마이클 박사도, 또 맥비도 누군가가 왜 머리를 그처럼 낮은 온도로 얼렸다가 버렸는지 전혀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 머리통은 어쩌면 최근에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급속 냉동하는 - 언젠가 미래에, 그들을 죽게 한 병이 무엇이건 치료할 방법이 생겼을 때, 그 시체들을 녹이고 치료해서 다시 소생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 시신 냉동 보존 회사들 중의 어느 한 곳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현재의 과학으로서는 그것이 허황된 꿈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주식을 샀고 합법적인 회사들이 서비스를 제공했다.
영국에는 그런 회사들이 런던과 에딘버러 두 곳에 있었는데, 런던 경찰국은 다음 날 아침이면 맨 먼저 그 회사들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었다. 그 성명 미상의 시체는 살해된 것이 아니라, 죽은 뒤에 머리가 잘려서 미래의 어느 시간을 위해 합법적으로 보존되었을 수도 있었다. 또 어쩌면 사망자 자신이 그 일에 투자를 했는지도, 자신의 머리를 급속 냉동하는 데 평생 동안 모아 온 돈을 다 털어 넣었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종종 아주 멍청한 짓을 해왔었으니까.
맥비는 다음 날 런던으로 돌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머리 없는 일곱구의 시체를 엑스선 촬영을 해서 그 중 하나라도 골격에 금속 - 엉치등뼈 관절을 교체한 금속이건, 부러진 뼈를 맞추는 나사건, 신원미상인 시체의 머리에 들어 있던 금속 조각처럼 분석이 가능한 금속이 박혀 있는지를 알아 봐 달라는 요청을 한 다음 전화를 끝냈다. 만일 그 시체들 중 어느 하나에라도 금속 조각이 들어 있다면, 그 시체는 곧바로 왕립 병리 대학의 리치먼 박사에게 보내져 역시 극한 온도로 냉동이 됐었는지를 알아 보아야 했다.
어쩌면 이것은 그들이 찾고 있던 뜻밖의 단서, 본 줄기에서 동떨어진 우연, 대개는 조사자의 코앞에 있지만 첫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심지어는 열 번째로 보아도 전혀 보이지 않다가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의 형세를 일변시킬 수 있는 단서일지도 몰랐다. 단, 조사를 하는 경찰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살펴볼 만큼 오래 버틸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찰칵.
오전 3시 19분.
의자에서 일어나 맥비는 이불을 제치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벌써 금요일이었다. 그는 목요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거의 기억을 할 수 없었다. 당국은 그에게 밤잠을 못 자는 대가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있었지만, 사실 어떤 경찰도 충분한 보수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 얼린 머리는 어떤 단서를 제공해 줄 수도 있고, 어쩌면 오스본과의 접촉에서 아무 단서도 얻지 못했던 것처럼,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 할 수도 있었다. 오스본은 사랑에 빠져 고민하는 선량한 시민일 뿐이었다. 그가 업무차 여행을 왔다가 수상의 애인에게 빠졌다는 것이 참으로 안된 일이었다.
맥비는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가 불을 끄려다 테이블 밑에 놓아두었던, 진흙이 엉겨 붙은 채 말아가는 신발을 보았다. 한숨을 내쉬며 그가 침대에서 내려와 그 구두를 욕실 바닥으로 옮겨 놓았다.
찰칵.
오전 3시 24분.
맥비는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돌려 불을 끈 다음, 베개를 베고 누웠다.
만일 쥬디가 아직 살아 있었더라면, 그녀는 이번 여행에 그를 따라 왔을 것이었다. 그들이 함께 여행을 갔던 곳은, 빅베어로 낚시를 하러갔던 것을 빼놓는다면, 하와이뿐이었다. 1975년에 있었던 2주일 동안이었다. 유럽 여행은 그들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행 경비를 모두 제공받았다. 퍼스트 클래스는 아니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인터폴에서 그 경비를 지불할 텐데.
오전 3시 26분.
“진흙!”
맥비가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고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불을 켠 다음 이불을 걷어 내고 욕실로 들어갔다. 허리를 구부리고 그가 구두를 한 짝 집어서 살펴보다가 다른 쪽 구두를 들고 다시 살펴보았다. 그 구두에 엉긴 진흙은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이었지만 오스본의 운동화에 묻은 흙은 붉은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