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본은 침대에 걸터앉아 제이크 버거가 늘어놓는 불평을 듣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질질 흐르는 것에 대한 그의 불평은 로스앤젤레스를 1급 스모그로 몰아넣어 버린, 더위에 대해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짜증이 배어 있었다. 버거는 비버리힐즈와 그의 호사스런 센츄리시티 사무실 사이의 어디쯤에서 카폰으로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오스본이 6천 마일이나 떨어진 파리에 있건 말건, 그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건 말건, 자기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투였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일가는 법정 변호사로 오스본에게 콜브 인터내셔널과 장 빠까르를 소개해 준 장본인이기도 했지만 지금 그에게 하는 투로 봐서는 버릇이 잘못 들여진 아이 같았다.

 

“제이크, 내 말 좀 들어 봐요, 제발…”

 

오스본이 참다못해 말을 자르고 나서 바로 전에 벌어진 일들을 알려 주었다. - 장 빠까르의 피살, 맥비의 갑작스러운 방문, 그가 인터폴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 그에게서 개인적으로 받은 질문들. 하지만 장 빠까르를 왜 고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맨 처음 버거에게 전화를 걸어 사설 탐정이 필요한 이유를 둘러댔을 때처럼, 베라의 남자친구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는 거짓말을 그대로 고수했다.

 

“그게 맥비가 틀림없소?”

 

버거가 물었다.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맥비를 아느냐구요?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에서 살인 용의자를 변호해 본 변호사 치고 어떻게 그 사람을 모를 수 있소? 끈질기고 철저하고, 투우처럼 집요한 사람이오. 어떤 일을 한 번 파고들기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그 일에서 손을 떼지 않지. 그 사람이 파리로 가 있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지.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전세계의 살인 사건 담당 부서들이 미궁에 빠질 때마다 맥비의 전문 지식을 구해 왔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이 어째서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느냐 하는 거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냥 불쑥 나타나더니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하더군요.”

 

“폴.”

 

버거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맥비, 그 사람이 단순한 일로 당신을 신문한 게 아닐 거요. 나는 분명한 대답을 듣고 싶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요?”

 

“모르겠습니다.”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오스본이 대답했다.

 

버거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 사실에 대해 다른 누구에게도 얘기를 하지 말 것이고, 만일 맥비가 다시 찾아오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자기에게로 전화를 걸도록 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그러는 사이에 자기는 파리에 있는 누군가를 시켜서 그의 여권을 회수할 방법을 찾아내 가지고 그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도록 손을 써주겠다고 했다.

 

“아니오.”

 

오스본이 불쑥 말을 잘랐다.

 

“지금으론 어떻게도 하지 말아요. 난 그저 맥비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 시간 내줘서 고맙습니다.”

 

썩시닐콜린 - 오스본은 욕실 전등 밑에서 그 약병을 조사했다. 그런 다음 급히 약병을 밀봉된 주사 바늘 묶음과 함께 면도기 케이스에다 집어 넣고, 그것을 여행 가방 안에 든 몇 장의 와이셔츠 밑으로 쑤셔 넣었다.

 

이를 닦고 수면제를 두 알 삼킨 뒤, 그는 문을 이중으로 걸곤 침대로 가서 이불을 밀쳤다. 그리곤 침대에 걸터앉아서, 자기가 얼마나 지쳐 있는가를 느꼈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했던 탓으로 뻐근했다.

 

맥비가 그의 기를 꺾어 버렸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었고, 그가 버거에게 건 전화는 도움을 청하는 비명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성급하게 일을 모두 그르치고 나서야, 그는 자기가 전화를 건 대상이 잘못된 대상, 잘못된 전문가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버거는 법률을 상담하는 데서나 뛰어난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지, 정신을 상담해 주지는 않았으니까. 그 전화로 오스본은 결국, 장 빠까르를 매수하여 까나락을 죽이려고 했을 때처럼, 버거에게 자기를 파리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올가미에서 빼내 달라고 애원을 한 셈이었다.

 

버거 대신 그는 샌타 모니카에 있는 심리요법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정서적 위기를 해소하는 데 조언을 구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럴려면 살해 의도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고, 만일 그가 곧이곧대로 살해 의도를 밝힌다면, 그 심리요법사는 경찰에 통고를 할 것이었다. 그 둘 말고는 그가 얘기를 해볼 수 있는 사람이 베라뿐이었지만, 그녀를 연루시키지 않으려면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 그가 누구에게 고백을 하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오로지 그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까나락에게서 물러서거나, 아니면 그를 죽이는 것이었다.

 

맥비의 출현으로 인해 상황이 더욱 급박해졌다. 교활하고 노련하게, 오스본은 까나락 얘기를 단 한번도 비친 적이 없었지만, 그가 모른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만일 그가 계획대로 밀고 나갈 경우, 경찰이 감시를 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는 팔을 뻗어 침대에 붙은 스탠드를 끄고 어둠 속에 반듯이 누웠다. 밖에는 비가 창문을 가볍게 때리고 있었다. 끌레베 가에서 위쪽으로 향해진 가로등 불빛이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들을 비추며 천장에 무늬를 그렸다. 눈을 감자, 그의 생각이 베라와 오후에 벌였던 정사로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위에 걸터앉은 그녀의 나신을 볼 수 있었다.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등은 활처럼 휘어져 긴 머리칼이 그의 발목에 와닿는 환상적인 그녀의 자세. 움직임이라고는 그녀가 성기 위에 올라앉아 골반을 육감적으로 천천히 밀었다 당겼다 하는 동작으로 아주 정적이었다. 그녀는 마치 조각상처럼 보였다. 소녀와 여인과 어머니를 합친 모든 여성다움의 진수 그 자체였다. 탄탄하면서도 유연하고 무한히 강하면서도 허물어지는 순간에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오스본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녀를 다루었고 사랑했다. 그것은 오로지 욕망과 갈증으로 점철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궁극적인 사랑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경이감으로 채워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만이 우러날 수 있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는 단 한점의 의심도 없이, 만일 자기네 두 사람 모두가 그 순간에 죽는다면, 바로 그 순간 무한한 우주에서 재결합하여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함께 얽혀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설령 그 상상이 공상적이든, 유치하든, 또는 심령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상관은 없었다. 오스본이 진실이라고 믿은 것이 바로 그런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라 역시 그녀 나름대로 똑같이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며칠 전 그를 자기의 아파트로 데려갔던 날 그 사실을 입증했었고, 그것으로 오스본이 할일은 저절로 분명해졌다. 그것은 베라와의 관계를 지속할 생각이라면, 그의 내면에 있는 악마가 그에게 해왔던 짓, 그러니까 어린 시절부터 그의 모든 소중한 관계를 망치도록 했던 짓을 다시 하게 놓아둘 수는 없었다. 이제는 그 악마를 없애 버려야 할 때였다. 가차없이, 그리고 영원히. 아무리 어렵고 위험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처리해야 했다.

 

마침내 수면제의 약 기운이 퍼지면서 잠이 그를 덮치기 시작하자, 폴 오스본의 눈앞에 그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악마는 허리를 잔뜩 굽힌 채 지저분한 코트를 입고 폴을 위협하고 있었다. 악마는 무시무시했다. 어둡기는 했어도, 오스본은 악마가 머리를 치켜드는 것을 보았다. 그를 쏘아보는 깊숙이 박인 눈, 직각으로 튀어나온 귀. 그 악마가 고개를 돌리자 오스본은 그 얼굴을 분명히 볼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턱이 네모지고 광대뼈를 가로질러 윗입술에까지 흉터가 나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는 단 한점의 의심도 없었다. 절대로.

 

그가 본 것은 앙리 까나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