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
6시 5분.
앙리 까나락은 르 브와에서 나와 여느때나 다름없이 태연하게 두 블록을 걸어 동역 맞은편에 있는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오스본은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다가 실내등을 켜고 운전석 옆자리에 놓인 지도를 점검했다. 그리고 거의 삼십오 분 동안 10마일 반쯤 차를 몰아 몽뜨루즈에 있는 까나락의 아파트 앞을 지났다. 차를 샛길에 세워 두고, 그는 아파트 건물 앞까지 한 블록 반을 걸어와 길 건너편의 어두운 곳에 숨어서 기다렸다. 십오 분쯤 뒤에 까나락이 그 길을 따라 올라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제과점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그의 거동에는 뒤를 밟힌다거나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조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매일같이 해왔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어떤 느낌도 오스본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되어 가고 있었다.
7시 40분.
그는 자기가 묵고 있는 호텔 앞에 푸조 승용차를 세우고 키를 종업원에게 넘겨 준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로비를 가로질러 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자기에게 온 연락이 없었는지를 확인했다.
“아뇨, 없는데요.”
데스크 뒤에 있던 가무잡잡하고 예쁘장한 접수계원이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스본은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고 돌아섰다. 마음 한구석으로 그는 베라에게서 전화를 걸려 왔었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 온 것이 다행이라고도 여겨졌다. 정신이 다른 데로 흩어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단일한 것이 무엇보다도 더 중요했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만 주의를 집중해야 했다.
그는 자기가 왜 바라 형사에게 파리에서 5일 동안만 머물 것이라고 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똑같이 쉽게 일주일이나 열흘 또는 2주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5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모든 일이 자제력을 잃을 정도로까지 촉박해져 있었다. 게다가 사태가 너무 빨리 진전되고 있어서 시간을 맞추는 일이 너무도 중요했다. 실수를 하거나 예기치 못했던 일에 대비할 시간은 없었다. 그런데 만일 까나락이 밤새 병이 나서 일을 하러 오지 않기로 한다면 어떻게 한다? 그의 아파트로 쳐들어가 거기에서 그대로 해치워 버려? 하지만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까나락의 아내나 가족, 이웃들은 어떻게 하고? 자기에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런 짓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었다. 절대로. 하지만 오스본은 마치 뇌관에 불을 붙인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있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끝까지 해보면서 최선을 기대하는 것뿐이었을까?
마음 속에서 그런 생각을 몰아낸 뒤 오스본은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말고 매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문 판매대에서 영자 신문을 한 부 집어 든 다음 계산할 차례를 기다리려고 돌아섰다. 잠시 그의 마음 속으로 만일 장 빠까르가 까나락을 그처럼 빨리 찾아낼 수 없었더라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랬더라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 프랑스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하지만 언제? 경찰이 그의 여권 바코드에다 그가 일정한 시한 내에 다시 돌아올 경우에 대비해서 어떤 표시를 해놓았는지 그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돌아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그리고 또 장 빠까르가 결국 까나락을 찾아낼 수 없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 사설 탐정은 자기의 할일을 제대로 해냈고 그 나머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마음을 편히 하자. 오스본은 자신을 타이르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신문을 펼치며 회계원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본 것은 이치에 닿지가 않았다. ‘사설 탐정 참혹하게 살해되다!’ 그는 대문짝 만한 제 1면 머릿기사 밑에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장 빠까르의 얼굴을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밑에는 부제가 실려 있었다.
‘전직 용병, 살해되기 전 처참하게 고문당하다.’
천천히 매점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다음에는 점점 더 빠르게. 마침내 오스본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팔을 뻗어 캔디 판매대를 짚어야 했다.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몸을 가누고 다시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그 얼굴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고 머릿기사와 그 밑에 있는 글자들도 그대로였다.
어딘가 멀리서 괜찮으냐고 묻는 회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호주머니를 뒤져 잔돈을 꺼냈다. 그리고 신문 값을 치른 뒤 가까스로 매점을 빠져 나와 다시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장 빠까르가 자기의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앙리 까나락이 그를 역습해서 살해를 한 것이 분명했다. 오스본은 재빨리 그 기사에 까나락의 이름이 들어 있는지를 훑어보았다. 그 이름은 없었다. 거기에 나와 있는 것은 그 사설 탐정이 전날 밤 그의 아파트에서 살해되었으며, 경찰은 용의자나 동기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는 것뿐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러서야 오스본은 자기가 그때까지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던 몇몇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중 셋은 아마도 일본인 여행자들인 것 같았고, 다른 하나는 구겨진 회색 양복을 걸친 수수해 보이는 남자였다. 고개를 돌리면서 그는 생각을 해보려고 했지만 잠시 뒤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사업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자 오스본도 따라 들어갔다. 일본인들 중에 하나가 5층 버튼을 눌렀고, 회색 양복 차림의 사내는 9층을, 오스본은 7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오스본의 생각이 처음 미친 것은 장 빠까르가 수집한 자료들이었다. 그 자료들은 경찰의 관심을 곧장 그에게로 끌었다가 다음에는 앙리 까나락에게로 돌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콜브 인터내셔널 사가 어떻게 일을 하며 고객들을 보호하는 데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장 빠까르의 설명을 떠올렸다. 그곳의 탐정들은 고객들과 완벽하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일을 하고, 조사가 끝나면 복사를 해두는 법 없이 모든 자료들이 고객에게 넘겨지며, 회사는 전문 기술자의 신원을 보증하고 청구서 발송을 대행하는 정도일 뿐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빠까르는 오스본에게 수집한 자료들을 넘겨 주지 않았었다. 그 자료들은 어디에 있을까?
순간적으로 오스본은 그 탐정이 전혀 노트를 하지 않는 것에 놀랐던 일을 떠올렸다. 어쩌면 자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고, 요즘에 와서는 정보를 다른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게 그 자신의 것으로만 지키는 일이 사설 탐정의 특기가 되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맨 마지막 순간에 까나락의 이름과 주소를 칵테일 내프킨에, 오스본이 입고 있는 상의 호주머니에 아직까지도 들어 있는 그 내프킨에 직접 써서 건넸었다. 아마도 그것이 온전한 자료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멎었고, 일본인들이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다시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오스본은 회색 양복 차림의 사내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어 보였지만, 누구이지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잠시 뒤 7층에서 문이 다시 열렸고, 오스본이 밖으로 나오자 회색 양복 차림의 사내도 뒤따라 나왔다. 그리고 오스본은 자기의 객실 쪽으로, 그 사내는 다른 쪽으로 갔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오스본은 이제 숨을 좀더 편히 쉴 수 있었다. 장 빠까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느꼈던 충격도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시간이었다. 빠까르가 까나락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고 가정한다면, 그의 이름과 그가 묵고 있는 곳을 알려 주었을까? 또 까나락이 그 사설 탐정을 죽인 이상, 그를 살해하려고 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갑자기 오스본은 누군가가 자기 뒤에서 복도를 따라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흘끗 뒤를 돌아다보았다가, 그는 회색 양복 차림의 사내가 뒤따라 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 사내가 7층이 아니라 9층 버튼을 눌렀었다는 것도 기억났다. 앞쪽 복도에서 어떤 남자가 문을 열고 지저분한 접시들이 담긴 룸 서비스 쟁반을 내놓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오스본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문을 닫았고, 뒤이어 체인 로크가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복도에 있는 사람은 그와 회색 양복 차림의 사내 둘뿐이었다. 마음 속으로 위험 경보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오스본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무슨 일입니까?”
그가 물었다.
“잠시 시간 좀 낼 수 있겠소?”
맥비의 말투는 조용했고 위협을 하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맥비라고 합니다. 선생과 마찬가지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왔지요.”
오스본은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는 60대 중반으로 5피트 10인치쯤 되는 키에, 체중은 190파운드 가량 나갈 것 같았는데, 초록색 눈빛이 뜻밖에도 부드러웠고 희끗희끗한 갈색 머리칼은 정수리께에서 듬성듬성 빠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브로드웨이나 실버우즈에서 구입한 것 같은 평상복에 번들거리는 하늘색 폴리에스테르 와이셔츠를 입었고, 넥타이는 옷차림과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는 누군가의 할아버지나 그 자신의 아버지처럼 보였다. 만일 그의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저를 알고 계십니까?”
오스본이 약간 안심을 하고 물었다.
“나 경찰이오.”
맥비가 로스앤젤레스 경찰국 기장을 내보였다.
오스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과 몇 분도 안 되는 사이에 그는 또다시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 뭐가 잘못됐습니까?”
마침내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야회복 차림을 한 중년의 커플이 복도로 걸어 나오자 맥비가 한옆으로 비켜섰다.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맥비는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오스본을 바라보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는 게 어떻겠소?”
맥비가 고갯짓으로 오스본의 객실 문을 가리켰다.
“선생이 좋다면 아래층 바라도 상관없습니다.”
맥비는 부드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오스본이 더 편하게 느낀다면 바도 객실이나 마찬가지로 좋았다. 그 의사는 잘은 몰라도 달아나지는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맥비는 이미 오스본의 방에 있는 것들을 모두 살펴본 뒤였다.
오스본은 불안했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따지고 보면 그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베라를 이용해서 썩시닐콜린을 구한 것도 사실 불법은 아니었다. 법을 약간 편리하도록 이용하기는 했어도 범죄라고는 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 맥비는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에서 왔는데 - 그가 여기에서 무슨 사법권을 가질 수 있을까? 침착하자,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공손하게 이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보자.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으니까.
“여기가 좋겠습니다.”
오스본이 대답했다.
그가 문을 열었고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섰다.
“자, 앉으시지요.”
오스본이 등 뒤로 문을 닫고, 열쇠와 신문을 침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괜찮으시다면 손을 좀 씻고 싶은데요.”
“좋도록 하시오.”
오스본이 욕실로 들어간 사이 맥비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방은 그가 몇 시간 전 객실을 청소하는 여자에게 황금색 경찰국 기장을 내보이고 200프랑을 쥐어 준 다음 들어갔다 나왔을 때와 똑같았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오스본이 손을 말리면서 물었다.
“선생이 하겠다면요.”
“제게 있는 건 스카치뿐입니다.”
“좋습니다.”
오스본이 반쯤 든 조니 워커 블랙 병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복제품인 후렌치 스타일의 책상 위에 놓인 애나멜칠을 한 쟁반에서 위생지에 싸인 글라스를 두 개 집어 들고 비닐을 벗겨 낸 다음 한 잔씩 따랐다.
“얼음이 없는 것 같군요.”
오스본이 말했다.
“나는 까다롭지 않아요.”
맥비의 눈길이 오스본의 운동화로 쏠렸다. 그 신발들에 마른 진흙이 엉겨 붙어 있었다.
“조깅을 하러 나갔다 왔소?”
“무슨 말씀이신가요?”
오스본이 맥비에게 유리잔을 건네주면서 물었다. 맥비가 턱짓으로 그의 신발을 가리켰다.
“신이 흙투성이라서.”
“저는 산보를 나갔다 왔습니다. 사람들이 에펠 탑 앞에 있는 정원에 나무들을 다시 심고 있더군요. 비가 오고 있어서 진흙을 밟지 않고는 그 근처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스본이 머뭇거리다가 재빨리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맥비가 자기 글라스에 담긴 술을 쭉 들이켤 동안 오스본은 순간적으로 그가 거짓말을 알아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사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에펠 탑 근처의 정원들은 파헤쳐져 있었고, 그는 전날 나갔다가 본 것을 떠올린 것이었다. 재빨리 화제를 바꾸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지요?”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하면…”
맥비가 잠시 뜸을 들였다.
“선생이 매점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로비에 있었소. 저 신문에 대한 선생의 반응을 봤지요.”
그가 턱짓으로 오스본이 침대 테이블에 놓아둔 신문을 가리켰다.
오스본이 스카치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여간해서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까나락을 보고 추적을 했던, 그런 다음에는 파리 경찰에 체포되었던 날 밤에 룸 서비스로 스카치를 주문했었다. 이제 그는 술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면서 술을 주문했던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그게 여기로 찾아오신 이유로군요.”
오스본이 맥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래, 이 사람들은 알고 있어. 침착하자,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이 사람들이 도대체 뭘 알고 있는지 알아내 보자.
“선생도 잘 알고 있겠지만, 빠까르 씨는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했었소. 나는 파리 경찰과 함께 그와는 무관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난 거요. 그런데 선생은 빠까르 씨의 마지막 고객이고해서…”
맥비가 씩 웃고 나서 스카치를 한 모금 더 홀짝거렸다.
“어쨌든 파리 경찰이 나한테 선생을 찾아가서 그 얘길 해보라고 부탁합디다. 미국인끼리 말이오. 선생이 누가 그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지 물어 보라는 거였소. 선생도 내가 여기에서는 권한이 없고 그저 돕고 있을 뿐이란 걸 알고 있을 거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도와드릴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빠까르 씨가 무슨 일로 걱정을 하는 것 같지는 않던가요?”
“그랬는지는 몰라도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 사람을 고용했는지 물어 봐도 되겠소?”
“제가 그 사람을 고용한 게 아닙니다. 콜브 인터내셔널에 의뢰를 했더니 그 사람을 보내 주더군요.”
“내가 물은 건 그런 뜻이 아니오.”
“괜찮으시다면, 그건 개인적인 일입니다.”
“오스본 선생, 우리는 살해된 남자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맥비의 말은 판사를 상대로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오스본이 글라스를 내려놓았다.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비난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보십쇼, 맥비 형사님. 장 빠까르는 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죽었어요. 저는 그걸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누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형사님이 저를 찾아온 이유라면 사람을 잘못 짚은 겁니다!”
화를 내는 척 하면서 오스본은 양손을 상의 호주머니로 집어 넣었다. 바로 그 순간 베라가 구해 준, 썩시닐콜린과 주사기들이 든 봉지가 손에 잡혔다. 강으로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돌아왔었을 때 꺼내 놓을 생각이었지만 깜빡 잊고 버렸던 것이었다. 그것이 손에 잡히자 그의 태도가 당장에 바뀌었다.
“저, 미안합니다. 그렇게 딱딱거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이 그렇게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충격 때문에 신경이 좀 곤두섰던 것 같습니다.”
“이거 한 가지만 물어 봅시다. 빠까르 씨가 선생 일을 마무리했소?”
오스본은 망설였다. 이 사람이 대체 뭘 노리는 걸까? 경찰이 까나락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까,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한다면 그 다음 질문은 뭘까? 아니라고 한다면 까딱 잘못하단 걸려 들게 될 터였다.
“그랬습니까, 오스본 선생?”
“예.”
마침내 오스본이 대답했다.
맥비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스카치 잔을 기울여 마저 다 비웠다. 그리고 손에 든 빈 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그대로 들고 있다가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듯, 다시 오스본을 바라보았다.
“피터 호스바흐라는 사람을 압니까?”
“아뇨.”
“존 코델은요?”
“아뇨.”
오스본은 완전히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맥비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프리드리히 루스토우는요?”
맥비가 다리를 꼬아 앉자 그의 양말 상단과 바지 밑단 사이로 하얗고 털 없는 장딴지가 드러났다.
“아뇨. 그 사람들이 용의잡니까?”
오스본이 되뇌였다.
“그 사람들은 실종된 사람들이오, 오스본 선생.”
“저는 그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사람도요?”
“예.”
호스바흐는 독일인이었고, 코델은 영국인, 루스토우는 불가리아 인이었는데, 그들은 머리가 절단된 시체들 중의 셋이었다.
맥비는 마음 속에 있는 수첩을 펼쳐 오스본이 그들 중 누구에 대해서도 움찔하거나 말을 더듬지 않았다고 기재했다. 그들을 알아보는 기색은 전혀 없다고… 물론 그는 능란한 배우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가 모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거짓말을 하니까.
“글쎄요, 세상은 넓고 그 안에서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지요.”
맥비가 말했다.
“하지만 그 일들이 만나는 매듭의 실마리를 찾아서 가려 내려고 하는 게 내 일이오.”
맥비가 침대 옆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잔을 오스본의 열쇠 옆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열쇠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오스본의 호텔 객실 열쇠였고, 다른 하나는 열쇠 고리에 조그만 사자상이 그려진 자동차 열쇠였다. 푸조 승용차의 열쇠.
“시간 내줘서 고맙소, 선생. 성가시게 한 거 미안합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오스본이 안도감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이것은 다만 경찰의 일상적인 질문일 뿐이었다. 맥비는 프랑스 경찰을 돕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맥비가 문 쪽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았다가 뒤로 돌아섰다.
“선생은 10월 3일 런던에 있었습니다, 맞지요?”
그가 물었다.
“뭐라구요?”
오스본이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맥비가 지갑에서 조그만 플라스틱 카드를 꺼내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지난 월요일이군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런던에 있었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왜 있었지요?”
“저는… 저는 제네바에서 열린 의학 모임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오스본은 갑자기 자기가 말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맥비가 어떻게 그것을 알아차렸을까? 또 그것이 장 빠까르나 실종된 사람들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거기에 얼마나 있었소?”
오스본은 망설였다. 이 일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이 사람이 노리는 게 뭐지?
“저는 이 일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변명을 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게 하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그냥 물어 본 겁니다, 선생. 그게 내 일이지요. 묻는 거 말이오.”
맥비는 답을 얻어 내기까지는 그를 놓아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마침내 오스본이 수그러들었다.
“하루 반쯤입니다만…”
“코너트 호텔이었지요?”
“네.”
오스본은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맥비가 더 이상 누군가의 할아버지처럼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있을 동안 뭘 했습니까?”
오스본은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무슨 영문인지 알지도 못하는 일로 코너에 몰려 있었고, 그것이 기분 나빴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까나락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아마도 그 일에 대해서 얘길하도록 나를 옭아 넣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오스본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맥비가 까나락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그 문제를 끄집어낼 사람은 맥비지 오스본이 아니었다.
“형사님, 제가 런던에서 뭘 했느냐는 제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건 그대로 덮어 둡시다.”
“이봐요, 폴.”
맥비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선생의 사생활을 캐려는 게 아니라, 실종된 사람들을 찾으려는 거요. 또 내가 질문을 하는 사람도 선생 하나만이 아니고. 내가 알고 싶은 건, 선생이 런던에 있을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냈느냐 하는 설명뿐이오.”
“아무래도 변호사를 불러야겠군요.”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마음대로 하시오. 저기에 전화가 있으니까.”
오스본이 그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토요일 오후에 도착했고, 밤에는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몸이 아프기 시작해서 호텔로 돌아와 월요일 아침까지 거기서 머물렀구요.”
“토요일 밤과 일요일 내내 말이오?”
“그렇습니다.”
“방을 떠난 적도 없소?”
“없습니다.”
“룸 서비스도?”
“감기 몸살에 걸려 본 적 있습니까? 복통과 번갈아서 오한, 발열, 설사가 계속됐습니다. 영국식으로 얘기하자면, 넌더리가 났지요. 그런데 뭘 먹고 싶어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혼자였소?”
“네.”
오스본의 대답은 짧고 분명했다.
“그러면 선생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요?”
“제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요.”
맥비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오스본 선생, 왜 거짓말을 하시오?”
지금은 목요일 저녁이었다. 맥비는 런던에서 파리로 오기 바로 전인 수요일 오후, 노블 총경에게 오스본이 코너트 호텔에 투숙했던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해두었고, 목요일 아침 7시가 약간 지나자 노블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오스본은 토요일 오후 그 호텔에 투숙했다가 월요일 오전에 나갔는데, 숙박부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의사 폴 오스본으로만 기재되어 있지만 그가 혼자 방으로 들어간 직후에서 어떤 여자가 그와 합류했다는 것이었다.
“제발 좀 그만합시다.”
오스본이 화를 내면서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고 했다.
“선생은 혼자가 아니었소.”
맥비는 그에게 다시 부인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젊은 여자였지요. 검은 머리칼에 나이는 스물다섯이나 스물여섯, 이름은 베라 모느레. 선생은 지난 토요일 밤 라이세스터 광장에서 코너트 호텔까지 택시를 타는 동안 그 여자와 성 행위를 했구요.”
“맙소사.”
오스본은 아연실색했다. 경찰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그들이 무엇을 알고, 어떻게 아는지 그로서는 헤아릴 길이 없었다. 마침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 때문에 파리로 온 거요?”
“네.”
“내 생각엔, 그 여자도 선생이 아팠던 동안 내내 아팠던 것 같은데요.”
“예, 그랬습니다만…”
“그 여잘 오래 전부터 알았소?”
“지난 주말에 제네바에서 만났습니다. 함께 런던으로 갔다가 다음엔 파리로 왔구요. 그 여잔 여기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레지던트?”
“의사 말입니다. 그 여잔 의사가 되려고 하고 있죠.”
“의사?”
맥비가 오스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저 이것저것 물어 보다가 알아낸 것에 놀라서였다.
“어째서 그 여자 얘길 하지 않은 거요?”
“저는 그게 개인적인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여잔 선생에게 알리바이가 됩니다. 그 여자가 선생이 런던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증언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저는 그 여자를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왜죠?”
오스본은 다시 피가 얼굴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맥비는 악의를 품기 시작하고 있었고, 솔직히 말해서 오스본은 자기의 사생활을 침해당하는 것이 싫었다.
“보십쇼, 형사님은 여기에서 아무 권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형사님과 얘기를 할 필요가 조금도 없는 겁니다.”
“물론 없소. 하지만 내 생각엔 선생이 그러기를 원할 것 같은데요.”
맥비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파리 경찰이 선생 여권을 가지고 있소. 또 그럴려고만 든다면 선생을 폭행 혐의로 기소할 수도 있고 말이오. 나는 그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는데, 만일 그쪽에서 선생이 내게 무슨 일로 심하게 굴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선생을 그대로 놓아둔다는 데 대해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될 수도 있을 거요. 더군다나 선생 이름이 살인자와 관련되어 떠오른 지금은 말이오.”
“저는 그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쪽에서 같은 생각을 갖기로 할 때까지 선생은 한동안 프랑스 감옥에 들어앉아 있게 될 수도 있소.”
오스본은 갑자기 자기가 세탁기에서 끌려 나와 건조기로 밀어 넣어지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뒤로 물러서는 것뿐이었다.
“제게서 원하는 게 뭔지 분명히 얘기해 준다면 도와드릴 수도 있을 겁니다.”
“지난 주말 런던에서 한 남자가 살해되었는데, 선생은 그때 거기에 있었소. 나는 선생이 거기서 언제 뭘 했는지 밝혀내야 합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미스 모느레뿐인 것 같은데, 하지만 선생은 분명히 그 여자를 연루시키는 걸 몹시 꺼려하고… 바로 그렇게 해서 그 여자를 관련시키고 있소. 선생이 괜찮다면, 내가 파리 경찰에게 그 여자를 데려오도록 해서 우리 모두가 본청에서 얘길 해볼 수도 있을 거요.”
그 순간까지 오스본은 베라를 그 일에서 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맥비가 만일 그 위협을 실행에 옮긴다면 매스컴에서 알아낼 것이고, 매스컴에서 알아낸다면 모든 일 - 그가 장 빠까르와 관련되었고, 그와 베라가 런던에서 은밀히 함께 묵었다는 사실, 그리고 베라 자신과 누가 그 뒤를 봐주고 있느냐에 대한 뒷이야기 - 이 신문의 제 1면을 장식하게 될 것이었다. 정치가들은 신출내기 여배우나 바람둥이 여자들과 원하는 대로 무슨 짓이건 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선거에서 낙선을 하거나 지명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그만인 반면, 그들을 상대한 여자는 온 세상의 모든 슈퍼마켓들에서, 거의 틀림없이 비키니 차림으로 저질스러운 신문들의 표지를 장식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곧 의사가 되려는 여자의 경우는 얘기가 전혀 달랐다. 대중들은 의사들이 그처럼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맥비가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베라는 레지던트라는 지위뿐 아니라 직업까지도 잃게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협박이건 아니건, 맥비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지금까지는 오스본에게만 알렸고, 그런 식으로 계속 놓아두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오스본이 말을 꺼냈다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건…”
갑자기 그는 맥비가 무심코 말을 잘못 흘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장 빠까르 문제뿐만이 아니라, 경찰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려 주었다는 점에서.
“뭐였습니까?”
“제가 사설 탐정을 고용했던 이유는…”
오스본은 꾸며 댈 말을 찾아냈다. 그것은 교묘한 거짓말이었고, 그는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경찰은 장 빠까르가 집과 사무실에 남겨 둔 모든 종이 쪽지를 철저히 조사했겠지만, 그는 빠까르가 거의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랬으므로 경찰은 찾아낼 수 있는 어떤 단서라도 찾아내야 했고,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를 신문하기 위해 미국인 형사를 보낼 정도로까지.
“그 여자에게는 애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지 알려 주려고 하질 않더군요. 만일 제가 그 여자를 따라서 파리로 오지 않았더라면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어쨌든 저로서는 애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보니 화가 나더군요. 누군지 물어 봤지만 대답을 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알아 보려고 한 거지요.”
맥비처럼 빈틈없고 철저한 형사가 그의 말을 믿어 준다면, 그것은 경찰이 까나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모르고 있다면 오스본이 자기의 계획을 계획대로 진행시키지 못할 이유란 없었다.
“그래서 빠까르는 선생을 위해 알아냈겠구요.”
“네.”
“누군지 얘기해 주겠소?”
오스본은 맥비가 그런 얘기를 하려면 고통스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뜸을 들였다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그 여자는 프랑스 수상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맥비가 잠시 오스본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기대하고 있던 바로 그 대답이었다. 설령 오스본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 하더라도, 맥비로서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일은 잊게 되겠지요. 언젠가는 웃어 넘길 수도 있을 테구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오스본의 대답은 수긍할 만했고 동정이 가기까지 했다.
“그거면 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