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자끄 대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나무들은 겨울 동안 잎을 떨어뜨릴 준비가 되어 노랗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몇몇 잎사귀들은 이미 떨어진 뒤였고,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서 오스본은 횡단보도를 건널 동안 베라의 팔을 잡아 주었다. 그녀는 오스본의 그런 행동에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길을 건너자 곧 팔을 놓아 달라고 했다.

 

오스본이 주위를 둘러 보았다.

 

“저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여자나, 개와 함께 걷는 노인이 볼까 봐 걱정돼서 그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녀는 일부러 무관심한 척 쌀쌀맞게 대꾸를 했지만 왜 그랬는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남의 눈에 띌까 봐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싫었거나, 또 아니면 그와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결정은 그가 내리기를 원했거나…

 

갑자기 오스본이 멈춰섰다.

 

“당신, 혼란스러워하고 있군.”

 

베라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스본을 보려고 돌아서는 순간 제네바에서 그를 처음 만났던 밤이 떠올랐다. 그가 런던에서 그녀를 도버 행 기차에 태워 주었을 때처럼, 끌레베 가에 있는 자기의 호텔 방에서 허리에다 수건만 한 장 두른 채 문을 열고 문간에 서 있었을 때처럼, 그들의 눈길이 마주쳤다.

 

“내가 뭘 혼란스러워한다는 거죠?”

 

그가 다음에 꺼낸 말이 그녀를 놀라게 했다.

 

“난 당신 도움이 필요한데, 그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어.”

 

베라는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스본이 받쳐들고 있는 우산 밑으로 부드럽고 섬세한 빛이 흘러들었다. 베라가 입고 있는 파란색 파카 위로 흰 가운의 칼라가 약간 비어져 나와 있었고, 그런 차림 때문에 그녀는 대도시의 수련의라기보다는 산악 구조반원같이 보였다. 그녀의 양쪽 귓볼에는 조그만 금 귀고리가 빗방울처럼 들러붙어 있었는데 그것들은 그녀의 갸름한 얼굴을 돋보이게 하고 그녀의 눈을 커다란 초록빛 호수로 바꾸었다.

 

“정말 바보 같은 얘긴데, 난 그게 불법인 줄도 몰랐어. 그런데 모두들 그게 꼭 불법인 것처럼 얘길 해서 말이야.”

 

“그게 뭔데요?”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는 그녀를 차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그거하고 무슨 상관이지?

 

“난 지금 내가 작성한 처방전으로 어떤 약을 구하려는 중인데, 사람들 말로는 그걸 병원 약국에서만 구할 수 있고, 이곳 의사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군. 그런데 난 여기에 아는 의사가 아무도 없고…”

 

“무슨 약인데요? 어디 아파요?”

 

그녀의 얼굴엔 염려의 빛이 역력했다.

 

“어디 아파요?”

 

“아니.”

 

오스본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뭐죠?”

 

그가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나는 돌아가면 논문을 제출해야 돼. 돌아가는 즉시로 말이야. 그런데 베라라는 여자 때문에 일터로 돌아가 있어야 할 일주일을 그냥 날려버렸어.”

 

“무슨 말인지 분명히 얘기해 줄래요?”

 

베라가 안심이 되어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함께했던 모든 시간은 풍요로웠고, 낭만적이었고,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런던에서 두 사람이 모두 감기 몸살에 걸렸을 때만 해도 자신의 몸이 불편하면서도 서로를 도와주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제네바에서 처음 만나 서로를 알려고 나누었던 대화를 제외한다면 각자의 일에 대해서는 말해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직업과 관련된 일상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간 다음 날, 나는 정형 외가 의사들의 모임에서 논문을 발표해야 돼. 원래는 내가 셋째날에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일정이 바뀌어서 첫번째가 됐어. 응급 상황에서 썩시닐콜린의 주사량과 효과를 포함한 수술 전의 마취 처방에 관한 논문이야. 내 실험은 대부분 실험실에서 행해지는데, 돌아가서는 시간이 없겠지만 여기에서는 아직 이틀이 더 남아 있어. 그런데 파리에서 내가 썩시닐콜린을 좀 구하려면 누가 그걸 나한테 내주기 전에 먼저 프랑스 의사의 허락을 구해야 될 것 같아. 하지만 좀전에도 얘기했듯이 나는 여기에 아는 의사가 하나도 없고…”

 

“몸에다 직접 주사를 하려는 건가요?”

 

베라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다른 의사들이 때때로 그런 일을 한다는 말을 들었고, 의대생 시절에는 직접 시도를 해보려고도 했었지만, 맨 마지막 순간에 겁을 먹고 그 대신에 출판된 논문을 복사했었다.

 

“나는 의대에 다니던 시절부터 여러 가지 실험을 해봤어.”

 

오스본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그게 내가 좀 이상한 이유지.”

 

갑자기 그가 혀를 내밀고, 눈을 흡뜨고, 엄지손가락으로 귀를 비틀었다. 베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은 그녀가 오스본에게서 보지 못했던 일면, 그에게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바보스러움이었다.

 

그가 귀를 놓자 얼빠진 표정이 바로 사라졌다.

 

“베라, 나는 썩시닐콜린이 필요한데, 그걸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몰라. 나를 도와줄 수 있겠어?”

 

그는 아주 진지했다. 이것은 그의 삶과 직업에 관련된 일이었다. 갑자기 베라는 자기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그리고 동시에 알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차렸다. 그가 믿는 것, 신봉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사랑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부러워하는 것, 그가 자기나 또는 다른 누구와도 나눈 적이 없었던 비밀들 그가 두 번의 결혼에서 실패를 한 이유…

 

그것은 폴의 잘못이었을까, 상대방의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그가 여자들을 잘못 골랐던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의 내면에 다른 어떤 것, 관계를 망쳐 파멸로 치닫게 하는 기질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그녀는 오스본이 고통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고통은 그녀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 묻힌 것이었고, 오스본은 그 대부분을 숨겼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오스본이 빗속에서 우산을 받쳐든 채 도움을 청하고 있을 동안, 베라는 그를 알게 된 뒤로 그 어느 때보다도 그가 그 고통에 몰두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별안간 그녀는 오스본을 알았고, 위로하고, 이해해 주고 싶은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또 의식적인 생각보다는 느낌으로, 그 일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이제껏 그녀가 요청으로 받지 않았던 곳으로, 그러니까 그녀가 알기로는 이제껏 아무도 초대받지 않았던 곳으로 그녀를 끌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라?”

 

갑자기 그녀는 자기네들이 아직 길모퉁이에 서 있고, 오스본이 자기에게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난 당신한테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어.”

 

베라가 그를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네, 한번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