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 뒤 포커 제트 여객기가 샤를르 드골 공항에 내려앉았을 때 맥비는 폴 오스본이 어디에서 살고, 어디에서 일을 하며, 어떤 종류의 면허증들을 소지하고 있고, 운전 기록은 어떠한지 등은 물론 그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두 번 이혼을 했었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또 그가 어느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자기의 새 BMW 승용차 오른쪽 앞 범퍼를 망가뜨린 주차원에게 폭행을 가한 혐의로 비버리힐즈 경찰에 의해 ‘억류’ 되었다가 나중에 풀려났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폴 오스본의 성질이 급하다는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맥비의 생각으로는, 그가 찾고 있는 남자나 여자를 그의 성질을 못 이겨서 머리를 잘라 내지는 않았으리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분명했다. 하지만 성질이 불같은 사람이라도 하루 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화를 못 참아서 사람을 죽이는 행위와, 몸뚱이에서 머리를 잘라 내고 남은 부분을 골목길 아니면 길가에 버리거나, 혹은, 바다에 띄우거나, 또는 깔끔하게 싸서 썰렁한 방 한 개짜리 아파트의 소파에 놓아두는 행위 따위는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폴 오스본은 몸뚱이에서 머리를 제거할 능력이 충분히 있는 훈련받은 외과 의사였다.

 

하지만 그 상황을 반대로 해석해서 그의 여권에 찍힌 입국 도장을 근거로 본다면, 폴 오스본은 다른 살인 사건들이 벌어졌을 때 영국에도 유럽 대륙에도 있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은 그 어떤 단서가 될 수 있었다. 즉 그는 죄가 없다거나, 가명을 썼다거나, 두 개 이상의 여권을 갖고 있다거나, 골목길에서 발견된 머리는 그가 잘랐지만 나머지는 아니라거나였는데, 맨 마지막 경우는 살인자가 하나라는 맥비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는 그가 시간, 장소 그리고 직업이 일치한다는 이유만으로 맨 마지막 범죄와 연관되어 있을 뿐인 가상의 용의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나마도 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는 더 나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폴 오스본은 잠시 눈을 돌렸다가 장 빠까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센 강에서 멀지 않은 몽빠르나스 대로의 시끌벅적한 레스토랑, 라 꾸뽈르의 앞쪽 테라스룸에 앉아 있었다. 헤밍웨이는 늘 그곳에서 술을 마셨고 다른 여러 문인들도 그랬었다. 웨이터가 지나가자 오스본은 보르도 산 백포도주를 두 잔 주문했지만, 장 빠까르가 고개를 젓고 웨이터를 다시 불러 세웠다. 장 빠까르는 알콜을 입에 대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토마토 주스를 주문했다.

 

오스본은 웨이터의 뒷모습을 지켜 보다가 장 빠까르가 직접 몇 자 휘갈겨서 그의 손에 쥐어 준 칵테일 내프킨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M. 앙리 까나락, 베르디에 가 175번지, 몽뜨루즈 아파트 6호.

 

웨이터가 마실 것을 가져다 놓고 갔다. 오스본은 그 내프킨을 다시 들여다보고 나서 조심스럽게 접어 상의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틀림없겠죠.”

 

그가 사설 탐정을 쳐다보면서 다짐을 해두었다.

 

“그렇습니다.”

 

장 빠까르가 대답을 하고 나서 뒤로 물러 앉아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포개고 폴 오스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빠까르는 강인하고 빈틈이 전혀 없고, 경험도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오스본은 그에게 살인을 청부한다면 그가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는 의사일 뿐이었고, 까나락을 죽이려는 첫번째 시도는 격분한 상태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벌인 짓이라고는 해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빠까르는 프로였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 스스로도 이렇게 말했었다. 제 3세계에서 정치적 또는 군사적인 적에 대한 용병으로서 직업적으로 살인을 하는 사람이 대도시에서 돈을 받고 고용된 살인자와 다를 게 뭐냐고? 취지는 다를지라도 그 나머지는 의심스러웠다. 적어도 오스본이 보기에는 그랬다. 그 두 가지 행위는 결국 마찬가지가 아닌가? 똑같이 돈을 받고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살인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든 그렇지 않든 거기에 무슨 진정한 차이가 있을까?

 

“저 한 가지…”

 

오스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때로는 개별적으로도 일을 합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말은, 때때로 자유 계약도 하느냐는 겁니다. 회사와 상관없이도 의뢰를 받습니까?”

 

“그건 맡기는 일에 따라 다르겠죠.”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을 텐데요.”

 

“왜 저한테 부탁을 하려는 겁니까?”

 

“그렇다면 무슨 일인지 알고 있군요.”

 

오스본은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조십스럽게 잔을 내려놓고 그 잔을 받쳤던 내프킨을 집어 들어 손바닥을 문질렀다.

 

“오스본 선생, 제 생각엔 약속되었던 게 전달된 것 같군요. 계산은 회사를 통해 완결될 겁니다.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하시는 일마다 행운이 따르길 바랍니다.”

 

장 빠까르가 음료 대금으로 테이블에 20프랑짜리 지폐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오 르브와르(그럼 이만).”

 

그런 다음에 그는 옆 테이블에 있던 젊은 남자를 빙 돌아서 나가버렸다.

 

폴 오스본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보도가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문들 앞을 지나 퇴근길의 혼잡한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멍하니 한 손으로 머리칼을 쓸었다. 방금 점에 그는 한 사내에게 다른 사내를 살해하라고 부탁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지금까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한순간 그는 자기가 파리로 오지 말았더라면, 이제 그가 앙리 까나락이라고 알고 있는 사내를 보지 말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해서 그 생각을 모두 지워 버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어머니 무덤 곁에 나란히 놓인 아버지의 무덤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하트윅 기숙 학교의 교장실 창가에 서서 낡은 담비 코트를 걸친 도로시 이모가 택시에 올라타고 앞이 안 보이는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 정경을 지켜 보고 있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 지독한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쓰라린 고통, 그것은 지금도 그때처럼 가혹했다.

 

그 생각을 떨쳐 내고 오스본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 테이블에서나 사람들은 하루의 일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하기 전, 피로를 풀겸 술을 마시며 웃고 즐기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 테이블에서는 고동색 정장 차림의 아름다운 여자가 함께 온 남자의 무릎에 손을 얹고 눈을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온 요란한 웃음소리가 그의 주의를 끌었다. 곧이어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 바로 앞쪽의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고개를 돌렸다가 어떤 젊은 여인이 보도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순간 오스본은 그녀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옆자리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젊은이가 벌떡 일어서면서 손을 흔들고 그녀를 맞으러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가 열 살이었을 때 한 사내가 그의 가슴을 도려냈다. 이제 오스본은 그 사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사는지를 알고 있었다. 이젠 물러설 수는 없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것은 그의 아버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