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제 오후 2시에 《모레》를 읽기 시작해 새벽 3시까지 읽었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은 정오이고 낮잠을 조금 자고 싶다. 《모레》를 꼭 한 번에 읽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여러분이 중간에 책 읽기를 멈추는 것에 반대한다. 아니 절대로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 - 로버트 워드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

 

모레.jpg 소설의 본질적인 목적이 읽는 재미를 제공하는 데 있다면 이 소설은 갖추어야 할 요소를 모두 갖춘 작품이다. 한마디로 '모레' 는 치밀한 구성과 발빠른 전개에 의한 스피디하고 긴박감 넘치는 흥미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랑, 생사를 넘나드는 사나이들의 끈끈한 우정도 보여 주고 있다.

 

소설의 기원은 고대 원시사회에서 씨족원들에게 사냥꾼들의 무용담이나 전설을 구전으로 들려 주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본질은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것은 이야기 위주의 소설가를 스토리셀러, 즉 '이야기꾼' 이라고 하는 데서도 명백하다. 또 소설이란 원래 특정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문학작품인 만큼, 오늘날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는 삶의 심오한 의미를 파고드는 '골치 아픈' 소설보다는 흥미 위주의 소설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은 다중 병렬식 구성을 택하고 있는데, 이것은 물론 발빠른 구성과 다양한 설정을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원화된 사회를 반영함으로써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스릴러이지만, 이제까지의 스릴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몇 가지 특징과 더불어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스릴러 소설의 경우 대개는 상황의 전개에 치중하다 보면 논리적 비약과 우연이 겹치거나, 상반되는 목적을 지닌 양편이 격돌하여 무자비하게 서로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스릴러를 위한 스릴러' 가 되어 본연의 흥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서로 톱니바퀴처럼 물려들면서 숨막히게 벌어지는 사건들로 소설적 흥미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탄탄한 구성으로 우연이 끼어들 소지를 없애 버렸다.

 

아울러 의학, 법학, 수사학을 망라한 전문 지식을 적재 적소에 구체적으로 원용함으로써 전체적인 줄거리를 뒷받침해 주는 동시에 사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작가는 냉동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불확실성의 원리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알란 폴섬이 뛰어난 구성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부단히 노력하는 작가임을 보여 준다.

 

이 소설에서 또 한 가지 돋보이는 점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 배경 설정이다. 이것은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를 미국으로 잡지 않고 주인공인 오스본이 의사 소통을 할 수 없는 프랑스로 잡은 데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더욱이 그가 상대하는 적은 살인 전문가들이고 이쪽은 아마추어인 데다 가지고 있는 정보 수준마저 절망적이어서 스토리 전개에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한 난관을 헤쳐내는 것은 아버지의 죽음을 규명하려는 오스본의 집념과, 책임에 충실한 몇몇 형사들의 사명감이다. 막강한 힘을 지닌 거대한 조직의 음모를 파헤치는 내용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초인적 능력을 지닌 프로가 아니라 우리와 별다르지 않은 평범한 외과 의사이기에 위기를 넘기는 상황에서마다 더욱 많은 공감과 스릴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울러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낸 경치와 상황 묘사는 독자들을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하는 동시에 아직 가볼 기회가 없었던 외국의 풍물과 정경을 고스란히 보여 주기도 한다.

 

미국인 정형외과 의사 오스본은 제네바에서 열린 의학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아름답고 이지적인 레지던트 베라를 만나고 두 사람은 열렬한 사랑에 빠져든다. 그러나 베라는 프랑스 정계의 거물인 프랑수아를 애인으로 두고 있어서 오스본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베라와 헤어진 뒤 오스본은 답답한 심정으로 어느 카페에 들렀다가 우연히 28년 전에 자기의 아버지를 살해한 남자, 앙리 까나락을 보게 된다. 그가 사설 탐정을 고용해 아버지의 살인범을 추적할 동안 베라는 프랑수아에게서 떠날 생각을 굳히고 다시 오스본을 찾아온다. 오스본이 앙리 까나락에게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밝히려는 순간, 알 수 없는 조직의 손길이 끼여들고, 어윈 스콜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그리고 머리 없는 시체들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맥비 형사를 비롯한 경찰이 오스본과 함께 그 조직의 음모를 한꺼풀 한꺼풀 파헤치기 시작하지만 결론은 마지막까지 미궁 속에 숨겨져 있다.

 

작가는 이 소설로써, 마르크화를 주축으로 하는 유럽 공동체를 필두로 세계 경제의 블록화가 몰고 올 섬뜩한 결말을 경고하는 동시에, 유태인 학살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