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소피는 랭던의 표정을 살폈다.
‘이 사람, 지금 농담하는 거겠지?’
“성배라고요?”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성배는 상그리엘이란 문자 그대로의 뜻이오. 이 말은 프랑스어 상그랄(sangraal)에서 유래된 거요. 이게 상그리엘(sangreal)로 진화했고, 결국 상(san)과 그리엘(greal)로 나뉜 것이오.”
‘성배.’
소피는 자신이 그 언어의 결합을 즉시 눈치 채지 못한 데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랭던의 주장은 터무니없어 보였다.
“난 성배가 잔인 줄 알았는데, 당신은 조금 전에 상그리엘이 어두운 비밀을 드러내는 문서 뭉치라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래요. 하지만 상그리엘에 관한 문서는 성배라는 보물의 절반에 지나지 않소. 문서는 성배와 함께 묻혀 있었으니까… 그 진정한 의미를 포함해서 말이오. 문서들은 성전 기사단에게 굉장한 힘을 주었소. 왜냐하면 그 종이들은 성배의 본질을 밝히고 있으니까.”
‘성배의 본질?’
소피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알고 있는 성배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마신 잔이었고, 그 잔으로 아리마테아의 요셉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피를 받았던 것이다.
“성배는 그리스도의 잔이에요. 어떻게 그보다 간단할 수 있죠.”
그녀에게 기대면서 랭던이 속삭였다.
“소피, 시온에 의하면 성배는 잔이 아니오. 성배가 그저 잔이라는 전설은 어떤 암시를 숨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라는 주장이오. 즉 성배 이야기는 더 강력한 뭔가를 대신하는 은유로 잔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거요. 그것은 당신 할아버지가 오늘 밤 우리에게 말하려고 애쓴 것과 정확하게 들어맞는 어떤 것일 거요. 신성한 여성을 언급하는 모든 상징들을 포함해서 말이오.”
소피는 랭던의 끈기 어린 미소가 자신의 혼란을 더 부채질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랭던의 눈빛은 정직했다.
“성배가 잔이 아니라면 대체 뭐죠?”
랭던은 이 질문이 나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떻게 얘기해 줘야 할지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절한 역사적 배경에서 대답하지 않는다면, 소피는 더 당황할게 분명했다. 몇 달 전, 자신의 편집장에게 원고를 건넸을 때, 편집장이 지어 보인 표정과 똑같은 표정을 소피의 얼굴에서 보게 될 터였다.
“이 원고에서 주장하는 게 뭐죠? 심각한 건 아니겠죠?”
포도주 잔을 내려놓고 반쯤 먹어치운 점심 식사 너머로 랭던을 바라보며, 편집장은 숨막히는 소리로 물었다.
“이걸 조사하느라 일 년을 투자했을 정도로 심각한 겁니다.”
뉴욕의 저명한 편집장인 조나스 파우크만은 신경질적으로 자기의 염소수염을 말아 올렸다. 그 동안 파우크만은 별의별 주제를 다룬 책들을 만나 보았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그런 내용이었다.
파우크만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로버트, 내 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요. 나는 당신의 작업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함께 멋진 길을 달려왔어요. 하지만 내가 이 같은 아이디어를 출간하기로 동의한다면, 사람들은 몇 달 동안 내 사무실 밖에서 시위를 할 거요. 게다가 이 일은 당신의 명성을 떨어뜨릴 거요. 당신은 하버드의 역사학자이지, 빨리 몇 푼 벌려는 싸구려 잡상인이 아니잖소. 이 같은 이론을 지지하는 신뢰할 만한 증거들을 분명히 찾은 거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랭던은 트위드 코트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파우크만에게 건넸다. 종이에는 50개 이상의 참고문헌 목록이 망라되어 있었다. 모두 저명한 역사가들의 저서로 일부는 동시대 인물들의 것이고, 일부는 몇 세기 전 인물들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저서의 상당수는 인문학 도서의 베스트 셀러들이었다. 모든 책들의 제목은 랭던이 방금 제시한 것과 같은 명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목록을 읽어 내려가면서, 파우크만은 지구가 실제로 평평하다는 것을 막 발견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 저자들 중의 일부를 알고 있어. 이들은… 진짜 역사가들인데!”
랭던은 싱긋 웃었다.
“조나스, 지금 보다시피, 이것은 나 혼자만의 이론이 아닙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주위에 있었던 거예요. 난 그저 그 위에 건물을 지은 겁니다. 어느 책도 기호학적인 각도에서 성배의 전설을 탐험해 보지는 않았어요. 내 이론을 지지하기 위해 내가 찾아낸 도상학적인 증거들은 무척 설득력이 있을 겁니다.”
파우크만은 여전히 도서 목록을 보고 있었다.
“오, 하느님, 이 책들 중 한 권은 영국의 왕립 역사가인 레이 티빙 경이 쓴 거잖아.”
“티빙은 성배를 연구하는 데 자기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지요. 이 인물은 실제로 제 영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나스, 티빙은 이 목록의 다른 사람들처럼 믿는 사람이죠.”
“당신은 지금 이 모든 역사가들이 실제로 믿는다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파우크만은 침을 삼켰다. 랭던은 다시 싱긋 웃었다.
“성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 헤맨 보물입니다. 성배는 전설을 퍼뜨렸고, 이를 둘러싼 전쟁을 불러일으켰고, 생을 걸고 찾아 헤매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그저 단순한 잔이라면 말이 되는 일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다른 유산들, 예를 들어 면류관이나 진짜 십자가, 현판(예수의 범죄 사실을 기록한 판. 형장에서 십자가 꼭대기에 부착했다)같은 것도 비슷하거나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죠. 역사를 통틀어 성배는 가장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유를 알겠죠?”
파우크만은 여전히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들이 모두 성배에 관한 것을 쓰고 있다면, 왜 이 이론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거요?”
“이 책들은 당시에 지지를 받고 있던 역사와 싸울 수는 없었던 거죠. 특히 그 역사가 최고의 베스트 셀러로 보장받을 때는 말입니다.”
파우크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실제로는 성배에 관한 책이라는 얘기만은 하지 말아요.”
“전 성경을 말한 겁니다.”
파우크만은 움찔했다.
“나도 알아요.”
“내려놔!”
소피의 고함이 택시안의 공기를 갈랐다. 소피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택시 운전사에게 고함을 지르자 랭던은 놀라 펄쩍 뛰었다. 운전사는 라디오 마우스피스를 잡고 있었다. 소피는 돌아서서 랭던의 트위드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랭던이 미쳐 깨닫기도 전에, 소피가 권총을 꺼내 한 바퀴 돌리더니 운전사의 뒤통수에 갖다댔다. 운전사는 즉시 마우스피스를 떨어뜨리고 한 손을 머리위로 들어 올렸다.
“소피! 도대체 무슨?”
랭던은 말이 막혔다.
“멈춰!”
소피가 운전사에게 명령했다. 운전사는 떨면서 공원 한 귀퉁이에 차를 세웠다.
랭던이 자동차 계기판에서 흘러나오는 택시회사 배차 안내원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였다.
“… 소피 느뵈라는 요원을…”
무선 라디오는 잡음이 심했다.
“그리고 미국인 한 명, 로버트 랭던…”
랭던은 근육이 굳는 듯 했다.
‘저들이 우리를 벌써 찾아냈단 말인가?’
“내려요.”
소피가 명령했다. 떨고 있는 운전사는 두 팔을 머리로 올린 채 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소피는 창문을 내려서 당황한 운전사를 권총으로 계속 겨누고 있었다. 소피는 조용히 말했다.
“로버트, 운전대를 잡아요. 당신이 운전하세요.”
랭던은 총을 휘두르는 이 여인과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차 밖으로 뛰어나가서 운전대 앞에 앉았다. 운전사는 여전히 팔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저주에 찬 악담을 퍼붓고 있었다.
“로버트, 난 당신이 우리의 마법의 숲을 충분히 봤으리라고 믿어요.”
뒷좌석에서 소피가 말했다.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치게 많이 봤지.’
“좋아요. 우리 여기서 나가요.”
랭던은 브레이크와 클러치를 더듬었다.
“소피? 하지만 아무래도 당신이…”
“가요!”
소피가 소리쳤다. 밖에서는 대여섯 명의 매춘부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오고 있었다. 한 여자는 자기 휴대 전화기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랭던은 클러치를 밟고 기어 스틱을 1단으로 놓은 뒤 가속기를 만지작거리며 소리를 시험했다. 클러치를 놓자, 타이어가 포효하는 소리를 내며 택시가 앞으로 돌진했다. 좌우로 요동을 치며 택시가 급격히 움직이자, 모여든 군중이 이를 피하기 위해 좌우의 숲으로 뛰어들었다. 휴대 전화기를 들고 있던 여자는 차에 치일 뻔하다가 가까스로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차가 비틀거리며 달리자 소피가 말했다.
“부드럽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당신에게 말하려고 했소. 난 오토매틱만 몰아 봤단 말이오!”
이를 가는 듯한 엔진 소리 너머로 랭던은 소리쳤다.
라 브뤼에르 가의 고급 주택 안의 검소한 방은 많은 고통을 목격했겠지만, 사일래스는 지금 자신의 창백한 몸뚱어리를 휘어잡고 있는 분노를 잠재울 만한 것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속았다. 모든 게 사라져 버렸어.’
사일래스는 속았다. 시온의 회원들은 진실을 밝히는 대신에 죽음을 택하는 거짓말을 했다. 사일래스는 스승에게 전화할 힘도 없었다. 쐐기돌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는 네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생 쉴피스 교회의 수녀도 죽였다.
‘그 여자는 신에 대적하는 일을 하고 있었어! 오푸스 데이의 사업을 비웃었단 말이다!’
범죄의 충동과 여자의 죽음이 일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링가로사 주교는 사일래스를 생 쉴피스에 들여보내기 위해 전화를 거는 수고까지 했다. 수녀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생 쉴피스의 신부는 어떻게 생각할까? 수녀를 침대에 잘 눕혀 놓고 나왔지만, 수녀의 머리에 난 상처는 너무나 분명했다. 교회 바닥의 깨진 타일도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워낙 파손이 컸다. 사람들은 여기에 누군가가 왔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일래스는 자기 임무를 마치고 나면, 오푸스 데이에 숨을 작정이었다.
‘아링가로사 주교님이 보호해 주실 것이다.’
사일래스는 뉴욕에 있는 오푸스 데이 본사의 담장 안에서 올리는 기도와 명상의 삶보다 축복받은 존재를 상상할 수 없었다. 다시는 밖으로 발을 내딛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그곳에 있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링가로사 주교 같은 유명한 인물은 그리 쉽게 사라질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사일래스는 알고 있었다.
‘내가 주교님을 위험에 빠뜨렸다.’
사일래스는 멍한 시선으로 마룻바닥을 내려다보며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다. 처음에 사일래스에게 생명을 준 것은 아링가로사였다… 스페인에 있는 작은 사제관에서 그를 가르치고, 그에게 삶의 목적을 주었다.
아링가로사는 사일래스에게 말했다.
“친구여, 당신은 알비노로 태어났습니다. 이 일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폄하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게 당신을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합니까? 노아도 알비노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노아의 방주에 나오는 그 노아 말입니까?”
사일래스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링가로사는 웃고 있었다.
“맞습니다. 노아의 방주의 노아도 알비노였지요. 당신처럼 천사같은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점을 명심하세요. 노아는 지상의 모든 생명을 구했습니다. 사일래스, 당신은 위대한 일을 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신은 당신을 자유롭게 한 것입니다. 당신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신의 사업을 하기 위해, 신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일래스는 자신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난 순수하다. 하얗고 아름답다. 천사처럼.’
하지만 그 순간, 자기가 머물고 있는 방에서 사일래스에게 속삭이는 것은 실망스러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넌 실패작이야. 유령이라고.’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일래스는 사죄의 기도를 올렸다. 그런 뒤 외투를 벗고, 징벌의 수단들에 손을 뻗었다.
기어 조작에 애를 먹으면서도 랭던은 탈취한 택시를 부아 드 불로뉴의 끝으로 몰고 갈 수 있었다. 겨우 두 번 덜컹거렸을 뿐이다. 불행히도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택시 배차 안내원이 무전을 통해 운전사를 계속 부르는 소리에 묻히고 있었다.
“차량번호 563, 어디에 있습니까? 응답하시오!”
랭던이 공원의 출입구에 이르렀을 때, 랭던은 자신의 남성다움을 버리기로 작심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당신이 운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소.”
운전석으로 뛰어들면서 소피는 안심하는 듯 보였다. 몇 초 후에 소피는 공원을 떠나 롱샹의 오솔길을 따라 서쪽으로 차를 부드럽게 몰았다.
“어느 쪽이 악소 가요?”
소피가 속력을 1백 킬로미터 가까이 올리는 것을 지켜보며 랭던이 물었다. 소피의 눈동자는 도로에 고정되어 있었다.
“악소 가는 롤랑 가로의 테니스 스타디움 바로 옆에 있다고 운전사가 말했잖아요. 그 지역을 알고 있어요.”
랭던은 묵직한 열쇠의 무게를 손바닥으로 느끼면서 주머니에서 다시 꺼냈다. 이 열쇠는 어마어마한 결과물일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이제 열쇠는 자신의 자유와도 상당히 관계가 있었다.
조금 전에 소피에게 성전 기사단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랭던은 열쇠가 시온의 문장을 지니고 있는 것 이외에도 조직과 좀더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팔길이가 같은 십자가 모양은 균형과 조화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성전 기사단의 상징이기도 했다. 누구나 성전 기사단이 입고 있는 하얀 튜닉 위에 붉은 십자가가 수놓아진 그림을 봤을 것이다. 기사단의 십자가들은 그 끝이 살짝 부풀려져 있긴 해도 같은 길이의 팔들로 되어 있다.
‘정사각의 십자가. 이 열쇠의 십자가와 같다.’
기사단이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하자, 랭던은 자신의 상상력이 줄달음쳐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배.’
그 터무니없음에 랭던은 소리내어 웃을 뻔했다. 성배는 영국 어딘가, 적어도 1천 5백 개가 넘는 기사단 교회들 중 한 곳의 은밀한 방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 빈치가 시온의 수장으로 있던 시대였지.’
시온은 조직의 강력한 문서들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문서들을 여러 차례 옮겨야만 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성배가 예루살렘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이래 여섯 번이나 이동했다고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성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447년 수많은 목격자들이 문서들을 태워 버릴 뻔한 화재를 묘사한 때였다. 하나를 옮기는 데도 장정 여섯 명이 필요할 정도로 거대한 궤짝 네 개를 미처 안으로 안전하게 옮기기 전이었다고 한다. 그후 누구도 성배를 보지 못했다.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의 나라인 영국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성배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남아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생전에 성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숨겨진 장소는 아마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배에 미친 사람들은 다 빈치의 그림이나 그의 일기를 여전히 숙고하는 것이다. 성배의 현재 위치를 알려줄 숨겨진 단서를 찾을 희망으로 말이다. 일부는 <암굴의 마돈나>의 산악 배경이 스코틀랜드의 굴이 많은 언덕 지형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제자들의 수상스러운 자리 배치가 일종의 암호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모나리자> 그림을 엑스레이로 비춰 보면, 모나리자가 원래는 이시스의 청금석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있었는데, 다 빈치가 죽은 후에 고의적으로 덧칠해서 없애 버렸다고 주장한다. 랭던은 팬던트의 흔적을 못봤을 뿐만 아니라, 그 그림이 어떻게 성배를 나타내는 것인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성배 숭배론자들은 이에 관해서 인터넷 게시판이나 채팅방에서 멀미가 날 정도로 열심히 토론하고 있었다.
‘모두가 음모를 좋아한다.’
그리고 음모는 계속되고 있었다. 가장 최근의 깜짝 놀랄 만한 발전으로는 유명한 다 빈치의 그림인 <매기에 대한 찬사>가 있다. 이 그림은 여러 겹의 채색 밑에 어두운 비밀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예술 진단가인 마우리치오 세라치니가 이 사실을 밝혀냈고,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은폐된 레오나르도’라는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떠들썩하게 실었다.
녹회색으로 스케치한 밑그림은 진짜 다 빈치의 작품이지만, 채색 자체는 다 빈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세라치니가 밝혀낸 분명한 사실이었다. 진실은 어떤 무명화가가 다 빈치 사망 이후 그 햇수만큼 스케치에 색을 칠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더 심란한 것은 가짜 사기꾼 그림 밑에 과연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적외선 반사경과 엑스레이로 촬영된 사진들은 이 뻔뻔한 화가가 다 빈치의 습작에 색칠을 해가면서, 밑그림에서부터 수상한 출발을 했다는 것을 암시했다… 마치 다 빈치의 진정한 의도를 바꾸려는 것처럼 말이다. 밑그림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 그림은 대중 앞으로 나와야만 했다. 하지만 피렌체의 우피치 박물관의 당황한 관리들은 즉시 이 그림을 길 건너 창고로 추방시키고 말았다. 이 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의 방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그림이 걸려 있던 자리에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오만한 안내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은 복원을 위해 진단 테스트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성배를 추적하는 현대인들의 기묘한 지하세계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위대한 수수께끼의 인물로 남아 있다. 그의 작품은 비밀을 막 터뜨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비밀이 거기에 숨겨져 있든, 한 겹의 채색 밑에 있든, 그저 평범한 시각 속에 암호로 숨겨져 있든, 아니면 숨겨진 것이라곤 전혀 없든 간에 말이다. 어쩌면 애를 태우는 듯한 다 빈치의 풍부한 단서들은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모나리자의 얼굴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조롱을 불러 모으기 위한 공허한 약속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할까요? 당신이 들고 있는 열쇠가 성배의 숨겨진 장소를 풀어 줄까요?”
랭던을 돌아보며 소피가 물었다. 랭던의 웃음소리는 자신에게조차 억지스럽게 들렸다. 랭던은 소피에게 역사에 대해 짧게 얘기해 주었다.
“정말 잘 모르겠소. 더욱이 성배는 프랑스가 아닌 영국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믿어지니까.”
소피가 주장했다.
“하지만 성배가 유일하게 합리적인 결론 같아요. 우린 극도로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고, 이 열쇠에는 시온의 문장이 각인되어 있어요. 그리고 시온의 회원으로부터 이 열쇠를 건네받았고요. 당신이 내게 말한 대로라면, 조직은 성배 수호자들인 거잖아요.”
랭던은 소피의 추론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소문에는 시온이 언젠가는 성배를 마지막 안식처인 프랑스로 가져오기로 맹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확실하게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줄 만한 역사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시온이 성배를 어떻게든 프랑스로 가져왔다 쳐도, 테니스 스타디움 근처에 있다는 악소가 24번지가 고귀한 성배의 마지막 안식처로는 보이지 않았다.
“소피, 난 정말 이 열쇠가 성배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소.”
“성배가 영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인가요?”
“그것뿐만이 아니오. 성배의 위치는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지켜진 비밀들 중 하나요. 시온에 가입한 회원들은 자신들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수십 년을 기다려야만 해요. 조직의 상층부로 올라가서 성배가 어디에 있는지를 배우기 전까지는 말이오. 이 비밀은 칸막이로 구분된 지식처럼 교묘한 시스템으로 보호되고 있었을 것이오. 조직의 규모는 매우 컸겠지만, 당대에는 오직 네 사람만이 성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수장인 그랜드 마스터와 세 명의 집사들. 당신 할아버지가 이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은 아주 적어요.”
‘할아버지는 그들 중 한 사람이었어요.”
가속기를 밟으며 소피는 생각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조직 안에서 할아버지의 위치를 확인시켜 준 이미지가 그녀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만일 당신 할아버지가 조직의 상위 계층이었다고 해도, 조직 외부의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밝혀서는 안될 입장이었을 거요. 할아버지가 당신을 조직 안으로 데려갈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소.”
‘난 이미 거기 있었어요.’
지하실의 의식을 떠올리며 소피는 생각했다. 소피는 지금 이 순간 노르망디의 저택에서 자신이 목격했던 것을 랭던에게 말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수치스러운 마음 때문에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피는 몸이 떨렸다. 저 멀리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소피는 무거운 피로가 전신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저기!”
앞에 어렴풋이 나타난 거대한 테니스 스타디움을 보고 흥분한 랭던이 소리쳤다. 소피는 슬며시 스타디움 쪽으로 차를 몰았다. 교차로를 몇 개 지나자, 악소 가를 알리는 교차로에 도달했다. 번지수가 낮은 쪽으로 차를 돌렸다. 도로는 점점 상업 건물들로 잘 정비된 산업화 지구처럼 바뀌었다.
랭던은 ‘24’라는 숫자를 찾으면서 자신이 은밀히 수평선에서 교회의 첨탑을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리석게 굴지 말자. 이런 지역이 잊혀진 기사단의 성전이라니?’
“저기 있네요.”
소피가 뭔가를 가리키며 소리를 내질렀다. 랭던은 소피가 가리키는 구조물로 눈을 돌렸다.
‘세상에, 저게 뭐야?’
팔길이가 같은 거대한 네온 십자가로 화려하게 정면을 장식한 현대식 건물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십자가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취리히 안전금고 은행.
랭던의 기사단의 교회에 대한 그의 희망을 소피에게 알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 숨겨진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이 기호학자들의 직업 성향이었다. 이 경우, 팔길이가 같은 십자가가 중립국인 스위스의 깃발 상징으로 차용되어 쓰인다는 것을 랭던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적어도 미스터리는 풀렸다. 소피와 랭던은 스위스 은행의 금고 열쇠를 들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