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라자르 철도역은 유럽의 다른 역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역사(驛舍)문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마분지를 들고 있는 노숙자들이 있고, 몇몇 대학생 녀석들이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틀어 놓은 채 배낭 위에서 자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짐꾼들도 보였다.

 

소피는 거대한 출발안내 표지판으로 눈을 돌렸다. 랭던도 표지판을 올려보았다. 가장 빠른 열차는 3시 6분 릴리 행 열차였다.

 

“빠를수록 좋겠어요. 그리고 릴리라면 괜찮을 것 같네요.”

 

소피가 말했다.

 

‘빠를수록?’

 

랭던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2시 59분이었다.열차는 7분 후에 떠날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아직 표도 사지 않았다. 소피는 랭던을 매표소 창문으로 이끌며 말했다.

 

“당신 신용카드로 표 두 장을 사요.”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추적을 받을…”

 

“바로 그거예요.”

 

랭던은 비자카드로 객실 차표 두 장을 구입하고, 표를 소피에게 건넸다. 소피는 랭던을 열차 선로로 안내했다. 머리 위로 기차의 기적 소리가 울리고, 릴리 행 기차가 곧 출발한다는 승객용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들 앞에는 열여섯 개의 선로가 흩어져 있었다. 오른쪽 멀리, 3번 철로에서 릴리 행 기차가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뿜으며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피는 랭던의 팔을 끼고 기차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로비를 통과해 밤새도록 문을 여는 카페를 지나갔다. 마침내 철도 역사의 서쪽에 있는 옆문으로 빠져나오자 인적이 없는 거리가 나왔다.

 

문 근처에서 택시 한 대가 빈둥거리고 있었다. 운전사가 소피를 보더니 헤드라이트를 깜박거렸다. 소피가 뒷자석으로 올라탔다. 랭던은 그녀를 따라 차에 들어갔다.

 

택시가 출발하자, 소피는 기차표를 꺼내 찢어버렸다. 랭던은 한숨을 쉬었다.

 

‘칠십 달러가 날아가 버렸군.’

 

택시가 클리시 가로 이르는 단조로운 북쪽 길로 접어들자 랭던은 자기들이 도망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오른쪽 창으로 몽마르트와 사크레 쾨르의 아름다운 돔이 보였다. 반대편에서 경찰차가 사이렌을 번쩍거리며 그들 옆을 휙 지나갔다.

 

랭던과 소피는 사이렌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몸을 숙이고 있었다. 소피는 택시 운전사에게 시 외곽으로 나가 달라고 짧게 말했다. 소피의 굳어진 턱을 보며, 랭던은 그녀가 다음 행보를 구상중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랭던은 십자 모양의 열쇠를 다시 살펴보았다. 창에 가까이 가져가 보기도 하고, 열쇠가 만들어진 곳을 알려주는 어떤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눈에 대보기도 했다. 간간이 빛나는 가로등 불빛 속에서, 랭던은 시온의 문장(紋章)외에는 어떤 표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건 말도 안되오.”

 

랭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떤 부분이요?”

 

“당신 할아버지는 이 열쇠를 당신에게 주기 위해서 무척 고생했을 텐데, 당신은 이걸 가지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오.”

 

“동감이예요.”

 

“할아버지가 그림 뒤에 아무것도 써놓지 않은 게 확실하오?”

 

“샅샅히 조사했어요. 이것뿐이었어요. 이 열쇠도 그림 뒤에 쑤셔 넣어져 있었다고요. 열쇠 머리의 시온 문장을 보고는 주머니에 넣은 채, 당신과 함께 박물관을 나온 거예요.”

 

랭던은 삼각형 다리의 뭉툭한 끝을 들여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열쇠 머리의 테두리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최근에 누군가 이 열쇠를 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요?”

 

“알코올로 문지른 냄새가 나요.”

 

소피가 돌아보았다.

 

“뭐라고요?”

 

랭던은 열쇠를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누군가 열쇠를 클리너로 문지른 냄새가 난단 말이오. 반대쪽에서 더 강하게 나는군. 그래, 알코올 성분의 물질이야. 클리너로 문질렀든지, 아니면…”

 

“뭐죠?”

 

랭던은 열쇠를 빛에 대더니 십자가의 넓은 팔 위의 부드러운 표면을 들여다보았다. 그 부분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젖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주머니에 열쇠를 넣기 전에 뒷면을 잘 들여다보았소?”

 

“왜요? 글쎄요, 그건 잘… 서둘러야 해서.”

 

랭던은 소피를 돌아보았다.

 

“그 펜 등을 아직도 가지고 있소?”

 

소피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자외선 펜 등을 꺼냈다. 랭던은 등으로 열쇠 뒷면을 비췄다. 열쇠의 뒷면이 순간 빛났다. 거기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읽을 수는 있지만 급하게 적은 필적이었다.

 

“자, 우리는 알코올 냄새가 무엇인지 이제 알 게 되었군요.”

 

랭던이 웃으며 말했다. 소피는 놀라움에 사로잡혀 열쇠 뒷면의 자줏빛 글씨를 응시했다.

 

악소 가 24번지.

 

‘주소! 할아버지가 주소를 적어 놓았어!’

 

“이게 어딥니까?”

 

랭던이 물었다. 소피도 몰랐다. 소피가 운전사에게 묻자 운전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 곳은 파리의 서쪽 교외에 있는 테니스 경기장 근처라고 말했다. 소피는 그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부아 드 불로뉴를 지나가면 더 빠릅니다. 괜찮습니까?”

 

운전사가 프랑스어로 소피에게 물었다. 소피는 얼굴을 찡그렸다. 덜 수치스러운 길을 생각해 내려고 했지만, 오늘 밤은 까다롭게 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좋아요.”

 

‘우리가 이 미국 방문객에게 충격을 주겠군.’

 

소피는 다시 열쇠를 들여다보며, 악소가 24번지에서 그들이 과연 무엇을 보게 될지 궁금했다.

 

‘교회? 일종의 시온 본부?’

 

그녀의 마음은 10년 전에 지하 석굴에서 목격했던 비밀스러운 의식의 이미지들로 다시 메워지고 있었다. 소피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로버트, 당신에게 할 얘기가 아주 많아요. 하지만 먼저 시온 수도회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게 말해 줬으면 해요.”

 

택시는 서쪽으로 달라고, 소피의 눈동자는 랭던의 눈과 마주쳤다.

 

 

<모나리자>의 전용 관람실 밖에서, 브쥐 파슈는 씨근거리고 있었다. 소피와 랭던이 어떻게 자신을 무장해제시켰는지 설명하는 경비원 그루아르의 얘기를 들으며 파슈는 생각했다.

 

‘그냥 그 축복받은 그림을 쏴버리지 그랬나?’

 

“반장님?”

 

부관 콜레가 지휘 본부 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반장님, 사람들이 느뵈 요원의 차를 찾았다고 합니다.”

 

“대사관으로 간 모양이지?”

 

“아닙니다. 철도역입니다. 막 출발한 기차표를 두 장 샀다고 합니다.”

 

파슈는 경비원에게 가라고 손짓하고, 콜레를 근처 구석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쉰 목소리로 물었다.

 

“목적지가 어딘가?”

 

“릴리입니다.”

 

파슈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끼일 거야. 좋아, 만일을 위해 다음 역에 연락하고 열차를 세워 조사하라고 해. 느뵈의 차는 그대로 두고, 그들이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서 사복 차림의 요원들을 배치시켜놔. 맨발로 도주할지도 모르니까, 사람을 보내서 역 주변을 뒤지라고 해. 역에서 떠나는 버스들이 있나?”

 

“지금 이 시간엔 없습니다. 오직 대기하고 있는 택시들뿐입니다.”

 

“잘됐군. 운전사들에게 물어봐. 뭔가 본 게 있는지 말이야. 택시회사 발차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설명해. 난 인터폴에 연락하겠네.”

 

콜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장님, 이 일을 전화로 알릴 겁니까?”

 

파슈는 후회했다. 하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물망을 좁혀야 해. 더욱 꽉 죄도록 말이야.’

 

처음 한 시간이 중요했다. 탈주 후 첫 한 시간을 보내는 도망자들의 행동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항상 같은 것을 필요로 했다.

 

‘여행, 숙박, 현금.’

 

훌륭한 삼위일체였다. 인터폴은 눈 한번 깜박이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을 도망자에게서 빼앗을 수 있었다. 랭던과 소피의 사진을 파리의 여행사와 호텔, 은행에 전송함으로써 인터폴은 이 두 사람이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파리를 떠날 수도 없고, 숨을 곳도 없으며, 신분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돈을 인출할 수도 없다. 도망자는 차를 훔치거나, 가게를 털거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된다. 어떤 짓이건,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금세 그 지역 경찰서에서 파악할 것이다.

 

“오직 랭던만 알리는 거지요. 그렇죠? 소피 느뵈까지 들추는 겁니까? 그녀는 우리측 요원입니다.”

 

콜레가 말했다. 파슈는 냉큼 말을 잡아챘다.

 

“물론 그 여자도 포함이야. 그 여자가 랭던의 더러운 일을 다 돌봐주는 마당에 랭던만 잡아넣어 좋을 게 뭐가 있겠나? 느뵈의 인사 기록을 훑어보고 친구나 가족, 안면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파악해야겠어. 도움을 청하려고 연락할지도 모르니까. 대체 그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밖에서 저 지랄을 하는지 알 수가 없군. 이제 느뵈는 이 일로 직업을 잃는 것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저는 전화기 옆에 있을까요. 아니면 현장으로 나갈까요?”

 

“현장으로 가. 역으로 가서 팀을 꾸리게. 자네가 고삐를 쥐고 있는 거지만, 내게 말 없이 움직이지 마.”

 

“알겠습니다. 반장님.”

 

콜레는 달려나갔다. 구석에 선 파슈는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창문 밖으로 유리 피라미드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이는 연못에 반사된 피라미드의 모습이 물 위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군.”

 

안정을 취하며 파슈는 혼자말을 했다. 잘 숙련된 현장 요원이라면 인터폴이 가하는 압력을 운 좋게 이겨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 암호 해독가와 대학 교수라?’

 

동이 트기도 전에 그들은 잡힐 것이다.

 

 

나무들이 울창한 공원은 부아 드 불로뉴 외에도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파리의 예술품 감정가들은 이곳을 ‘지상의 즐거움이 모인 정원’이라고 불렀다. 거창한 별명과 공원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같은 제목을 가진 보슈의 선정적인 그림을 본 사람이라면, 어둡고 비틀린 이 숲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원은 변태와 성도착자들의 쉼터였다. 밤이 되면 숲의 바람결을 타고, 말로 할 수 없는 깊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타난 수백의 몸뚱어리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자, 여자 그 중간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랭던이 시온 수도회에 관해서 말하려고 생각을 가다듬고 있을 때, 택시는 공원의 입구를 통과해 자갈이 깔린 서쪽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랭던은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공원의 야간 거주자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자신들이 걸친 옷을 뽐내고 있었다. 앞에서는 가슴을 풀어헤친 두 명의 소녀들이 자동차를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소녀들 뒤에서는 번들거리는 흑인이 국부만 가린 채 엉덩이를 돌려댔다. 흑인 옆에는 눈부시게 황홀한 금발미인이 미니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스커트를 들어 올리자 그 금발 여인은 여자가 아니란 것이 드러났다.

 

‘하느님 맙소사!’

 

랭던은 시선을 차 안으로 거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시온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소피가 말했다.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기가 말하려는 전설과 이처럼 안 어울리는 배경이 또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랭던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망설였다. 조직의 역사는 천 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세월 동안 비밀과 협박, 배신, 분노한 교황의 손에서 일어난 잔인한 고문 등이 지난 천 년에 걸쳐 놀라운 연대기를 이루었다.

 

랭던은 입을 열었다.

 

“시온 수도회는 1099년 프랑스 왕 부이용의 고드프루아가 만든 것이오. 왕이 이 도시를 정복한 직후죠.”

 

소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두 눈은 랭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고드프루아 왕은 엄청난 비밀의 소유자였다고 알려져 있소.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그 가족들에게 전해진 비밀인데, 자기가 죽으면 그 비밀이 사라질까 두려워한 왕은 비밀조직, 그러니까 시온 수도회를 만들었다고 해요. 이 조직이 세대를 거쳐 비밀을 조용히 전수하고, 자기 비밀을 보호하도록 말이오. 예루살렘 시절에, 시온은 폐허가 된 헤롯 신전 밑에 문서 상자가 숨겨진 채 묻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헤롯 신전은 일찍이 솔로몬 신전의 폐허 위에 세우진 거였소. 그 문서들은 고드프루아의 엄청난 비밀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고, 교회가 이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것이라고 시온은 믿었소.”

 

소피의 표정이 어두웠다.

 

“시온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간에 이 문서들을 신전 밑의 돌 속에서 회수해야 한다고 맹세했어요. 그리고 진실이 영원히 죽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말이오. 폐허 밑에서 문서를 끄집어내기 위해 시온은 군사조직을 만들었소.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청빈한 기사들의 부르심’ 이라고 불리는 아홉 명의 기사집단이오.”

 

랭던은 잠시 뜸을 들였다.

 

“성전 기사단으로 더 잘 알려져 있을 거요.”

 

소피는 놀랍다는 시선을 던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귓결에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성전 기사단에 관해서 랭던은 종종 강의했다. 학자들에게 성전 기사단의 역사는 사실과 전설, 잘못된 정보가 서로 뒤섞인 불안정한 세계였다. 그래서 가장 기초적인 진실들을 끄집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요즈음 들어 랭던은 강의도중 성전기사단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일부러 피하고 있다. 잘못하다간 음모 이론에 휩쓸린 한 무더기의 질문들과 맞닥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소피 역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지금 성전 기사단을 비밀 문서를 회수하려는 시온 수도회가 만들었다는 얘긴가요? 전 기사단이 성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걸로 아는데요.”

 

“그건 일반적인 오해요.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을 보호한다는 일반적인 개념은 기사단이 자기들의 임무를 위장한 거란 말이오. 성지에서 기사단의 진짜 목적은 신전 폐허 밑에 깔려 있는 문서들을 회수하는 거였소.”

 

“그럼 그들이 문서를 찾아냈나요?”

 

랭던은 싱긋 웃었다.

 

“아무도 확신하지 않아요. 하지만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한 가지는 기사단이 폐허 밑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는 것이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무엇, 기사들에게 부와 권력을 가져다 줄 그 뭔가를 말이오.”

 

랭던은 재빨리 성전 기사단에 얽힌 보편적인 학설을 대충 얘기했다. 기사단이 2차 십자군 전쟁동안 어떻게 성지에 머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왕인 볼드윈 2세에게 기독교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기 있겠다고 말했다는 것 등을 말이다. 어떤 금전적인 보상도 없이 청빈을 맹세한 기사들이었지만, 그들은 왕에게 쉴 곳을 부탁했고 신전의 폐허 속에 마구간과 거처를 마련하겠노라며 왕의 허락을 구했다. 볼드윈 왕은 그 요청을 수락했다. 기사들은 황폐한 성전 안에 누추한 거취를 마련했던 것이다.

 

기사들의 이상한 거처는 별 생각 없이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기사단은 시온이 찾는 문서들이 폐허 깊숙이 묻혀 있다고 믿은 것이다. 신이 거주했다고 믿어지는 신전 속의 신성한 방 안에 말이다. 문자 그대로 유대인들의 믿음 한가운데였다. 아홉 명의 기사들은 10년 동안을 폐허 속에서 살았다. 단단한 바위들 사이에서 비밀을 파내면서 말이다.

 

소피가 시선을 들었다.

 

“그럼 기사단이 뭔가를 찾았다는 얘기예요?”

 

“그들은 확실히 뭔가를 찾아냈소.”

 

비록 9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기사단은 그들이 찾아 헤매던 것을 마침내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보물을 성전에서 유럽으로 가지고 왔다. 이로써 유럽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졌다.

 

기사단이 바티칸을 협박했는지, 아니면 교회가 단순히 기사단의 침묵을 사려고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교황 이노센트 2세는 즉시 기사단에게 무제한의 힘을 부여했고, 그들이 곧 법이라는 유례없는 교황청의 교서를 발표했다. 즉 기사단은 왕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모든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자적인 군대가 된 것이다. 이것은 기사단이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자유로워진 것을 의미했다.

 

바티칸에서 부여받은 이 백지 위임장으로 성전 기사단은 열두 개가 넘는 나라에서 광대한 땅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조직의 숫자나 정치적인 면에서도 급속하게 세력을 키워나갔다. 기사단은 왕가에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을 때 이자를 물어 왕가를 파산시켜 버렸다. 현대와 같은 은행 시스템을 통해 자기들의 부와 영향력을 확대시켜 나간 것이다.

 

1300년경, 바티칸의 인가가 기사단에게 너무 많은 힘을 몰아주었다고 판단한 교황 클레멘트 5세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결정했다.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공모해, 교황은 바티칸을 짓누르고 있는 비밀을 통제함으로써 기사단을 뭉개 버리고, 그들의 부를 빼앗을 계획을 고안해 냈다. 교황 클레멘트는 CIA같은 군사 책략을 통해,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 유럽 전역에 있는 교황의 군사들에게 동시에 열어보도록 봉인된 비밀 지령을 내렸다.

 

13일 새벽, 봉인은 풀리고 무시무시한 교황의 지령이 드러났다. 클레멘트의 편지에는 신이 자신을 찾아와 계시를 내렸는데, 성전 기사단이 악마숭배와 동성애, 십자가 모독, 남색, 그 외 불경한 행동의 이단적인 죄들을 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은 교황 클레멘트에게 모든 기사들을 소환해서 신에 거역한 그들의 죄를 실토할 때까지 고문하고, 지상을 깨끗하게 하라는 요청을 내렸다고 했다. 클레멘트의 마키아벨리식 작전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진행됐다. 그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사들이 사로잡혀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이단자로서 말뚝에 세워져 화형당했다. 그 비극의 메아리는 현대 문화에까지 울리고 있는데, 오늘날에도 13일의 금요일은 운이 나쁜 날로 인식되고 있다.

 

소피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성전 기사단이 사라졌다는 거죠? 하지만 기사단의 형제애는 지금도 존재하는 걸로 아는데?”

 

“그렇소.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말이오. 기사단을 뿌리뽑으려던 클레멘트의 노력과 거짓 혐의에도 불구하고, 기사단은 강력한 동지애를 가지고 있었고 또 몇몇은 바티칸의 처형을 피해 가까스로 달아날 수 있었소. 기사단의 보물인 문서들은 명백히 기사단의 힘의 원천이었고, 클레멘트의 진짜 목표도 이것이었소. 하지만 이 보물은 클레멘트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만 거요. 이 문서들은 기사단의 그림자 같은 설계자인 시온 수도회에 쭉 맡겨져 있었소. 그리고 시온의 비밀스러운 장막은 바티칸의 살육에서 조직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가 있었던 거요. 바티칸이 살육을 끝냈을 때, 시온은 한밤중에 파리의 성전 기사단 건물에서 문서들을 몰래 빼내 라로셸에 있는 기사단의 배에 실었다고 해요.”

 

“그 문서들은 어디로 갔지요?”

 

랭던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미스터리에 대한 답은 오직 시온만이 알고 있을 거요. 오늘날까지도 끊임없는 수색과 탐색의 대상이니 말이오. 문서들은 여러 번 옮겨지고 다시 숨겨진 것 같소. 현재는 영국 어딘가에 있다는 추정이 지배적이오.”

 

소피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천 년 동안 이 비밀의 전설이 전해져 왔소. 문서 전체와 그 힘, 문서가 가진 비밀은 하나의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바로 상그리엘이오. 이것에 관한 수백 권의 책들이 씌어졌고, 상그리엘에 관한 학자들의 큰 관심만큼이나 그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고 있소.”

 

“상그리엘? 이 단어가 프랑스어인 ‘상’과 스페인어인 ‘상그리’와 관련이 있나요? 이 단어들은 모두 피를 뜻하는데…?”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는 상그리엘의 중추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소피가 상상하는 그런 식은 아니었다.

 

“전설은 복잡해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중요한 한 가지는 시온이 증거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고, 그 진실을 역사에 드러낼 적절한 순간을 의식적으로 기다려 왔다는 것이오.”

 

“무슨 진실요? 어떤 진실이 그렇게 엄청날 수 있죠?”

 

랭던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곁눈질로 어둠에 잠긴 파리의 하층부를 바라보았다.

 

“소피, 상그리엘이라는 말은 고대 언어요.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른 용어로 진화해 왔소… 더 현대적인 이름으로 말이오. 내가 그 현대적인 이름을 말하면, 당신은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거요. 사실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상그리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거예요.”

 

소피는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난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랭던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들어봤을 거요. 성배(聖杯)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