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스마트카는 대사관과 영사관들이 모여있는 외교 구역을 가르며 지나갔다. 골목길을 질주하다 오른쪽으로 돌아서자 샹젤리제의 넓은 한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랭던은 안전벨트를 매고 앉아, 몸을 뒤로 돌려 뒤따라오는 차가 없는지 살펴보았다. 그는 갑자기 도망치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랭던은 자기 자신에게 확인시켰다. 소피가 화장실 창문으로 GPS 장치를 던져 버렸을 때, 소피가 그를 위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제 그들은 대사관에서 빠른 속도로 멀어지면서 차량이 드문 샹젤리제의 거리를 꾸불꾸불하게 달리고 있었다. 랭던은 자기가 취할 수 있는 선택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소피가 경찰을 거의 따돌린 듯 보였지만, 그것은 잠시뿐일 것이다. 랭던은 자신들의 행운이 오래 지속되리라고 믿지 않았다.

 

운전대를 쥔 소피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뭔가를 찾아 랭던에게 내밀었다.

 

“로버트, 이걸 한번 봐요. 할아버지가 <암굴의 마돈나> 뒤에 남겨놓은 거예요.”

 

떨리는 기대감으로 랭던은 건네받은 물건을 살펴보았다. 꽤 묵직하고,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첫인상은 장례식 때 묘지에 박기 위해 디자인된 기념 대못의 모형이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뻗어 나온 기둥이 삼각형 모양의 각기둥이었다. 그리고 기둥에는 마마 자국처럼 보이는 수백 개의 작은 육각형 자국들이 있었다. 점들은 아주 섬세하게 찍혀 있고, 무작위로 흩어져 있었다.

 

“레이저로 다듬어진 열쇠예요. 거기 있는 육각형들은 전자장치를 통해야만 읽힐 거예요.”

 

소피가 랭던에게 말했다.

 

‘열쇠?’

 

랭던은 이런 열쇠를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쪽을 봐요.”

 

차선을 바꾸어 교차로를 지나면서 소피가 말했다. 열쇠를 돌린 랭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십자가의 중앙에는 붓꽃과 P.S. 라는 이니셜이 섬세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소피,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에게 말했던 봉인입니다. 시온 수도회에 공식적인 문장 말이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얘기했지만,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이 열쇠를 보았어요. 할아버지가 다시는 열쇠 얘기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죠.”

 

랭던의 눈은 여전히 열쇠에 못박혀 있었다.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열쇠와 그 위에 그려진 오래된 상징은 고대와 현대 세계를 기묘하게 결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이것이 어떤 상자를 여는 열쇠라고 말했어요. 자기 비밀을 많이 넣어둔 상자요.”

 

자크 소니에르 같은 사람이 간직한 비밀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랭던은 한기를 느꼈다. 고대의 비밀단체가 이런 첨단 열쇠를 가지고 무얼 하려고 했는지 랭던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시온은 비밀을 보호하려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했다. 엄청난 힘에 관한 비밀이었다.

 

‘이 열쇠가 그 비밀과 뭔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생각만으로도 랭던은 압도당하는 것 같았다.

 

“열쇠로 무엇을 열어야 하는지 알고 있소?”

 

소피의 표정은 실망스러웠다.

 

“당신이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요.”

 

손바닥 위에서 열쇠를 돌려가며 조사만 할 뿐 랭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기독교 물건 같아 보여요.”

 

소피가 단언했다. 랭던은 그 말에 확신할 수가 없었다. 열쇠의 머리는 한쪽 다리가 긴 전통적인 기독교 십자가가 아니라, 팔길이가 모두 같은 정사각형 십자가였기 때문이다. 이 정사각형 십자가는 기독교보다 1천 5백 년 앞서 나타났는데,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관련된 기독교적인 의미와는 아무 관련도 없었다. 기독교의 상징이 된 한쪽 다리가 긴 라틴 십자가는 원래 로마인들이 쓰던 고문 도구였다.

 

랭던은 항상 놀라웠다. 십자가 위에 박힌 예수를 바라보는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이름 자체에서 드러나는 잔혹한 상징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십자가(crucifix)라는 말은 라틴어 동사 ‘크루시에르(cruciare)’에서 왔는데, 이 말은 ‘고문하다’라는 뜻이다.

 

“소피,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팔길이가 같은 십자가는 평화로운 십자가로 간주된다는 거요. 이 사각형 모양은 십자가 처형에는 전혀 쓸모가 없소. 그리고 균형을 이룬 수직과 수평의 요소들은 남성과 여성의 자연스러운 합일의 뜻을 내포하고 있소. 그러니까 시온의 철학과 상징적으로 일치하는 셈이오.”

 

소피는 랭던에게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잘 모르는 거죠. 그렇죠?”

 

랭던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혀.”

 

소피는 자동차의 리어 뷰 미러로 뒤를 살폈다.

 

“좋아요. 내려야 해요. 이것이 무엇을 여는 열쇠인지 파악할 안전한 장소가 필요해요.”

 

랭던은 리츠 호텔의 안락한 자기 방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은 좋은 장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내 강의를 주최한 아메리칸 대학의 인사들은 어떻소?”

 

“너무 뚜렷해요. 파슈가 그 사람들을 조사할 거예요.”

 

“당신이 사람들을 많이 알겠지. 여기 사니까 말이오.”

 

“파슈는 내 전화와 전자메일을 모두 기록하고, 내 동료들에게도 모두 연락했을 거예요. 내가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염됐을 거예요. 호텔을 찾는 것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네요. 신분증을 요구할 테니까.”

 

파슈가 자기를 루브르 박물관에서 체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어땠을까. 랭던은 다시 궁금해졌다.

 

“대사관에 전화합시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고, 대사관 측에서 사람을 내보내면 어딘가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이 남자가 미친 것은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소피는 랭던을 응시했다.

 

“만나요? 로버트. 지금 꿈꾸고 있어요? 당신네 대사관은 대사관 구역외에서는 아무런 사법적 힘을 갖고 있지 않아요. 누군가를 보내서 우리를 데려가라고 하는 것은 프랑스 정부의 도망자를 돕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어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만일 당신이 제 발로 대사관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일시적인 보호를 요청한다면, 그래요, 그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프랑스 땅 안에서 프랑스 법 집행에 어긋나는 행동을 취해달라고 대사관에 부탁하자고요? 대사관에 지금 당장 전화해 보세요. 그럼 그쪽에서는 앞으로 닥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파수에게 가서 자수하라고 말할 거예요. 그 후에는 외교 채널을 통해서 당신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설득하겠노라고는 약속이나 하겠죠.”

 

소피는 샹젤리제에 우아하게 늘어서 있는 상점들을 쳐다보았다.

 

“현금은 얼마나 있어요?”

 

랭던은 지갑을 열었다.

 

“백 달러와 약간의 유로요. 왜요?”

 

“신용카드는요?”

 

“물론 가지고 있소.”

 

소피가 차의 속력을 내자, 랭던은 그녀가 뭔가 계획을 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앞. 샹젤리제의 끝에는 개선문이 서 있었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군대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50미터짜리 기념물이었다. 이 개선문 둘레로 9차선이 돌아가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로터리가 있었다. 개선문으로 다가가며 소피는 다시 자동차 리어 뷰 미러를 살폈다.

 

“잠깐 동안은 경찰을 따돌릴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이 차안에 계속 머무른다면 오 분 후에는 잡히고 말 거예요.”

 

‘그럼 다른 차를 훔치려나. 이제 우리는 모두 범죄자가 되는군.’ 하고 생각하니 랭던은 왠지 웃음이 나왔다.

 

“어쩔 작정이오?”

 

소피는 개선문의 로터리로 차를 몰았다.

 

“날 믿어요.”

 

랭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늘 밤 신뢰라는 말은 그다지 그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재킷의 소매를 걷어올려 시계를 살폈다. 이 시계는 열 살 생일 때 부모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수집가들을 위해 그 해에 특별히 제작된 미키 마우스 손목시계. 어린애 같은 다이얼은 종종 이상한 시선을 끌기도 했지만, 랭던은 결코 다른 시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디즈니 만화는 색과 형태의 마술로 랭던은 처음 이끌었다. 이제 미키 마우스는 매일같이 젊은 가슴을 지닐 수 있도록 랭던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미키의 팔이 이상한 시간을 나타내며 이상한 각도로 비틀어졌다.

 

2:51 A.M.

 

“재미있는 시계군요.”

 

로터리에 접어들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아가면서, 랭던의 손목을 흘끗 본 소피가 말했다.

 

“이야기가 깁니다.”

 

소매를 다시 끌어내리며 랭던은 말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피는 랭던에게 짧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시내 중심을 떠나 북쪽을 향해 로터리를 재빨리 돌아 나갔다. 푸른 신호등인 교차로 두 개를 간신히 지나 세 번째 교차로에 이르러, 소피는 오른쪽 말셰르브 가로 접어들었다. 나무들이 울창한 외교관 밀집 구역을 지나서 어두컴컴한 공업지구로 들어섰다. 소피가 재빨리 왼쪽을 내다보았다. 잠시 후 랭던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생라자르 철도역.

 

그들 앞에는 비행기 격납고나 온실의 후손처럼 보이는 유리 지붕의 철도 터미널이 있었다. 유럽의 철도역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이 시간에도 대여섯 대의 택시들이 터미널 정문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 앞에는 행상들이 수레에 생수와 샌드위치를 올려놓고 팔고 있고, 역에서 막 나온 배낭을 짊어진 넝마꼴의 아이들은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어느 도시에 와 있는지를 기억해 내려는 것처럼 말이다. 거리 위쪽에는 두세 명의 순경들이 연석 위에 서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일부 관광객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소피는 스마트카를 택시들의 행렬 뒤로 끌고 가서, 주차금지 구역 안에 세웠다. 길 건너에 합법적으로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데도 말이다. 랭던이 무얼 하려는 거냐고 미처 묻기도 전에 소피는 차에서 빠져나갔다. 그녀는 서둘러 바로 앞에 있는 택시로 달려가 운전사에게 뭔가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랭던이 스마트카에서 빠져나올 때, 소피가 운전사에게 지폐 뭉치를 건네주는 것이 보였다. 택시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들을 놔두고 가 버렸다. 랭던은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된 거요?”

 

택시가 사라진 후, 보도 위에 올라가 있는 소피 곁으로 가서 랭던은 물었다. 소피는 철도역 입구로 벌써 걸어가고 있었다.

 

“이리 와요. 우리는 파리를 떠나는 다음 기차표 두 장을 살 거예요.”

 

랭던은 서둘러 소피 옆으로 걸어갔다. 루브르 박물관을 떠나 2킬로미터 정도만 가면 되는 미국 대사관으로 간다는 것이 파리를 완전히 벗어나는 철수가 되고 말았다. 랭던은 이런 식의 행동이 점점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에서 아링가로사 주교를 태운 운전사는 작고 볼품 없는 검은색 피아트 세단을 몰고 있었다. 아링가로사는 모든 바티칸 수송 차량들이 교황의 봉인을 수놓은 깃발과 금속제 메달 모양의 번호판을 뽐내던 호화로운 대형차량이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 시절은 가버렸구나.’

 

바티칸의 차들은 이제 허세도 줄었고 아무런 특징도 없었다. 바티칸은 이러한 조치가 비용을 절감해서 교구에 더 많은 봉사를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링가로사는 보안문제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세계는 미쳐가고 있었고,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광고하는 일은 자동차 지붕 위에 과녁을 그려 놓는 것과 같았다.

 

아링가로사는 검은 사제복을 잘 추스른 뒤 차에 올라탔다. 검은색 좌석에 편히 앉아 간돌포 성까지의 긴 여정을 준비했다.

 

‘작년 로마로의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이었지.’

 

주교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 달 전, 바티칸에서 주교에게 급히 로마로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설명도 없었다.

 

“당신의 비행기표는 공항에 있습니다.”

 

교황청은 고위 성직자들에게조차 신비의 장막을 치고 있었다. 이 이상한 소환에 대해 아링가로사는 최근 오푸스 데이의 성공, 즉 뉴욕에 지어진 오푸스 데이 세계 본사의 완공을 두고, 이를 등에 업으려는 교황과 바티칸 관료들의 사진 촬영 문제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잡지 <건축의 다이제스트>에서 오푸스 데이 건물을 ‘현대적인 조경과 우아하게 어울리는 빛나는 가톨릭의 등대’라고 부른 것이다. 최근 바티칸은 ‘현대’라는 말이 붙은 것이면 어느 것에나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링가로사는 어쩔 수 없이 이 초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행 교황체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링가로사로서는 대다수의 보수적인 성직자들처럼 신임 교황의 재임 첫해를 지대한 우려를 가지고 지켜보았다. 전례없이 자유주의자인 교황은 바티칸 역사상 가장 말 많고 이상한 비밀 투표를 통해 교황직을 보장받았던 것이다. 이제 교황은 기대하지도 못했던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을 겸손해 하지도 않았고, 기독교 세력 안의 고위 관료들과 연계해서 힘을 과시하는데 시간을 쓰지도 않았다. 추기경 대학에서 비롯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자유주의 조류를 타고, 교황은 ‘바티칸 교리의 쇄신과 세 번째 밀레니엄의 시대에 맞게 가톨릭을 갱신하자.’는 사명을 선언했던 것이다.

 

이 말은 교황이란 존재가, 신의 법을 다시 쓸 수도 있고 진정한 가톨릭의 요구가 현대 사회에서는 너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주장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이런 뻔뻔스러운 생각이 아링가로사는 두려웠다.

 

아링가로사는 오푸스 데이의 무시 못할 규모와 자금력 등 자신의 모든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해서, 교황과 그의 조언자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교회의 법을 부드럽게 고치는 것은 믿음도 없는 겁쟁이 짓이며 정치적인 자살이라고 말이다. 아링가로사는 예전에 시행된 ‘바티칸2(1962년 10월 11일부터 1965년 12월 8일까지 이루어진 2차 바티칸 평화회의)의 대실패’ 같은 교회법의 순화는 훼손된 유산만 남겼을 뿐임을 환기시켰다. 교회 참석자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헌금은 메말라가고 있었다. 교회를 담당할 가톨릭 사제들조차 부족한 형편이었다.

 

“사람들에게는 교회의 지도와 구체적인 틀이 필요한 것이지, 응석이나 받아주고 면죄나 주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아링가로사는 주장했다.

 

몇 달 전 밤, 자신을 태운 피아트 자동차가 공항을 출발할 때 아링가로사는 놀랐다. 차가 바티칸이 아닌 동쪽으로 꾸불꾸불한 산길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링가로사는 운전사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요?”

 

“알반 언덕입니다. 회의 장소는 간돌포 성입니다.”

 

“교황의 여름 거주지?”

 

아링가로사는 그곳에 가본 적도 없지만,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바티칸 천문대가 있는 이 16세기 성채는 교황의 여름 휴가지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천체 관측소이기도 했다. 시대적인 필요성 때문에 과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바티칸의 입장이 아링가로사는 늘 불만이었다. 과학과 믿음을 섞어 놓은 논리적 근거가 무엇이란 말인가? 산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편견 없는 과학을 수행할 수 없다. 믿음 역시 그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별로 가득한 11월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간돌포 성이 시야에 들어오자 아링가로사는 생각했다.

 

‘하지만, 믿음은 존재한다.’

 

진입로에서 바라본 성은 무분별한 도약을 꿈꾸는 거대한 석조 괴물 같았다. 벼랑 끝에 자리잡은 성은 이탈리아 문명의 요람 위를 굽어보고 있었다. 로마를 건설하기 전, 쿠리아치 부족과 오라치 부족간에 전투가 벌어졌던 계곡이었다. 그 실루엣만으로도 간돌포 성은 시선을 붙들만 했다. 층층으로 이루어진 방어적인 형태의 성채는 벼랑 위에 세워져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상적인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지붕 위에 세워진 거대한 알루미늄 망원경 돔은 건물의 외관을 망치고 있었다. 아링가로사는 한때 근엄한 성채였던 이 건물이 마치 자랑스러운 투사가 파티 모자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링가로사가 차에서 내리자, 젊은 예수회 수사가 서둘러 다가와 그를 맞이했다.

 

“주교님, 어서 오십시오. 저는 망가노 신부입니다. 여기 천문학자이기도 하고요.”

 

‘자네에겐 잘된 일이군.’

 

아링가로사는 인사말을 중얼거리고, 수사를 따라 성 안의 홀로 들어갔다. 홀은 르네상스 예술과 천문학 이미지를 무자비하게 섞어 놓은 넓은 공간이었다. 석회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층계를 오르자, 회의실과 강의실, 관광 안내 서비스 표지들이 보였다. 영혼의 성장을 위해 일관되고 근엄한 안내를 제공하는 데 실패한 바티칸이 관광객들에게 천체물리학 강의 시간을 마련하는 게 아링가로사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봐요. 언제부터 꼬리가 개를 흔들게 되었소?”

 

아링가로사는 젊은 사제에게 말했다.

 

사제는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아링가로사는 손을 내젓고, 이 밤에 대해서 특별한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바티칸은 미쳐가고 있어.’

 

버르장머리 없게 슬피 우는 아이를 꼿꼿이 세워 놓고 가치를 가르쳐 주는 것보다, 그저 묵인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아차린 게으른 부모처럼 교회는 모든 것을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빗나간 문화에 자신을 맞추느라 아예 교회를 다시 짓는 것 같았다.

 

제일 상층의 복도는 널찍하고, 오직 한 곳으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거대한 참나무 문에는 황동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천문학 도서관. 아링가로사는 이 장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그리고 세키의 위대한 업적을 포함해 2만 5천 권이 넘는 장서가 소장되어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은 교황의 고위급 관료들이 사적인 회의를 여는 장소이기도 했다… 바티칸 시티의 벽 안에서 열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런 모임들 말이다.

 

아링가로사는 도서관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가 곧 듣게 될 충격적인 소식과 움직이기 시작한 사건들의 고리를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주교가 비틀거리며 회의실에서 빠져나온 것은 가혹한 암시를 받아들인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서였다.

 

‘지금부터 육 개월이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피아트에 앉은 아링가로사는 첫 회의를 앞둔 자신이 주먹을 꼭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먹을 펴고,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근육을 완화시켰다.

 

‘모든 것이 잘될 거야.’

 

피아트가 산으로 높이 올라갈 때, 주교는 자신에게 말했다. 아직도 주교는 휴대 전화기의 벨이 울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스승은 왜 아직 전화하지 않는 걸까? 지금쯤 사일래스는 쐐기돌을 얻었을 텐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아링가로사는 반지에 끼워진 보라색 자수정을 바라보았다. 다이아몬드의 단면들과 반지에 붙은 아플리케의 질감을 느끼며 아링가로사는 스스로를 달랬다. 이 반지는 곧 그가 얻게 될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힘의 상징일 뿐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