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출구 계단에 서 있던 소피는 순간, 루브르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아나그램에 대한 그녀의 충격에는 그 메시지를 스스로 풀지 못했다는 창피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복잡한 암호 해독법에 관한 한 전문가인 그녀의 지식이 가장 단순한 말장난을 그냥 지나치고 만 것이다. 당연히 알아냈어야 했다고 소피는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는 아나그램에 무지하지 않았다. 특히 영어로 된 아나그램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녀가 어렸을 때, 영어 철자법을 훈련시키기 위해 소니에르는 종종 아나그램 게임을 사용했다. 한번은 ‘행성들(planets)’이란 단어를 불러주고, 각 철자의 순서를 바꾸면서 조합하면 무려 92개의 다른 영어 단어들이 생긴다고 소피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영어 사전을 안고 사흘을 꼬박 투자한 끝에 92개의 단어를 모두 찾아냈다.
종이를 들여다보며 랭던이 말했다.
“당신 할아버님은 죽기 전 고작 몇 분 동안에 어떻게 이런 복잡한 아나그램을 만들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가 없군요.”
소피는 랭던의 호기심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그녀의 기분을 더 악화시켰다.
‘내가 당연히 알아냈어야 했어!’
말장난 애호가이자 예술을 사랑한 할아버지가 유명한 예술작품들의 제목으로 아나그램 만들기를 즐겼다는 것을 소피는 기억하고 있었다. 소피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만든 아나그램 중 하나는 할아버지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미국의 한 예술잡지와 인터뷰하면서, 소니에르는 현대 큐비즘 운동에 대한 혐오를 표현한 적이 있었다. 이때 피카소의 걸작, <아비뇽의 아가씨들(Les Demoiselles d'Avignon)>을 ‘더럽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낙서(vile meaningless doodles)’라는 완벽한 아나그램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피카소 애호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다.
“아마 할아버지는 모나리자의 아나그램을 훨씬 오래 전에 만들어 두었을 거예요.”
랭던을 흘끗 올려다보며 소피는 말했다.
‘그리고 오늘 밤 임시변통의 암호로 그것을 썼을 거고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저 너머에서 차갑고 정확하게 들려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왜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유명한 그림에 관한 언급인지 소피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가능성은 생각할 수 있었다. 심란한 가능성이었다.
‘이 메시지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모나리자>를 찾아가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거기에 할아버지는 다른 메시지를 남긴 것일까? 이 생각은 그럴듯해 보였다. 어쨌든 이 유명한 그림은 살 데 제타에 걸려 있는데, 살 데 제타는 오직 대화랑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모나리자> 전용 관람실이었다. 소피는 이제야 깨달았다. 할아버지가 죽은 장소에서, 겨우 20미터 떨어진 곳에 살 데 제타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모나리자>에게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내려온 비상계단을 다시 올려다보며 소피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랭던을 즉시 박물관에서 빼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본능은 반대로 움직이라고 그녀를 재촉했다. 소피는 드농 관을 처음 방문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만일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말해 줄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다 빈치의 <모나리자>보다 적당한 만남의 장소는 없음을 소피는 깨달았다.
“그녀는 조금 멀리 있단다.”
소피의 작은 손을 꼭 쥐고서 할아버지는 속삭이듯 말했다. 할아버지는 관람시간이 지난 한적한 박물관 안을 그녀를 데리고 걷고 있었다. 소피는 여섯 살이었다.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어지러운 바닥을 내려다본 어린 소피는 자기가 작고 하찮게 느껴졌다. 텅 빈 박물관은 어린 그녀를 겁나게 했지만, 할아버지가 눈치 채지 않게 애쓰고 있었다. 턱을 단단히 죄고 할아버지의 손이 이끄는 대로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살데 제타란다.”
루브르의 가장 유명한 방에 거의 이르렀을 때,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드러나게 즐거워하는 듯했지만, 어린 소피는 집에 가고 싶었다. 책에서 이미 <모나리자>를 보았지만, 소피는 그녀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모든 사람이 그녀 앞에서 야단법석을 떠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따분해요.”
소피가 툴툴거렸다.
“학교에서는 프랑스어, 집에서는 영어를 쓰라고 했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집이 아냐!”
소피는 반항적으로 외쳤다. 할아버지는 피곤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구나. 그럼 그저 재미삼아 영어로 얘기해 볼까.”
소피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계속 걸었다. 두 사람이 전용 관람실에 들어갔을 때, 소피의 눈이 작은 방을 훑어보다가 가장 유명한 지점에 딱 멈췄다. 오른쪽 벽 중앙에 초상화 하나가 보호용 유리벽에 둘러싸여 외롭게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문가에 서서, 그림 쪽으로 가라는 몸짓을 해보였다.
“가봐라, 소피. 그녀를 혼자 볼 수 있는 기회란 그리 흔치 않단다.”
불안감을 참고서, 어린 소피는 천천히 방을 가로질러 갔다. <모나리자>에 관해 모든 것을 들은 뒤라, 소피는 마치 왕족을 알현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보호 유리벽에 이르자, 소피는 숨을 참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림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에서 무얼 기대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흥분의 도가니도 아니었고, 순간의 감동도 아니었다. 그림의 유명한 얼굴은 책에 나온 그대로였다. 뭔가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영원처럼 느껴지는 침묵 속에 소피는 서 있었다.
조용히 소피 뒤로 다가와 할아버지는 속삭였다.
“그래, 어떻니? 아름답지, 그렇지?”
“그녀도 작아요.”
소니에르는 미소를 지었다.
“너도 작고, 또 아름답지.”
‘난 아름답지 않아.’
소피는 자기의 빨간 머리와 얼굴의 주근깨가 싫었다. 게다가 같은 반의 남자애들보다 키도 컸다. 소피는 <모나리자>를 뒤돌아보고 고개를 저었다.
“저 여자는 책에서 본 것보다 못생겼어요. 얼굴이…”
“안개가 낀.”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었다.
“안개가 낀.”
새 단어를 배웠을 때 반복해서 말하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계속 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피는 얼른 따라했다. 할아버지는 소피에게 말했다.
“저건 회화에서 스푸마토(인물을 어스름한 안개로 감싸는 기법. 몽환적 효과를 나타낸다)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매우 하기 어려운 거야.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다른 누구보다 저 기법에 뛰어났단다.”
소피는 여전히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여자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비밀을 갖고 있는 것처럼요.”
할아버지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게 <모나리자>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란다. 사람들은 왜 <모나리자>가 미소짓고 있는지 추측하기를 좋아하지.”
“할아버지는 왜 <모나리자>가 웃고 있는지 알아요?”
할아버지는 윙크했다.
“아마도, 언젠가는 네게 모든 것을 말해 줄게.”
소피는 발을 굴렀다.
“할아버지, 말했잖아요. 난 비밀이 싫어요!”
“프린세스, 삶은 항상 비밀로 가득 차 있는 거란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단다.”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난 다시 위로 올라가 봐야겠어요.”
소피의 목소리는 계단 통로에서 공허하게 울렸다.
“<모나리자>한테 말입니까? 지금?”
랭던이 되물었다. 소피는 위험을 고려해 보았다.
“나는 살인 용의자가 아니예요. 이 기회를 이용하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내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이해해야 해요.”
“그럼 대사관은?”
소피는 랭던을 도망자로 만들어 버린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게다가 이제는 혼자 버려 두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었다. 소피는 계단 아래의 금속 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랭던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넸다.
“저 문을 통해서 가세요. 출구 표시등을 계속 따라가면 돼요. 할아버지는 저를 이리로 내보내곤 했어요. 출구 표시등을 따라가면 보안 회전문이 나올거예요. 일방 통행문인데 열려 있어요.제 차는 직원용 주차장의 빨간색 스마트카예요. 이 벽 바로 너머예요. 대사관으로 가는 길은 알고 있나요?”
손에 든 열쇠를 바라보며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할아버지가 <모나리자>가 있는 방에 메시지를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할아버지를 죽인 사람에 대한 단서 같은 거요. 아니면 내가 왜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알려주거나.”
‘아니면, 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거나.’
“나는 올라가서 확인해 봐야겠어요.”
“하지만 소니에르 씨가 당신이 왜 위험에 처해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면, 왜 죽은 자리에 그냥 적어 두지 않았겠습니까? 왜 이런 복잡한 말장난을 남겼을까요?”
“할아버지가 제게 말하려던 게 무엇이든 간에. 누구나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은 할아버지가 원하지 않았을 거예요. 심지어 경찰이라 해도 말이예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 가보기 전에 제가 <모나리자>에게 다녀가기를 할아버지가 원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직 그녀를 통해서만 비밀스러운 내용이 직접 전달될 수 있도록 할아버지가 모든 힘을 기울인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비밀 이니셜을 포함해서, 코드화된 문장을 바닥에 적었고, 로버트 랭던을 찾으라고 그녀에게 요청한 것이다. 이 미국인 기호학자가 할아버지의 코드를 풀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현명한 요청인 셈이다.
“나도 함께 가겠소.”
“안 돼요! 대화랑이 얼마나 오래 비어 있을지 알 수 없어요. 당신은 나가야 해요.”
학문적인 호기심이 이성적인 판단을 위협해, 결국 파슈의 손에 끌려가기라도 할 것처럼 랭던은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 가세요. 랭던 씨, 대사관에서 만나요.”
소피는 랭던에게 감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랭던은 시무룩해 보였다.
“그럼 거기서 한 가지 조건으로 만나겠소.”
확고한 목소리로 랭던은 응답했다. 소피는 놀란 듯 머뭇거렸다.
“그게 뭔데요?”
“나를 랭던 씨라고 부르지 않는 겁니다.”
시원한 웃음이 랭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소피는 느낄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소피가 말했다.
“행운을 빌어요. 로버트”
계단 아래로 내려서자, 의심할 여지없는 아마인유 냄새와 석고 먼지들이 랭던의 콧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앞쪽에는 출구 표시등이 긴 복도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랭던은 복도로 들어섰다. 오른쪽에는 어둑어둑한 작품 복원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안에 보수가 필요한 조각상들이 한 무더기 서 있는 게 보였다. 왼쪽으로는 하버드의 미술교실을 닮은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 안에는 이젤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림과 팔레트, 액자 도구들이 보였다.
복도를 따라 내려가면서, 랭던은 어느 순간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기 침대에서 놀라 잠이 깨는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 이 밤 전체가 기묘한 꿈만 같았다.
‘나는 지금 루브르 박물관을 절박하게 빠져나가는 중이다… 그것도 도망자가 되어서.’
랭던은 여전히 소니에르의 재치 있는 아나그램 메시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피가 <모나리자>에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궁금했다. 만일 뭔가가 있다면 말이다. 그녀는 소니에르가 그 유명한 그림을 방문하도록 자신을 유도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럴듯해 보이는 해석이지만, 랭던은 뭔가 찜찜했다.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소니에르는 마룻바닥에 랭던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소피에게 랭던을 찾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왜? 그저 소피가 아나그램을 풀도록 돕기 위해서? 그것은 매우 이상했다. 랭던이 아나그램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소니에르가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
더 중요한 것은, 소피가 당연히 자신의 힘으로 아나그램을 풀었어야 했다고 말한 점이다. 피보나치 수열을 생각해 낸 것도 소피고, 의심할 여지없이 시간이 좀더 있었더라면 랭던의 도움 없이도 메시지를 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 혼자서 아나그램을 풀게 되어 있었다.’
랭던은 확신했다. 하지만 소니에르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분명히 있었다.
복도를 내려가면서 랭던은 궁금했다.
‘왜 나지? 왜 소니에르 씨는 관계가 소원한 손녀에게 나를 찾아내기를 절실히 원했을까? 소니에르 씨는 내가 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동요로 랭던은 걸음을 멈췄다. 랭던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주머니를 뒤져 프린트물을 꺼냈다. 랭던은 소니에르가 남긴 마지막 줄을 응시했다.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랭던은 두 글자에 눈을 고정시켰다.
‘P.S.'
순간, 랭던은 소니에르의 수수께끼 같은 기호들이 렌즈의 초점을 맞춘 것처럼 뚜렷하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둥소리처럼 기호학과 역사에 대해 가치 있는 그의 경력이 주위로 부서져 내렸다. 오늘 밤 자크 소니에르가 저지른 모든 일이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랭던의 생각은 계속 달려갔다. 랭던은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암시들을 조합해 보려고 노력했다. 몸을 빙 돌려, 랭던은 자기가 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시간이 될까?’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랭던은 계단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