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생 쉴피스 교회는 파리에 있는 어떤 건물보다 역사가 기이하다고들 말한다. 이집트 여신 이시스를 위한 고대 사원의 폐허 위에 세워진 이 교회는, 건축학 면에서 얼마 안 떨어져 있는 노트르담 사원과 쌍벽을 이루는 발자취를 지니고 있다. 이 성역은 마르키 드 사드와 보들레르의 세례, 빅토르 위고의 결혼식을 주관한 곳이었다. 이곳의 부속 신학교는 정설이 아닌 역사 자료들을 잘 보관하고 있어서, 한때는 셀 수없이 많은 비밀단체들의 은밀한 모임 장소가 되기도 했다.
오늘 밤 생 쉴피스의 동굴 같은 본당은 무덤처럼 고요했다. 생명을 암시하는 것은 오로지 초저녁 미사 때 피웠던 희미한 향 냄새뿐이었다. 상드린 수녀가 사일래스를 교회 안으로 안내할 때, 수녀의 태도가 편치 않다는 것을 사일래스는 눈치 챘다. 사일래스는 이런 일에 놀라지 않았다. 자기 외모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미국인이지요?”
수녀가 물었다. 사일래스는 대답했다.
“태생은 프랑스입니다. 스페인에서 그분의 부름을 받았지요.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상드린 수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한 눈을 가진 조그마한 체구의 여자였다.
“그런데 생 쉴피스를 보신 적이 없다고요?”
“보지 않은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낮에 보면 더 멋지답니다.”
“그렇겠지요. 그런데 오늘 밤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부탁하시더군요. 당신은 분명히 힘있는 친구들을 둔 모양이네요.”
‘이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군.’
사일래스는 생각했다.
상드린 수녀의 뒤를 따라 중앙복도를 걸어가면서, 사일래스는 이 성역의 검소함에 놀랐다. 다채로운 프레스코화와 금도금을 한 제단, 따뜻한 느낌의 목재로 치장된 노트르담 사원과는 달리, 생 쉴피스는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스페인 고행자들의 성당을 생각나게 하는 황량한 분위기를 풍겼다. 장식을 배제해 교회의 내부가 더 고상하게 느껴졌다. 격자형의 재목이 치솟은 둥근 천장을 올려다보며, 사일래스는 전복된 거대한 선체 아래에 서있는 상상을 했다.
‘잘 들어맞는 이미지야.’
사일래스는 생각했다. 조직의 배는 영원히 뒤집히려 하고 있었다. 어서 일에 착수하고 싶은 열망을 느끼면서, 사일래스는 수녀가 자기를 홀로 내버려 두기를 바랐다. 수녀는 쉽게 해치울 수 있는 조그마한 여자였다. 하지만 불필요한 힘은 사용하지 않기로 맹세했었다.
‘이 여자는 성직자다. 그리고 쐐기돌을 숨겨 놓은 장소로 조직이 이 교회를 선택한 것은 여자의 잘못이 아니다. 남이 저지른 죄 때문에 여자가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송구하군요, 수녀님. 저 때문에 일어나셨을 텐데.”
“천만에요. 파리에 머무는 시간이 아주 짧다고 했지요? 그럼 생 쉴피스를 놓쳐서는 안 되지요. 교회에 대한 당신의 관심은 건축학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역사적인 것인가요?”
“사실 수녀님. 제 관심은 영적인 것입니다.”
수녀는 명랑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말이 필요없겠네요. 저는 그저 당신을 어디서부터 안내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답니다.”
사일래스는 제단으로 눈길을 보냈다.
“교회 구경은 필요 없습니다. 수녀님은 정말 친절하시군요. 저 혼자서 잠깐 둘러보겠습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잠도 다 깼으니까.”
사일래스는 걸음을 멈췄다. 수녀와 사일래스는 맨앞의 좌석에 이르렀다. 제단은 고작 14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사일래스는 육중한 몸을 돌려 작은 체구의 수녀앞에 막아섰다. 수녀가 자기의 붉은 눈을 올려다보다가 뒷걸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례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수녀님, 저는 신의 성전을 그저 구경하는 일이나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일 따위엔 익숙하지 않습니다. 둘러보기 전에, 제가 홀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좀 가져도 되겠습니까?”
상드린 수녀는 망설였다.
“아, 물론이지요. 그럼 저는 저 뒤쪽에서 기다리지요.”
사일래스는 수녀의 어깨 위에 부드럽지만 힘이 들어간 손을 얹고 수녀를 내려다보았다.
“수녀님, 수녀님을 깨운 것도 너무 죄송한데, 계속 함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무례입니다. 그러니 침대로 돌아가십시오. 수녀님의 성전인 이곳을 혼자 즐기다가 조용히 나가겠습니다.”
수녀는 불편한 표정이었다.
“혼자 있어도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요. 기도는 은밀한 즐거움이니까요.”
“그럼 좋으실 대로…”
사일래스는 수녀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수녀님, 주님의 평화가 수녀님과 함께하길.”
“주님의 평화가 당신과도 함께하길. 나갈 때 문을 꼭 닫아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사일래스는 수녀가 계단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후에 자리에 앉아 허벅지에 매단 갈고리 허리띠가 다리를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신이여, 오늘 제가 하는 이 일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제단 위 상당히 높은 곳에는 성가대의 발코니가 있었다. 상드린 수녀는 이 발코니의 어둠에 몸을 웅크리고서, 망토를 뒤집어쓴 수도승이 홀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을 난간 사이로 훔쳐보고 있었다. 마음속의 순간적인 공포가 몸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잠깐 동안, 수녀는 이 수상한 방문객이 그들이 자기에게 경고한 적일 수도 있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그녀가 긴 시간 품고 있던 명령을 오늘 밤 실행해야 하는지도 궁금했다. 수녀는 어둠 속에 숨어서 남자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어둠 속에서 나온 랭던과 소피는 비상계단을 향해 고요한 대화랑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랭던은 어둠에서 조각 그림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이 미스터리는 아주 골치 아팠다.
‘사법경찰의 반장이 내게 살인 혐의를 씌우려 하고 있다.’
랭던은 속삭였다.
“어쩌면 파슈가 바닥에 메시지를 적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소피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불가능해요.”
랭던은 여전히 미심쩍었다.
“반장이 나를 유죄로 만드는 데 아주 열심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쩌면 내 이름을 바닥에 적어 놓으면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피보나치 수열은요? 그리고 P.S는? 다 빈치와 여신을 나타내는 모든 상징들은요? 그것은 분명히 할아버지가 남긴 거예요.”
그녀의 말이 옳았다. 단서인 상징들은 너무 완벽하게 서로 엮여 있었다. 별 모양과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 다 빈치, 여신, 심지어 피보나치 수열까지. 도상학자로서 소니에르가 남긴 메시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 상징 세트라고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그리고 아까 오후에 할아버지가 내게 한 전화요. 할아버지는 내게 뭔가를 얘기해야 한다고 했어요. 나는 루브르 바닥에 남긴 메시지가 내게 뭔가 중요한 것을 알리려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노력이었다고 확신해요. 할아버지는 내가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랭던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랭던은 소피의 행복을 위해서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소니에르가 남긴 메시지를 풀고 싶었다. 저 암호문 같은 글자를 처음 본 이후,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화장실 창문에서 거짓말로 뛰어내린 행위는 파슈가 랭던을 이해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프랑스 경찰 반장이 자기가 추적해서 체포한 것이 비누조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문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소피가 말했다.
“할아버지의 메시지에 있던 숫자들이 다른 행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봤어요?”
랭던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총서를 연구한 적이 있었다. 그 원고에는 비문(碑文)의 암호들이 들어 있었는데, 어떤 줄의 기호들은 다른 줄을 해독하는 단서가 되었었다.
“전 오늘 밤 내내 그 숫자들을 안고 고민했어요. 더하고, 나누고, 곱하고, 하지만 아무것도 풀지 못했어요. 수학적으로 볼 때, 그 숫자들은 무작위로 배열된 거예요. 암호 표기법으로 보면 쓸데없는 장난질 같은 거죠.”
“결국 피보나치 숫자를 사용한 것은 할아버지가 내게 다른 신호를 보낸 것과 같아요. 영어로 메시지를 남긴 것이나, 내가 좋아하는 예술 형태로 자기 몸을 만든 것이나, 몸에 별표를 그린 것처럼 말이죠. 이 모든 것은 제 관심을 끌기 위한 거예요.”
“별표가 당신에게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예, 말할 기회가 없었지만, 제가 자랄 때 별표는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특별한 상징이었어요. 우리는 재미삼아 타로 카드 놀이를 했는데, 제 패에는 항상 별표가 있는 카드들이 나왔어요. 할아버지가 몰래 준비한 거라고 확신했지만, 그 후 별표는 우리만의 장난이 되어 버렸지요.”
랭던은 한기를 느꼈다.
‘타로 카드 놀이를 했다?’
타로 카드는 중세 이탈리아 카드로 이교도의 상징이 풍부하게 숨겨진 게임이다. 랭던은 새 원고에 타로에 관해서 한 장 전체를 할애했을 정도였다. 스물두 장의 카드 중에서 ‘여자 교황’, ‘여황제’, ‘별’ 같은 이름을 가진 카드도 있다. 원래 타로 카드는 교회에서 금지한 이념들을 몰래 전달하는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타로 카드의 신비스러운 매력은 현대 점술가들의 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여성의 신성함을 나타내는 타로 카드는 별표이다.’
만일 소니에르가 자기 손녀를 위해 재미로 카드를 미리 준비했다면, 별표가 들어간 카드들이 적절한 장난이었다는 것을 랭던은 깨달았다.
두 사람은 비상계단에 다다랐다. 소피는 조심스럽게 문을 당겼다. 비상벨은 울리지 않았다. 오직 외부로 연결된 문에만 경보장치가 달려 있었다. 소피는 지상으로 내려가는 지그재그 모양의 계단으로 랭던을 이끌었다. 그들은 속력을 냈다.
소피를 따라 서둘러 내려가던 랭던은 입을 열었다.
“당신 할아버님 말입니다. 당신에게 별표에 대해서 얘기할 때, 여신숭배라든가 가톨릭 교회에 대한 분개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나요?”
소피는 고개를 저었다.
“난 수학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황금비율이라든가, PHI, 피보나치 수열, 그런 것들요.”
랭던은 놀랐다.
“할아버지가 당신에게 PHI 숫자를 가르쳤다는 겁니까?”
소피의 표정이 수줍게 변했다.
“물론이죠. 황금비율도요. 사실 할아버지는 내가 반은 황금이나 다름없다는 농담을 했어요… 있잖아요. 내 이름에 들어간 글자들 때문에.”
랭던은 잠시 생각하다가 신음했다.
‘소피… s-o-PHI-e’
계단을 내려가며, 랭던은 PHI에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소니에르의 단서들이 훨씬 일관성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빈치… 피보나치 수열… 별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한 가지 개념에 연결되어 있었다. 예술사에서 가장 기본 개념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랭던은 종종 몇 주에 걸쳐 강의를 했다.
‘PHI'
갑자기 기억이 하버드로 되돌아가, <예술의 상징> 수업시간에 서있는 것 같았다. 랭던은 칠판에 자기가 좋아하는 숫자를 적고 있었다.
‘1.618’
랭던은 학생들을 향해 돌아섰다.
“이 숫자가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뒤에서 수학과의 다리 긴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PHI(그리스 알파벳의 21번째) 숫자입니다.”
학생은 ‘피-’라고 발음했다.
“잘했네. 스테트너. 여러분, PHI입니다.”
싱글거리면서 스테트너가 덧붙였다.
“PI(그리스 알파벳의 16번째)와 혼동해서는 안되죠. 우리 수학자들은 ‘PHI'의 하나밖에 없는 H가 PI보다 훨씬 멋있다!고 말하길 좋아하죠.”
랭던은 웃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스테트너는 풀이 죽었다.
“이 숫자 PHI는 1.618이다. 예술에서 아주 중요한 숫자지. 그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있나?”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 아닌가요?”
스테트너가 생기를 되찾으며 물었다. 모두가 웃었다.
랭던이 말했다.
“사실, 스테트너가 맞다. 일반적으로 PHI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숫자로 간주된다.”
웃음은 즉시 가라앉았다. 스테트너 혼자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슬라이드 영사기를 설치하면서, 랭던은 이 숫자가 피보나치 수열에서 나온 것임을 설명했다. 연속된 두 숫자의 합이 다음 숫자와 같아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연속된 두 숫자를 서로 나누어 보면 그 몫이 거의 1.618, 즉 PHI 값과 항상 비슷하게 나오기 때문에 더 유명한 수열이다. PHI!
PHI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신비로운 수학적인 면모에 기원이 있는 것 같지만, PHI의 진정한 매력은 자연의 일부를 이루는 그 역할에 있었다. 식물,동물 심지어 인체에서도 ‘PHI:1' 이라는 기이한 비율을 찾아볼 수 있다.
강의실의 불을 끄면서 랭던은 설명했다.
“PHI는 자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우연과는 거리가 멀지, 그래서 고대인들은 PHI를 신이 미리 정해 놓은 숫자라고 생각했다. 옛날 과학자들은 1:1.618을 황금비율이라고 불렀지.”
앞줄에 앉은 젊은 여학생이 말했다.
“잠깐만요. 전 생물학 전공인데요, 자연에서 이런 황금비율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요.”
랭던은 싱긋 웃었다.
“없어? 그럼 꿀벌 집단에서 수벌과 암벌의 관계를 공부했나?”
“물론이죠. 암벌의 수가항상 수벌보다 많죠.”
“정확해. 그럼 수벌의 수로 암벌의 수를 나누면, 항상 똑같은 숫자가 나온다는 것을 아나?”
“그런가요?”
“그래, 바로 PHI지”
여학생은 숨을 멈추었다.
“말도 안 돼요!”
“말이 돼. 이걸 알아볼 수 있겠나?”
랭던은 웃으면서 곧바로 되받았다. 그리고 나선형의 조개 사진을 영사기 위에 올렸다. 생물학 전공 학생이 말했다.
“앵무조개네요. 조개 속 빈 공간으로 가스를 뿜어서, 바닷속에서 떠다닐 수 있게 자기를 조정하는 두족형 연체동물이예요.”
“정확해. 여기 조개 껍질의 나선들이 보이는데 말이야. 한 나선과 그 다음 나선의 직경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맞힐 수 있겠나?”
앵무조개의 소용돌이 모양의 나선에 눈을 붙이고 있는 여학생의 표정은 자신이 없어보였다.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PHI. 황금비율이야. 1:1.618”
학생은 놀란 표정이었다. 랭던은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갔다. 해바라기의 씨받이를 근접 촬영한 것이었다.
“해바라기 씨들은 앵무조개의 나선형과는 반대로 자라지. 각 나선의 직경은 다음 나선의 직경과 어떤 비율을 이룰까?”
“PHI?"
모두가 대답했다.
“빙고.”
랭던은 다음 슬라이드로 손을 뻗었다. 나선형으로 자라는 솔방울. 식물줄기의 잎새 배열. 곤충 분할. 놀랍게도 모두가 황금비율에 들어맞았다.
“정말 놀라운데!”
누군가 외쳤다.
“정말 놀라워요. 그런데 그게 예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다른 누군가가 물었다.
“하! 드디어 물어보셨군.”
랭던은 다른 슬라이드를 꺼냈다. 노랗게 바랜 양피지 위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알몸의 남자가 들어있었다.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이름을 딴 유명한 스케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였다. 비트루비우스는 저서 <건축학>에서 황금비율을 찬탄한 로마 시대의 뛰어난 건축가다.
“다 빈치보다 인체의 황금구조를 잘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빈치는 인간의 뼈 구조의 정확한 비율을 알아내기 위해서 실제로 시체를 파내기도 했지. 그는 말 그대로 인체가 항상 PHI를 이루는 덩어리들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람이야.”
모든 학생들이 랭던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랭던은 제안했다.
“날 믿지 못하겠나 보지? 다음에 샤워할 일이 있으면 자기 몸을 재보게.”
몇몇 풋볼 선수들이 킬킬거렸다.
“운동선수들만이 아니야. 여러분 모두, 남학생 여학생 모두, 한번 재봐. 먼저 머리끝에서부터 바닥까지 재고, 그 길이를 배꼽에서 바닥까지 잰 길이로 나누는 거지. 어떤 숫자가 나올까?”
“PHI는 아닐 겁니다!”
운동선수들 가운데 하나가 불신에 찬 목소리로 불쑥 내뱉었다. 랭던은 대답했다.
“아니. PHI야. 1.618이지. 다른 예를 더 원하나? 어깨에서 손가락 끝까지 잰 후에. 그 길이를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잰 길이로 나눠 봐. 다시 PHI야. 하나 더? 엉덩이에서 바닥까지 잰 뒤 무릎에서 바닥까지 잰 길이로 나눈다. PHI? 물론이지. 손가락 마디, 발가락 마디, 척추관절 마디, 모두 PHI, PHI, PHI야. 여러분, 여러분 각자의 몸은 걸어다니는 황금비율의 기념품이다.”
어둠 속에서도 랭던은 학생들이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랭던은 몸안에서 익숙한 열기를 느꼈다. 바로 이 점이 그가 가르치는 이유였다.
“여러분, 여러분도 알다시피, 혼돈의 세상에도 그 바닥에는 질서가 흐른다. 고대인들이 PHI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신이 세상을 위해 만들어 놓은 덩어리들 사이로 서툴게 돌아다닐 뿐이라고 믿었지.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숭배한 거야. 지금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지. 신의 손은 분명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을 말이야.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머니인 지구를 경배하는 종교들이 존재한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종교들이 하는 식으로 자연을 찬미하지. 다만 그런 줄 모르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야. 메이 데이 같은 경우가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봄이 다시 찾아온 것을 축하하고, 땅이 생명을 되찾게 해준 자연의 관대함에 감사를 드리는 거지. 황금비율에 대한 신비로운 마술은 태초부터 씌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그저 자연의 규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거든. 왜냐하면 조물주의 손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모방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 여러분은 예술에서 셀 수 없이 많은 황금비율의 예를 만나게 될 거야.”
나머지 30분을, 랭던은 학생들에게 미켈란젤로, 알브레이트 뒤러, 다 빈치 그 외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다. 모두들 작품속에서 황금비율을 고의적으로, 그리고 열성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이었다.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이집트의 피라미드, 심지어 뉴욕에 있는 UN빌딩 같은 건축물에서도 PHI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랭던은 제시했다. PHI는 작곡에서도 나타나는데, 버르토크, 드뷔시, 슈베르트를 비롯해 모차르트의 소나타들과 베토벤의 5번 교향곡에서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명장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바이올린을 제작할 때, F홀의 정확한 자리를 계산해 내기 위해서 PHI 숫자를 이용했다는 얘기도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랭던은 칠판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끝으로 칠판에 다섯 개의 선을 그어 오각형의 별을 만들었다.
“이 기호는 이번 학기에 여러분이 보게 될 기호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기호다. 별표라고 불리는 이 기호는 여러 문화에서 신성하면서도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 그런지 말해 볼 사람?”
스테트너가 손을 들었다.
“왜냐하면 별 모양을 그릴 때, 선들이 황금비율에 따라 자동적으로 분할되기 때문입니다.”
랭던은 뿌듯한 표정으로 학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그래, 별에 있는 모든 선들의 비율은 정확히 PHI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기호를 황금비율의 궁극적인 상징이라고 하지. 이러한 이유로 오각형의 별 모양은 여신과 신성한 여성을 나타내는 아름다움의 완벽의 상징이 되어 왔다.”
여학생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 가지만 말해두자. 오늘 우리는 그저 다 빈치를 슬쩍 건드리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 우리는 훨씬 더 자주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여신을 고대 방식으로 숭배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으니까 . 내일은 그의 유명한 프레스코화 <최후의 만찬>을 보여줄 거야. 여러분이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신성한 여성에 대해 가장 놀라운 찬사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누군가 말했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최후의 만찬>은 예수에 관한 그림으로 알고 있는데요.”
랭던은 윙크했다.
“여러분이 결코 상상도 못할 상징들이 그림에 숨겨져 있지.”
소피가 속삭였다.
“이봐요. 뭐가 잘못됐어요? 거의 다 왔어요. 서둘러요.”
딴생각에 빠져든 마음을 추스르며 랭던은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 계단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랭던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몸이 굳었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소피가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어.’
랭던은 생각했다. 하지만 랭던은 알아냈다. 루브르 박물관이라는 큰 그릇 속에… PHI와 다 빈치의 이미지가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면서 랭던의 마음으로 밀려 들어왔다. 랭던은 자기도 모르게 소니에르의 코드를 풀어 버린 것이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이건 가장 간단한 코드야!”
랭던보다 아래 계단에 있던 소피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랭던을 올려다보면서 멈춰 섰다.
‘코드?’
밤새도록 숙고했지만, 어떤 기호도 찾아낼 수 없었다. 아주 간단한 것도.
랭던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이미 말했소. 피보나치의 숫자들은 올바른 순서로 있어야 의미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장난일 뿐이라고 말이오.”
랭던이 무슨 얘길 하려는지 소피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피보나치 숫자들?’
소피는 그 숫자들이 단지 오늘 밤 벌어진 사건에 암호 해독부서를 참여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거기에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
그녀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종이를 꺼내 들고, 소니에르가 남긴 메시지를 다시 살폈다.
13-3-2-21-1-1-8-5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이 숫자들이 뭐 어떻다는 거지?’
종이를 가져가며 랭던이 말했다.
“뒤섞어 놓은 피보나치 수열이 단서입니다. 이 숫자들이 다른 부분을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에 대한 단서인 거죠. 아무 의미 없이 숫자들을 늘어놓은 것처럼. 같은 식으로 글자들을 해석하라는 의미인 겁니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이 말들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저 아무렇게나 적어 놓은 글자들일 뿐이지요.”
소피는 랭던의 암시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무척 간단한 얘기였다. 소피는 랭던을 응시했다.
“그러니까, 당신 생각은, 이 메시지가… 아나그램(철자 바꾸기)? 신문에서 아무 말이나 골라낸 것처럼요?”
랭던은 소피의 얼굴에 떠오른 의심을 볼 수 있었지만,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사소한 장난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아나그램이 기호학에서 얼마나 풍부한 역사를 지녔는지 일반인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카발라(중세 유대교의 신비철학 또는 밀교)의 신비한 가르침은 아나그램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서 헤브라이어 글자들을 재배치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통해 프랑스 왕들은 아나그램에 마법의 힘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왕들은 왕립 아나그램 전문가들을 임명해, 중요한 자료를 분석할 때 돕도록 했다. 로마 사람들은 실제로 아나그램에 관한 학문을 아르스 마그나, 즉 위대한 예술이라고 불렀다.
랭던의 눈동자는 소피의 눈을 붙들고 있었다.
“당신 할아버님의 뜻은 바로 우리 코앞에 있었소. 그분은 충분한 단서를 우리에게 남긴 거요.”
아무 말 없이 랭던은 외투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들고, 각 줄의 글자들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O,Draconian devil!)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
이 글자들은 완벽한 아나그램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The Mona Li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