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때가 되었다.
사일래스는 검은색 아우디 승용차 밖으로 나왔다. 밤 바람이 사일래스의 외투를 스치고 지나갔다.
‘변화의 바람은 이 대기 속에 있다.’
자기 앞에 놓인 임무가 힘보다 정교함을 더 요하는 것임을 사일래스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총은 차 안에 두고 내렸다. 13구경 헤클러 앤 코크 UPS 40으로 스승이 준 것이었다.
‘신의 집에 죽음의 무기가 있을 자리는 없다.’
교회 앞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보이는 영혼이라곤 저 멀리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향해 몸뚱이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10대 매춘부들이 전부였다. 그들의 육체는 사일래스의 허리에 익숙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본능적으로 허벅지가 부풀어 오르자, 매고 있던 갈고리 허리띠가 살 속으로 고통스럽게 파고들었다. 욕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사일래스는 신실하게 모든 성적 탐닉을 외면했다. 그것이 <길>이었다. 오푸스 데이를 따르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사일래스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돌려받았다. 금욕과 모든 개인 재산을 양도한다는 서약을 희생이라고 보지 않았다. 감옥에서 견뎌야 했던 성적인 공포와 평생 지고 살았던 가난을 생각해 보면 금욕은 오히려 호강이었다.
안도라에 있는 감옥에 갇혀 지낸 후 프랑스에 돌아온 사일래스는 고향땅이 구원받은 자기 영혼에서 폭력적인 기억을 끄집어낼 뿐만 아니라, 자기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사일래스는 자기 자신을 일깨웠다. 신에 대한 그의 봉사는 살인이라는 죄를 범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자기 가슴에 묻어야 하는 희생임을 사일래스는 알고 있었다.
“네 신념을 측정하는 것은 네가 참고 있는 고통을 측정하는 것과 같다.”
스승은 그에게 말했었다. 사일래스는 고통에 익숙했다. 그는 스승에게 자기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스승은 사일래스에게 그의 행위가 더 높으신 힘에 의해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 확신시켜주었다.
“Hago la obra de Dios(나는 신의 사업을 행하는 몸이다)”
교회 입구로 들어서면서 사일래스는 중얼거렸다. 육중한 문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 멈춰서서, 사일래스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저 안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사일래스가 깨닫는 데에는 일순간도 걸리지 않았다.
‘쐐기돌 그것이 우리를 최종 목표로 인도할 것이다.’
사일래스는 유령처럼 하얀 주먹을 들어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잠시 후, 거대한 나무 문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루브르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파슈가 알아내는 데 얼마나 걸릴지 소피는 궁금했다. 넋이 나간 랭던을 보면서, 랭던을 남자 화장실로 몰아넣은 것이 잘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날개를 펼친 독수리처럼 바닥에 알몸으로 누워 있던 할아버지의 시체를 떠올렸다. 할아버지가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 이 늙은이에게서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소피는 놀랐다. 이제 자크 소니에르는 그녀에게 남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소피가 스물두 살이었던 3월의 어느 날 밤, 한 가지 사건으로 끝나 버렸다.
‘십 년 전이군.’
소피는 영국의 대학원에서 예정보다 며칠 일찍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분명 자신이 보아서는 안 될 어떤 일에 할아버지가 연루되어 있는 것을 실수로 목격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오늘까지도 믿을 수 없는 이미지였다.
‘내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할아버지는 설명하려고 했지만, 너무 수치스럽고 몹시 놀란 탓에 그녀는 저축해둔 돈을 찾아 집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작은 아파트를 얻었다. 자기가 본 것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겠다고 소피는 맹세했다. 할아버지는 카드와 편지를 보내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사정했었다.
‘어떻게 설명하겠단 말인가?’
소피는 딱 한 번을 제외하곤 응답하지 않았다. 그때 소피는 다시는 전화 걸지 말라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할아버지를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전했다. 할아버지의 설명이 사건 자체보다 끔찍한 것일까 봐 소피는 두려웠다.
소니에르는 결코 소피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서랍 속에 감추어 두었던 10년 묵은 일이, 서랍이 열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소니에르는 소피의 요구를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결국 소피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 오후까지는’
“소피? 나는 오랫동안 네 바람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제야 전화를 하는 게 고통스럽구나. 하지만 네게 꼭 해야 될 말이 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단다.”
자동응답기에서 울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아파트 부엌에 서 있던 소피는 너무 오랜만에 소니에르의 목소리를 듣자 한기를 느꼈다. 그녀가 어린 소녀였을 때 그러던 것처럼 소니에르는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소니에르의 온화한 목소리는 즐겁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몰고 왔다.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로 말하고, 집에서는 영어로 말하거라.’
“소피 제발 들어다오. 소피, 영원히 나에게 화를 내면서 살 수는 없다. 내가 지난 세월동안 보낸 편지들을 읽지 않은 게냐? 아직도 이해를 못한 게냐? 한 번은 얘기해야만 한다. 제발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다오. 루브르에 있으니 전화해라. 지금 당장, 너와 나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구나.”
소피는 자동응답기를 쳐다보았다.
‘위험?’
도대체 할아버지는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지? 감정이 격한 나머지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프린세스… 나는 네게 어떤 일들을 감춰 왔다는 것을 잘 안다. 그 대가로 네 사랑을 잃은 것도 안단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네 안전을 위해서였다. 이제 너도 진실을 알아야 해. 가족에 관한 진실을 말해 주려고 한단다.”
갑자기 심장 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가족?’
소피의 부모는 그녀가 네 살 때 죽었다. 그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가 다리 위를 달리다 물살이 빠른 물속으로 추락한 것이다. 소피의 할머니와 어린 남동생도 그 차에 함께 있었다. 소피의 전 가족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된 신문기사를 소피는 아직도 상자 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얘기는 기대치 못한 갈망을 뼛속 깊이 불러일으켰다.
‘우리 가족?’
순간 소피는 어린아이였을 때 수없이 꾸던 환상을 보았다.
‘가족들이 살아 있다! 식구들이 집으로 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서의 환상일 뿐이었다.
‘가족은 죽었다. 소피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자동응답기에서 할아버지가 말하고 있었다.
“소피… 네게 말해 주려고 난 오랜 세월을 기다렸단다. 적당한 순간을 찾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루브르에 있으니 전화하거라. 오늘 밤 내내 여기 있을 게야. 우리 두 사람 모두 위험에 처했다는 두려움이 드는구나. 네가 알아야 할 게 참 많단다.”
전화 메시지는 끝났다. 침묵 속에서 소피는 몸을 떨었다. 할아버지의 메시지를 곱씹어 볼수록 한 가지 가능성만이 그럴듯해 보였다. 할아버지의 진정한 의도가 점점 분명해졌다.
미끼였다. 분명 할아버지는 소피를 너무나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뭐든지 할 것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소피의 거부감은 아주 깊었다. 혹시 할아버지가 병이 들어 마지막으로 자기가 찾아오도록 술수를 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선택은 현명했다.
‘우리 가족.’
루브르 박물관, 남자화장실의 어둠 속에 서서, 소피는 오후에 들었던 전화 메시지를 다시 기억했다.
‘소피, 우리 두 사람 모두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구나. 전화하거라.’
그녀는 전화하지 않았다. 전화할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할아버지가 남겨 놓은 전화 메시지에 대한 의심은 깊이 흔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기 박물관 바닥에 살해된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을 적어놓았다. 그 기호들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바닥의 메시지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 메시지가 암호로 되어 있다는 것이 소니에르가 자기를 염두에 둔 또 다른 증거라고 소피는 확신했다. 암호 해독학에 대한 소피의 열정과 재능은 자크 소니에르와 함께 살면서 얻어진 자연스러운 결과다. 할아버지는 기호, 낱말 게임, 수수께끼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요일을 신문에 난 암호문과 가로세로 낱말 맞추기 게임을 함께 풀며 시간을 보냈던가?’
열두 살, 소피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르 몽드>지의 가로세로 낱말 퍼즐을 끝냈을 때, 할아버지는 영어로 된 낱말 퍼즐과 수학적인 수수께끼, 대체 암호들의 분야로 소피를 안내했다. 소피는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결국 소피는 그 열정을 직업으로 연결시켜, 사법경찰을 위해서 일하는 암호 해독가가 된 것이다.
오늘 밤, 자신과 로버트 랭던이라는 두 이방인을 결합시킨 할아버지의 간단한 코드를 소피는 존중해야만 했다. 질문은 ‘왜?’였다.
랭던의 눈에 어린 당황스러운 표정은, 이 미국인도 그녀만큼이나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왜 이들을 함께 엮어 놓은 것일까?
소피는 다시 물었다.
“당신과 할아버지는 오늘 밤 만나기로 돼 있었어요. 무엇 때문이죠?”
랭던은 진짜 혼란스러웠다.
“그분 비서가 정한 것이고, 특별한 이유를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저 내가 프랑스 성당들의 이교도적인 도상학에 관한 강의할 거라는 것을 듣고서, 소니에르 씨가 그 주제에 흥미를 가졌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얘기 후에 술 한잔하러 가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 같았고요.”
소피는 그저 흘려들었다. 그 정도로는 빈약했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이교도적인 도상하게 관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일개 미국인 교수와 잡담이나 할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소피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할아버지가 오늘 오후에 제게 전화했었어요. 할아버지와 내가 큰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하더군요. 뭔가 와 닿는 게 없나요?”
랭던의 푸른 눈이 근심으로 뒤덮였다.
“없습니다. 하지만 방금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면…”
소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일어난 사건을 생각해보면, 놀랍기보다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소피는 화장실 끝에 있는 작은 유리창으로 걸어갔다. 유리창에는 경보장치 테이프가 그물망처럼 덮여 있었다.
소피는 창문을 통해 밖을 응시했다. 적어도 지상에서 15미터 정도는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한숨을 쉬며 소피는 눈을 들었다. 그리고 파리의 멋진 야경을 쳐다보았다. 왼쪽으로 센 강을 가로질러 조명을 받고 서 있는 에펠 탑이 보였다. 정면에는 개선문이 있었다. 오른쪽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에는 사크레쾨르의 우아한 아라베스크 양식의 둥근 지붕이 보였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둥근 석조 지붕은 휘황찬란한 성역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서쪽 끝인 이 드농 관에서 보면, 캐러젤 광장의 도로가 드농 관과 나란히 남북으로 달리고 있다. 루브르의 외벽과 도로를 분리하는 것은 오직 작은 보도뿐이다. 저 아래로 밤 시간에 움직이는 운송 트레일러들의 행렬이 보였다. 교통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느라 멈춰 있었다. 차량의 주행등이 소피를 조롱하듯 깜박거렸다.
랭던이 소피 뒤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분명 당신 할아버님은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랭던의 깊은 목소리에서 진심 어린 유감을 느끼며, 소피는 창문에서 돌아섰다. 자신을 둘러싼 곤란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랭던은 분명 소피를 돕고 싶어했다.
‘그는 대학교수다.’
용의자에 대한 DCPJ의 수사보고서를 읽으면서 소피는 생각했다. 이 남자는 분명히 무지를 경멸하는 학자이다.
‘우리는 그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암호 해독가로서 소피는 의미 없이 보이는 자료에서 의미를 추출해 내는 일을 한다. 로버트 랭던이 알고 모르는 것을 떠나, 분명 이 남자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소피의 추측이었다.
‘프린세스 소피,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할아버지의 메시지가 이보다 어떻게 명료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생각할 시간. 이 미스터리를 함께 정리할 시간.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시간이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랭던을 올려다보며 소피는 자기가 생각한 일을 말했다.
“조금 있으면 브쥐 파슈가 당신을 구금할 거예요. 난 당신이 박물관을 빠져나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지금 행동해야 해요.”
랭던의 눈이 커졌다.
“나보고 도망치란 말입니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좋은 방법이예요. 만일 파슈가 당신을 구금하게 되면 프랑스 감옥에서 몇 주는 보내야 할 거예요. DCPJ와 미국 대사관이 어느 나라 법정에 당신을 세울 것인가를 놓고 옥신각신 싸움을 끝낼 때까지는요. 하지만 여기서 바로 빠져나가 당신네 대사관으로 간다면, 당신이 이 살인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당신과 내가 증명하는 동안 당신네 정부가 당신의 권리를 보호해 주겠죠.”
랭던은 그다지 탐탁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만둡시다! 파슈는 모든 입구에 무장한 요원들을 세워 두었어요. 만일 우리가 총에 맞지 않고 빠져나간다 쳐도, 도망가면 내가 유죄라고 말하는 꼴과 같습니다. 바닥에 적힌 메시지가 당신에게 남겨진 거라고 파슈에게 말하십시오. 그리고 거기 있는 내 이름은 소니에르 씨가 나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게 할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미국 대사관으로 안전하게 돌아간 후에 말할 거예요. 대사관은 여기서 이 킬로미터도 안 돼요. 박물관 밖에 내 차가 주차되어 있고요. 여기서 파슈와 거래를 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나 다름없어요. 이해 못하겠어요? 그 사람은 오늘 밤 안으로 당신이 유죄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혈안이 돼 있어요. 체포를 미루는 유일한 이유는 혹시 당신이 실수로 자기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단서를 흘리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요.”
“맞아요. 도주하는 것처럼 말이죠!”
갑자기 소피의 스웨터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파슈일 거야’
소피는 손을 뻗어 전화기의 전원을 꺼버렸다.
“랭던 씨,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볼 것이 있어요.”
소피는 서둘러 말했다.
‘어쩌면 당신의 미래가 거기에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바닥에 적힌 글은 분명이 당신의 죄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예요. 하지만 파슈는 확실하게 당신이 범인이라고 우리 팀에게 말했어요. 파슈가 당신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셨나요?”
랭던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소피는 한숨을 내쉬었다.
‘파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로군’
하지만 왜 그랬는지 소피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기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파슈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오늘 밤 안으로 랭던을 철창 안에 집어넣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소피는 랭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소피에게는 유일한 논리적인 결론이자 딜레마였다.
‘랭던을 미국 대사관으로 데려가야 해.’
소피는 창문으로 돌아서서, 둥근 유리창에 붙어 있는 비상경보기의 그물망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15미터 아래로 포장 도로가 아찔하게 보였다. 이 높이에서 뛰어내린다면 다리가 부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껏해야 다리가 부러지는 것뿐이다.
결국 소피는 결정을 내렸다. 로버트 랭던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탈출시키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말이다.
“느뵈가 응답을 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그 여자의 휴대 전화기로 전화 건 거 확실한 건가? 분명히 휴대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데.”
파슈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콜레는 대여섯 차례나 소피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마 전원이 다되었거나, 전화기를 꺼버린 것 같은데요.”
파슈는 암호 해독부 부장과 전화통화한 후 줄곧 저기압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파슈는 느뵈 요원에게 연락하라며 콜레를 닦달했다. 연락이 안되자 파슈는 우리에 갇힌 사자처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쪽 부장님이 왜 전화하신 겁니까?”
콜레는 그제야 물어보았다. 파슈는 돌아섰다.
“드라코 같은 악마들과 불구의 성인들에 대해서는 알아낸 게 없다는 말을 해주려고.”
“그게 다입니까?”
“아닐세. 메시지의 숫자들이 피보나치의 숫자라고 하더군. 하지만 별 의미는 없는 것 같다고 했어.”
콜레는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이미 느뵈 요원을 보내서 알리지 않았습니까.”
파슈는 머리를 저었다.
“느뵈를 보내지 않았다더군.”
“예?”
“부장 말로는 내 부탁에 따라 자기네 부서의 모든 요원을 호출해서 내가 전송한 이미지를 보게 했다는군. 그런데 느뵈 요원은 도착하자마자 소니에르의 모습과 그가 남긴 코드를 보더니, 말도 없이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는 게야. 부장 말이, 느뵈 요원이 사진 때문에 극도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녀의 행동을 문제삼지 않았다는군.”
“동요를 해요? 죽은 시체를 본 적이 없나 보죠?”
파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도 몰랐지만, 부장도 몰랐대. 다른 요원이 부장에게 알리기 전까지는 말이야. 소피 느뵈는 자크 소니에르 씨의 손녀야.”
콜레는 말을 잃었다.
“부장은 느뵈가 한 번도 소니에르 씨의 이름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그러더군. 아마 유명한 할아버지 덕에 생길 수도 있는 특별 대접을 느뵈 요원이 원치 않은 게 아니겠느냐고 부장은 추측하던데.”
‘느뵈가 사진을 보고 동요한 것도 무리가 아니군.’
죽은 가족이 남긴 코드를 해독하기 위해 젊은 여인이 소집된, 운도 지지리 없는 이런 우연을 가정하기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느뵈의 행동에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들이 피보나치의 숫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기 와서 우리에게 말한 것 아니겠습니까. 느뵈 요원이 왜 사실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사무실을 떠났는지 이해를 못하겠군요.”
콜레는 명확하지 않은 정황을 설명하는 시나리오로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할 수 있었다. 소니에르는 바닥에 숫자로 된 코드를 적었다. 경찰 조사에 암호 해독가를 포함시키도록 말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 손녀에게 닿게 된다. 메시지의 남은 부분은 소니에르가 자기 손녀와 어떤 식으로 의사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메시지는 느뵈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랭던은 어떻게 끼어들게 되었을까?
콜레가 좀더 생각을 펼치기 전에, 경보음이 적막에 갇힌 박물관을 흔들어 놓았다. 경보음은 대화랑 안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경보다! 대화랑! 남자화장실입니다.”
요원 한 명이 루브르 보안센터를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다. 파슈가 콜레에게 몸을 돌리며 외쳤다.
“랭던은 어디 있나?”
“아직 남자 화장실 안입니다!”
콜레는 컴퓨터 모니터 위의 깜박이는 빨간 점을 가리켰다.
“랭던이 창문을 깬 모양입니다!”
랭던이 멀리 갈 수 없다는 것을 콜레는 알고 있었다. 파리의 소방 규정에 따라 공공건물에서 15미터 이상 높이에 있는 창문은 화제에 대비해 깨지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2층 창문에서 밧줄이나 사다리 없이 빠져나오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다 드농 관이 있는 서쪽 끝은 떨어질 때의 충격을 완화시켜 줄 나무나 풀밭도 없었다. 화장실 창문 바로 아래에는 박물관 외벽에서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캐러젤 광장의 2차선 도로가 지나고 있었다.
“맙소사, 랭던이 창문의 돌출 부분으로 움직였습니다!”
모니터에 눈을 박고 콜레가 소리쳤다. 파슈는 어깨에 두른 권총집에서 MR 93 리볼버를 꺼내 움켜쥐고 사무실을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당황한 콜레는 모니터를 지켜보았다. 깜박이는 붉은 점이 창문 돌출부로 가더니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빨간 점이 건물 바깥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게 뭐야? 랭던이 창문에서 떨어졌거나, 아니면…’
“맙소사!”
콜레는 벌떡 일어났다. 빨간 점은 외벽 바깥으로 움직였다. 신호가 잠시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건물 주변 9미터 정도에서 갑자기 멈춰 버렸다. 콜레는 컴퓨터를 조작해서 파리 지도를 끌어왔다. 그리고 그 위에 GPS 시스템을 다시 설정했다. 영상을 확대하자 신호를 보내는 정확한 위치를 볼 수 있었다. 점은 움직이지 않았다. 캐러젤 광장의 도로 한가운데에 죽은 듯이 멈춰 있었다. 랭던이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든 것이다.
파슈가 대화랑으로 화살처럼 달리고 있을 때, 그의 무전기를 통해 콜레의 목소리가 멀리 들리는 경보음 사이로 울려 퍼졌다.
콜레는 소리를 질렀다.
“랭던이 뛰어내렸습니다! 캐러젤 광장 도로에서 신호를 찾아냈습니다! 화장실 창문 바깥입니다! 그런데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맙소사, 랭던이 자살한 것 같습니다!”
파슈는 듣고 있었지만, 도대체 말이 되지 않았다. 파슈는 계속 달렸다. 화랑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소니에르의 시체 옆을 지나자, 저 멀리 드농 관 끝에 있는 칸막이들이 보였다. 경보음은 더욱 커졌다. 무전을 통해 콜레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기다리십쇼! 랭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아 있나 봅니다. 랭던이 움직이고 있어요.”
화랑의 길이를 저주하면서 파슈는 계속 달렸다. 콜레는 아직도 무전기에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랭던이 더 빠르게 움직입니다! 캐러젤 아래 쪽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기다려… 랭던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요!”
칸막이에 다다른 파슈는 화장실 문으로 돌진했다. 무전기 소리는 경보음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랭던이 차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차를 탄 것 같아요! 제가…”
파슈가 총을 꺼내 들고 남자 화장실로 뛰어들자 경보음이 콜레의 말을 삼켜버렸다. 날카로운 경보음에 주춤거리면서 파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은 텅 비어 있었다. 파슈의 눈은 즉시 화장실 끝에 있는 깨진 창문으로 향했다. 정문의 가장자리를 살폈다. 랭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 높이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내리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뛰어내렸다 해도 심하게 다쳤을 터였다.
마침내 경보음이 멎고, 콜레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 남쪽으로 움직입니다… 더 빨라… 캐러젤 다리를 지나 센 강을 건너갑니다!”
파슈는 왼쪽을 둘러보았다. 캐러젤 다리를 지나는 차량은 2단으로 된 거대한 트레일러뿐이었다. 루브르에서 남쪽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비밀 방수포로 덮여 있는 트레일러의 위칸은 거대한 해먹처럼 보였다. 파슈는 순간 몸을 떨었다. 몇 분 전만 해도 저 트레일러는 화장실 창문 바로 밑에서 정지 신호를 받고 멈춰 있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야!’
파슈는 속으로 외쳤다. 방수포를 덮은 트레일러가 무엇을 싣고 있는지 랭던은 알 길이 없다. 만일 트레일러가 철강을 싣고 있었다면? 혹은 시멘트를? 아니면 그저 그런 쓰레기를? 15미터 아래로 뛰어내린다? 그것은 미친 짓이었다.
콜레가 소리를 질렀다.
“점이 방향을 틀었습니다! 생 페르 다리를 향해, 오른쪽입니다!”
다리를 건넌 트레일러는 천천히 속도를 줄여 생 페르 다리가 있는 오른쪽으로 돌고 있었다. 파슈는 놀란 시선으로 트레일러가 구석을 돌아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콜레는 무슨 생방송이라도 하는 양 트레일러의 위치를 시시각각 안내하면서, 외부에 있는 요원들을 무전기로 호출. 루브르 박물관 주위로 소집했다. 그리고 트레일러를 추적하도록 경찰차를 보냈다.
‘끝났군.’
파슈는 자기 요원들이 몇 분 안에 트레일러를 에워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랭던은 어디로도 도망 칠 수 없을 것이다.
권총을 집어넣으면서 파슈는 화장실을 빠져나와 콜레에게 무전으로 연락했다.
“내 차를 가져와. 내가 직접 현장에 가봐야겠어.”
대화랑을 다시 터벅터벅 걸어나오면서, 파슈는 랭던이 아직 살아 있을지 궁금했다. 문제될 것은 없었다.
‘랭던은 달아났다. 이제 죄를 씌우기만 하면 된다.’
화장실에서 겨우 14미터 떨어진 대화랑의 어둠 속에 랭던과 소피는 서있었다. 그들은 화장실 입구를 가리고 있는 칸막이들 중 하나에 등을 바싹 밀착시키고 있었다. 파슈가 총을 꺼내 들고 화살처럼 화장실로 들어오기 직전에, 랭던과 소피는 가까스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지난 60초가 몽롱했다. 랭던이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 현장에서 도주하는 것을 거절하고 남자 화장실 안에 있을 때, 소피는 창문 유리에 눈을 고정시키고 유리를 감싸고 있는 경보장치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 뒤 낙하 거리를 재기라도 하듯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표적만 있으면, 당신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어요.”
소피가 말했다.
‘표적?’
랭던은 불안하게 화장실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길 위쪽으로 18륜의 거대한 2단 트레일러가 화장실 창문 바로 아래의 정지 신호선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트레일러의 육중한 화물은 푸른 방수포로 느슨하게 덮여 있었다. 랭던은 소피가 일을 실행하지 않기를 바랐다.
“소피, 난 뛰어내릴 수 없…”
“추적장치를 꺼내봐요.”
당황한 랭던은 작은 금속장치가 잡힐 때까지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소피는 추적장치를 랭던에게서 받아 들고 세면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두꺼운 비누 위에 추적장치를 얹고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금속이 부드러운 비누의 표면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추적장치가 비누 속에 안전하게 박히도록 매만졌다. 비누를 랭던에게 건넨 소피는 세면대 아래에 있는 실린더 모양의 쓰레기통을 집어 들었다. 랭던이 미처 뭐라고 항의하기도 전에, 소피는 쓰레기통으로 유리창을 박살냈다.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이 머리 위에서 터져 나왔다.
“비누를 이리 줘요!”
경보음 때문에 소피는 고함을 질렀다. 랭던은 소피의 손에 비누를 넘겼다. 비누를 꼭 쥐고서, 소피는 부서진 창 밖으로 18륜 트레일러가 아주 서서히 멈추는 것을 바라보았다. 표적은 상당히 컸다. 값이 꽤 나가는 방수포. 건물에서 3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교통신호가 바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피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비누를 아래로 천천히 던졌다. 비누는 트럭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다가, 방수포 가장자리에 안착했다. 교통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을 때, 비누는 화물칸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축하해요. 당신은 지금 막 루브르를 탈출했어요.”
랭던을 문으로 잡아끌면서 소피는 말했다. 남자 화장실에서 빠져나와 어둠 속에 막 자리 잡았을 때, 파슈가 휙 지나갔다.
이제 경보음은 멎었다. DCPJ 차량의 사이렌 소리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멀어지는 것을 랭던은 들을 수 있었다.
‘경찰 대탈출이로군.’
파슈 역시 대화랑을 비워 놓고 서둘러 나갔을 것이다.
“대화랑 쪽으로 다시 오십 미터 정도 들어가면 비상계단이 있어요. 경비원들은 이 주변을 떠났을 테니까, 우린 여기에서 나갈 수 있어요.”
오늘 밤 랭던은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소피 느뵈는 자기보다 훨씬 똑똑한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