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된 농담? 소니에르 씨의 기호에 대한 자네의 해석이라는 것이, 일종의 숫자 장난일 뿐이란 말인가?”

 

브쥐 파슈는 불신으로 가득 차서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소피 느뵈를 노려보았다. 파슈는 이 여자의 설명을 전적으로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허락 없이 주제넘게 참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소니에르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기호가 그저 숫자로 된 장난질일 뿐이라고 파슈를 설득하려는 것이다.

 

소피는 빠른 프랑스어로 설명했다.

 

“이 기호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간단한 거예요. 자크 소니에르는 우리가 즉시 꿰뚫어볼 것을 알았을 거에요. 여기 해독한 내용이예요.”

 

그녀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파슈에게 건넸다. 파슈는 종이를 보았다.

 

1-1-2-3-5-8-13-21

 

“이게 다인가? 자네가 한 것이라곤 숫자를 커지는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 뿐이잖은가?”

 

소피는 이 상황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일 줄 아는 배짱이 있었다.

 

“정확해요.”

 

파슈의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끓는 것처럼 낮아졌다.

 

“느뵈 요원, 자네가 이걸 가지고 뭘 하려는 건지 난 도통 모르겠네. 그러니 빨리 알아듣게 얘기해봐.”

 

파슈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서 있는 랭던에게 근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여전히 미국 대사관에서 온 메시지를 듣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랭던의 어두운 표정으로 보아, 별로 좋은 내용은 아닌 모양이라고 파슈는 생각했다.

 

“반장님 손에 들고 있는 숫자들의 순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수학 수열이예요.”

 

소피의 목소리는 위험할 정도로 불손했다. 파슈는 유명하다고 할 정도의 수학 수열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소피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파슈의 손에 들린 종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소피는 말했다.

 

“이것은 피보나치 수열이라는 거예요. 이 수열에서는 한 숫자가 그 앞의 숫자 두개를 더한 합과 같아요.”

 

파슈는 숫자들을 관찰했다. 각각의 숫자는 정말로 앞의 숫자 두 개를 더한 합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소내에르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는 13세기에 이 숫자들의 배열을 창조했어요. 소니에르 씨가 마룻바닥에 적은 모든 숫자들이 피보나치의 유명한 수열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예요.”

 

파슈는 잠깐 소피를 응시했다.

 

“좋아, 만일 우연이 아니라면, 자크 소니에르 씨가 왜 이 수열을 선택했는지 설명할 수 있겠어?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거지? 대체 이 수열은 무슨 의미란 거야?”

 

소피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 의미도 없어요. 그게 요점이예요. 이것은 가장 간단한 암호로 된 농담이라고요. 유명한 시에서 몇 마디 골라낸 뒤에, 다시 아무렇게나 섞어서 누군가 그 시를 알아보는지 시험하는 거예요.”

 

파슈가 위협이라도 하듯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파슈의 얼굴과 소피의 얼굴이 마주한 거리는 불과 10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만족스러운 설명을 가져온 줄 알았는데.”

 

소피의 부드러운 얼굴이 앞으로 기울수록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반장님, 저는 오늘 밤 여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자크 소니에르 씨가 반장님과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게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분명 그런 것 같지는 않군요. 저희 부장님께 반장님은 더 이상 우리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는 구두를 돌려서 왔던 길로 걸어나갔다. 기절할 것 같은 기분으로 파슈는 소피가 어둠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저 여자가 지금 제정신이야?’

 

소피 느뵈는 지금 막 ‘전문적 자살’을 다시 정의내린 것이다.

 

파슈는 랭던을 향해 돌아섰다. 랭던은 아직도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저 주의 깊게 들으면서 아까보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미국 대사관.’

 

브쥐 파슈는 많은 것을 경멸했다. 그 중에서도 미국 대사관만큼 불쾌한 것이 없었다. 파슈와 미국 대사관은 정기적으로 싸움을 벌이는 편이었다. 싸움은 프랑스를 방문 중인 미국 사람들에 대한 법 집행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마약을 소지한 미국 교환학생들. 미성년을 상대로 매춘을 구하는 미국 사업가들, 물건을 훔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미국 관광객들, 이런 사람들을 DCPJ는 거의 매일 잡아들이고 있었다. 법적으로 미국 대사관은 프랑스의 법 집행에 끼어들어 유죄를 받은 자기네 시민들을 인도받을 수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고작해야 손목 한 대 맞으면 그만이었다.

 

‘사법경찰의 거세.’

 

파슈는 이렇게 불렀다. 최근 <파리 마치> 신문에 파슈를 미국인 범죄자를 물어뜯으려는 경찰견으로 묘사한 만화가 게재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 파슈는 미국인에게 닿 지 못했다.미국 대사관에 사슬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파슈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오늘은 아니야.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어.’

 

그 순간 로버트 랭던이 전화를 끊었다. 랭던은 어디가 아파 보였다.

 

“괜찮습니까?”

 

파슈가 물었다. 랭던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집에서 나쁜 소식이 온 모양이군.’

 

파슈는 휴대 전화기를 돌려받으면서 랭던이 땀을 약간 흘리는 것을 보고 짐작했다. 이상한 표정으로 파슈를 바라보면서 랭던은 말을 더듬거렸다.

 

“사고가… 친구가… 아침 일찍 집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랭던의 얼굴에 떠오른 충격이 진짜라는 것을 파슈는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뭔가가 있었다. 이 미국인의 눈동자에는 공포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 참 유감입니다.”

 

파슈는 랭던을 좀더 관찰하며 말했다. 그리고 화랑 안의 관람용 의자를 가리켰다.

 

“좀 앉으시겠습니까?”

 

랭던은 아무렇게나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 그러다가 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멈춰섰다.

 

“사실은 화장실에 좀 갔으면 합니다.”

 

파슈는 속으로 찡그렸다.

 

“화장실이라, 물론입니다. 몇 분간 쉬었다가 하지요.”

 

그리고 그들이 들어왔던 쪽의 긴 복도를 가리켰다.

 

“화장실은 광장의 사무실 쪽으로 가다 보면 저 뒤에 있습니다.”

 

랭던은 망설였다. 그리고 대화랑의 다른 쪽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끝에 더 가까운 화장실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랭던의 말이 옳다는 것을 파슈는 깨달았다. 그들은 대화랑을 따라 쭉 걸어 내려와 3분의2 정도되는 지점에 있었는데, 대화랑의 막다른 끝에 화장실 두 개가 있었다.

 

“같이 가드릴까요?”

 

벌써 화랑의 안쪽으로 움직이면서 랭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혼자 있고 싶군요.”

 

파슈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랭던이 걸어가는 길은 막다른 곳이고, 대화랑의 유일한 출구는 그들이 들어온 입구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소방법에 따르면 비상 공간의 확보를 위해 여러 개의 비상계단을 두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소니에르가 비상 시스템을 작동 시켰을 때 모든 비상계단은 자동으로 잠겨 버렸다. 지금은 시스템이 다시 설정되어, 비상계단은 모두 풀렸지만, 그게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외부로 통하는 문이 열리게 되면 화재 경보기가 울리도록 되어 있었고, 또 DCPJ 요원들이 문 밖을 지키고 있었다. 파슈 모르게 랭던이 루브르를 떠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저는 잠시 소니에르 씨의 사무실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그곳으로 오십시오. 랭던 씨 의논해야 할 것이 더 있으니까요.”

 

어둠속으로 사라지면서 랭던은 조용히 알았다는 뜻을 전했다. 파슈는 랭던과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화난 걸음으로 걸어갔다. 출입구에 이르러서는 다시 바닥을 기어서 대화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홀을 가로질러 지휘 본부가 차려진 소니에르의 사무실로 폭풍처럼 들어갔다.

 

“누가 소피 느뵈를 이 건물에 들여보내라고 승인했나?”

 

파슈는 고함을 질렀다. 콜레가 제일 먼저 대답했다.

 

“바깥을 지키고 있는 우리 요원에게 느뵈 요원이 암호를 풀었다고 말했답니다.”

 

파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느뵈는 갔나?”

 

“반장님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먼저 나갔네.”

 

파슈는 어두운 복도를 바라보았다. 분명 소피는 나가는 길에 여기 들러서 다른 요원들과 잡담할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잠시 파슈는 소피가 건물을 나가기 전에, 중간층에 있는 요원에게 연락해 소피를 붙잡아 데려오라고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파슈는 잘 알고 있었다. 하고싶은 말이란 그저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 말뿐이라는 것을… 오늘 밤 그는 정신이 몹시 산란했다.

 

‘느뵈 문제는 나중에 다루자.’

 

그녀를 해고시키리라 마음먹으면서 파슈는 자신에게 말했다. 파슈는 소피를 마음에서 몰아내며 소니에르의 책상에 서 있는 기사의 모형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런 뒤 콜레에게 돌아섰다.

 

“그를 찾았나?”

 

콜레는 짧고 고개를 끄덕이고, 노트북 컴퓨터를 파슈 쪽으로 돌렸다. 건물 도안 위에서 ‘화장실’이라고 표시된 방안에서 빨간 점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파슈는 말했다.

 

“좋아. 나는 전화할 곳이 있네. 화장실에 있는 랭던을 확실히 지키고 있게.”

 

대화랑의 끝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로버트 랭던은 현기증을 느꼈다. 소피의 전화 메시지가 마음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가리개 같은 이탈리아 그림들이 미로처럼 늘어서 있는 화랑끝에는, 화장실임을 알리는 국제 부호인 막대인간 그림의 조명 표시등이 켜져 있었다.

 

남자용 문을 열고 들어간 랭던은 화장실의 불을 켰다. 화장실은 비어 있었다. 세면대로 걸어간 랭던은 정신을 차리려고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강렬한 형광등이 화장실 바닥의 타일을 비추고, 암모니아 냄새가 풍겼다. 종이 수건을 잡아당기는 순간, 랭던 뒤에서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랭던은 돌아섰다.

 

두려움에 가득 찬 녹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소피 느뵈가 들어왔다.

 

“오, 하느님! 다행스럽게도 여기로 왔군요. 우린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DCPJ의 암호 해독요원인 소피 느뵈를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랭던은 세면대 옆으로 비켜섰다. 몇 분 전만 해도 랭던은 그녀가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전화 메시지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소피 느뵈가 정직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이 메시지에 반응하지 마세요. 그냥 조용히 듣기만 하세요. 당신은 지금 위험에 처해 있어요. 제 지시에 따라 그대로 움직이세요.”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랭던은 소피의 충고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전화 메시지가 시키는 대로 랭던은 파슈에게 사고를 당한 고향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 뒤에 대화랑 끝에 있는 화장실을 쓰겠다고 말했다. 소피는 화장실로 서둘러서 되돌아오느라 가빠진 숨을 가다듬으며 랭던 앞에 서 있었다. 형광등 아래, 부드러운 용모에서 뿜어나오는 소피의 강인한 기운이 랭던을 놀라게 했다. 그녀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소피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르누아르의 초상화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베일로 가려진 듯하지만 뚜렷하고, 신비함을 가득 담은 듯하지만 대담함이 함께 어우러진…

 

여전히 숨을 가다듬으며 소피가 말했다.

 

“랭던 씨, 당신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당신이 비밀 감시작업하에 있다는 것을요. 당신은 감시받고 있어요.”

 

소피의 영어 억양은 타일 벽에 반사되어 공허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왜?”

 

전화에서 소피는 이미 그에게 설명했지만, 그는 직접 듣고 싶었다.

 

“파슈가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당신을 점찍고 있거든요.”

 

소피는 랭던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이 말은 랭던을 바짝 긴장시켰지만, 우스꽝스럽게만 들렸다. 소피의 말에 따르면, 오늘 밤 랭던이 루브르까지 불려 온 까닭은 기호학자여서가 아니라 사건의 용의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랭던은 부지중에 비밀 감시작업이라고 불리는 DCPJ가 선호하는 심문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비밀 감시작업이란 경찰이 용의자를 범죄 현장으로 조용히 불러 인터뷰하면서, 용의자의 신경이 불안정해져 실수로 자신이 범인임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교묘한 속임수였다.

 

“당신 재킷의 왼쪽 주머니를 보세요. 경찰이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내 주머니를 보라고?’

 

무슨 싸구려 마술 속임수를 보는 기분이었다.

 

“한번 보세요.”

 

랭던은 당혹해하며,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트위드 재킷의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안을 더듬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제기랄 뭘 기대한 거지?’

 

혹시 소피란 저 여자가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손가락에 뭔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작고 단단한 것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조그마한 물체를 끄집어낸 랭던은 그것을 놀란 눈으로 응시했다. 손목시계의 배터리만한 크기의 단추처럼 생긴 금속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이게 무슨…?”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추적장치예요. DCPJ가 모니터하는 GPS위성으로 그 위치를 끊임없이 전송하는 거죠. 사람들의 위치를 모니터할 때 그 장치를 써요. 지구 어디에 있든 60센티미터 범위 내 위치를 알려주니까요. 경찰이 당신에게 목줄을 매어 둔거나 마찬가지예요. 호텔로 당신을 데리러 간 요원이 방을 나서기 전에 그 주머니에 슬쩍 떨어뜨렸을 거예요.”

 

랭던은 호텔 방으로 기억을 되돌렸다…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었다. 방을 나서기 전에 DCPJ요원이 공손하게 트위드 재킷을 랭던에게 내밀며 말했었다.

 

“밖은 춥습니다. 랭던 씨, 파리의 봄은 당신네 노래 가사에서 떠드는 것과는 전혀 다르답니다.”

 

랭던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재킷을 입었다. 소피의 올리브색 시선은 예리했다.

 

“그 추적 장치에 대해서는 일부러 미리 말하지 않았어요. 파슈가 보는 앞에서 당신이 주머니를 뒤질까봐 걱정되었거든요. 당신이 그것을 찾아 냈다는 것을 파슈는 모를 거예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랭던은 알 수 없었다.

 

“경찰은 당신이 도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 장치를 붙인 거예요. 사실, 경찰은 당신이 도망치기를 바랄 거예요. 그러면 자기네 주장이 옳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내가 왜 도망을 칩니까? 난 결백합니다.”

 

“파슈반장은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분노한 랭던은 추적 장치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피는 랭던의 팔을 잡고 그를 막았다.

 

“안 돼요! 장치를 다시 주머니에 넣어 두세요. 만일 버리면 장치는 작동을 멈추고, 경찰은 당신이 추적 장치를 찾아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파슈가 당신을 홀로 내버려 두는 이유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모니터할 수 있기 때문이예요. 자기가 한 짓을 당신이 알아차렸다고 생각하면…”

 

소피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대신 랭던의 손에서 동그란 금속 물체를 받아 들고, 조심스레 살핀 후에 다시 트위드 재킷 주머니 안으로 흘려 넣었다.

 

“이 장치는 적어도 당분간 당신과 함께 있어야 돼요.”

 

랭던은 아찔했다.

 

“파슈는 왜 내가 자크 소니에를 씨를 죽였다고 믿고 있는 겁니까?”

 

“그 사람은 당신을 의심할 만한 나름대로의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요. 당신이 아직 보지 못한 증거가 여기 있어요. 파슈는 신중하게 그 증거를 당신에게 감춘거고요.”

 

랭던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소니에르 씨가 마룻바닥에 적어 놓은 세 줄의 문구를 기억해요?”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와 문자들은 랭던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소피의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처럼 낮아졌다.

 

“불행하게도 당신이 본 것은 메시지 전체가 아니예요. 거기에는 한 줄이 더 있었어요. 파슈가 사진을 찍고 나서, 당신이 오기 전에 넷째 줄을 지워버린 거예요.”

 

워터마크 펜의 가용성 잉크는 쉽게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왜 파슈가 증거를 지워버렸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소니에르 씨가 남긴 메시지와 마지막 줄은 파슈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거였어요.”

 

소피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적어도 파슈가 당신과 볼 일을 마칠 때까지는요.”

 

소피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컴퓨터로 출력된 사진 한 장을 꺼내 펼쳐 보였다.

 

“파슈는 오늘 밤 일찍 범죄 현장의 사진을 암호 해독부서의 컴퓨터에 올려놓았어요. 소니에르 씨의 메시지가 무엇을 말하는 지 우리 중 누군가가 풀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이게 그 사진이예요.”

 

소피는 랭던에게 프린트를 건넸다. 사진을 본 랭던은 당황했다. 근접 촬영으로 찍은 사진은 바닥에서 빛나고 있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누군가 배를 걷어찬 것처럼, 메시지의 마지막 줄이 랭던을 쳤다.

 

13-3-2-21-1-1-8-5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랭던은 몇 초 간 마지막 줄에 적힌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라는 문구를 의아하게 응시했다. 바닥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소니에르가 내 이름을 마지막 줄에 남겼다’

 

랭던은 그 이유를 전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급박한 시선으로 소피는 말했다.

 

“이제 이해하시겠어요? 파슈가 오늘 밤 왜 당신을 여기로 불렀는지를요. 그리고 왜 당신이 파슈의 일급 용의자인지를요.”

 

그 순간 랭던은 자신이 소니에르가 범인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파슈가 짓던 거만한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그의 혼란은 이제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소니에르 씨가 왜 이렇게 적었을까요? 내가 왜 자크 소니에르 씨를 죽이려 했겠습니까?”

 

“파슈는 살해 동기를 찾아야 해요. 그래서 그 사람은 오늘 밤 있었던 당신과의 대화를 전부 녹음했을 거예요. 당신이 하나의 단서라도 흘리길 희망하면서 말이예요.”

 

랭던은 입을 벌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소피가 설명했다.

 

“파슈는 소형 마이크를 달고 있었어요. 그 마이크는 파슈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송신기와 연결되어 있고, 송신기는 신호를 지휘 본부로 전달하죠.”

 

랭던은 더듬거렸다.

 

“이건 말도 안 돼. 난 알리바이가 있소. 강의를 끝낸 후에 곧장 호텔로 돌아갔어요.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면 알 겁니다.”

 

“파슈가 벌써 물어봤어요. 반장님의 보고서에는 대략 밤 열 시 삼십 분쯤에 직원에게서 열쇠를 받았다고 되어 있더군요. 운 나쁘게도 살해 시간은 밤 열한 시 가까운 때였어요. 당신은 누구 눈에도 띄지 않고 호텔을 빠져나올 수 있었죠.”

 

“이건 말도 안 돼! 파슈는 아무런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소!”

 

소피의 두 눈이. ‘증거가 없다고요?’라고 말하듯 커졌다.

 

“랭던 씨. 당신 이름이 시체 옆 바닥에 적혀 있었어요. 또 소니에르 씨의 수첩에 살인이 일어난 그 시간쯤에 당신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고요. 파슈는 당신을 구금해서 심문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 아니 그 이상의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거예요.”

 

랭던은 갑자기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소.”

 

소피는 한숨을 쉬었다.

 

“이건 미국 텔레비전이 아니예요. 랭던 씨, 프랑스에서는 법이 범죄자가 아니라 경찰을 보호하지요. 불행하게도, 이 경우는 미디어까지 고려해야 해요. 자크 소니에르 씨는 파리의 저명 인사이고, 모두에게서 사랑받는 인물이예요. 그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은 아침 뉴스가 되지요. 파슈는 즉시 성명을 발표하라는 압박을 받을 테고, 용의자를 이미 구금시켜 놓았다고 하면 보기 좋겠지요. 당신에게 죄가 있든 없든, DCPJ가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낼 때까지는 DCPJ에 붙들려 있어야만 할 겁니다.”

 

랭던은 우리에 갇힌 짐승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신은 왜 내게 이런 얘기를 다 해주는 겁니까?”

 

“왜나하면, 랭던 씨, 저는 당신이 결백하다고 믿으니까요.”

 

소피는 잠시 시선을 거두었다가 다시 랭던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당신이 이런 곤란에 빠지게 된 것에는 부분적으로 제 잘못도 있으니까요.”

 

“뭐라고요? 소니에르 씨가 나를 엮어 넣은 것이 당신 잘못이란 말입니까?”

 

“소니에르 씨는 당신을 엮어 넣으려고 한 것이 아니예요. 그건 실수였어요. 바닥에 있던 메시지는 나를 위한 거예요.”

 

랭던은 사태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뭐요?”

 

“그 메시지는 경찰을 위한 것이 아니었어요. 소니에르 씨는 나를 위해 쓴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경찰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소니에르 씨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숫자 코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예요. 현장 조사에 암호 해독가를 포함시키기 위해 그 숫자들을 적었을 거예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가 가능한 빨리 알아차리기를 바라면서 말이예요.”

 

랭던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알게 되었다. 소피 느뵈가 제정신이든 아니든, 이 여자가 왜 자기를 도우려고 하는지 이유는 알게 된 것이다.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소피는 랭던을 찾으라는 관장의 마지막 구절이 자기에게 남겨진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었다.

 

“그런데 소니에르 씨의 메시지가 왜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소피는 힘없이 말했다.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 그 특별한 스케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다 빈치의 작품이예요. 오늘 밤 소니에르 씨는 제 주의를 끌기 위해서 그 그림을 이용한 거예요.”

 

“잠깐만, 지금 관장이 당신이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모든 게 엉망인 것 같죠. 자크 소니에르 씨는 나와…”

 

소피의 목소리가 끊겼다. 랭던은 그 목소리에서 갑작스러운 슬픔과 고통스러운 과거가 표면 아래에서 끓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피와 자크 소니에르는 어떤 특별한 관계임이 분명했다. 랭던은 자기 앞에 있는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관찰했다. 프랑스에서는 나이 든 남자가 종종 젊은 정부를 두기도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피 느뵈를 그런 여자로 보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소피는 속삭이는 말투로 말했다.

 

“십 년 전에 우리는 크게 싸웠어요. 그 뒤로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어요. 오늘 밤 소니에르 씨가 살해됐다는 전화를 받고, 사진으로 시체와 바닥에 적힌 글을 보았어요. 그리고 제게 메시지를 남기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덕분에?”

 

“예. 그것과 P.S.라는 글자 때문에요.”

 

“추신을 뜻하는 P.S. 말이오?”

 

소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P.S. 는 제 이니셜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이름은 소피 느뵈잖소?”

 

소피는 시선을 돌렸다. 소피의 얼굴이 붉어졌다.

 

“P.S. 는 그와 함께 살 때 그가 불렀던 제 별명이예요. 프린세스 소피의 앞글자를 딴 거죠.”

 

랭던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웃긴다는 거 나도 알아요. 하지만 십 년 전의 일이예요.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니까.”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소니에르 씨를 알고 있었나요?”

 

소피의 눈에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있었다.

 

“잘 알았죠. 자크 소니에르 씨는 제 할아버지세요.”

 

 

“랭던은 어디에 있나?”

 

지휘 본부로 다시 돌아온 파슈가 마지막 담배 연기를 뿜어내면서 물었다.

 

“아직 남자 화장실에 있습니다.”

 

콜레 부관은 이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다. 파슈는 투덜거렸다.

 

“아직도 시간을 끌고 있군.”

 

반장의 눈은 콜레의 어깨 너머에 있는 GPS 점에 박혀 있었다. 콜레는 파슈가 몸을 홱 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반장은 직접 가서 랭던을 살펴보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있었다. 관찰 대상은 스스로 경계를 허물도록 충분한 자유와 시간을 주는 것이 좋았다. 랭던은 스스로 돌아와야 했다. 10여분이 흘렀다.

 

‘너무 오래 있는군.’

 

“랭던이 돌아올 것 같나?”

 

콜레는 머리를 저었다.

 

“남자 화장실에서 여전히 작은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GPS 장치는 분명 랭던에게 부착되어 있습니다. 아픈 게 아닐까요? 랭던이 장치를 발견했다면, 떼버리고 도주하려고 할 겁니다.”

 

파슈는 자기 시게를 체크했다.

 

“좋아.”

 

파슈는 여전히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콜레는 오늘 밤 반장에게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이상한 강박증 같은 것을 느꼈다. 상부로부터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항상 침착하고 초연하던 파슈가 오늘 밤은 저 일이 자기 개인적인 일이라도 되는 양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있었다.

 

‘놀랄 일도 아니지. 파슈는 이 체포를 성사시키려고 필사적이니까.’

 

콜레는 생각했다. 최근 부처 이사회와 신문 방송은 파슈의 공격적인 전술과 힘있는 외국 대사관과의 잦은 충돌, 새로운 기술의 과다예산 책정 등에 관한 일로 파슈를 점점 비판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오늘 밤 저 미국인을 첨단 기술과 고자세로 체포하게 되면, 파슈를 비판하는 무리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을 터였다. 특히 연금을 받고 은퇴할 때까지, 파슈는 자기 지위를 안전하게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슈 반장에게 연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신도 알고 계시지.’

 

콜레는 생각했다. 수사 기술에 대한 파슈의 열의는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몇 년 전, 파슈가 저축한 모든 돈을 어떤 기술에 투자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입고 있던 셔츠까지 잃었다고 했다.

 

‘파슈 반장은 최고급 셔츠만 입는 사람인데 말이야.’

 

오늘 밤 시간은 충분했다. 소피 느뵈의 이상한 개인은 그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그녀도 어디론가 가버렸고, 파슈는 아직 돌릴 수 있는 카드 패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파슈는 랭던에게 희생자가 마루 위에 랭던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는 사실을 말해야 했다.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그 증거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은 볼 만할 터였다.

 

DCPJ 요원 한 명이 사무실을 가로질러 오면서 파슈를 불렀다.

 

“반장님, 전화 좀 받아 보십시오.”

 

요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밀었다.

 

“누군데?”

 

요원은 얼굴을 찡그렸다.

 

“암호 해독부서의 부장입니다.”

 

“그런데?”

 

“소피 느뵈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