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푸스 데이의 새로운 미국 본사이자 회담 센터인 머리 힐은 뉴욕의 렉싱턴 가 243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1만 2천 평방미터짜리 빌딩은 4천 7백만 달러 이상이라는 가격이 매겨져 있고, 붉은 벽돌과 인디애나 석회암으로 치장되어 있다. 메이 앤 핀스카가 디자인했고, 빌딩 안에는 백 개가 넘는 침실과 여섯 개의 식당, 도서실 거실 회의실 사무실이 있다. 2층과 8층, 16층에는 목공예와 대리석으로 장식된 교회가 있고, 17층은 모두 주거 지역이다. 남자들은 렉싱턴 가에 위치한 정문으로 드나들었지만, 여자들은 다른 쪽에 있는 출입문을 사용해야 했다. 이 건물 안에서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여자와 남자가 항상 분리되어 있었다.

 

이른 저녁, 마누엘 아링가로사 주교는 자신의 아파트 펜트하우스에서 전통적인 검정 사제복을 입고 작은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허리에 자줏빛 띠를 둘렀을 테지만, 오늘 밤은 일반인들과 섞여서 여행할 참이었다. 주교는 자신의 높은 지위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로지 예리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만이 14캐럿짜리 자수정과 커다란 다이아몬드들, 그리고 수공예로 만든 미트라(주교들이 의식 때 쓰는 관)모양의 홀이 박힌 금반지를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여행가방을 어깨에 짊어지면서 주교는 짧은 기도를 올리고 아파트를 나섰다. 운전사가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앉은 아링가로사는 창문을 통해 어두운 대서양을 내려다보았다. 해는 이미 졌지만, 주교는 자기만의 별이 떠오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오늘 밤 전투는 승리할 것이다.’

 

한 달 전 자신의 제국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에 대항해서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던 것을 생각하면 그저 아찔할 뿐이었다. 오푸스 데이의 수장으로서, 아링가로사는 지난 10년 간 자신의 삶을 오푸스 데이. 즉 ‘신의 사업’에 관한 복음을 널리 알리는 데 바쳐왔다. 1928년 스페인 사제인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에 의해 설립된 이 단체는 보수적인 카톨릭 가치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그리고 회원들에게는 신의 사업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할 것을 권고했다.

 

오푸스 데이의 전통철학은 프랑코 독재시절 이전의 스페인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1934년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의 정신이 담긴 <길>의 출간과 함께 에스크리바의 메시지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책에는 평소 생활하면서 신의 사업을 행할 수 있는 999개의 명상이 수록되어 있었다. 현재 42개 언어로 번역되어 4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므로 오푸스 데이의 힘은 세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오푸스 데이의 건물과 교육센터, 심지어 대학교까지 찾아볼 수 있다. 오푸스 데이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재정도 가장 안정된 가톨릭 교파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종교적인 냉소와 예찬, 텔레비전 선교사들이 판치는 요즘 시대에 날로 확장되는 오푸스 데이의 부와 힘은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아링가로사는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푸스 데이를 뇌를 세척하는 종교의식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초보수적인 기독교의 비밀 분파라고도 합니다. 어느 쪽입니까?”

 

기자들이 가끔 묻는 말이었다. 그때마다 주교는 끈기 있게 대답했다.

 

“그 어느쪽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톨릭 교회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한 가톨릭 교리를 열심히 따르는 일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신의 사업이란 게 반드시 수입의 십 분의 일을 헌금으로 내고, 순결에 대한 서약과 채찍질이나 말총 허리띠를 통한 속죄를 포함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오푸스 데이의 극히 일부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푸스 데이에는 여러 참여 단계가 있습니다. 수천 명의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결혼을 했고, 가정이 있으며, 자기들이 속한 사회에서 신의 일을 행합니다. 그밖의 사람들은 오푸스 데이의 수도원에서 고행의 삶을 선택했지요. 이러한 선택은 모두 개인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오푸스 데이의 모든 사람들은 신의 사업을 행하면서 더 나은 세계를 만든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확실히 경탄할 만한 원정이지요.”

 

하지만 이런 이성적인 논리가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다. 미디어는 항상 스캔들을 파고 들었다. 대부분의 큰 조직들처럼 오푸스 데이 역시 조직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잘못 인도된 몇몇 영혼들이 회원으로 있었다.

 

두 달 전, 오푸스 데이 그룹은 미국의 중서부 지역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환락 상태를 종교 체험이라 믿고 환각제에 취한 신입회원들을 붙잡았다. 또 다른 대학교의 학생은 갈고리가 박힌 말총 허리띠를 하루 권장시간인 두 시간 넘게 사용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삶에 환멸을 느낀 보스턴의 한 젊은 금융투자자가 자살을 기도하기 전에, 자기의 전 재산을 오푸스 데이에 넘긴다고 서명한 사건도 있었다.

 

‘잘못 인도된 양 떼 무리들.’

 

마음은 신도들에게 향한 채 아링가로사는 생각했다.

 

물론 가장 당혹스러운 일은 FBI스파이. 로버트 한센의 공개재판이었다. 그 과정에서 로버트 한센이 오푸스 데이의 신실한 회원이라는 것과, 자기방에 비디오 카메라를 몰래 설치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센의 친구들은 몰래 카메라를 통해서 한센이 자기 부인과 성행위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판사는 ‘독실한 가톨릭 교인의 유희로는 보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슬프게도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오푸스 데이의 감시 네트워크(ODAN)라고 알려진 새로운 감시단체를 탄생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 단체의 인기 웹사이트인 www.odan.org는 오푸스 데이 구회원들의 증언을 빌려 ,오푸스 데이 가입을 경고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이제 미디어는 오푸스 데이를 ‘신의 마피아’ 혹은 ‘그리스도의 제사’로 치부하고 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아링가로사는 오푸스 데이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는지 비평가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푸스 데이는 바티칸의 전적인 승인과 축복을 받고 있었다.

 

‘오푸스 데이는 교황 자신의 개인적인 교파다.’

 

하지만 최근에 오푸스 데이는 미디어보다 훨씬 강력한 힘의 위협을 받고 있다. 아링가로사 자신도 몸을 숨길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적… 다섯달 전에 힘의 균형이 변화무쌍하게 흔들린 사건이 있었다. 아링가로사는 그 충격에 아직도 비틀거리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시작한 전쟁을 아직 모르고 있어.”

 

비행기 창문 밖으로 어두운 대서양을 내려다보며 아링가로사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순간 아링가로사의 눈은 비행기 창에 비친 낯선 자기 얼굴에 머물렀다. 납작하게 흰 코가 어두운 장방형의 얼굴을 지배하고 있었다. 코는 젊은 선교사 시절 , 스페인에서 한방 얻어맞아 주저앉은 것이다. 신체 결함은 이제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아링가로사는 영혼의 세계에 있지, 육체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행기가 포르투칼의 해안을 통과할 때, 아링가로사의 사제복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 전화기가 진동했다. 비행 도중 휴대 전화기의 사용을 금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 통화는 놓칠 수 없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이 번호를 알고 있고, 그 사람이 이 휴대 전화기를 우편으로 보내준 것이다.

 

흥분된 감정으로 주교는 조용히 대답했다.

 

“네?”

 

“사일래스가 쐐기돌의 행방을 알아냈소. 돌은 파리에 있소. 생 쉴피스 교회 안이오.”

 

전화를 건 사람이 말했다. 아링가로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까이 있군요.”

 

“즉시 쐐기돌을 얻을 수 있소. 하지만 당신의 힘이 필요하오.”

 

“물론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십시오.”

 

휴대 전화기의 전원을 껐을 때, 아링가로사의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그는 다시 공허한 밤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주교는 자신이 벌이기 시작한 일 때문에 난쟁이처럼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8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일래스라는 이름을 가진 알비노는 물이 담긴 작은 대야 앞에 서 있었다. 등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문질러, 붉은 피가 물에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히솝(히솝풀. 성서의 우술초로, 유대인은 부정을 없애는 의식에 그 가지를 썼다.)으로 나를 정화시키리라. 그럼 나는 깨끗해질 것이다.’

찬송가를 인용하면서 사일래스는 기도했다.

 

‘나를 씻자. 그럼 나는 눈보다 하얗게 될 것이다.’

 

사일래스는 한동안 느끼지 못하던 어떤 예감이 솟아남을 알 수 있었다. 그 예감은 사일래스를 전율케 했다. 지난 10년간 사일래스는 자기의 죄를 씻고, 새 생활을 시작하고, 과거의 폭력성을 지우면서 <길>의 내용을 따랐다. 하지만 오늘밤, 모든 것이 힘차게 돌아오고 있었다. 묻어 버리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싸우던 증오가 다시 샘솟고 있었다. 자기의 과거가 이토록 빠르게 떠오르는 것에 사일래스는 놀라고 있었다. 물론 과거의 기억과 함께 기술도 생각났다. 거칠지만 아주 유용한 기술이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평화… 비폭력… 사랑.’

 

이것은 사일래스가 처음으로 받은 가르침이다. 그는 이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적들이 이 말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

 

‘힘으로 신을 위협하는 자들은 힘과 부딪히게 될 것이다. 확고 부동한 힘과 말이다.’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병사들은 자기들의 신념을 꺾으려는 자들에 대항해 그들의 신념을 지켜왔다. 오늘 밤 사일래스는 그 전장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상처를 말리면서 사일래스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후드가 달린 망토를 입었다. 양모로 만들어진 어두운 색깔의 망토는 사일래스의 흰 피부와 머리카락을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허리에 매단 밧줄을 꽉 죄면서, 사일래스는 후드를 머리위로 뒤집어썼다. 거울 속에서 사일래스의 붉은 두 눈은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바퀴는 구르기 시작했다.’

 

 

보안 철문을 기어 나온 로버트 랭던은 대화랑의 입구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랭던은 길고 깊은 협곡 같은 화랑 입구를 응시했다. 화랑의 양쪽에는 9미터 높이의 벽이 어둠 속에서 증발하듯 솟아 있었다. 천장 케이블에 매달린 다 빈치와 티치아노, 카라바조의 멋진 작품들 사이로 야간 조명등이 부자연스러운 붉은 불빛을 발산하며 위를 향해 있었다. 귀족과 정치인의 초상화를 비롯해 정물화와 종교적인 장면, 풍경화 들이었다.

 

대화랑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지만, 많은 관람객에게 더 놀라운 경험은 기하학 패턴으로 유명한 마룻바닥이다. 대각선의 참나무 널빤지를 눈부신 기하학 디자인으로 배열한 마룻바닥은 시각적인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닥의 다차원적인 네트워크는 관람객들에게 매 걸음 변하는 표면위로 화랑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마룻바닥의 무늬를 따라가던 랭던의 눈에 예기치 못한 물체가 잡혔다. 랭던 왼쪽으로 2,3미터 앞에 떨어져 있는 물체 주위에는 경찰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었다. 랭던은 파슈를 향해 돌아섰다.

 

“바닥에 있는 저것… 카라바조의 작품입니까?”

 

쳐다보지도 않고 파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하건대, 그 그림은 2백만 달러도 더 나갈 터였다. 그런데 폐기된 포스터 그림처럼 마룻바닥에 누워 있었다.

 

“도대체 저 그림이 왜 바닥에 누워 있는 겁니까?”

 

파슈는 움직이지 않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곳은 범죄 현장입니다. 랭던 씨, 우리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저 캔버스는 관장이 벽에서 잡아 뜯어낸 것입니다. 관장은 그렇게 해서 보안 시스템이 움직이게 한 거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마음에 그려보며 랭던은 입구를 뒤돌아보았다.

 

“관장은 자기 사무실에서 공격을 받고, 이 대화랑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벽에서 잡아떼어, 보안 철문을 작동시킨 겁니다. 즉시 모든 출입구가 차단되면서 철문이 떨어졌을 겁니다. 철문이 내려진 여기가 대화랑으로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입구입니다.”

 

랭던은 혼란을 느꼈다.

 

“그럼 관장이 대화랑 안에서 범인을 잡았단 말입니까?”

 

파슈는 고개를 저었다.

 

“보안 철문은 소니에르와 범인을 갈라놓았습니다. 살인범은 홀 저쪽에 있었죠. 그리고 이 철문을 통해 소니에르를 쐈습니다.”

 

파슈는 그들이 막 기어서 통과한 철문의 쇠창살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오렌지색 딱지가 매달려 있었다.

 

“PTS 팀이 철문에서 탄흔 잔재를 찾아냈습니다. 범인은 쇠창살 사이로 총을 쐈고, 소니에르 씨는 여기서 홀로 죽어갔습니다.”

 

랭던은 소니에르의 시신이 담긴 사진을 떠올렸다.

 

‘경찰은 소니에르 스스로 했다고 하는데…’

 

랭던은 앞에 펼쳐진 광대한 규모의 화랑을 쳐다보았다.

 

“그럼 소니에르 씨의 시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파슈는 십자형의 넥타이 핀을 바로잡은 뒤 걷기 시작했다.

 

“잘 아시겠지만, 대화랑은 상당히 깁니다.”

 

랭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대화랑의 길이는 대략 450미터, 워싱턴 기념비 세 개를 합쳐놓은 것과 같다. 화랑의 폭 역시 숨을 들이쉴 만은 했다. 열차 두량을 나란히 세워 놓은 넓이 정도는 되었다. 화랑의 중앙에는 군데군데 입상들과 거대한 도기품들이 전시되어 복도를 멋스럽게 가르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한쪽 벽을 따라 관람하다가, 반대편 벽으로 돌아가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파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면을 주시한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많은 걸작들을 일별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랭던은 무례하게만 느껴졌다.

 

‘어차피 이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야.’

 

랭던은 자신을 달랬다. 조도가 낮은 붉은색 조명등은 불행히도 바티칸 비밀문서 보관소의 붉은 조명 아래에서 겪은 사건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오늘 밤은 로마에서 죽을 뻔한 그날과 매우 유사했다.

 

랭던은 다시 비토리아를 떠올렸다. 수개월 동안 비토리아는 랭던의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로마에서 겪은 일이 겨우 1년 전이라는 것을 랭던은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수십 년은 지난 것 같았다.

 

‘또 다른 삶.’

 

비토리아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지난 12월이었다. 엽서에는 분규물리학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자바 해로 떠난다는 내용이 씌어있었다. 쥐가오리의 이동을 추적하기 위해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무슨 물리학이라고 했다. 랭던은 비토리아 베트라 같은 여자가 대학 캠퍼스에서 자기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은 결코 품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로마에서의 만남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열망을 마음에 심어놓았다. 독신생활에 대한 오랜 애착과 거기서 얻는 자유로움이 어느틈엔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예상치 못한 공허감이 랭던의 마음에 자리잡았다.

 

랭던과 파슈는 씩씩하게 걸어갔다. 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자크 소니에르 씨가 이렇게 멀리까지 갔습니까?”

 

“소니에르 씨는 위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서서히 죽어 갔을 겁니다. 십 오분에서 이십 분 정도 걸렸겠지요. 분명히 소니에르 씨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랭던은 섬뜩해서 돌아보았다.

 

“보안요원이 도착하는 데 십오 분이나 걸렸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경보음이 울리면 박물관 보안요원은 즉시 행동합니다. 그들은 대화랑이 봉쇄되었다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쇠창살을 통해 화랑안,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지요. 보안요원들이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고 합니다. 필시 범인일 거라 가정하고, 규정대로 사법경찰에 연락한 것입니다. 우리가 도착해서 철문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들어올리고, 저는 무장한 요원 부대를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요원들은 화랑을 점거해 가면서 침입자를 구석으로 몰아갔지요.”

 

“그리고요?”

 

“안에서는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소니에르 씨외에는요.”

 

파슈는 저 멀리 아래쪽을 가리켰다. 랭던의 시선이 파슈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파슈가 화랑 중앙의 커다란 대리석 입상을 가리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상을 지나, 30미터쯤 지난 지점에 휴대용 조명기구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마룻바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진홍색 화랑 안에서 하얀 조명을 받고 있는 부분은 정말이지 섬처럼 보였다. 빛 한가운데에는 현미경 밑에 놓인 벌레처럼 관장의 시신이 마룻바닥에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다.

 

“사진을 봤을 테니, 그리 놀랍지는 않을 겁니다.”

 

파슈가 말했다. 시체로 다가가면서 랭던은 차디찬 냉기를 느꼈다.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가장 기이한 장면이 앞에 있었다. 자크 소니에르의 핏기 없는 시신은 사진에서처럼 바닥에 누워있었다. 랭던은 강한 조명 불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시신 위로 몸을 숙였다. 기묘한 형태로 자기 몸을 배열하느라 삶의 마지막 몇 분을 써버렸을 소니에르가 다시금 놀라웠다.

 

소니에르는 제 나이에 맞는 노인으로 보였다. 모든 근육조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걸치고 있던 모든 옷가지들은 벗어서, 마루 위에 단정하게 놓아두었다. 소니에르는 자기 등을 화랑의 긴 축과 정확히 일치시켜 폭 넓은 화랑 가운데에 누워 있었다. 팔과 다리는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나 아이들이 만든 눈 천사처럼 바깥쪽으로 뻗어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서 사지를 벌린 사람처럼 보였다.

 

총알이 살을 뚫고 지나간 듯 갈비뼈 바로 아래에는 피의 얼룩이 묻어 있었다. 바닥에 흘러내린 양이 적은 것을 보니, 놀랍게도 거의 피를 흘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니에르의 왼쪽 집게손가락은 피투성이였다. 자기 손가락을 상처 부위로 쑤셔 넣은 게 틀림없었다. 소니에르는 자신의 피를 잉크삼고 벌거벗은 복부를 캔버스 삼아, 배 위에 기호 하나를 그려놓은 것이다. 오각형의 별 모양을 나타내는 다섯 개의 직선이었다.

 

‘별표.’

 

소니에르의 배꼽에 중심을 둔 별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는데, 현장을 직접 목격하니 마음이 더욱 편치 않았다.

 

‘소니에르가 직접 했다.’

 

“랭던 씨?”

 

파슈의 짙은 눈동자가 다시 랭던에게 머물렀다. 답하는 랭던의 목소리는 거대한 공간의 내부가 텅 빈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것은 별표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호 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사천 년 그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을 겁니다.”

 

“무엇을 뜻하는 거죠?”

 

이런 질문을 받으면 랭던은 항상 망설였다. 하나의 기호가 무엇을 뜻하는지 얘기한다는 것은 노래가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지 얘기하는 것과 같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의미는 달랐다. 미국에서 KKK(Ku Klux Klan) 집단의 하얀 모자는 증오와 인종차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종교적 신념의 의미를 갖는 의복의 하나다.

 

“기호를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기본적으로 별표는 이교도의 종교적 기호입니다.”

 

파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숭배로군요.”

 

“아닙니다.”

 

어휘 선택이 더 명확했어야 함을 깨닫고 랭던은 즉시 말을 고쳤다. 요즘들어, ‘이교도(pagan)’라는 용어는 악마숭배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몰이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시골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파가누스(paganus)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교도’는 자연 숭배처럼 오래된 시골 풍의 종교를 고집하면서, 기독교에서 볼 때 아직 교화되지 않았거나 교리 따위를 주입받지 않은, 문자 그대로 시골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실 , 시골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두려움은 너무 커서, 한 때 시골 사람(villager)을 뜻하던 무해한 단어가 악당(villain)이라는 사악한 영혼을 나타내는 단어를 낳기까지 했다.

 

“별표는 자연숭배와 관련된 기독교 이전의 기호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세상을 두 개로 나누어 생각했습니다. 남자와 여자죠. 신과 여신이 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양이라고도 하죠. 음양이 균형을 잘 이룰 때 세상의 모든 것은 조화를 이룹니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혼돈이 생기죠.”

 

랭던은 소니에르의 복부를 가리켰다.

 

“이 별표는 모든 것의 반쪽인 여자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종교 역사가들이 ‘신성한 여성’ 또는 ‘성스러운 여신’이라고 부르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소니에르 씨 역시 이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소니에르 씨가 자기 배 위에다 여신의 기호를 그렸다는 말입니까?”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랭던은 그렇다고 해야만 했다.

 

“가장 구체적으로 해석하자면, 별표는 성애와 미의 여신인 비너스를 기호화한 것입니다.”

 

알몸의 시신을 바라보며 파슈는 신음소리를 냈다.

 

“초기 종교는 자연의 신성한 질서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여신 비너스와 행성인 비너스, 즉 금성같은 것이었죠. 여신은 밤 시간 동안 하늘을 지배했고, 수많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너스, 동방의 별, 이슈타르, 아스타르테. 모두 자연과 어머니인 지구와 연결된 강력한 여성형 개념입니다.”

 

파슈는 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든 간에 악마숭배라는 개념이 더 마음에 드는 듯 말이다.


 

랭던은 별표의 가장 놀라운 의미는 설명하지 않았다. 비너스와 관련된 그래픽의 기원이었다. 천문학도 시절, 8년마다 황도를 가로지르는 금성, 즉 비너스의 자취가 완벽하게 별 모양을 그린다는 것을 배우고 랭던은 기절할 뻔했다. 이 현상을 관찰한 옛날 사람들도 랭던처럼 매우 놀랐고, 비너스와 그 별 모양은 완벽, 아름다움 그리고 성애의 순환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마법 같은 비너스의 매력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리스인들은 올림픽 게임을 조직할 때 비너스의 8년 주기를 도입했다. 현대 올림픽 게임의 스케줄이 여전히 비너스 주기의 절반을 따른다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심지어 오각형의 별 모양이 공식 올림픽 휘장이 될 뻔했다는 것은 더더욱 모른다. 조화와 포용이라는 올림픽 게임의 정신을 더 잘 나타내기 위해, 마지막 순간에 오각형 별은 교차하는 다섯 개의 고리로 바뀐 것이다.

 

파슈가 불쑥 끼어들었다.

 

“랭던 씨, 저 별은 분명히 악마와 관계가 있습니다. 당신네 미국 공포영화들이 그 점을 분명히 보여주지 않습니까?”

 

랭던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맙군, 할리우드.’

 

악마 같은 연쇄 살인범 영화에서 오각형 별은 이제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다. 다른 악마부호들과 함께 사탄 추종자들의 아파트 벽에 휘갈겨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쓰인 기호를 보면, 랭던은 항상 실망스러웠다. 별의 진짜 기원은 아주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달리, 별 모양에 대한 악마적인 해석은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개념의 기원은 정확합니다. 하지만 별이 상징하는 개념은 수천 년을 거치며 왜곡되어 왔지요. 이번 경우에는 유혈 참사에서 쓰였고요.”

 

“제가 설명을 잘 따라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랭던은 파슈의 십자형 넥타이 핀을 흘끗 쳐다보았다. 말의 요점을 어떻게 잘 표현해서 이해시켜야 할지 난감했다.

 

“교회 말입니다. 반장님. 기호들은 아주 복원력이 강합니다. 하지만 별 모양의 의미는 초기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바뀌어 버렸지요. 이교도를 뿌리뽑고 대중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킬 목적으로 바티칸이 캠페인을 벌였는데, 그 일부가 이교도의 신과 여신들에 대한 더러운 캠페인이었습니다. 신성한 상징들을 악한 것으로 둔갑시킨 겁니다.”

 

“계속하십시오.”

 

“난리통인 시대엔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새롭게 출현한 권력은 기존의 기호들을 접수해서, 그 의미를 지워버리기 위한 시도로 두고두고 기존의 기호들을 폄하합니다. 이교도의 상징과 기독교의 상징이 맞붙은 전쟁에서, 이교도가 진 것이죠.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악마의 갈퀴가 되고, 지혜로운 할머니의 뾰족한 모자는 마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비너스의 별이 악마의 기호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랭던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불행하게도, 미국 육군 역시 별 모양의 의미를 오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별 모양은 전쟁을 나타내는 첫 번째 상징이 되어 버렸죠. 모든 전투기에 별을 그려 넣었고, 모든 군 장성들의 어깨에는 별이 달려 있으니까요.”

 

‘사랑과 미의 여신에게 너무한 일이지.’

 

파슈는 독수리처럼 펼쳐진 시신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군요. 그럼 이 시신의 자세는요? 뭔가 짐작되는 거라도 있습니까?”

 

랭던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 자세는 별 모양과 신성한 여성의 관계를 단지 보강하고 있습니다.”

 

파슈의 표정이 흐려졌다.

 

“무슨 말씀인가요?”

 

“반복입니다. 기호를 반복하는 것은 의미를 강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죠. 소니에르씨는 자기 몸으로 별 모양을 만든 겁니다.”

 

‘별 하나가 좋은 거면, 두 개는 더 좋으니까.’

 

매끄러운 머리를 다시 한 번 쓸어 넘기면서, 파슈의 눈은 소니에르의 두 팔과 두 다리, 머리의 다섯 꼭지점을 훑고 지나갔다.

 

“흥미로운 분석이군요.”

 

그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럼 저 알몸은?”

 

파슈는 늙은 남자의 벌거벗은 몸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듯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소니에르 씨는 왜 옷을 벗었을까요?”

 

‘빌어먹을, 좋은 질문이군.’

 

랭던 역시 사진을 본 순간부터 궁금했다. 랭던의 추측은 전라의 육체 역시 성애의 여신인 비너스를 나타내는 것이다. 현대 문화는 남녀의 육체 결합과 비너스의 관계를 많은 부분 지워버리고 있지만, 날카로운 어원학의 눈으로 보면 비니리얼(venereal : ‘성교의, 성교로 일어나는’의 뜻)이라는 단어에서 비너스의 본래 의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랭던은 여기까지는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파슈 씨, 소니에르 씨가 왜 자기 몸에 기호를 그렸는지, 왜 이런식으로 자기 몸을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명백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크 소니에르 같은 분은 별을 여성 신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기호와 신성한 여성의 상관관계는 역사가들이나 기호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자기 피를 잉크로 쓴 것은요?”

 

“쓸 수 있는 다른 도구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파슈는 잠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사실 나는… 경찰이 어떤 법정 절차를 따를지를 예상하고 소니에르씨가 피를 사용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

 

“이 왼손을 보십시오.”

 

랭던은 관장의 창백한 팔을 지나 왼손까지 살펴보았지만 ,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체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몸을 숙여 들여다보다가, 놀랍게도 관장이 커다란 펠트펜을 꽉 쥐고 있음을 알아챘다.

 

“우리가 소니에르 씨를 발견했을 때 이것을 쥐고 있었습니다.”

 

파슈는 랭던을 남겨두고 5, 6미터 떨어진 곳에 놓인 이동식 탁자로 걸어갔다. 탁자 위에는 여러 전선과 전자기구, 수사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탁자 둘레를 걸으며 파슈가 물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펜을 잘 아십니까?”

 

펜의 상표를 보기 위해 랭던은 더 깊숙이 몸을 숙였다.

 

‘뤼미에르 누아르 스타일.’

 

랭던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불가시(不可視)광선 펜 또는 워터마크 첨필로 알려진 특수 펠트펜은 원래 박물관 사람이나 예술품 복원가, 위조 감식 경찰관들이 고안한 것으로, 물건에 보이지 않는 표시를 해둘 때 사용한다. 부식되지 않는 알코올 바탕의 형광 잉크로 쓰인 첨필은 오로지 불가시광선에서만 보인다. 요즘의 박물관 보수 유지 직원들은 매일매일 박물관을 순찰할 때 이 펜을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복원이 필요한 미술품들의 액자에 보이자 않게 V표시를 해둔다.

 

랭던이 일어서자, 파슈는 하얀 조명기로 걸어가서 전원을 꺼버렸다. 화랑은 순식간에 어둠에 파묻혔다. 랭던은 불안했다. 파슈의 몸이 밝은 자주색 조명 아래에서 어렴풋이 보였다. 파슈는 휴대용 전등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자주색 빛이 안개처럼 파슈를 감싸고 있었다. 자줏빛으로 눈을 빛내면서 파슈가 말했다.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경찰은 피나 다른 법정 증거를 찾기 위해 범죄 현장을 조사합니다. 이때 불가시광선 조명을 사용하죠. 이제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이 되실 겁니다…”

 

파슈는 불쑥 시체의 아래를 가리켰다. 아래를 보던 랭던은 놀라 펄쩍 뛰었다. 자기 앞 마룻바닥에서 빛나고 있는 기묘한 광경을 보았을 때, 랭던의 심장은 무섭게 뛰었다. 관장이 휘갈겨쓴 필기체 글씨가 관장의 몸뚱아리 옆에서 보라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관장이 남긴 마지막 문장을 바라볼수록, 랭던은 오늘 밤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가 더욱 짙어지는 것 같았다.

 

문장을 다시 한 번 읽고 난 랭던은 파슈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이죠?”

 

파슈의 눈동자가 하얗게 빛났다.

 

“선생, 정확하게 그것이 당신이 여기에서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소니에르의 사무실에서는 콜레 부관이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와, 관장의 거대한 책상 위에 설치된 오디오 계기판 위로 몸을 웅크렸다. 콜레는 AKG 헤드폰을 조절하고, 하드 디스크의 녹화 시스템에 붙은 입력 레벨을 살폈다. 모든 시스템은 제대로였다. 마이크는 아무 이상없이 작동하고 있었고, 오디오도 수정처럼 깨끗했다.

 

‘진실의 순간이로군.’

 

콜레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미소지으면서 눈을 감은 콜레는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대화랑의 마지막 대화를 즐기는 기분으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