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시트로엥 ZX의 열린 창문으로 상쾌한 4월의 공기가 느껴졌다. 오페라 하우스의 남쪽을 지나 방돔 광장을 가로질러 갔다. 자동차의 보조석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던 로버트 랭던은 이 도시가 자기 옆을 지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재빨리 마친 샤워와 면도는 랭던을 말쑥해 보이게 했지만 그의 근심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참혹한 관장의 시체 사진이 랭던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자크 소니에르가 죽었다.’
랭던은 관장의 죽음으로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소니에르는 운둔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헌신은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푸생과 테니르스의 그림들 속에 숨겨진 비밀부호에 관한 소니에르의 책들은 랭던이 즐겨 사용하는 교재이기도 했다.
오늘 밤의 만남을 몹시 고대하던 랭던은 관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실망했었다. 다시 관장의 시체사진이 떠올랐다.
‘자크 소니에르가 직접 그렇게 했다?’
사진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떨쳐내며 랭던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시는 이제 꾸불꾸불한 아랫길로 이어졌다. 수레의 사탕을 팔고 있는 노점상들, 쓰레기 봉지를 거리에 내놓는 식당 종업원들 , 자스민 향이 묻어나는 산들바람에서 늦은 밤의 온기를 느끼려고 서로 감싸안는 연인들. 시트로엥 자동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이 혼돈속을 누볐다. 2음조의 거슬리는 사이렌 소리는 칼처럼 교통의 흐름을 갈랐다.
“랭던 씨가 아직 파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반장님이 기뻐하실 겁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호텔을 떠난 후 요원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본질적으로 다른 표상과 이념들의 숨겨진 상관성을 탐구하는 데 일생을 보내는 사람으로서, 랭던은 세계를 역사와 사건들이 서로 심오하게 짜여진 거미집으로 보였다.
랭던은 하버드에서 기호학 수업시간에 종종 이렇게 말했다.
‘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항상 거기에 있다. 표면 바로 아래에 묻힌 채 말이다.’
“파리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줬겠군요?”
랭던이 말했다. 요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인터폴입니다.”
‘인터폴, 물론 그랬겠군.’
랭던은 생각했다. 모든 유럽의 호텔들이 숙박 수속을 밟을 때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요청이 공식적인 행동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랭던은 깜박 잊고 있었다. 그것은 법이기도 했다. 유럽 어디에 있든, 인터폴 수사관들은 누가 어디에서 자는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다. 리츠 호텔에 묵고 있는 랭던을 찾아내는 데는 아마 5초밖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시트로엥이 도시를 남쪽으로 가로지르자, 조명을 받고 있는 에펠 탑이 오른쪽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에펠 탑을 보며 1년 전의 장난기 어린 약속을 떠올린 랭던은 빅토리아를 생각했다. 6개월마다 지구상의 낭만적인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었다. 에펠 탑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1년 전에 로마의 시끄러운 공항에서 키스를 나눈 것이 마지막이다.
“그녀를 올라가 봤습니까?”
요원이 고개 너머로 물었다. 랭던은 자신이 잘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흘끗 쳐다보았다.
“뭐라구요?”
요원은 창 밖으로 에펠 탑을 가리켰다.
“무척 아름답죠. 안 그런가요? 그녀는 프랑스의 상징입니다. 저는 그녀가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랭던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호학자들은 프랑스에서 저 3백 미터짜리 남근상보다 적절한 국가적 상징을 찾을 수 없다고 종종 말한다. 프랑스는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 나폴레옹이나 난쟁이 페팽처럼 불안하고 왜소한 지도자들로 유명한 나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리볼리 가의 교차로에 이르렀을 때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시트로앵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요원은 앞에 가던 세단을 앞질러 카스트글리온 가의 숲이 우거진 구역으로 질주해 들어갔다. 카스티글리온 가는 파리의 센트럴 파크로 불리는 유명한 튈르리 정원의 북쪽 입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튈르리 정원을 여기 피어난 수천 송이의 튤립과 연관시켜서 잘못 이해한다. 튈르리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단어이다. 공원은 한 태 이 도시의 유명한 붉은 기와, 즉 튈르를 만들기 위해 진흙을 채굴하던 엄청나게 크고 오염된 채굴장이었다.
황량한 공원에 들어서자, 요원은 계기판 아래로 손을 뻗어 사이렌을 껐다. 랭던은 갑작스러운 정적을 음미하며 안도했다. 자동차의 창백한 할로겐 헤드라이트가 공원의 자갈길을 훑었다. 타이어는 졸린 듯한 리듬으로 억양을 실어 노래하듯 윙윙 굴러간다. 랭던은 항상 튈르리를 신성한 땅으로 생각했다. 이곳에서 클로드 모네는 형식과 색을 실험했고, 문자 그대로 인상파 운동의 탄생이 고무되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이상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시트로엥은 공원 중앙 가로수 길의 서쪽 아래로 접어들더니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형 분수를 돌아 한적한 나무 길을 통과하자 널찍한 사각형 공간이 나타났다. 랭던은 아치 모양의 거대한 돌로 표시된 튈르리 정원의 끝을 바라보았다.
케러젤의 아치. 케러젤의 아치에서 주신제 의식이 한 번 열리긴 했어도, 예술지상주의자들은 이 장소를 전혀 다른 이유로 숭배했다. 튈르리 끝의 산책길에서는 동서남북 네 곳에 있는, 계에서 가장 훌륭한 미술 박물관이 모두 보였기 때문이다. 센 강과 볼테르 부두를 건너 남쪽인 오른쪽 창문 밖으로는, 옛날 철도역사로 쓰이던 오르세 미술관의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보였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파리국립근대 미술관이 있는 퐁피두 예술 문화 센터의 초현대적인 건물의 꼭대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뒤편 서쪽으로는 죄 드 폼 국립 미술관의 고대 람세스의 오벨리스크가 나무들 위로 솟아 있다는 것을 랭던은 알고 있었다.
아치 길을 통과해서 곧게 뻗은 동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ㄷ자형의 르네상스 궁전인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랭던이 눈동자로 거대한 건축물을 흡수하려는 헛된 시도를 하는 사이, 익숙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아찔할 정도로 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루브르의 당당한 정면이 파리의 하늘을 배경으로 성체처럼 서 있었다. 거대한 편자 모양으로 생긴 루브르 박물관은 유럽에서 가장 긴 건물이다. 이 편자 모양의 건물을 펼치면 에펠 탑을 세 개 늘어놓은 것보다 길다. 심지어 박물관 양 날개 사이에 있는 수백만 평방미터의 광장도 박물관 정면의 폭에는 도전하지 못한다. 랭던은 한때 루브르 박물관 주변을 한 바퀴 걸어보았다. 길이가 약 5킬로미터나 되었다.
대략 6만 5천 3백 점이나 되는 루브르의 예술품들을 모두 감상하는 데는 5주 정도 걸리지만, 여행객들은 대부분 랭던이 「루브르의 보물찾기」 라고 부르는 축약된 코스를 선택한다. 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세 가지 미술품에 눈도장을 찍고 가려는 단거리 경주 같은 것이다. 이 보물들은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승리의 날개》다. 아트 부치왈드는 5분 56초 안에 이 명작들을 모두 보았다고 자랑삼아 떠벌렸다.
요원이 무전기를 꺼내 빠르게 프랑스어로 말했다.
“랭던 씨가 도착했습니다. 이 분 전입니다.”
해독하기 어려운 대답이 지지직거리며 흘러나왔다. 요원은 무전기를 넣은 뒤 랭던을 돌아보았다.
“출입문에서 반장님이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요원은 루브르 광장의 자동차 출입 금지 표지판을 무시했다. 그리고 도로의 연석 위로 시트로엥을 몰고 갔다. 조명 빛을 받으며 분수를 뿜어내는 일곱 개의 삼각형 연못에 위풍당당하게 둘러싸인 루브르 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의 새로운 입구는 박물관만큼이나 유명했다. 중국 출신의 미국인 건축가 I. M. 페이가 디자인한 신현대적인 유리 피라미드 입구는, 르네상스 앞마당의 품위를 해친다고 믿는 전통주의 신봉자들의 냉소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괴테는 건축물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페이를 비평하는 이들은 이 피라미드를 칠판 위의 손톱자국이라고 비꼬았지만, 진보적 옹호론자들은 22미터 가까운 높이의 투명한 피라미드를 고대 구조와 현대 방식의 빛나는 결합, 그 이상이라며 환영했다. 새 천년으로 루브르를 이끄는 신구(新舊)의 상징적 연결고리로서 말이다.
“저 피라미드가 마음에 드십니까?”
요원이 물었다. 랭던은 눈살을 찌푸렸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인에게 이 질문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함축적인 질문이다. 피라미드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안목없는 미국인이 되어 버리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프랑스인에게 모욕이 되는 식이다.
“미테랑은 대담한 남자였죠.”
랭던은 다소 엉뚱하게 대답했다. 피라미드를 의뢰한 이 대통령은 「파라오 콤플렉스」로 고통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단독으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이집트 예술, 그 인공물로 파리를 채우려 한 프랑수아 미테랑은 이집트 문화에 애착이 강했다. 그 정도가 지나쳐서, 프랑스 사람들은 작고한 미테랑 대통령을 여전히 스핑크스라 부르고 있었다.
“반장은 누구입니까?”
화제를 바꾸려고 랭던이 물었다.
“부쥐 파슈. 우리는 토로라고 부릅니다.”
피라미드 정문으로 다가가면서 요원은 말했다. 모든 프랑스인의 별명이 이상한 동물 이름일까 궁금해 하면서 랭던은 요원을 슬쩍 쳐다보았다.
“반장을 「황소」라고 부른단 말입니까.”
요원의 눈썹이 활처럼 치켜 올라갔다.
“랭던 씨의 프랑스어 실력은 생각보다 훌륭하군요.”
‘프랑스어 실력은 시시하지만, 12궁도 도상학은 꽤 쓸 만하지.’
타우루스자리는 황소를 의미한다. 점성술은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상징의 정수다.
요원은 차를 세우고 두 분수 사이에 있는 피라미드 한 면의 커다란 문을 가리켰다.
“저게 입구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선생.”
“함께 안 갑니까?”
“제 임무는 선생을 여기까지 모시는 겁니다. 저는 다른 일이 있습니다.”
랭던은 한숨을 내쉰 뒤 차에서 내렸다.
‘이건 당신네 서커스로군.’
요원은 시동을 걸고 속도를 냈다. 혼자 남은 랭던은 떠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을 지켜보며 이 광장을 빠져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침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뭔가가 그것은 불순한 생각이라고 랭던에게 말하고 있었다.
분수의 안개 속으로 다가가며 랭던은 전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상상의 문턱을 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꿈결 같기만 한 이밤의 묘한 분위기가 랭던 주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20분 전까지만 해도 호텔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황소라고 불리는 경찰 반장을 기다리며 스핑크스의 지시로 지어진 투명한 피라미드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에 갇힌 거야.’
랭던은 생각했다. 거대한 회전문이 달린 정문으로 랭던은 터벅터벅 걸어갔다. 로비에는 흐릿한 불이 켜져 있을 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노크해야 하나?’
하버드의 저명한 이집트 학자들 중 일찍이 피라미드의 정문을 두드리고 답을 구해본 자가 있는지 궁금했다. 손을 들어 유리를 두드리려는 순간, 아래쪽 어둠 속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인물이 있었다. 땅딸막한 남자는 어둠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처럼 보였다. 어깨에 두줄 단추가 달린 짙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한치의 실수도 없을 것 같은 권위를 풍기며 다가왔다. 휴대 전화기로 통화하던 남자는 문에 도착하자 전화를 끊었다. 남자는 랭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랭던이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자 남자가 말했다.
“저는 브쥐 파슈입니다. 중앙사법경찰국의 반장입니다.”
남자의 어조는 귀에 거슬리는 굉음으로, 마치 폭풍이 몰려드는 것 같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랭던은 손을 내밀었다.
“로버트 랭던입니다.”
파슈의 큰 손바닥이 랭던의 손을 으깰 듯이 감쌌다.
“사진을 보았습니다. 당신네 요원은 자크 소니에르가 스스로 그런 것을…”
흑단처럼 새까만 파슈의 눈동자는 잠겨 있었다.
“랭던 씨. 당신이 사진에서 본 것은 소니에르가 한 일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브쥐 파슈 반장은 넓은 어깨를 뒤로 젖히고, 턱을 가슴팍으로 끌어당겨 성난 황소처럼 몸을 움직였다. 검은 머리에 오일을 발라 뒤로 매끄럽게 넘겨 화살 모양의 앞머리가 두드러져 보였다. 돌출된 이마를 둘로 가르는 듯 한 중앙의 v자 모양의 머리는 함선의 뱃머리를 연상시켰다. 반장의 눈은 밟고 있는 바닥을 태우기라도 할 것 같았다. 모든 문제를 철저하고 엄격하게 다룬다는 명성 그대로, 반장의 눈은 화염 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랭던은 반장을 따라서 유리 피라미드 아래의 낮은 중앙홀로 이어지는 대리석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두 명의 사법경찰 앞을 지나갔다. 메시지는 명료했다. 오늘 밤 파슈 반장의 허가 없이는 아무도 여기를 드나들 수 없는 것이다. 홀로 내려오면서 랭던은 점점 치밀어 오르는 전율과 싸워야 했다. 파슈의 존재가 오히려 고마웠다. 이 시간의 루브르는 묘지 같은 음산한 분위기 였다. 어두운 영화관의 통로처럼 계단은 발판마다 깔린 조명으로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랭던은 머리 위의 유리에 닿아 진동하는 자신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투명한 지붕 바깥으로 분수에서 피어난 안개가 조명을 받아 흐릿하게 사라지는 광경이 보였다.
“마음에 듭니까?”
파슈는 넓은 턱으로 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랭던은 이 말장난에 싫증이 나서 한숨만 내쉬었다.
“예, 당신네 피라미드는 대단합니다.”
파슈는 투덜거렸다.
“파리의 얼굴에 난 흉터일 뿐이죠.”
‘원 스트라이크.’
이 반장이란 작자는 재미라곤 없는 경직된 사고방식의 인간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랭던은 파슈가 미테랑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정확히 666장의 유리판을 사용해 이 피라미드가 세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이상한 요청은 666이 사탄의 숫자라고 주장하는 음모론 애호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얘깃거리가 되었다.
지하 로비로 더 내려가자, 입을 크게 벌린 것 같은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지하 로비로 더 내려가자, 입을 크게 벌린 것 같은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지하 17미터 아래에 건설된 6천 5백 평방미터의 새로운 로비가 끝없는 동굴처럼 뻗어 있었다. 루브르의 외관과 어울리도록 따뜻한 느낌의 황토색 대리석으로 건설된 지하 홀은, 보통 때엔 햇빛과 관광객들로 힘차게 맥박 치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홀 전체가 차가운 교회당의 지하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어둡고 황량했다.
“박물관의 보안 요원들은?”
랭던이 물었다.
“조사.”
랭던이 자기 팀의 성실성에 의문이라도 제기한 것처럼 파슈는 간단히 대꾸했다.
“명백하게, 출입이 금지된 누군가가 오늘 밤 들어온 것이 확실합니다. 박물관의 모든 야간 경비원들은 지금 쉴리 관에서 조사받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은 제 요원들이 박물관을 접수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랭던은 파슈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빨리 움직였다.
“자크 소니에르 관장과 잘 아는 사이입니까?”
반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파슈는 놀란 듯했다.
“첫 만남이 오늘 밤이 될 뻔했다는 얘깁니까?”
“예. 제 강의가 끝난 후 아메리칸 대학의 리셉션 자리에서 만날 작정이었죠. 하지만 관장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파슈는 작은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었다. 걸어가면서 랭던은 다른 피라미드를 언뜻 보았다.
‘역 피라미드.’
중간층의 접합 부분에서 종유석처럼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거대한 채광창이었다. 파슈는 아치 모양의 터널 입구로 통하는 짧은 계단으로 안내했다. 터널의 입구 위에는 「드농」이라는 표지가 있었다. 드농 관은 루브르의 3대 구역(드농 · 쉴리 · 리슐리 외)중 가장 유명한 구역이다.
“오늘 만남은 누가 제안했습니까? 당신인가요. 아니면 관장인가요?”
갑자기 파슈가 물었다.
랭던은 질문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터널로 들어서면서 대답했다.
“소니에르 씨가 제안한 것입니다. 몇 주 전의 관장의 비서가 전자메일로 연락해 왔습니다. 이번 달에 파리에서 강의가 있다는 얘기를 관장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의논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습니다.”
“뭘 의논하려 했지요?”
“저도 모르죠. 하지만 예술에 관해서가 아니겠어요? 우리는 관심사가 비슷하니까요.”
파슈는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관장이 왜 만남을 제안했는지 당신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얘기군요.”
그랬다. 그 당시 랭던은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꼬치꼬치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크 소니에르는 사생활이 알려지지 않기로 유명했고, 참석하는 자리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랭던은 자크 소니에르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랭던 씨, 관장이 살해된 오늘 밤에 당신과 무엇을 의논하려 했는지 짐작가는 게 있습니까? 수사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
질문의 신랄함에 랭던은 불쾌했다.
“정말이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물어보지 않았거든요. 연락을 받은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느꼈으니까요. 저는 소니에르 씨의 작업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제 수업 시간에 소니에르 씨의 원문을 종종 사용할 정도로요.”
파슈는 수첩에 이 사실도 적어 넣었다. 두 사람은 드농 관을 절반 정도 걸어왔다. 랭던은 벽 쪽에 두 개의 에스컬레이터가 멈춰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소니에르 씨와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지난해의 대부분을 소니에르 씨의 주요 전문 분야를 다루는 책의 초고를 쓰는데 보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소니에르 씨의 뇌를 끄집어내고 싶었지요.”
파슈가 힐끗 쳐다보았다.
“뭐라고요?”
파슈는 잘 이해되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그 주제에 관해서 소니에르 씨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는 얘깁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주제였습니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랭던은 잠시 망설였다.
“본질적으로, 원고 내용은 여신숭배에 관한 도상학입니다. 여성의 고결함에 대한 개념과 그와 연관된 예술과 상징들을 다루는 것이죠.”
파슈는 두툼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소니에르 씨도 이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만…”
“알겠습니다.”
랭던은 파슈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자크 소니에르는 지상에 나타난 최초의 여신을 다룬 도상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소니에르는 다산, 여신숭배, 위카(땅 혹은 대지에 바탕을 둔 종교로, 새로운 이교도의 하나), 신성한 여성에만 열정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루브르 박물관장으로서 20년의 재임 기간 동안, 소니에르는 박물관에 여신과 관련된 지상의 예술품들을 최대한 수집하는 데 일조했다. 가장 오래된 그리스 델피 신전의 여제사장의 쌍도끼부터 시작해 금 지팡이, 서 있는 작은 천사들 같은 티예 앙크(여성의 생식기관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고리가 달린 T자 모양. 생식과 장수를 상징하며, 오늘 날 여성을 나타내는 기호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수백 점, 고대 이집트에서 사악한 영혼을 찾아내는 데 쓰인 시스트럼(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여신 이시스 제사 때에 쓰던 금속악기) , 호루스를 기르는 여신 이시스의 모습을 묘사한 입상들의 당당한 진용에 이르기까지 루브르의 수집품은 엄청난 것이었다.
“자크 소니에르 씨가 당신의 원고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당신 책에 도움을 주려고 만나자는 전화를 한 게 아닐까요?”
랭던은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 제 원고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직 초고 상태이니까요. 그리고 편집장 외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파슈는 침묵에 빠져들었다. 랭던은 다른 이유를 덧붙이지 않았다. 사실 그는 누구에게도 원고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잃어버린 신성한 여성의 기호들>이란 가제를 달아둔 3백 페이지 가량의 초고는 기존의 종교적 도해에,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논쟁거리가 될 새로운 해석을 들이대고 있었다.
랭던은 작동을 멈춘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했다. 하지만 파슈가 더 이상 옆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멈춰 섰다. 돌아보자, 파슈는 5미터 정도 뒤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겠습니다. 아시겠지만 , 화랑은 걸어가기에는 꽤 머니까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파슈가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드농 관의 기다란 두 층을 오르는 수고는 덜어줄 터였다. 그러나 랭던은 움직이지 않았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성마른 얼굴로 파슈는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뒤돌아보며 랭던은 한숨을 토해 냈다.
‘잘못 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
랭던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랭던은 소년이었을 때 쓸모 없어진 우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구출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좁은 공간 안에서 철벅거리며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했었다. 그 후 폐쇄된 공간에서 병적인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스쿼시 코트 같은 곳 말이다.
‘엘리베이터는 안전한 기계다. 줄에 매달린 작은 금속상자일 뿐이야!’
랭던은 스스로 타일렀지만, 결코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숨을 참으며 랭던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자 익숙한 아드레날린의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고작 이 층일 뿐이다. 십 초면 돼.’
“당신과 소니에르 씨. 한번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습니까? 편지 왕래도 없었습니까? 우편으로 뭔가를 주고받은 적은 없습니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파슈가 물었다. 역시 이상한 질문이었다. 랭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없습니다.”
그 사실을 마음에 각인시키는 것처럼 파슈는 머리를 곧추세웠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파슈는 눈앞의 문짝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랭던은 자기를 둘러싼 네 벽들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쓰려고 노력했다. 반질반질한 엘리베이터 문에 반장의 넥타이 핀이 반사되어 비쳤다. 칠흑 같은 마노 보석 열세 개가 박힌 은제 십자가 모양이었다. 랭던은 적이 놀랐다. 열세 개의 보석이 박힌 십자가라는 뜻의 크룩스 젬마타(crux gemmata)라 불리는 상징이었다. 열세 개의 보석은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를 나타내는 기독교적인 표의문자였다. 경위야 어떻든 간에 랭던은 프랑스 경찰 반장이 자기의 종교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순간, 여기는 프랑스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이 나라에서 기독교는 종교도 특권도 아니다.
“이건 크룩스 젬마타입니다.”
갑자기 파슈가 말했다. 깜짝 놀란 랭던은 문에 반사된 파슈의 모습을 마주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멈추고 문이 열렸다. 천장이 높기로 유명한 루브르 화랑의 확 트인 공간을 기대하면서, 랭던은 엘리베이터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가 걸음을 내디딘 세계는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랭던은 놀라서 멈칫했다. 파슈가 흘끗 쳐다보았다.
“랭던 씨, 관람 시간 이후의 루브르는 본 적이 없겠지요?”
‘그런 적은 없죠.’
태도를 바로하려고 애쓰면서 랭던은 생각했다. 빠짐없이 조명을 받는 루브르 화랑들이 오늘 밤엔 놀라울 정도로 어두웠다. 위에서 비추는 관람용 흰색 조명 대신에, 조도가 낮은 붉은 조명이 바닥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간헐적인 붉은 조명 조각들이 타일 바닥위로 엎질러진 것 같았다. 어둑어둑한 복도를 쳐다보며, 랭던은 이런 장면을 예상했어야 했음을 깨달았다. 대부분 일류 화랑들은 전략적으로 밤에는 조도가 낮고 , 덜 위협적인 붉은 조명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것은 야간에 경비요원들이 복도를 순찰할 때 , 그림이 빛에 과다 노출되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예술품을 상대적으로 어두운 곳에 두기 위한 배려였다. 오늘 밤 박물관 안엔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보통 때라면 솟구쳐 보이는 아치형 천장이 낮고 어두운 공허한 공간으로만 보였다.
“이쪽으로”
파슈는 오른쪽으로 홱 돌더니 연결된 여러 개의 화랑을 지나갔다. 파슈를 뒤따라가면서 랭던의 시력은 점차 어둠에 적응해갔다. 거대한 암실에서 현상되고 있는 사진들처럼 커다란 유화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점차 드러내고 있었다… 랭던이 화랑을 지나갈 때, 그림들의 눈도 그를 따라왔다. 랭던은 박물관 특유의 익숙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탄소 향이 희미하게 감도는 메마르고 탈이온화된 향기였다. 관람객들이 토해 놓은 부식성 강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사방에 설치된 석탄 필터가 장착된 산업용 습기 제거기 때문이었다.
벽을 따라 올라간 높은 곳에서는 보안용 카메라들이 관람객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당신을 보고 있다. 어느 것에도 손대지 마시오.’
“모두 진짜인가요?”
감시카메라를 가리키며 랭던이 물었다.
“물론 아닙니다.”
파슈는 고개를 저었다. 랭던은 놀라지 않았다. 이 정도 크기의 박물관을 비디오로 감시한다는 것은 비용면에서도 말이 안되고, 효과 차원에서도 신통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비디오로 감시하려면, 몇백 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부분의 큰 박물관들은 이제 봉쇄 정책을 펴고 있다.
‘도둑이 오지 못하게 막는 일은 그만두자. 차라리 도둑을 안에 가두어 버리자’는 의미다. 침입자가 예술품을 옮기려고 하면, 예술품이 있는 화랑 주변이 봉쇄되는 것이다. 도둑은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철창 안에 갇힌 자기 꼴을 보게 될 터였다.
대리석 화랑 앞쪽에서 목소리들이 울려왔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오른쪽으로 쑥 들어간 큰 방에서 나오는 듯했다. 밝은 불빛이 복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관장실입니다.”
반장이 말했다. 관장실로 다가가면서 랭던은 소니에르의 우아한 취미를 엿보았다. 따뜻한 재질의 목재, 나이든 거장의 그림들, 엄청나게 큰 골동품 스타일의 책상, 그 위에는 완전 무장한 60센티미터 정도의 중세 기사상이 놓여 있었다. 사무실은 전화를 하고 뭔가를 받아 적는 경찰 요원들로 북적거렸다. 그들 중 한명은 소니에르의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 컴퓨터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관장실은 오늘 저녁 DCPJ의 임시 본부가 된 모양이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듣고 계십니까?”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랭던은 호텔 문 앞에서부터 출입 허가증을 달고 있었다. 파슈와 랭던은 어떤 상황에서도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한 무리의 요원들을 남겨두고, 파슈는 랭던을 어두운 홀 아래로 안내했다. 루브르의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인 대화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30미터정도 앞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화랑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소중한 이탈리아 걸작품들이 모여 있는 ,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방이다. 랭던은 이미 이곳에 소니에르의 시신이 누워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유명한 기하학 문양의 마룻바닥이 폴라로이드 사진에 한치의 실수도 없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출입구는 거대한 강철 격자로 막혀 있었다. 중세의 성채들에서나 이용 했을 법한 격자다.
“봉쇄용 보안 철창입니다.”
격자 가까이 다가가서 파슈가 말했다. 어둠 속의 철창은 탱크라도 가둘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랭던은 희미하게 불을 밝힌 동굴같은 대화랑을 철창 사이로 들여다보았다.
“먼저 들어가십시요. 랭던 씨.”
랭던은 돌아섰다.
‘나 먼저 들어가라고? 어디로’
파슈는 격자 밑부분의 바닥을 몸짓으로 가리켰다. 랭던은 아래를 보았다. 어둠속이라 눈치 채지 못했지만, 철창은 60센티미터가량 들어 올려져 있었다.
“이곳은 루브르 보안요원들에게는 아직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경찰 과학수사국(PTS)에서 나온 저희 팀이 지금 막 조사를 끝냈습니다.”
파슈가 입구를 가리켰다.
“아래로 들어가십시오.”
랭던은 겨우 기어 들어갈 좁은 공간을 응시하다고, 위에 매달린 육중한 철문을 올려다보았다.
‘농담이겠지?‘
철문은 침입자를 내리치려고 기다리는 단두대 같았다. 파슈가 프랑스어로 뭐라고 툴툴거리더니 시간을 체크했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덩치 큰 몸을 숙여 철창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파슈는 철창 사이로 랭던을 뒤돌아보았다. 랭던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을 반질반질한 마룻바닥에 짚은 채, 배를 바닥에 깔고 앞으로 끌었다. 그러나 입고 있던 해리스 트위드의 목덜미가 철창에 걸려 찢어지고, 뒤통수를 철문에 박고 말았다.
‘아주 우아하군, 로버트.’
서투르게 철창 밑을 빠져나온 후 일어서면서, 랭던은 오늘 밤이 아주 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