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비토리아가 문 밖에 있는 스위스 근위병 보초에게 눈을 부라렸다. 위협적인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제목을 입을 보초 역시 비토리아에게 눈을 부라렸다.
“낭패로군.”
비토리아는 생각했다.
‘파자마를 입은 무장 보초에게 인질로 잡히다니.’
랭던은 침묵에 빠졌다. 비토리아는 랭던이 하버드 교수로서의 두뇌를 이용해 이 난국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내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표정으로 보아 랭던이 충격에 빠졌음을 감지했다. 그녀는 미국인 교수를 끌어들인 것을 후회했다.
비토리아가 맨 처음 해낸 생각은 휴대전화기로 콜러에게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도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금새 깨달았다. 우선 보초병이 안으로 들어와 휴대전화를 압수해갈 수도 있다. 다음은 아침에 본 콜러의 건강 상태였다. 추측하건대, 아마 소장의 건강은 아직 회복되지 못했을 터였다. 이게 문제가 아니라… 올리베티는 지금 이 순간 어느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비토리아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기억하자! 난관에 해답이 있음을 기억하자!’
기억은 불교 철학의 기법이다. 잠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답을 찾도록 마음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답이 있음을 마음이 자각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일단 답을 알고 있다는 가정은 반드시 답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을 만든다. 그래서 쓸데없고 잘못된 과정을 제거해나가는 것이다. 비토리아는 종종 과학적인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이 방법을 이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답이 없다고 좌절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하지만 이 순간, 그녀의 기억요법은 그저 멍하기만 했다. 비토리아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자기가 하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경고해야 한다. 바티칸의 누군가가 그녀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누가? 궁무처장? 어떻게? 그녀는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유리상자에 갇혀 있다.
비토리아는 자신에게 다짐했다.
‘도구를 써야 해. 항상 도구가 있게 마련이야. 주위 환경을 잘 살펴봐.’
본능적으로 그녀는 어깨의 힘을 풀고 눈동자의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깊은 숨을 세 번 들이마셨다. 심박동이 느려지고 근육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혼란스럽던 마음이 공포도 잦아들었다. 비토리아는 계속 생각했다.
‘좋아.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줘. 무엇이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무엇이 내 장점일까?’
일단 마음이 가라앉자 비토리아의 기억요법은 강력한 힘이 되었다. 몇 초 안에 그녀는 그들이 감금된 상황이 사실은 탈출할 수 있는 열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화를 걸어야겠어요.”
비토리아가 불쑥 말했다. 랭던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콜러 소장에게 전화를 걸라고 제안할 참이었소. 하지만…”
“콜러 소장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
“누구?”
“궁무처장님이요.”
랭던은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궁무처장님한테 전화를 걸겠다고요? 어떻게?”
“올리베티 사령관이 궁무처장님은 교황의 집무실에 있다고 했어요.”
“좋아요. 그러면 교황 집무실의 전화번호를 알고있소?”
“아니오. 하지만 내 전화로 걸겠다는 게 아니에요.”
그녀는 올리베티의 책상에 있는 하이테크 전화시스템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전화는 단축다이얼 버튼으로 수수께끼나 다름없었다.
“사령관은 백팔십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총을 가진 역도 선수를 심어놓았소.”
“그리고 우리는 갇혀 있지요.“
“내 말이 그거요.”
“제 뜻은 저 보초병 역시 밖에서 여기로 들어올 수 없다는 거예요. 이 방은 올리베티의 개인 사무실이에요. 다른 사람이 사무실 열쇠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랭던은 보초병을 내다보았다.
“이 유리창은 꽤나 얇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갖고 있는 총은 꽤 큰데.”
“그가 뭘 어쩌겠어요? 내가 전화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나를 쏘기라도 할까요?”
“도대체 누가 그걸 알겠소! 여긴 아주 이상한 곳이오. 그리고 일이 되어가는 꼴을 보니…”
비토리아가 끼어들었다.
“그게 아니면 우리는 다섯 시간 사십팔 분을 바티칸의 감옥에서 보내겠지요. 적어도 반물질이 폭발할 때 우리는 맨 앞줄에 있게 되겠죠.”
랭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당신이 수화기를 집어든 순간 저 보초가 사령관을 데려올 겁니다. 게다가 전화기에는 스무 개나 되는 버튼이 있어요. 어느 게 어느 것이지 난 도통 모르겠소. 운이 좋아 딱 걸리기를 바라며 모두 시험해볼 참이오?”
전화기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비토리아가 말했다.
“아니요. 딱 하나만 누를 거예요.”
비토리아는 수화기를 집어 들더니 제일 위의 버튼을 눌렀다.
“일 번. 이 일 번이 교황 집무실이라는 데. 당신 주머니의 일루미나티 미국 달러를 걸죠. 스위스 근위대 사령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교황 말고 뭐겠어요?”
랭던은 대답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밖에 있는 보초병이 총 끝으로 유리창을 톡톡 두드린 것이다. 보초병은 비토리아에게 수화기를 내려놓으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비토리아가 보초병에게 윙크했다. 보초병은 화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랭던은 문에서 떨어져 비토리아에게 돌아섰다.
“좀더 점잖게 굴 수 없겠소. 저 사람은 전혀 즐거운 표정이 아니오.”
“제기랄! 녹음기예요.”
수화기에 귀를 기울이던 비토리아가 말했다. 랭던이 물었다.
“녹음기? 교황 집무실의 자동응답기가 받았다는 얘기요?”
전화를 끊으며 비토리아가 말했다.
“교황 집무실이 아니었어요. 바티칸 구내식당의 메뉴를 안내하는 녹음이었어요.”
랭던은 밖에 서 있는 보초병에게 유약한 미소를 지었다. 보초병은 무전기로 올리베티를 부르면서 화가 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바티칸 전화국은 바티칸 우체국 뒤편의 통신 사무소 안에 있었다. 전화국은 여덟 개 회선의 코렐코 141 전화교환대를 사용하는 비교적 작은 방이다. 교환대는 하루에 2천 통화 이상을 처리했고, 대부분의 회선은 자동으로 녹음 정보 시스템에 연결되었다.
오늘 밤에 일한 전화교환원은 조용히 앉아서 카페인이 든 차를 홀짝거렸다. 직원은 자신이 오늘 같은 밤에 바티칸 시국 안에 있도록 허가받은 유능한 직원들 중 하나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물론 그 명예는 전화국 바깥에서 서성이는 스위스 근위병들 때문에 다소 옅어진 감도 없지 않았다. 교환원은 생각했다.
‘화장실에 갈 때도 호위를 받아야 하다니. 아, 신성한 선거회의의 이름으로 우리가 참아야 하는 모욕이로다.’
다행이 오늘 밤에 걸려오는 전화는 적었다. 아니, 그게 오히려 다행이 아닐 수도 있었다. 바티칸에서 열리는 행사에 세상의 관심은 지난 몇 년 새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언론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마저 줄었고, 심지어 미친 놈들의 전화도 뜸했다. 바티칸 보도국에서는 오늘 방의 행사가 좀더 즐거운 축제의 분위기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산 피에트로 광장을 가득 메운 언론사 트럭들은 슬프게도 대개 이탈리아 언론이거나 유럽 언론이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몇몇 방송사뿐… 이들이 세계 각국의 지역 방송국과 언론사에 2차로 뉴스를 보내는 것이 틀림없었다.
교환원은 잔을 쥐고 오늘 밤 행사가 얼마나 걸릴지 궁금했다.
‘자정이나 그 무렵이면 끝나겠지.’
교환원은 추측했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소식통들이 선거회의가 소집되기 전에 누가 교황이 될 것인지 미리 예상하였다. 그래서 선거회의 과정은 실제로 선거라기보다는 서너 시간 걸리는 하나의 의식에 가까웠다. 물론 마지막에 추기경들 사이의 의견 차이로 의식이 새벽까지 길어질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이상으로. 1831년의 선거회의는 54일 간이나 지속되었다.
‘오늘 밤은 아닐 거야.’
교환원은 혼잣말을 했다. 사실 이번 선거회의는 ‘허수아비 선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사념은 전화교환대의 내부 라인에 불이 들어오면서 날아가버렸다. 교환원은 깜박이는 빨간 불빛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것 참 이상하군. 영(0)번이라. 오늘 같은 밤. 바티칸 내부에서 누가 교환원 안내를 받으려고 영 번을 거는 거지? 누가 바티칸 안에 있는 거야?’
“바티칸 시국입니다. 누구세요?”
수화기를 집어든 교환원이 말했다. 전화선 안의 목소리는 빠른 이탈리아 어였다. 교환원은 그 억양이 스위스 근위병 말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프랑스-스위스 계통의 억양이 묻어 있는 유창한 이탈리아 어였다. 하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결코 스위스 근위병이 아니었다.
교환원은 여자 목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서다 차를 엎지를 뻔했다. 그는 전화선을 재빨리 내려다보았다. 잘못 본 게 아니다.
‘구내전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티칸 내부에 있는 것이다. 교환원은 생각했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바티칸 시국 안에 여자가? 오늘 밤에?’
여자는 빠르고 화난 투로 쏟아부었다. 교환원은 어떤 전화가 미치광이가 건 전화인지 충분히 식별할 수 있는 세월을 이 교환대에 앉아서 보냈다. 여자는 미친 것 같지는 않았다. 급하기는 했지만 이성적이었다. 차분하고 조리 있게 말을 풀어갔다. 교환원은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당황했다.
“궁무처장님이요?”
전화가 어디에서 걸려온 것인지 파악하려고 애쓰면 교환원이 되물었다.
“연결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네, 저도 궁무처장님께서 교황 집무실에 계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누구시라고 했죠? 그러니까 당신은 그 분께 경고하고 싶다는…”
귀를 기울이던 교환원은 점점 용기를 잃어갔다.
‘모두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어떻게? 그리고 이 여자는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 거지?’
“어쩌면 스위스 근위대를 연결하는 것이…”
교환원은 즉시 말을 멈추고 말았다.
“지금 어디에 계신다고 했죠? 어디라고요?”
교환원은 충격에 휩싸여 얘기를 듣다가 결정했다.
“끊지 말고 기다려주십시오.”
여자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기다리라고 해놓고서, 교환원은 올리베티 사령관의 직통전화를 눌렀다.
‘이 여자가 정말로 거기에 있을 리 없어…’
직통전화는 즉시 연결됐다.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교환원에게 소리쳤다.
“신의 사랑을 위해! 빌어먹을 전화 좀 연결시켜 달라고요!”
스위스 근위대 보안센터의 문이 쉿 소리를 내며 열렸다. 올리베티 사령관이 로켓처럼 방으로 들어오자 근위병들이 쫙 갈라섰다. 구석을 돌아 자기 사물실로 걸어가면서 올리베티는 보초병이 무전기로 보고 한 것을 재확인했다. 비토리아 베트라가 자신의 책상에서 개인 전화기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정말 만용이로군!’
사령관은 생각했다. 노발대발한 올리베티가 문으로 돌진해 열쇠를 자물쇠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문을 열면서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거요?…”
비토리아는 사령관을 무시했다. 그녀는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네. 그리고 저는 반드시 경고를…”
올리베티가 그녀의 손에서 수화기를 뺏어 자기 귀로 가져갔다.
“도대체 누구와 얘기를 하는 거야!”
아주 짧은 순간이 지난 후 올리베티의 경직된 자세는 수그러들었다.
“네, 궁무처장님…”
올리베티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궁무처장님… 하지만 안보에 관한 질문은… 물론 아닙니다… 제가 여자를 여기에 잡아둔 이유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령관은 듣기만 했다. 마침내 올리베티가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즉시 이들을 데려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