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하늘로 치솟은 X-33 비행선이 로마를 향해 남쪽으로 호를 그리며 날았다. 비행기 객실 안에서 랭던은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지난 15분 간이 기억에서 흐릿했다. 이제 막 비토리아에게 일루미나티와 바티칸에 대항하는 그들의 맹세에 관해 짤막한 얘기를 해준 참이었다.
‘내가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걸까? 기회가 있을 때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어!’
랭던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좌석에 깊이 눌러앉으며, 자신은 그 기회가 왔다 하더라고 결코 돌아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성은 그에게 보스턴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하지만 학문적 호기심이 신중함을 눌렀다. 일루미나티가 사라졌다고 믿어온 모든 것이 갑자기 허황된 거짓처럼 보였다. 그는 내심 증거를 갈망했다. 확인이 필요했다. 또한 거기에는 양심의 문제도 걸려 있었다. 앓고 있는 콜러와 자신이 문제로 괴로워하는 비토리아. 만일 일루미나티에 대한 그의 지식이 어떤 식으로든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랭던은 지금 상황에서 도덕적인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신경 쓰이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인정하기는 부끄러웠지만, 반물질이 바티칸에 있다고 들었을 때 그가 느낀 최초의 공포는 바티칸 시국에 있는 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예술.’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술 소장품들이 지금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는 꼴이다. 바티칸 박물관은 1,407개의 방에 값을 매길 수 없는 6만여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베르니니, 보티첼리. 비상시 모든 예술품을 바티칸에서 대피시킬 수 있는지 궁금했다. 랭던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많은 작품이 무게가 몇 톤씩 나가는 조각품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은 건축물 그 자체였다. 시스티나 소성당, 산 피에트로 대성당, 바티칸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나선형 계단. 이 모든 작품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인간의 창조적인 천재성에 대한 증거품이다. 랭던은 트랩에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궁금했다.
“동행해줘서 고마워요.”
차분한 목소리로 비토리아가 감사를 표했다.
랭던은 공상에서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비토리아는 통로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객실의 휑한 형광불빛 아래에서도 그녀의 침착한 부위기가 느껴졌다. 자석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분위기였다. 그녀의 호흡은 한결 깊어진 것 같았다. 마치 자기 보존이라는 감정의 불꽃과 정의와 복수를 위한 갈망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연료 삼아 그녀 내부에서 타오르는 듯했다.
비토리아는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 기내의 차가운 공기 때문에 그녀의 황갈색 다리에는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랭던은 재킷을 벗어 비토리아에게 건넸다.
“미국식 기사도인가요?”
조용히 감사의 눈길을 보내며 비토리아는 재킷을 받았다.
비행기가 기류를 만나 이리저리 흔들리자, 랭던은 두려워졌다. 객실에 창문이 하나도 없어서 밀실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는 확 트인 공간에 있는 자신을 상상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상상은 모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옛날에 사고가 났을 때, 그는 트인 공간에 있었다.
‘어둠을 깨부수기.’
랭던은 그 기억을 마음에서 몰아냈다.
‘과거 이야기일 뿐이야.’
비토리아는 랭던을 지켜보았다.
“랭던 씨, 당신은 신을 믿나요?‘
비토리아의 질문은 그를 놀라게 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갈린 솔직함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내가 신을 믿었던가?’
비행기 여행을 잊기 위해서는 좀더 가벼운 대화 주제가 나을 터였다. 랭던은 생각했다.
‘정신적인 수수께끼. 친구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지.’
수년 동안 종교를 연구했지만, 랭던 자신은 종교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믿음의 힘, 교회의 자비로움, 종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힘을 존경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믿으려면’ 어중간한 지성을 믿을 수 없고, 이 불신은 학문적 정신에 커다란 장애였다. 랭던은 이렇게 대답하는 자기 목소리를 들었다.
“믿고 싶습니다.”
비토리아의 질문은 어떤 판단이나 도전도 없었다.
“그러면 왜 믿지 않으세요?”
랭던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글쎄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믿음의 도약을 요구합니다. 순결한 개념과 신의 신성한 개입, 기적을 머리로 받아들여야 하죠. 그리고 믿음에는 행위의 규약이 있습니다. 성서, 코란, 불교의 경전… 그들 모두 비슷한 요구사항과 비슷한 형벌이 있습니다. 경전은 특수한 규약대로 살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주장하죠. 저는 그런 식으로 지배하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을 뿐입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당신 질문에 그렇게 뻔뻔하고 교묘하게 빠져나가지 않기를 바라겠어요.”
랭던은 비토리아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요?”
“랭던 씨, 저는 신에 관해서 사람들이 말한 것을 당신이 믿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신을 믿는지를 물은 거죠. 거기에는 차이가 있어요. 성서는 이야기죠. 의미를 찾아 이해하려는 인간 자신의 욕구에 따른 전설이자 원전의 역사예요. 그 이야기에 대한 당신의 판단을 물은 것이 아니라고요. 당신이 신을 믿는지, 그걸 물은 겁니다. 별빛 아래에 누웠을 때 신성함을 느끼나요? 신의 손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바라본다는 게 느껴지나요?”
랭던은 비토리아의 말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제가 고치꼬치 캐물었군요.”
“아니오. 나는 그저…”
“분명 랭던 씨는 수업시간에 믿음을 주제로 토론하겠죠.”
“끝이 없죠.”
“그럼 당신은 악마의 옹호자 편에서도 토론하시겠군요. 토론에 기름을 붓기 위해서.”
랭던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당신도 선생임이 분명합니다.”
“아뇨. 난 스승에게서 배웠어요. 제 아버지는 뫼비우스 띠의 양쪽면에서 토론하실 줄 알았죠.”
<뫼비우스의 띠>라는 예술 공예품을 떠올리며 랭던은 웃었다. 기술적으로 오직 한 면만 있는 뒤틀린 종이 고리가 뫼비우스의 띠다. 랭던은 이 뫼비우스의 띠를 M.C. 에셔의 작품에서 처음 보았다.
“베트라양,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비토리아라고 부르세요. 베트라 양이라고 부르면 나이가 든 것 같거든요.”
갑자기 자기 나이를 의식하면서 랭던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비토리아. 내 이름은 로버트입니다.”
“질문이 있다고 했죠?”
“그래요. 과학자이자 가톨릭 사제의 딸로서 당신은 종교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눈가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비토리아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종교는 언어나 옷과 같아요. 자신이 자란 곳의 습관에 자연히 이끌리지요. 하지만 결국 같은 것을 주장한답니다.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 우리를 창조한 힘에 감사한다는 것.”
랭던은 자극받았다.
“그러면 당신은 기독교인이건 이슬람교도건 간에 단순히 어디에서 자랐느냐에 달려있다는 겁니까?”
“분명하지 않나요? 지구상에 분포한 종교의 확산을 보세요.”
“그럼 믿음은 무작위적이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죠. 믿음은 보편적인 거예요. 믿음을 이해하는 우리의 방법이 임의적인 거죠. 우리 중 일부는 예수에게 기도하고, 또 일부는 메카로 가요. 일부는 원자의 입자를 연구하기도 하고요. 결국 우리 모두는 그저 자신보다 위대한 진실을 찾는 중인 거죠.”
랭던은 자기 학생들도 자신의 의사를 이렇게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제기랄, 자기 또한 이렇게 명확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랭던이 물었다.
“그러면 신을?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비토리아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과학은 제게 신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죠. 그러나 지성은 내가 결코 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고요. 그리고 제 가슴은 신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요.”
‘참으로 간명한 요점 정리군.’
랭던은 감탄했다.
“그럼 당신은, 신은 사실이라고 믿지만, 우리는 그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뜻이군요.”
“그녀를.”
웃으면서 비토리아가 말했다.
“본래 미국 사람인 당신네 아메리칸 인디언이 말은 제대로 했죠.”
랭던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어머니인 지구 말이군요.”
“가이아. 행성은 유기체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목적을 가진 세포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세포들과 함께 엮여 있다. 서로 도우며 전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비토리아를 바라보며 랭던의 내부에서는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뭔가가 솟구쳤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투명함이, 목소리는 순수함이 묻어났다. 랭던은 비토리아에게 끌리는 자신을 느꼈다.
“랭던 씨. 질문을 하나 더 할게요.”
“로버트요.”
랭던이 말했다.
‘랭던 씨는 나이 든 기분을 느끼게 한단 말이오. 그런데 나는 정말 나이가 들었어!’
“로버트, 제 물음에 답하는 것이 괜찮다면 대답해주세요. 당신은 어떻게 일루미나티를 알게 되었죠?”
랭던은 회상했다.
“사실 그건 돈 때문이었습니다.”
비토리아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돈이요? 컨설팅의 대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자기 대답이 어떻게 들렸을지 깨닫고 랭던은 웃었다.
“아닙니다. 화폐 단위인 돈 말입니다.”
랭던은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약간의 돈을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서 1달러짜리 지폐를 골랐다.
“미국 화폐가 일루미나티의 상징으로 덮여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 조직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랭던의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채, 비토리아의 눈동자가 가늘어 졌다.
“뒷면을 보세요. 왼쪽에 국새라고 적힌 것이 보이죠?”
비토리아는 지폐를 뒤집었다.
“피라미드를 말하는 건가요?”
“피라미드. 피라미드가 미국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압니까?”
비토리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맞아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랭던이 말했다. 비토리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왜 피라미드가 미국 국새의 주요 상징인 거죠?”
“등골이 오싹한 역사의 일부죠. 피라미드는 위로 올라가면서 하나로 모아지는 것. 즉 계몽의 궁극적인 원천을 나타내는 신비스러운 상징입니다. 피라미드 위에 뭐가 있는지 보입니까?”
비토리아는 지폐를 유심히 관찰했다.
“삼각형 속에 눈이 있군요.”
“그건 ‘트리나크리아’라고 합니다. 다른 데서 삼각형 안에 들어 있는 눈을 못봤습니까?”
비토리아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사실은 봤어요.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요…”
“이건 전 세계의 프리메이슨 지부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상징이 프리메이슨의 것이라고요?”
“사실은 프리메이슨의 것이 아니라 일루미나티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상징을 ‘빛나는 델타’라고 불렀어요. 개화된 변화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눈은 모든 것에 침투하고,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일루미나티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죠. 빛나는 삼각형은 계몽을 뜻하고, 삼각형은 그리스 문자로 델타라고 하죠. 수학기호로는…”
“변화. 전환을 의미하죠.”
랭던은 미소를 지었다.
“과학자와 대화중이라는 것을 깜박 잊었군요.”
“그럼 당신은 미국 지폐의 국새가, 개화되고 만물의 변화를 본다는 얘기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신(薪)세계 질서’라고 부르죠.”
비토리아는 놀란 눈치였다. 그녀는 다시 지폐를 내려다보았다.
“피라미드 아래에 글자가 있는데, Novus… Ordo…”
랭던이 말했다.
“Novus Ordo Seclorum. ‘새로운 현세의 질서(New Secular Order)’를 뜻하는 말입니다.”
“현세라면 비종교적인 면에서의 세계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 구절은 일루미나티의 목표를 명확하게 언급할 뿐만 아니라 뻔뻔하게도 그 옆에 있는 구절, ‘우리가 믿는 신 안에서’라는 글귀와 모순을 이루죠.”
비토리아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기호들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화폐에 등장할 수 있었죠?”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일이 미국의 부통령이던 헨리 윌리스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고 믿습니다. 그는 프리메이슨 조직의 고위 인사였고, 분명히 일루미나티와 유대가 있었죠. 회원으로서 이런 일을 한 것인지, 조직의 영향하에 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국새의 디자인을 판 사람은 윌리스였죠.”
“어떻게? 그리고 왜 대통령은 동의를…”
“대통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였습니다. 윌리스는 간단하게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Novus Ordo Seclorum’은 뉴딜(New Deal)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비토리아는 믿기 힘든 눈치였다.
“그럼 루스벨트는 재무부에서 지폐를 찍기 전에 그 상징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았나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와 윌리스는 형제나 같았으니까요.”
“형제?”
랭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사책을 한번 살펴보세요.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유명한 프리메이슨 단원이었습니다.”
X-33 비행선이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에 내릴 때 랭던은 숨을 참았다. 건너편에 앉은 비토리아는 안정을 찾으려고 애쓰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지면에 닿은 비행기는 개인 격납고로 돌진했다.
“비행시간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조종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조종사가 사과했다.
“속도를 줄여야만 했답니다. 인구과잉지역 위라 소음 규제가 있어서요.”
랭던은 시계를 보았다. 그들은 하늘에 고작 37분 떠있었다. 조종사가 바깥 문을 열었다.
“누구든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비토리아도 랭던도 대답하지 않았다. 조종사가 몸을 스트레칭을 하며 포기했다.
“좋습니다. 에어컨,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저는 조종실에나 있겠습니다. 저와 가스, 둘만 말이죠.”
격납고 바깥에서는 오후의 햇살이 이글거렸다. 랭던은 트위드 재킷을 팔에 걸쳤다. 비토리아는 하늘을 쳐다보며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마치 태양광선이 신비로운 충전 에너지로 전환되어 그녀에게 주입되는 것 같았다.
‘지중해 기후로군.’
벌써 땀을 흘리며 랭던은 생각했다.
“만화 디자인을 차기에는 나이가 좀 많지 않아요?”
눈을 뜨지 않고 비토리아가 물었다.
“무슨 말인지?”
“손목시계말이에요. 비행기에서 봤어요.”
랭던은 살며시 얼굴을 붉혔다. 자기 손목시계를 변명하는 일은 랭던에게 익숙했다. 수집가 애장용으로 만들어진 미키마우스 시계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미키의 쭉 뻗은 손이 시계바늘 노릇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시계지만, 랭던의 유일한 시계다. 방수기능에다 어두운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조명기능도 있어서, 수영을 하거나 불 꺼진 시간에 대학 복도를 걸을 때 제격이었다. 학생들이 랭던의 패션 감각을 의심할 때면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도록 일깨우는 존재로서 미키를 차고 다닌다고 말한다.
“여섯 시로군요.”
랭던이 말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비토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에서 비행기를 갈아탈 것 같네요.”
랭던은 멀리서 윙윙대는 소리를 듣고 위를 쳐다보았다. 북쪽에서 다가오는 헬리콥터를 보고 그의 기분은 축 처지고 말았다. 헬리콥터는 활주로를 건너 낮게 하강했다. 나스카 모래사막 위의 그림을 보려고, 안데스 산맥의 팔파 계곡에서 헬리콥터를 한 번 타봤지만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날아다니는 신발상자를 보냈군.’
아침부터 비행기를 탄 후라, 랭던은 바티칸에서 자동차를 보내주기를 내심 희망했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투정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헬리콥터는 머리 위에서 선회하며 잠시 상공에 머물다가, 그들 앞에 있는 활주로로 내려왔다. 하얀 동체의 측면에는 문장(紋章)이 그려져 있었다. 서로 교차하는 두 개의 열쇠와 교황의 왕관이었다. 랭던은 이 상징을 잘 안다. 교황청의 신성한 상징이자 바티칸 시국의 ‘신성한 좌석’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신성한 좌석은 성 피에트로의 고대왕좌를 나타낸다.
기체가 착륙하는 것을 지켜보며 랭던은 신음했다.
‘교황청의 헬리콥터로군.’
랭던은 바티칸이 이런 헬리콥터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교황이 공항으로 가거나 회의장소로 이동할 때, 그리고 교황의 여름 거처인 갈돌포로 갈 때 헬리콥터를 이용했다. 랭던은 확실히 자동차가 더 좋았다.
헬리콥터 조종석에서 뛰어내린 조종사가 활주로를 가로질러 그들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제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비토리아였다.
“저 사람이 우리의 헬리콥터 조종사인가요?”
랭던은 그녀의 걱정을 나눠 가졌다.
“나느냐. 날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헬리콥터 조종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잔뜩 부푼 상의 튜닉에는 선명한 파란색과 황금색 줄이 수직으로 그어져 있고, 상의와 어울리는 바지에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었다. 발에는 슬리퍼처럼 보이는 뒤축이 없고 낮은 검은 구두를 신었고, 머리에는 펠트로 만든 검은 베레모를 썼다.
랭던이 설명했다.
“전통적인 스위스 근위병의 복장입니다. 미켈란젤로가 디자인 한 거죠. 미켈란젤로가 노력을 덜 기울인 작품 가운데 하나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랭던은 주춤했다. 화려한 복장에도 불구하고, 랭던은 남자에게서 사무적인 용건만을 느꼈다. 조종사는 미국 해군의 위엄과 견고함을 풍기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엘리트 스위스 근위병이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선발조건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랭던은 과거에 수차례나 읽었다. 스위스의 가톨릭 주(州) 네 곳에서 뽑힌 지원자들은 열아홉 살에서 서른 살 사이의 스위스 남자여야 했다. 그리고 적어도 168센티미터의 키에 스위스 군대의 훈련을 받고 독신이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철통 같은 수비를 자랑하는 교황청의 군대를 다른 나라의 정부는 부러워했다.
“CERN에서 오셨습니까?”
그들 앞에 도착한 근위병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강철 같았다.
“네, 그렇습니다.”
랭던이 대답했다.
“정말 빨리 오셨군요.”
X-33에 수상쩍은 시선을 보내며 근위병은 비토리아를 향해 돌아선다.
“다른 옷가지가 더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남자는 비토리아의 다리를 가리켰다.
“짧은 바지는 바티칸 시국 안에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랭던은 비토리아의 다리를 흘끗 내려다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깜박 잊고 있었다. 바티칸 시국은 무릎 위로 다리가 보이는 것을 엄격하게 금한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이 규제는 신성한 신의 도시에 존경을 표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비토리아가 말했다.
“입고 있는 게 전부에요. 서둘러야 했거든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근위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랭던 차례였다.
“무기를 소지하고 계십니까?”
‘무기? 갈아입을 속옷조차 못 챙겼다고!’
랭던은 머리를 저었다.
근위병은 랭던의 발치로 몸을 숙이더니, 양말부터 랭던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사람을 믿자.’
랭던은 생각했다. 그의 다리를 수색하던 근위병의 강한 손은 불편하게 허벅지까지 다가왔고, 마침내 가슴과 어깨까지 조사를 마쳤다. 랭던이 깨끗하다는 것에 만족하며, 근위병은 비토리아에게 돌아섰다. 근위병의 눈이 그녀의 다리와 상반신을 훑었다.
비토리아가 눈을 부라렸다.
“꿈도 꾸지 마세요!”
근위병은 위협하는 시선으로 비토리아를 노려봤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게 뭡니까?”
바지주머니에 살짝 부풀어 오른 사각 모양을 가리키며 근위병이 물었다.
비토리아는 초소형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근위병은 전화기를 가져가 전원을 켜고, 신호음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전화기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확인하고서야 근위병은 만족했다. 전화기를 돌려받은 비토리아는 다시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빙 돌아보시죠.”
근위병이 지시했다. 비토리아는 근위병이 시키는 대로 팔을 앞으로 내밀고 360도 회전했다. 근위병은 주의 깊게 비토리아를 관찰했다. 랭던이 보기에 몸에 딱 달라붙은 바지와 상의는 당연히 나올 곳은 빼놓고 어느 한 군데 부풀어오른 곳이 없었다. 분명 근위병도 같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고맙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랭던과 비토리아가 다가갈 때 스위스 근위병의 헬리콥터는 기어가 중립 상태로 돌아갔다. 비토리아는 노련한 탑승객처럼 윙윙 돌아가는 헬리콥터에 먼저 올라탔다. 회전날개 아래를 지날 때에도 거의 몸을 안 숙였다. 랭던은 잠시 주춤했다.
“자동차를 탈 수는 없습니까?”
조종석으로 올라타는 스위스 근위병에게 반은 농담으로 반은 부탁하는 심정으로 랭던이 외쳤다.
근위병은 대답이 없었다.
랭던은 광적인 로마의 운전사들 때문에 어쨋거나 비행이 더 안전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회전날개 밑을 지날 때는 조심스럽게 몸을 숙이고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조종사가 엔진을 울리자 비토리가 외쳤다.
“보관용기를 찾았나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종사는 어깨 너머로 돌아보았다.
“뭐요?”
“보관용기 말이에요. 그것 때문에 CERN에 전화한 거 아닌가요?”
근위병은 어깨를 들썩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군요. 오늘은 우리에게 아주 바쁜 날입니다. 사령관님이 당신들을 공항에서 데려오라고 지시하셨고, 그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비토리아는 랭던에게 불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엔진을 울리며 조종사가 말했다.
랭던은 안전벨트에 손을 뻗어 몸을 고정시켰다. 헬리콥터의 작은 동체가 그를 향해 좁혀오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굉음과 함께 튀어오른 헬리콥터는 곧장 로마의 북쪽을 향했다.
‘로마… 카풋문디’(카풋문디:세계의 수도라는 뜻)
시저가 한때 다스리고, 성 피에트로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 현대 문명의 요람. 그리고 그 중심에… 재깍거리는 시한 폭탄이 있다.
공중에서 바라본 로마는 하나의 미로였다. 건물과 호수, 부서질 듯한 잔해 사이로 고대의 길이 나있는 해독 불가능한 미로.
낮게 뜬 헬리콥터는 차량 정체 때문에 생긴 스모그가 낀 대기층을 통과해 북서쪽으로 날았다. 아래에는 발동기 달린 자전거, 관광버스, 그리고 모형 같은 피아트 세단 무리가 모든 방향에서 로터리 주변으로 빵빵거리며 움직였다.
‘코야니스콰시(Koyaanisqatsi).’
랭던은 ‘균형을 잃은 삶’이라는 뜻의 호피 족용어를 떠올렸다. (호피족:애리조나 북부에 살던 인디언 부족)
비토리아는 랭던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헬리콥터가 심하게 흔들거리며 날았다.
구토기가 들어 랭던은 시선을 먼 곳으로 향했다. 그의 눈동자가 무너져 내리는 로마 콜로세움의 잔해를 발견했다. 랭던은 늘 콜로세움이 역사의 위대한 모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인간의 문화와 문명 봉기의 장엄한 상징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콜로세움은 수백 년 간 야만적인 행사를 위해 지어진 대경기장이다. 굶주린 사자가 죄수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노예 군단은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였다. 먼 나라에서 잡혀온 이국 처녀를 윤간하는 일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콜로세움의 건축양식이 하버드 대학교 경기장의 청사진이 되었다는 것은 모순이다. 아니, 어쩌면 잘 들어맞을지도 몰랐다. 대학의 풋볼 경기장은 야만적인 고대 전통이 매년 가을마다 부활하는 곳이다. 하버드와 예일의 전투에서 광적인 팬들은 피를 보기를 바라며 비명을 질러댄다.
헬리콥터가 북쪽을 향하자 랭던은 포로 로마노를 볼 수 있었다. 포로 로마노는 기독교 이전 시대, 로마의 중심이었던 광장이다. 부서지는 기둥들이 공동묘지의 쓰러질 듯한 묘석처럼 보였다. 이 유적지는 광장을 둘러싼 거대도시 속으로 삼켜지는 것을 간신히 피했다.
서쪽으로는 넓은 테베레 강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갔다. 공중에서 보아도 수심이 깊어 보였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은 심한 폭우로 거품과 미세한 모래들이 가득 차 갈색이었다.
“바로 정면에 있습니다.”
헬리콥터를 좀더 올리며 조종사가 알려주었다.
랭던과 비토리아는 창밖으로 목적지를 보았다. 아침 안개를 가르는 산처럼 거대한 둥근 돔이 안개를 헤치고 솟아 있었다. 바로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다.
랭던이 비토리아에게 말했다.
“이제야 미켈란젤로가 제대로 해낸 것을 보는군요.”
랭던이 공중에서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본 것은 처음이다. 오후 햇살에 건물의 대리석 외관이 불꽃처럼 빛났다. 140명의 성인과 순교자들. 그리고 천사의 조상(調像)으로 치장된 장엄한 건축물은 넓이가 축구 경기장 두개, 길이는 무려 경기장 여섯 개를 이어놓은 것과 같다. 동굴 같은 대성당 내부는 6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이 숫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국가인 바티칸 시국 인구의 100배 이상에 달한다.
한가지 놀라운 점은 이 장엄한 건물이 바로 앞에 있는 광장을 전혀 왜소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강암 바닥이 좍 펼쳐진 산 피에트로 광장은 로마의 혼잡 속에서 아찔할 정도로 확 트인 공간이다. 고전적인 의미의 센트럴 파크라고 할 수 있다. 대성당 앞에 네 줄로 세워진 284개의 기둥이 거대한 원형 행랑을 이루며 광장을 아우르는데, 광장 중심에서 보면 그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광장의 웅장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트롱프뢰유 건축법을 이용했다. (트롱프뢰유:언뜻 보기에 현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입체기법)
랭던은 눈앞의 장엄한 성지를 응시하며, 성 피에트로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피에트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못박히는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 이제 성인(聖人)은 가장 신성한 무덤에서 쉬고 있다. 피에트로의 무덤은 대성당 중앙, 큐폴라 바로 아래 지하 5층 깊이에 묻혀있다.
“바티칸 시국입니다.”
담담한 말투로 조종사가 말했다.
랭던은 돌로 지은 성채를 내려다보았다. 바티칸 시국 안의 건물들을 에워싼, 외부의 침투가 불가능해 보이는 성곽이다. 비밀과 힘, 그리고 신비로운 정신세계를 방어하는 벽이 매우 지상적인 물건이라는게 야릇했다.
“저걸 봐요!”
비토리아가 갑자기 랭던의 팔을 붙잡고, 그들 바로 밑에 있는 산 피에트로 광장을 흥분해서 가리켰다. 랭던은 얼굴을 창에 대고 내다보았다.
“저기.”
손으로 가리키며 비토리아가 말했다. 랭던도 보았다. 10여대의 트레일러 차량이 광장 뒤편의 주차장 같은 곳에서 북적댔다. 모든 차량의 지붕에는 거대한 위성접시 안테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했고, 안테나 접시에는 낯익은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유럽 텔레비전 방송
이탈리아 텔레비전
BBC
UPI 통신
반물질에 관한 뉴스가 벌써 새어나갔는지 의아해 랭던은 갑자기 혼란을 느꼈다. 비토리아 역시 몹시 긴장한 눈치였다. 그녀가 조종사에게 물었다.
“왜 방송사들이 여기에 모여 있지요? 무슨 일이 있나요?”
조종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 너머로 돌아봤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요? 두 분은 모르십니까?”
“모르는데요?”
비토리아가 재빨리 응수했다. 그녀의 억양은 허스키하면서 강했다. 조종사가 답했다.
“교황 선거회의입니다. 약 한 시간 정도후면 바티칸은 봉쇄됩니다. 전 세계가 지금 지켜보고 있지요.”
‘교황 선거회의’
이 단어가 오랫동안 랭던의 귓속에 울리다, 벽돌처럼 그의 배를 내리쳤다.
‘교황 선거회의. 바티칸의 교황 선거회의.’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을까? 이 일은 최근의 뉴스거리다.
보름 전, 대중의 지대한 인기를 모으며 12년간 통치하던 교황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의 모든 신문들은 자는 동안 치명적인 뇌출혈을 일으킨 교황에 관한 뉴스를 실었고, 많은 사람들은 교황의 갑작스런 죽음이 의심스럽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신성한 전통에 따라 교화의 서거 보름 후에 바티칸은 교황 선거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세계의 165명의 추기경들이 모이는 신성한 회의다. 기독교계에서 가장 힘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교황을 뽑기 위해 바티칸 시국으로 모이는 것이다.
‘지상의 모든 추기경이 오늘 이곳에 와 있다.’
헬리콥터가 산 피에트로 대성당 위를 지날 때 랭던은 고심했다. 바티칸 시국의 광대한 내부가 그의 아래에 펼쳐졌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모든 힘의 구조가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는 꼴이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