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인 실비 바우델로크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소장의 빈 사무실 문 밖에서 천천히 왔다 갔다 했다.

 

‘대체 소장님은 어디 계신 거야? 어떻게 하지?’

 

이상한 하루였다. 물론 막시밀리안 콜러와 함께 일하는 날치고, 어느 하루도 이상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하지만 콜러가 오늘같이 행동하는 이런 날은 드물었다.

 

“레오나르도 베트라 박사를 내게 데려오게!”

 

오늘 아침에 실비가 사무실에 도착하자 콜러는 이렇게 지시했다.

 

의무적으로 실비는 레오나르도 베트라의 무선호출기로 호출을 하고, 전화를 걸고, 전자우편을 보냈다.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그러자 콜러는 몸소 베트라를 찾으러 바람처럼 사무실을 나섰다. 몇 시간 후에 휠체어를 구리며 돌아왔을 때, 콜러는 불안정한 표정이었다. 평소에도 그는 편안해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더 나빠 보였다. 사무실에 틀어박힌 채 모뎀과 팩시밀리, 전화를 사용하는 소리가 들렸다. 콜러는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갔는데, 그후 돌아오지 않았다.

 

실비는 이게 콜러 식의 또 다른 희곡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행동을 무시하려고 작정했다. 하지만 매일 맞는 주사시간에 맞춰 콜러가 돌아오지 않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소장의 건강은 규칙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콜러가 자신의 건강을 운에 맡겼을 때, 결과는 늘 위험했다. 호흡 쇼크, 기침 발작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의무실 직원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실비는 때때로 막시밀리안 콜러가 죽음을 원한단 인상마저 받았다.

 

실비는 투약 시간을 알려주려고 콜러에게 무선호출을 보낼까도 궁리했다. 하지만 콜러의 자존심이 동정심은 용납하지 않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지난 주에 콜러를 방문한 어떤 과학자는 그에게 안됐다는 동정심을 보였다가, 머리에 클립보드를 맞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격분한 콜러가 발끝을 딛고 일어서서 남자의 머리에 클립보드를 던져버린 것이다. CERN의 왕인 콜러는 화가 나면 놀랍도록 민첩해졌다.

 

하지만 이 순간, 소장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훨씬 골치 아픈 문제가 그녀를 짓눌렀다. 5분 전에 CERN의 전화교환대에서 전화가 걸려와, 다급한 목소리로 소장을 찾는 긴급전화가 있다고 했다.

 

실비가 말했다

 

“소장님은 지금 안 계시는데요.”

 

그러자 CERN 전화교환원은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실비에게 말했다. 실비는 거의 크게 웃고 말았다.

 

“지금 농담이죠, 그렇죠?”

 

귀를 기울이던 실비의 얼굴이 설마, 하는 불신으로 흐려졌다.

 

“그럼 전화를 건 사람의 신분이…”

 

실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알겠어요. 좋아요. 무슨 용건인지 물어…”

 

실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오. 됐습니다. 끊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얘기해주세요. 지금 즉시 소장님을 찾아오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서두를게요.”

 

하지만 실비는 소장을 못 찾았다. 세 번이나 콜러의 휴대전화기에 전화를 걸었지만, 매번 같은 메시지만 들려왔다.

 

“지금 전화를 거신 분의 고객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지역이 있습니다.”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지역에 있다고? 그 몸으로 얼마나 멀리까지 간 거지?’

 

이번에는 실비는 콜러의 무선호출기로 연락을 시도했다. 두 번이나, 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전혀 콜러답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콜러의 무선컴퓨터에 전자우편까지 보냈다. 역시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소장은 마치 지구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나?’

 

실비는 걱정했다.

 

CERN의 전 구역을 혼자서 찾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소장의 주의를 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콜러는 그 방법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장과 통화를 기다리는 남자는 마냥 계속 기다리게 놔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소장이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을 기분도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대담함에 놀라면서 실비는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콜러의 사무실로 들어가, 책상 뒷벽에 있는 금속상자로 다가갔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을 열고, 여러 버튼을 응시하다 원하는 버튼을 찾아냈다. 그런 다음 실비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마이크를 잡았다.

 

 

지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탔는지 비토리아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안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는 중이었다. 콜러는 비토리아 뒤에 있었다. 그의 호흡소리가 고통스러워보였다. 랭던의 걱정스런 시선이 유령처럼 비토리아를 훑고 지나갔다. 랭던은 팩스 종이를 비토리아의 손에서 빼내, 그녀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자기 재킷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미지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 아직도 활활 타올랐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비토리아의 세계는 암흑으로 휘말렸다.

 

‘아빠!’

 

마음속에서 비토리아는 레오나르도 베트라에게 다가갔다 단지 잠깐이었지만, 추억의 오아시스에서 비토리아는 그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아홉 살이었고, 에델바이스가 가득한 언덕을 구르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스위스의 하늘이 빙글 빙글 돌았다.

 

“아빠! 아빠!”

 

레오나르도 베트라는 그녀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우리 천사?”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어 비토리아는 키득거렸다.

 

“아빠! 뭐가 문제(matter)냐고 제게 물어보세요!”

 

“하지만 너는 행복해 보이는걸, 우리 공주님. 뭐가 문제냐고 왜 아빠가 물어야 하지?”

 

“그냥 물어보세요.”

 

베트라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문제니?”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matter)냐고요? 문제(matter)는 모든 것이 물질(matter)이라는 거예요! 바위도! 나무도! 원자도! 심지어 개미도! 모든 게 다 물질이에요!”

 

베트라 박사도 웃었다.

 

“그걸 이해했구나?”

 

“ 저 똑똑하죠, 네?”

 

“우리 작은 아인슈타인.”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인슈타인은 머리 모양이 우스꽝스럽잖아요. 사진을 봤어요.”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똑똑한 두뇌를 가졌단다. 그가 무엇을 증명했는지 너한테 알려주었지, 그렇지?”

 

그녀의 눈이 두려움으로 커졌다.

 

“아빠! 안 돼요! 약속했잖아요!”

 

“E=MC ! E=MC !"

 

베트라 박사는 장난을 치며 비토리아를 놀렸다.

 

“수학은 안 돼요! 말했잖아요! 나는 수학이 싫어요!”

 

“네가 수학을 싫어해서 다행이로구나. 여자아이는 수학을 공부하면 안 되니깐.”

 

비토리아는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여자아이는 안 돼요?”

 

“물론 안 되지. 모두가 알고 있단다. 여자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놀고, 남자아이는 수학을 가지고 놀지. 여자아이를 위한 수학은 없단다. 아빠가 수학에 관해서 어린 소녀들에게 말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아.”

 

“뭐예요! 그건 공평하지 않잖아요!”

 

“규칙은 규칙이지. 어린 소녀를 위한 수학은 절대로 없단다.”

 

비토리아의 얼굴이 분노에 질렸다.

 

“하지만 인형놀이는 지루해요!”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

 

“미안하구나. 네게 수학을 가르쳐줄 수는 있단다. 하지만 그러다 걸리기라도 하면…”

 

한적한 언덕을 둘러보며 레오나르도 베트라는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비토리아는 그의 시선대로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가만히 속삭였다.

 

“괜찮아요. 나한테만 조용히 가르쳐주세요.”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이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비토리아는 눈을 떴다. 그러자 아버지가 사라졌다.

 

싸늘한 냉기가 현실을 일깨웠다. 비토리아는 랭던을 쳐다봤다. 콜러의 사늘한 분위기 속에서 랭던의 시선에 담긴 순수한 염려는 수호천사의 온기처럼 느껴졌다. 비토리아에게는 이제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무자비하게 달려들었다.

 

‘반물질은 어디에 있을까?’

 

이것에 대한 두려운 대답은 잠시 후에 알게 되었다.

 

“막시밀리안 콜러 소장님. 사무실로 즉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일행이 중앙 홀로 나왔을 때, 환한 태양빛이 랭던의 눈동자로 밀려들었다. 인터콤 방송의 여운이 머리 위에서 가시기도 전에, 콜러의 호출기. 전화. 전자우편. 콜러는 당황한 표정으로 깜박이는 불빛들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콜러 소장님, 사무실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확성기에서 자기 이름이 들리자 콜러는 놀란 눈치였다.

 

그는 화난 표정으로 인터콤을 올려다보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변했다. 랭던과 콜러의 시선이 마주치고, 다시 비토리아의 눈과 마주쳤다. 그들 사이의 모든 긴장이 같은 예감으로 통한 듯, 세 사람은 일순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정지했다.

 

콜러가 팔걸이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다이얼을 누르고, 다시 터져나오려는 기침을 간신히 억눌렀다. 비토리아와 랭던은 기다렸다.

 

“여기는… 콜러 소장이오.”

 

헐떡이며 콜러가 말했다.

 

“그래요? 나는 지하, 그러니까 통화 영역 밖에 있었소.”

 

귀를 기울이는 콜러의 회색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누구? 그래 연결해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보세요? 제가 CERN의 소장, 막시밀리안 콜러입니다. 누구십니까?” 콜러가 귀를 기울이는 동안 비토리아와 랭던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끝내 콜러가 말했다.

 

“전화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닙니다. 즉시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콜러가 다시 기침을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서… 만나지요. 사십 분 후에.”

 

콜러는 이제 숨조차 쉬기 힘들어 보였다. 발작과 같은 기침을 쏟아 내고, 겨우 말을 짜냈다.

 

“트랩을 즉시 찾아내시오. 내가 가겠소.”

 

그후 전화기를 껐다.

 

비토리아가 콜러 옆으로 달려갔지만, 콜러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랭던은 비토리아가 그녀의 휴대전화기를 꺼내, CERN의 의무실을 호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랭던은 자기 자신이 폭풍의 가장자리에 접어든 한 척의 배 같았다. 이리저리 흔들리다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서 만나지요.’

 

콜러의 말이 메아리쳤다.

 

오전 내내 불확실한 그림자가 랭던의 마음에 안개를 드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불안감은 확실한 모습으로 굳어졌다. 혼란의 소용돌이에 서 있는 동안, 랭던은 자기 내부의 문이 열린 느낌이었다. 뭔가 미지의 문지방을 막 넘어선 듯했다.

 

‘앰비그램. 살해된 과학자이자 사제. 반물질. 그리고 이제… 목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은 단 하나만을 의미했다. 완전히 깨달았을 때 랭던은 자신이 막 강을 건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제 믿기로 정한 것이다.

 

‘5킬로톤. 거기에 빛이 있으라.’

 

하얀 가운을 입은 두 명의 의료진이 장비를 끌고, 중앙 홀을 질주하듯 달려왔다. 의료요원들은 콜러 옆에 무릎을 끓고, 산소마스크를 그의 얼굴에 씌웠다. 홀에 있던 과학자들이 걸음을 멈추고 뒤로 비켜섰다.

 

콜러가 두 번 길게 숨을 들이쉬더니 마스크를 한쪽으로 치웠다. 그리고 여전히 산소마스크가 필요해 보이는 목소리로 비토리아와 랭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로마”

 

비토리아가 물었다.

 

“로마, 반물질이 로마에 있나요? 누가 전화한 거죠?”

 

콜러의 얼굴이 뒤틀리며 회색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스위스…”

 

콜러가 다시 질식해 말을 잇지 못하자, 의료진이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웠다. 의료진이 소장을 데려갈 준비를 하는 동안, 콜러는 손을 뻗어 랭던의 팔을 붙잡았다.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상하고 있었다. 마스크 아래에서 콜러가 헐떡이며 말했다.

 

“가시오… 가서… 내게 전화하시오…”

 

의료진이 콜러의 휠체어를 밀고 갔다.

 

비토리아는 콜러가 이동하는 것을 바라보며 바닥에 붙박인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녀가 랭던에게 돌아섰다.

 

“로마? 그리고… 스위스는 무슨 얘기죠?”

 

랭던은 비토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간신히 들릴 만한 소리로 속삭였다.

 

“스위스 근위병. 바티칸 시국에 충성를 맹세한 근위병을 말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