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는 돌로 만들어진 터널 끝에 서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횃불은 아직 환하게 타올랐다. 횃불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터널 안의 탁한 공기, 역한 냄새와 섞였다. 길을 가로막은 철문은 터널만큼이나 오래되고 녹슬었지만 여전히 굳건했다. 암살자는 믿음을 가지고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다 되었다.

 

야누스는 문 안쪽에서 누군가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암살자는 이 배반의 행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그는 이 문에서 밤새도록이라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굳은 결심을 한 단호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몇 분 후, 정확히 약속 시간에 물 건너편에서 무거운 열쇠꾸러미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자물쇠가 풀리면서 금속이 금속을 긁는 소리였다. 한 번에 하나씩 거대한 자물쇠 세 개가 열리고 있었다. 자물쇠는 수백 년 동안 사용을 안 했는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마침내 세 개 모두 풀렸다.

 

그 뒤 정적만이 남았다. 암살자는 지시받은 대로, 정확히 5분 간을 끈기 있게 기다렸다. 그 후 피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으로 돌진했다. 거대한 문이 활짝 열렸다.

 

 

“비토리아, 난 허락할 수 없네!”

 

위험물질 보관실의 엘리베이터가 위로 향할 때, 콜러의 호흡은 점점 고통스러워지고 거칠어졌다.

 

비토리아는 콜러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그녀는 안식처를 갈구했다. 집처럼 여겨지던 실험실이 이제는 친숙한 장소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은 고통을 삼키고 행동을 취할 때다.

 

‘전화를 걸어야 해.’

 

로버트 랭던은 평소처럼 말없이 비토리아 옆에 있었다. 비토리아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던 것을 포기했다.

 

‘전문가?’

 

콜러가 이렇게 모호한 답변을 한 적이 있었나?

 

‘랭던 씨는 아버지의 살인자를 찾는 일을 도와줄 거야.’

 

그러나 랭던은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그의 온정과 친절은 진실해 보였지만, 분명히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두 남자 모두 그랬다.

 

콜러가 다시 비토리아를 말렸다.

 

“CERN의 소장으로서 나는 과학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네. 만일 자네가 이 일을 국제적 사건으로 확대시키고, CERN이 겪을 혼란을…”

 

“과학의 미래?”

 

비토리아가 콜러에게 돌아섰다.

 

“소장님은 반물질이 CERN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정말 책임을 회피하실 작정이세요? 우리가 위험을 빠뜨린 사람들의 생명을 무시하실 거냐고요?”

 

콜러가 되받았다.

 

“우리가 아니라 자네지. 자네와 자네 아버지.”

 

비토리아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콜러가 말을 이었다.

 

“반물질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 하지만 반물질이 공헌하고자 하는 것도 인간의 생명일세. 비토리아, 반물질 기술이 지구의 삶에 얼마나 많은 것을 시사하는지 자네도 잘 알 거야. 만일 CERN이 파산하거나 스캔들로 무너진다면 우리 모두가 패배하는 걸세. 인간의 미래는 내일의 문제를 풀기 위해 일하는 CERN과 자네, 그리고 레오나르도 박사와 같은 과학자들의 손에 달려있어.”

 

비토리아는 예전에 ‘신(神)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콜러의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그다지 새겨듣지는 않았다. 과학은 과학이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문제의 절반 정도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어머니인 지구에게 궁극적인 해악일 수도 있었다.

 

콜러가 주장했다.

 

“과학의 발들은 위험을 수반하게 마련일세. 또 항상 그래왔고, 우주 프로그램, 유전학 연구, 의약, 과학은 어떤 비용을 감수해서라도 실책을 딛고 살아남아야 해. 모두의 안녕을 위해서.”

 

비토리아는 과학을 떼놓고 도덕적인 문제의 무게를 재는 콜러의 능력에 감탄했다. 콜러의 지성은 그의 영혼에 차갑게 분리된 산물 같았다.

 

“소장님은 CERN이 지구의 미래에 너무 중요해서, 우리가 도덕적인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도덕을 가지고 나와 논쟁하려 들지 말게. 자네가 그 표본을 만들었을 때, 자네는 이미 선을 넘었네. 그리고 연구소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어. 나는 여기에서 일하는 삼천 명의 과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자네 아버지의 명성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것일세. 자네 아버지 같은 사람이 대량 살상무기 창조자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야.”

 

비토리아는 콜러가 자신의 정곡을 찔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 표본을 만들자고 아버지를 설득한 사람은 나였다. 이건 모두 내 잘못이야!’

 

엘리베이터 문이 위층 실험실에서 열렸을 때, 콜러는 여전히 말하는 중이였다. 비토리아는 문 밖으로 나와 휴대전화기를 꺼내들고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여전히 신호음이 들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비토리아는 문으로 향했다.

 

“비토리아, 멈추게.”

 

속력을 내서 비토리아를 쫓아가는 콜러는 이제 천식에 걸린 소리를 냈다.

 

“진정하라고, 우리는 얘기를 좀 해야 하네.”

 

“얘기는 충분히 했어요!”

 

콜러가 다그쳤다.

 

“아버지를 생각해보라고, 레오나르도 박사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가?”

 

비토리아는 계속 걸어갔다.

 

“비토리아, 사실 자네에게 솔직하지 못했네.”

 

비토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다. 콜러가 말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나도 모르겠네. 난 그저 자네를 보호하고 싶을 뿐이야. 자네가 무얼 원하는지 말해보게나. 우리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돼.”

 

비토리아는 실험실을 절반쯤 가로질러가서야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저는 반물질을 되찾고 싶어요. 그리고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 알고 싶고요.”

 

말을 마친 후 답변을 기다렸다. 콜러가 한숨을 쉬었다.

 

“비토리아, 우리는 누가 자네 아버지를 죽였는지 이미 알고 있어. 미안하네.”

 

그제야 비토리아가 돌아섰다.

 

“소장님, 뭐라고요?”

 

“자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네. 너무 어려운…”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 알고 계신다고요?”

 

“그렇다네. 우리에게는 아주 좋은 생각이 있어. 살인자가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갔거든. 그게 내가 랭던 씨를 부른 이유일세. 살인자가 속한 집단은 랭던 씨의 전문 분야이기 때문이야.”

 

“집단? 테러리스트 집단인가요?”

 

“비토리아, 그들은 사분의 일 그램의 반물질을 훔쳐갔네.”

 

비토리아는 방 건너편에 서 있는 로버트 랭던을 쳐다봤다. 모든 것이 이제야 맞아떨어졌다.

 

‘숨긴 비밀의 일부가 이렇게 설명되는군’

 

비토리아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게 놀라웠다. 결국 콜러는 수사당국에 연락을 취한 것이다. 관계기관.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로버트 랭던은 미국인이다. 말쑥하고 보수적인 외모에 매우 날카로운 사람 같았다. 이런 사람이 누구겠는가? 비토리아는 처음부터 추측했어야 했다. 랭던 쪽을 향해 선 비토리아는 새로운 희망이 싹틈을 느꼈다.

 

“랭던 씨,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정보부가 반물질을 찾아낼 수 있는지도 알고 싶어요.”

 

랭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정보부?”

 

“당신은 미국 정보부 사람 아닌가요? 제 말이 맞죠?”

 

“사실은… 아닐세.”

 

콜러가 끼어들었다.

 

“랭던 씨는 하버드 대학교 예술사 분야의 교수일세.”

 

비토리아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했다.

 

“미술 선생?”

 

콜러가 한숨을 쉬었다.

 

“랭던 씨는 우상 기호학의 전문가일세. 비토리아, 우리는 자네 아버지가 악마 숭배 집단에게 살해된 거라고 믿고 있네.”

 

비토리아는 콜러의 말을 분명히 듣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악마 숭배.’

 

“자기들 짓이라고 주장한 집단은 자기 자신을 ‘일루미나티’라고 부른다네.”

 

비토리아는 콜러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랭던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심술같은 농담인지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바이에른의 일루미나티:신세계 질서>. 스티브 잭슨의 컴퓨터 게임. 여기 연구소의 연구원들 절반 가량도 인터넷에서 그 게임을 즐기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해를 못하겠군요…”

 

비토리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콜러가 난감한 얼굴로 랭던을 쏘아보았다. 랭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인기 있는 게임입니다. 고대 조직이 세상을 접수한다. 절반 정도는 역사와 들어맞지만 나머지는 허구죠. 그 게임이 유럽에도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비토리아는 당황했다.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죠? 일루미나티? 그건 컴퓨터 게임이에요!”

 

콜러가 말했다.

 

“비토리아, 일루미나티는 레오나르도 박사를 살해한 게 자기들이라고 주장하는 집단일세.”

 

비토리아는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막기위해 모든 용기를 끌어 모았다. 눈물을 참아내며, 현재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평가해보자고 자기에게 강요했다. 하지만 마음을 집중하면 할수록 점점 이해가 안 되었다. 아버지가 살해되었다. CERN의 보안 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녀의 책임인 폭탄은 어딘가에서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콜러 소장은 악마주의자들의 집단이라는 가공의 조직을 찾는 일에 조력자로서 미술 선생을 지명했다.

 

비토리아는 갑자기 허탈해졌다. 돌아서서 가려고 했지만 콜러가 그녀의 길을 막았다. 콜러는 뭔가를 찾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구겨진 팩스 종이 한 장을 꺼내, 비토리아에게 내밀었다.

비토리아의 시선이 팩스에 담긴 모습을 본 순간, 공포에 몸을 떨어다.

 

콜러가 내뱉었다.

 

“그들이 낙인을 찍었네. 박사의 가슴에다 빌어먹을 낙인을 찍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