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보안기술요원은 사령관이 어깨 위로 몸을 숙이자 숨을 멈추었다. 사령관은 그들 앞에 있는 보안 모니터를 조사하였다. 1분이 흘렀다.
사령관의 침묵은 예상했던 것이라고 요원은 자신을 달랬다. 사령관은 엄격한 규율의 사나이였다. 세계 제일의 보안 팀에게 명령을 내리는데, 먼저 말하고 나중에 생각하는 식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화면에 보이는 물체는 일종의 깡통처럼 보였다. 둘레가 투명한 깡통. 이 부분은 쉬웠다. 나머지가 어려웠다.
깡통 안에는 특수효과를 쓴 것처럼 금속성 액체로 보이는 작은 방울이 떠다녔다. 자동으로 깜박이는 디지털 LED의 빨간 불빛 때문에 액체방울이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단호하게 내려가는 LED의 숫자 때문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명암 대비를 높게 할 수 있겠나?”
갑자기 사령관이 묻는 바람에 요원은 깜짝 놀랐다.
요원은 주의를 기울이며 지시에 따랐다. 이미지가 다소 밝아졌다. 상관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깡통 아랫부분에 적힌 뭔가를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요원도 상관의 시선을 따라갔다. LED 옆에 희미하게 인쇄된 것은 하나의 머릿글자였다. 간헐적으로 반짝이는 빛 속에서 네 개의 대문자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령관이 명령을 내렸다.
“여기 있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이 일은 내가 처리하겠네.”
위험물질 보관실. 지하 50미터.
비토리아는 비틀거리다가 망막스캔 장치로 쓰러질 뻔했다. 도와주러 달려온 미국인이 자신을 부축하고, 지탱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 아래에서는 아버지의 눈동자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폐의 공기가 몽땅 빠져나가는 듯했다.
‘살인자가 아버지의 눈을 도려냈다.’
그녀의 세계가 뒤틀렸다. 콜러가 뭔가를 얘기하며 뒤에서 가까이 다가왔고, 랭던이 비토리아를 이끌었다. 마치 꿈속에 있는 듯 비토리아는 망막스캔을 들여다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기계가 소리를 냈다. 문이 미끄러지며 열렸다.
도려내진 아버지의 눈동자에 대한 공포가 아직 영혼에 남아 있었지만, 비토리아는 문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또 하나의 공포를 예감했다. 그녀가 흐릿한 시선으로 방 안을 살폈을 때, 악몽의 다음 장은 이미 시작되었음이 분명해졌다. 그녀 앞의 충전기둥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트랩이 사라진 것이다. 살인자는 트랩을 훔치기 위해 아버지의 눈을 도려냈다. 암시가 너무 빨라. 그녀는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어긋났다. 반물질은 안전하고 실용적인 에너지원이라는 걸 증명하려던 표본을 도난당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표본의 존재를 알지 못해!’
그러나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알아낸 것이다. 비토리아는 그게 누구인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콜러가 CERN의 모든 것을 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콜러조차 그들의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몰랐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의 천재성 때문에 살해된 것이다. 슬픔이 그녀의 가슴을 맹폭격하고, 새로운 감정이 그녀의 양심으로 밀고 들어왔다. 이 감정은 슬픔보다 훨씬 나빴다. 그녀를 깔아뭉개고 찌르는 감정. 그것은 죄책감이었다. 통제가 안 되는 무자비한 죄책감. 표본을 창조하자고 아버지를 설득한 사람은 비토리아 자신이었다. 아버지의 올바른 판단에 대항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결국 아버지가 살해되었다.
‘사분의 일 그램…’
불, 화약, 연소엔진, 다른 어느 기술처럼 반물질도 나쁜 자의 손에 있으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매우 치명적인 무기다. 강력하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기. 일단 CERN의 충전기둥에서 제거된 이상. 반물질 트랩의 카운트다운은 냉혹하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그리고 시간이 다 되면…
눈을 멀게 하는 빛. 천둥의 포효. 자체 소멸. 그저 번쩍하는 순간이면 끝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빈 분화구. 아주 커다란 분화구 자국만 지상에 남을 것이다.
아버지의 천재성이 파괴의 용도로 사용된 장면이 비토리아의 혈관 속에 독약처럼 퍼져나갔다. 반물질은 테러리스트 최고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반물질에는 금속 성분이 없으므로 아무 문제없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할 수 있다. 수색견이 추적할 수 있는 화학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다. 설사 수사당국이 트랩의 위치를 확인한다 해도, 폭약처럼 해체할 수 있는 선이나 퓨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랭던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바닥에 떨어진 레오나르도 베트라의 눈알을 덮었다. 비토리아는 이제 텅 빈 위험물질 보관실의 문가에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슬픔과 공포로 얼룩졌다. 랭던은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콜러가 끼어들었다.
“랭던 씨?”
콜러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그는 랭던에게 조용히 대화 할 수 있는 곳으로 나가자고 몸짓을 했다. 랭던은 비토리아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고, 마지못해 콜러를 따라갔다. 속삭이는 어조로 콜러가 말했다.
“당신은 전문가요. 나는 이 빌어먹을 일루미나티 놈들이 반물질을 가지고 무엇을 할 작정인지 알고 싶군요.”
랭던은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를 둘러싼 주변의 미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 반응은 논리적이었다. 학문적인 거부감. 콜러는 여전히 일루미나티의 짓이라고 여겼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일루미나티는 사라졌습니다. 소장님. 그것은 제가 보장합니다. 이 범죄는 다른 사람의 소행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CERN의 누군가가 베트라 박사의 새 발견을 알아냈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콜러는 얻어맞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랭던 씨. 당신은 이게 도의적인 범죄라고 생각합니까? 말도 안 되오. 레오나르도를 죽인 사람이 누구든 간에, 그자가 원한 것은 한 가지요. 반물질 표본. 그리고 살인자가 그것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테러리즘을 의미하는 겁니까?”
“드러난 바로는 그렇소.”
“하지만 일루미나티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그 점을 레오나르도 베트라 박사에게 말해보시오.”
랭던은 콜러의 말 속에 든 날카로운 진실을 알아차렸다. 레오나르도 베트라는 일루미나티의 상징이 가슴에 찍히는 고문을 당하고 살해되었다. 그 상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누군가 자신의 흔적을 감추고, 의심의 눈초리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속임수로 신성한 낙인을 이용한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랭던은 납득하기 힘든 콜러의 가정에 대해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만일 일루미나티가 아직 활동 중이고 그들이 반물질을 훔쳐갔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 그들이 목표로 하는 대상은 어디일까?’
즉시 뇌리에 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재빨리 지워버렸다. 일루미나티가 공공연한 적을 가졌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적에 대한 광범위한 규모의 테러리스트 공격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것은 전적으로 일루미나티의 성격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 일루미나티도 사람들을 죽였다. 하지만 신중히 선택한 개개인이 목표였다. 아무튼 대량파괴는 지나친 생각이다. 랭던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다시 돌이켜보았다. 이 일에는 좀더 거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사라진 과학계의 궁극적인 성취인 반물질이 소멸을 목적으로…
랭던은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을 더 끌고 싶지 않았다. 그가 불쑥 말했다.
“테러리즘보다 논리적인 설명이 있을 겁니다.”
콜러는 랭던을 응시하며 설명을 기다렸다.
랭던은 생각을 정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일루미나티는 항상 금전적인 수단을 통해 거대한 힘을 휘둘러왔다. 그들은 은행을 통제했고, 금덩어리를 소유했다. 심지어 단일 보석으로는 지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보석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일루미나티의 다이아몬드’라는 완벽한 다이아몬드였다. 랭던이 입을 열었다.
“돈입니다. 반물질은 금전적 이득 때문에 도난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콜러는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금전적인 이득? 누가 반물질 한 방울을 어디에다 판다는 말이오?”
랭던이 반박했다.
“표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죠. 분명히 반물질에 관한 기술은 거액의 가치가 있습니다. 아마 누군가 분석하고 연구 개발하기 위해서 훔쳐갔을 겁니다.”
“산업 스파이 활동을 말하는 거요? 하지만 표본이 든 트랩은 스물 네 시간의 여유만을 제공할 뿐이오. 훔쳐간 자들은 뭔가를 알아내기도 전에 트랩과 함께 날아가 버릴 거요.”
“폭발하기 전에 충전할 수도 있겠지요. 범인들은 여기 CERN에 있는 것과 비슷한 호환용 충전기둥을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콜러가 반박했다.
“스물 네 시간 안에? 범인이 설계도를 훔쳤다 해도, 기술자가 저런 충전기를 만드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거요. 몇 시간이 아니라!”
“소장님 말씀이 옳아요.”
비토리아의 목소리는 부서질 듯이 가늘었다. 두 남자가 동시에 돌아봤다. 비토리아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목소리만큼이나 위태로웠다.
“소장님 말씀이 옳아요. 누구도 충전기를 분해해서 제 시간에 모방 할 수 없어요. 인터페이스 하나만 해도 수주가 걸리죠. 유출여과기, 서보코일, 파워조절 합금, 이 모든 것들은 현장의 특수한 에너지 등급에 맞춰서 조정해야 해요.”
랭던은 눈살을 찌푸렸다. 비토리아의 요점은 알아들었다. 반물질이 담긴 트랩은 간단히 소켓에 꽂는 것으로 충전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단 CERN에서 옮겨졌다면, 트랩은 소멸로 향하는 24시간의 편도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결론은 매우 심란했다.
“인터폴에 알려야 해요. 경찰이든 어디든 적절한 기관에 전화해야겠어요. 지금 당장.”
비토리아가 주장했다. 그녀에게조차 자신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콜러가 머리를 저었네.
“절대 안 되네.”
그 말은 비토리아를 흔들고도 남았다.
“안 된다고요? 무슨 뜻이죠?”
“자네와 레오나르도 박사는 나를 아주 어려운 지경에 빠뜨렸다.”
“소장님, 우리는 도움이 필요해요. 누군가 다치기 전에 트랩을 찾아서, 여기로 다시 가져와야 하나고요.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어요!”
딱딱한 목소리로 콜러가 말했다.
“우리에게는 고민할 책임이 있네. 이 상황은 CERN에 매우, 매우 심각한 방향을 몰고 올 거야.”
“소장님은 지금 CERN의 명성을 걱정하고 계세요? 그 트랩이 도시로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시잖아요? 반경 팔백 미터는 날려버릴거예요! 도시의 아홉 개 블록 정도는 거뜬히!”
“표본을 만들기 전에, 자네와 레오나르도 박사는 그 점을 고려하지 않았겠지.”
비토리아는 칼에 찔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저는 모든 주의를 기울였어요.”
“분명히 충분하지 않았네.”
물론 이제는 근거 없는 주장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비토리아는 깨달았다. 누군가는 알았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다.
비토리아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설명은 두 가지다. 그녀에게는 말없이,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발설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이 가정은 이치에 안 맞았다. 비밀을 지키자고 다짐한 사람은 정작 그녀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다른 또 하나의 설명은 그녀와 아버지가 감시당했다는 것. 어쩌면 휴대전화? 비토리아는 자신이 여행을 가 있는 동안, 아버지와 몇 번 전화 통화한 기억이 났다. 두 사람이 너무 많을 것을 얘기했을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부녀간의 전자우편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신중했다, 안 그랬던가? CERN의 보안 시스템은? 모르는 사이 두 사람은 감시당했던 것일까? 비토리아는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아버지가 살해당했다.’
그 생각이 비토리아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반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콜러가 급히 비토리아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은 분노로 번쩍였다.
“누구에게… 전화하려는 건가?”
“CERN의 전화교환원이요. 인터폴과 연결해줄 거예요.”
“생각을 좀 하라고!”
비토리아 앞에서 휠체어가 급정거를 하느라 쇳소리가 났다. 콜러는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정말 그렇게 순진한가? 지금쯤 그 트랩은 세계 어디에든 있을 수 있어. 지구상의 어떤 정보기관도 그걸 찾으려고 제 때에 동원되지 못할걸세.”
“그럼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말씀이세요?”
비토리아는 이렇게 허약한 건강을 가진 남자에게 대드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소장은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해 있었고, 더 이상 그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콜러가 당부했다.
“현명하게 행동해야 돼. 어쨌든 도움도 안 될 수사당국을 끌어들여, CERN의 명성을 추락시킬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네. 아직은 아니야. 생각 없이 움직여서는 안 되지.”
비토리아는 콜러의 주장에 나름대로 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논리에는 도덕적 책임이 결여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도덕적 책임을 위해 일생을 살아왔다. 사려 깊은 과학, 책임, 인간에게 내재된 선에 대한 믿음. 비토리아 역시 그런 것을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과응보라는 관점에서 그것들을 보았다. 콜러에게 돌아서면서 비토리아는 휴대전화기를 열었다.
“그만두게.”
콜러가 말했다.
“저를 막아보시죠.”
콜러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에 비토리아는 콜러가 자신을 막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지하 깊은 곳에서 그녀의 휴대전화기는 먹통이었던 것이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그녀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