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베트라의 실험실은 굉장히 초현대적이었다.
순백색의 실험실은 사방이 컴퓨터와 전문 전자 장비들로 빼곡했다. 실험실은 일종의 수술실 같았다. 출입문을 통과하기 위해 사람의 눈을 도려낸다. 이런 일이 정당화될 만한 비밀이 과연 이곳에 있을지 랭던은 궁금했다.
그들이 실험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콜러는 편치 않아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침입자의 흔적을 찾아서 사방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러나 실험실은 고요했다. 비토리아 역시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그녀의 아버지가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실험실이 모르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랭던의 시선은 즉시 작은 기둥들이 솟아 있는 실험실 한가운데로 모아졌다. 스톤헨지의 모형처럼 윤기가 흐르는 열두 개 가량의 강철 기둥이 방 중앙에 원을 그렸다. 12미터 정도 높이의 기둥들은 박물관의 값비싼 보석 전시회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기둥들은 분명 진귀한 보석을 전시할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다. 각각의 기둥 위에는 투명한 깡통이 있었는데, 깡통은 테니스공이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통 안은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콜러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깡통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간이 촉박해서인지 깡통은 무시하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비토리아에게 돌아서서 물었다.
“도난당한 것이 있나?”
“도난이요? 어떻게?”
비토리아가 되물었다.
“망막 스캔은 아버지와 저만 가능해요.”
“그냥 한번 둘러보게.”
비토리아는 한숨을 쉬고 잠시 방을 조사했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든 것이 아버지가 평소 해둔 것과 같아요. 정돈된 무질서죠.”
랭던은 콜러가 어느 정도까지 비토리아를 밀어붙일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해줄 것인지 여러 선택을 재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콜러는 그냥 이대로 내버려두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휠체어를 방 한가운데로 끌고 가더니 빈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깡통을 조사했다.
콜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비밀은 우리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있는 사치품이 아닐세.”
동의한다는 듯 비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갑작스레 추억을 몰고 온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 감정이 어렸다.
‘비토리아에게 잠시 시간을 줘야 해.’
랭던은 생각했다.
비토리아는 뭔가를 말하려고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켰다. 그런 다음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랭던은 비토리아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걱정되었다.
‘괜찮은 건가?’
랭던은 콜러를 흘끗 쳐다보았다. 콜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과거에도 비토리아의 이런 의식을 본 경험이 있는 게 분명했다. 비토리아가 눈을 뜨기까지 10초가 흘렀다.
랭던은 그녀의 변화를 믿을 수가 없었다. 비토리아 베트라는 변했다. 풍만한 입술은 느슨해지고, 어깨는 아래로 쳐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순하고 부드러워졌다. 마치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의 모든 근육을 재정비한 것 같았다. 타오르는 분노와 개인적 고뇌를 어떻게든 깊고 차가운 물밑으로 가라앉힌 모양이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비토리아의 억양은 평온했다. 콜러가 말했다.
“처음부터, 아버지의 실험에 대해서 얘기해주게.”
비토리아가 입을 열었다.
“종교가 함께한 신(新)과학은 아버지 일생의 꿈이었어요. 아버지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양립할 수 있는 분야라는 걸 증명하려고 하셨죠. 과학과 종교는 동일한 진실을 찾기 위한 두 가지의 다른 접근법이라고 보신 거예요. 그리고 최근에… 그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셨죠.”
자신이 지금 막 꺼낸 얘기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비토리아는 말을 멈추었다. 콜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하나의 실험을 고안하셨어요. 과학과 종교의 역사에서 가장 쓰디쓴 논쟁이 되어 온 문제를 당신의 실험이 해결하기를 희망하셨죠.”
랭던은 비토리아가 어떤 논쟁을 지칭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과학과 종교 사이에 논쟁은 많았으니까.
비토리아가 선언하듯 말했다.
“천지 창조.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논쟁입니다.”
랭던은 생각했다.
‘하, 그 논쟁이로군.’
비토리아가 설명했다.
“물론 성서는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밝힙니다. 신이 ‘빛이 있으라’ 이렇게 말하자,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광활한 공허에서 나타났다는 거죠. 불행하게도, 물리학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물질은 무(無)에서 창조될 수 없다는 거예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끝을 볼 수 없는 이 논쟁에 관해서 랭던도 읽은 바가 있었다. 신이 ‘무(無)에서 무엇’을 창조해냈다는 생각은 현대 물리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칙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성서의 창세기가 과학적으로 터무니없다고 주장하였다.
비토리아가 돌아서며 물었다.
“랭던 씨, 빅뱅 이론을 잘 아시죠?”
랭던은 어깨를 움츠렸다.
“대강 알고 있습니다.”
우주 창조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진 모델이 빅뱅 이론이라는 건 랭던도 알고 있다. 완벽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모든 에너지가 한 점에 모여 일으킨 대폭발의 결과이고 그 폭발의 여파로 우주가 계속 팽창한다는 이론이다. 대강 그런 내용인 것 같았다.
비토리아가 말을 이었다.
“가톨릭 교회가 1927년에 처음 빅뱅 이론을 제안했을 때, 그…”
“뭐라고요?”
랭던은 자기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지금 빅뱅이 가톨릭계의 생각이었다고 했어요?”
랭던의 질문에 비토리아는 놀란 것 같았다. 랭던은 머뭇거렸다.
“하지만 제 기억에는… 빅뱅은 하버드의 천문학자인 에드윈 허블이 제안한 것 아닙니까?”
콜러가 성난 얼굴로 노려보았다.
“다시 시작이로군. 미국의 과학적 오만함이라니. 허블은 르메트로보다 2년이나 늦은 1929년에 발표했소.”
랭던은 얼굴을 찌푸렸다.
‘허블 천체망원경이라고 불립니다, 소장님. 르메트르 천체망원경이라는 것은 못 들어봤다고요!’
비토리아가 말했다.
“콜러 소장님 말씀이 맞아요. 그 생각은 르메트로가 창안한 것이죠. 허블은 단지 르메트로의 생각을 확인한 것뿐이에요. 확실한 증거를 모아서, 빅뱅이 과학적으로 있을 법한 이론임을 증명한 겁니다.”
“이런.”
하버드 천문학과의 허블광(狂)들이 강의 시간에 르메트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지 의아해하며 랭던은 한숨을 쉬었다.
비토리아는 말을 계속했다.
“르메트르가 처음 빅뱅 이론을 제안했을 때, 과학자들은 그건 전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했어요. 물질은 무에서 창조될 수 없다고 과학은 말하니까요. 그래서 빅뱅이 정확하다는 것을 허블이 과학적으로 증명해서 세상에 충격을 주었을 때, 교회는 자기들의 승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성서가 과학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을 이 이론이 증명한다고 말입니다. 성서에 나온 말은 모두 신성한 진실이라는 뜻이죠.”
비토리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과학자들은 교회가 종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그들의 발견을 사용하는게 못마땅했죠. 그래서 즉시 빅뱅 이론을 수학화해 모든 종교 색채를 제거해버렸답니다. 그래서 즉시 빅뱅 이론이 과학자들의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과학은 그들의 방정식에 심각한 결점을 오늘날까지 안고 있습니다. 교회가 지적하기 좋아하는 약점이 되어버린 거죠.”
콜러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특이성.”
콜러는 그 단어가 독약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비토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특이성. 창조의 정확한 순간. 시간이 영(0)인 그 시간.”
비토리아는 랭던을 바라보았다.
“오늘날까지도 과학자들은 창조의 최초 순간을 파악하지 못했어요. 우리의 방정식은 초기의 우주를 아주 효과적으로 설명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시간이 영에 접근하면, 갑자기 수학식이 붕괴되면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말아요.”
“정확한 얘기야. 교회는 이 결점을 기적과도 같은 신의 간섭의 증거로 내세우지. 그런데 자네의 요점이 뭔가?”
콜러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비토리아의 표정이 아득해졌다.
“제 요점은, 아버지는 항상 빅뱅에서 신의 개입을 믿었다는 점입니다. 과학이 창조의 신성한 순간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믿으셨죠.”
비토리아는 베트라 박사의 작업대에 붙어 있는 레이저 출력용지를 슬프게 가리켰다.
“아버지는 제가 의심을 가질 때마다 제 얼굴 앞에 저 종이를 흔들어 보이셨어요.”
랭던이 종이에 적힌 메모를 읽었다.
(과학과 종교는 반대편이 아니다. 과학은 신을 이해하기에 단지 너무 어릴 뿐이다)
“아버지는 과학을 한층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려고 하셨어요. 과학이 신의 개념을 지지할 수 있는 단계로요.”
감상에 젖은 듯, 비토리아는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기며 내뱉었다.
“다른 과학자는 시도하려고 상상조차 않은 일에 착수하셨죠. 누구도 해내지 못한 그 일을.”
다음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지 비토리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버지는 창세기를 증명하는 실험을 구상했습니다.”
랭던은 무슨 뜻인지 의아했다.
‘창세기를 증명해? 빛이 있으라? 무에서 물질이 생겨났다는 얘기인가?’
콜러의 흐릿한 시선이 방을 가로질렀다.
“무슨 말인가?”
“아버지는 우주를 창조했어요. 완전한 무에서.”
고개를 홱 돌리며 콜러가 외쳤다.
“뭐라고!”
“이렇게 설명하는 편이 더 쉽겠군요. 아버지는 빅뱅을 재창조했다.”
콜러는 펄쩍 뛰어오를 것처럼 보였다. 랭던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우주를 창조하다니? 빅뱅을 재창조해?’
이제 빠른 말투로 비토리아가 설명했다.
“물론 실험은 아주 작은 규모로 이루어졌어요. 그 과정은 너무나 간단하답니다. 아버지는 가속기 튜브 주위에서 두 개의 그세립자선을 반대방향에서 가속화시켰어요. 이 두 입자선이 엄청난 속도로 정면 충돌했을 때, 서로 파고들면서 모든 에너지가 한 개로 응축되었죠. 아버지는 엄청난 에너지 응집체를 얻는 데 성공했어요.”
비토리아가 전문 용어로 빠르게 얘기하자, 소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랭던은 비토리아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니깐 레오나르도 베트라는 에너지를 응집시키는 시뮬레이션을 실행했고, 그 응집된 에너지에서 우주가 튀어나왔다는 얘기로군.’
엄청난 뉴스의 중요성을 음미하듯 비토리아는 이제 천천히 말했다.
“그 결과는 경이로웠어요. 만일 이 실험이 발표되면, 현대 물리학의 근간이 뒤흔들릴 겁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에너지가 고도로 집중된 시점에서 가속기 튜브 안에 물질 입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거든요.”
콜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비토리아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물질이 정말 무에서 피어난 겁니다. 원자 구성요소의 불꽃놀이가 믿을 수 없게 펼쳐졌어요. 우주의 모형을 관찰할 수 있게 된 거죠. 아버지는 물질이 무에서 창조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빅뱅 이론과 창세기 모두 거대한 에너지 원천의 존재를 수용하면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음을 증명하신 거예요.”
“거대한 에너지의 원천이라면 신(神)을 의미하는 것인가?”
콜러가 물었다.
“신, 부처, 힘, 야훼, 특이성, 통일된 한 점. 글쎄, 무엇으로 불러도 상관없겠죠. 결과는 같으니까요. 과학과 종교는 동일한 진실을 지지합니다. 순수한 에너지가 창조의 아버지인 거죠.”
콜러가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우울하게 들렸다.
“비토리아,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 자네는 지금 레오나르도 박사가 무에서… 물질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건가?”
비토리아가 깡통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요. 저기에 증거가 있어요. 저 안에는 아버지가 창조한 물질의 견본이 들어 있습니다.”
콜러가 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 의심 많은 동물이 주변을 배회하듯 깡통으로 다가갔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확실히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했네. 이 깡통들 속에 자네 아버지가 창조했다는 물질 입자가 들어 있다. 그런 주장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믿게 하겠다는 건가? 깡통 속의 물질은 어딘가에서 날아든 입자일 수도 있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비토리아가 말했다.
“실제로 그건 불가능해요. 이 입자들은 독특하거든요. 이것은 지구에 존재하는 물질의 유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창조된 것이 분명하죠.”
콜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비토리아, 물질의 유형이라니, 어떤 유형을 말하는 건가? 세상에는 오직 한 가지 유형의 물질만이 있고, 그것은…”
콜러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승리에 찬 표정을 지으며 비토리아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소장님, 소장님도 그것에 대해 강의를 하셨어요. 우주에는 두 종류의 물질이 존재한다. 과학적인 사실이죠.”
비토리아는 랭던을 향해 돌아섰다.
“랭던 씨, 성서가 천지 창조에 관해서 어떻게 말했나요? 신이 무엇을 창조했죠?”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과 관계가 있는지 몰라, 랭던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음, 신은… 빛과 어둠을 창조했고, 천국과 지옥을…”
비토리아가 다시 끼어들었다.
“바로 그거예요. 신은 서로 상반되는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대칭. 완벽한 균형인 거죠.”
비토리아는 콜러에게 돌아섰다.
“소장님, 과학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것을 주장합니다. 빅뱅이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거죠. 상반되는 모든 것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물질 그 자체를 포함해서.”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콜러가 속삭였다. 비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실험을 시작했을 때, 그래요. 두 종류의 물질이 나타났어요.”
랭던은 이게 무슨 말인지 궁금했다.
‘레오나르도 베트라가 물질과 정반대되는 것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인가?’
콜러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자네가 말하는 물질은 우주가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일세. 확실히 이 지구상은 아니고, 심지어 우리 은하계 안에서도 가능한 존재가 아니야!”
“맞아요. 그게 이 안에 든 입자가 창조되었다는 증거예요.”
비토리아가 대꾸했다. 콜러의 얼굴이 굳어졌다.
“비토리아, 저 안에 정말로 그 표본이 들어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
“아뇨.”
비토리아는 자랑스럽게 깡통들을 응시했다.
“소장님, 소장님은 지금 세계 최초로 ‘반물질’ 표본을 보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