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비토리아 베트라는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여덟 살이었고,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에게서 버려져 피렌체 근처의 가톨릭계 고아원인 ‘시에나 고아원’에서 살았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수녀들이 안에 들어와 저녁을 먹으라고 두 번이나 그녀를 재촉했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비토리아는 못 들은 척했다. 그녀는 안뜰에 누워, 빗방울이 몸을 때리는 것을 느끼면서… 다음 빗방울은 어디에 내려앉을지를 추측하면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응시했다. 수녀가 다시 한 번 불렀다. 폐렴에 걸리면, 이 밉살스럽고 고집센 아이도 자연에 대한 관심이 확 줄어들 것이라고 위협했다.

 

‘난 들리지 않아요.’

 

비토리아는 생각했다.

 

젊은 사제가 그녀에게 다가왔을 때, 비토리아는 뼛속까지 젖었다. 그녀는 사제를 알지 못했다. 사제는 고아원에 새로 온 사람이었다. 비토리아는 사제가 자기를 붙잡아 안으로 질질 끌고 가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사제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놀랍게도 흙탕물에 외투자락을 적시면서 비토리아 옆에 누웠다.

 

“사람들이 네가 질문을 많이 던진다고 그러더구나.”

 

젊은 남자가 말했다. 비토리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질문이 나쁜 건가요?”

 

남자가 웃었다.

 

“사람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여기에서 뭘 하세요?”

 

“네가 하는 것과 같은 것… 왜 빗방울이 떨어지는 지를 궁금해 하고 있지.”

 

“나는 빗방울이 왜 떨어지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젊은 사제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고 있어?”

 

“프란체스카 수녀님이 그랬어요. 빗방울은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천사들이 흘린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우아!”

 

감탄한 것처럼 사제가 말했다.

 

“그럼 그게 다 설명해주는구나.”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비토리아는 되쏘았다.

 

“모든 물건은 떨어지기 때문에 빗방울도 떨어지는 거예요! 모든 것이 떨어져요! 빗방울만 그런 게 아니라고요!”

 

당황스럽다는 듯이 사제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우리 꼬마숙녀, 네 말이 맞다. 모든 것은 떨어지지. 중력 때문이란다.”

 

“무엇 때문이라고요?”

 

사제는 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중력이란 말을 처음 들어봤니?”

 

“처음이에요.”

 

사제는 안타깝게 어깨를 들썩였다.

 

“너무 안타깝구나. 중력은 많은 질문에 답을 준단다.”

 

비토리아는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중력이 뭔데요? 말씀해주세요!”

 

사제는 비토리아에게 윙크했다.

 

“저녁식사 후에 말해주면 어떨까?”

 

그 젊은 사제가 레오나르도 베트라였다. 대학 시절 수상 경력까지 있는 전도 유망한 물리학도였지만, 그는 또 다른 부름을 받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레오나르도와 비토리아는 수녀들과 규제가 가득한 외로운 세계에서 최고의 친구가 되었다. 비토리아는 레오나르도를 웃게 만들었고, 레오나르도는 비토리아를 자기 날개 밑에 두고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강물은 그 안에 많은 설명을 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소녀에게 빛과 행성과 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신과 과학, 양쪽의 눈으로 보는 자연의 모든 것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비토리아는 타고난 지성과 호기심은 그녀를 매력적인 학생으로 만들었다. 레오나르도는 딸처럼 그녀를 보호했다.

 

비토리아 또한 행복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가진 즐거움을 몰랐다. 다른 어른들이 그녀의 질문에 손목을 찰싹 때려가며 대답을 할 때, 레오나르도는 그녀에게 책을 보여주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비토리아의 생각은 어떤지 묻기도 했다. 비토리아는 레오나르도가 영원히 함께 머물러주기를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악의 악몽이 그녀에게 현실로 찾아왔다. 레오나르도 신부가 고아원을 떠난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레오나르도가 말했다.

 

“스위스로 가게 됐단다. 제네바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았거든.”

 

비토리아는 울면서 말했다.

 

“물리학이요? 저는 신부님이 신을 사랑한다고 믿었어요!”

 

“사랑한단다. 아주 많이. 그게 내가 신의 신성한 법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이유란다. 물리학의 법칙은 신이 펼쳐놓은 캔버스와 같아. 캔버스에 신께서 당신의 걸작을 그리신 거지.”

 

비토리아는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신부님은 다른 소식도 들려주었다. 그는 윗사람에게 자신이 비토리아를 입양할 수 있는지 물었고,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너를 입양해도 되겠니?”

 

“입양이 뭔데요?”

 

레오나르도 신부는 설명했다. 비토리아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레오나르도를 5분 동안이나 껴안고 놓지 않았다.

 

“아,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레오나르도는 비토리아에게 스위스에서 그들이 머물 새 보금자리를 구하기 위해 잠시 떠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여섯 달 안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 시간은 비토리아의 인생에서 가장 긴 기다림이었다. 결국 레오나르도는 약속을 지켰다. 아홉 살 생일을 닷새 앞두고 비토리아는 제네바로 이사했다. 그녀는 낮에는 제네바 외국인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아버지에게 배웠다.

 

3년 후에 레오나르도 베트라는 CERN에 고용되었다. 비토리아는 레오나르도와 함께 어린 그녀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이상한 나라에 터를 잡았다.

 

LHC 터널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비토리아 베트라는 몸이 마비된 듯 했다. 그녀는 터널에 반사된 자기 모습을 말없이 보며, 아버지의 부재를 느꼈다. 보통의 경우 그녀는 주위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깊고 고요한 상태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 정말 갑자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지난 세 시간의 기억조차 흐릿했다.

 

콜러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그녀는 아침 10시에 발레아레스 제도에 있었다.

 

‘자네 아버지가 살해되셨네. 즉시 돌아오게.’

 

다이빙 보트의 갑판으로 쏟아지는 찌는 듯한 열기에도 불구하고, 전화로 들은 소식은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소식만큼이나 무감정한 콜러의 말투도 비토리아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제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집인가?’

 

열두 살 이래 그녀의 세계였던 CERN이 갑자기 낯설게 보였다. 이 장소를 마술처럼 매력적으로 만들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이제 없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

 

비토리아는 자신에게 되뇌었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의문이 빠르게, 더욱 빠르게 맴돌았다.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가? 그리고 왜 죽였는가? ‘전문가’라는 이 미국인은 누구인가? 왜 콜러는 실험실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콜러는 아버지의 죽음에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된 증거가 있다고 했다.

 

‘무슨 증거지? 우리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리고 누군가 알아냈다 하더라고, 왜 아버지를 죽여야 했을까?’

 

아버지의 실험실이 있는 방향으로 LHC 터널을 걸어가면서, 비토리아는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그가 이루어낸 가장 위대한 성위를 공개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 순간을 훨씬 다르게 꿈꿔왔다. CERN의 고위 과학자들을 아버지의 실험실에 불러다놓고, 그들에게 아버지의 발견을 보여주고, 경탄해마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리라고 상상했다. 그러면 레오나르도 베트라는 아버지로서 지을 수 있는 가장 자랑스러운 얼굴로 그들에게 설명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현실화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비토리아의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고… 그가 돌파구를 열 때 자신의 딸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비토리아는 목구멍에 묵직한 덩어리가 치밀어오름을 느꼈다.

 

‘아버지와 나는 이 순간을 함께 나누기로 했는데.’

 

하지만 여기에 혼자였다. 동료도 없고 행복해하는 얼굴도 없다. 그저 낯선 미국인과 막시밀리안 콜러가 전부다.

 

‘막시밀리안 콜러. CERN의 왕.’

 

아이였을 적에도 비토리아는 이 남자를 싫어했다. 끝내는 콜러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존경하게 되었지만, 콜러의 얼음처럼 차가운 태도는 항상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의 따뜻함과는 정반대였다. 콜러는 흠잡을 수 없는 완벽한 논리를 위해 과학을 추구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두 남자 사이에는 항상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한번은 이런 말로 설명했다.

 

‘천재는 무조건적으로 천재를 받아들인다.’

 

비토리아는 생각했다.

 

‘천재는 아버지였어… 아빠가 돌아가시다니.’

 

레오나르도 베트라의 실험실로 향하는 길은 전체가 하얀 타일로 깔린 삭막한 긴 복도였다. 랭던은 지하 정신병원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수십 개의 흑백 사진 액자들이 복도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랭던은 이미지를 연구하는 직업이지만, 그 이미지들은 그에게도 생소했다. 무작위로 그어진 선과 나선형은 혼란스런 네거티브 사진 원판처럼 보였다. 랭던은 생각했다.

 

‘현대예술인가? 암페타민을 복용한 잭슨 폴록의 작품?’

 

랭던의 흥미를 알아채고 비토리아가 말을 꺼냈다.

 

“산점도라는 거예요. 입자의 충돌을 컴퓨터로 재현한 거죠. 저게 Z-입자예요.”

 

추상화 같은 사진 속에서 가려내기 힘든 희미한 자국을 가리키며 비토리아가 설명했다.

 

“아버지는 오 년 전에 저걸 찾아내셨죠. 순수에너지. 질량이 전혀 없어요. 아마 자연에서 가장 작은 기본 단위일 겁니다. 물질은 에너지를 잡아두는 것일 뿐이거든요.”

 

랭던은 머리를 곧추 세웠다.

 

‘물질은 에너지다? 꼭 선(禪)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 같군.’

 

사진 속의 가느다란 줄을 응시하면서 랭던은 생각했다. Z-입자에 감탄하며 ‘대 하드론 충돌기’ 안에서 주말을 보냈다고 하면,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에 몸담고 있는 그의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실험실의 강철문에 다다르자 콜러가 입을 열었다.

 

“비토리아. 오늘 아침에 자네 아버지를 찾으러 여기로 내려왔었네.”

 

비토리아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러셨어요?”

 

“그래, 그리고 레오나르도 박사가 CERN의 표준 키패드 보안장치를 다른 것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보게나.”

 

콜러가 문 옆에 솟은 정교한 전자장치를 가리켰다. 비토리아가 말했다.

 

“사과드릴게요. 아버지가 비밀 엄수에 얼마나 신경쓰시는지 잘 아시잖아요. 아버지는 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여기에 출입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거든요.”

 

콜러가 말했다.

 

“좋아. 문을 열게.”

 

비토리아는 잠깐 잠자코 서 있었다. 그런 다음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벽에 붙은 장치로 걸어갔다. 랭던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몰랐다.

 

벅에 붙은 전자장치로 다가간 비토리아는 망원경처럼 불쑥 튀어나온 렌즈에 그녀의 오른쪽 눈을 조심스럽게 갖다댔다. 그런 뒤에 버튼을 눌렀다. 기계 안쪽에서 뭔가 딸각거리는 소리가 났고, 일자로 그어진 수직 빛이 복사기처럼 왔다 갔다 하며 그녀의 눈동자를 스캔했다.

비토리아가 말했다.

 

“이건 망막 스캔이에요. 오류가 없는 보안장치입니다. 오직 두 개의 망막만이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있어요. 제 것과 아버지 것이죠.”

 

랭던은 끔찍한 연상이 떠올라 그대로 멈춰 섰다. 소름끼치는 레오나르도 베트라의 이미지가 되살아났다. 피범벅인 얼굴, 응시하는 개암나무색의 한 개뿐인 눈동자, 그리고 텅 빈 눈자위. 랭던은 명백한 진실을 거부하려고 애썼지만 보고야 말았다. 스캐너 아래 하얀 타일 바닥에… 붉은 액체방울이 희미하게 떨어져 있었다. 말라붙은 피였다.

 

다행스럽게도 비토리아는 핏자국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강철 문이 열리자 비토리아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콜러의 완고한 시선이 랭던에게 꽂혔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내가 말한 대로… 사라진 눈동자는 더 분명한 목적을 위해 쓰였소.’

 

 

여자의 손은 묶여 있었다. 밧줄에 쓸려 부풀어 오른 팔목은 이제 자주색으로 변했다. 마오가니 빛 피부의 암살자는 여자 곁에 누워서, 벌거벗은 자기의 상(賞)에 감탄하고 있었다. 암살자는 여자가 얕은 잠에 빠져 있는 게 진짜인지, 아니면 더 이상의 봉사를 피하기 위한 애처로운 시도인지 궁금했다.

 

남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넌더리가 나도록 맛을 본 후에 남자는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그의 나라에서 여자는 소유물이었다. 약한 동물. 즐거움의 도구. 가축처럼 거래할 수 있는 가재 도구였다. 그리고 여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 하지만 이곳 유럽의 여자는 힘과 독립성을 가진 척해서 그를 흥분시키고 즐겁게 했다. 여자를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그가 항상 즐기는 희열이었다.

 

이제 음부의 만족에도 불구하고, 암살자는 또 다른 욕구가 자기 안에서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지난밤에 그는 살인을 했다. 살해하고 절단했다. 그에게 살인은 마약과 같았다. 한 번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갈망하는 마음이 달아오르기 전에, 만족은 잠시뿐이었다. 흥분이 모조리 사라지고 다시 욕구가 치밀었다.

 

남자는 옆에 누워 자는 여자를 관찰했다. 여자의 목에 손바닥을 가져가면서, 한순간에 여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이 끓어올랐다. 뭐가 문제인가? 이 여자는 인간 이하의 동물이다. 오로지 즐거움과 봉사를 위한 도구이다. 남자의 강한 손가락이 여자의 섬세한 맥박을 즐기면 목을 감쌌다. 그런 뒤에 욕망과 싸우면서 남자는 손을 치웠다. 할 일이 있었다. 자신의 욕망보다 더 높은 목적을 위해 봉사할 임무가 남았다.

 

침대에서 빠져나오며 암살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명예로운 일에 푹 빠져들었다. 그는 아직도 야누스라고 불리는 인간과 야누스가 지휘하는 고대 조직의 영향력을 헤아릴 수 가 없다. 황송하게도 조직은 그를 선택했다. 어쨌든 조직은 적에 대한 그의 혐오를 사전에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능력도. 어떤 경로로 알게 됐는지는 모른다.

 

‘조직의 뿌리는 멀리까지 뻗어 있다.’

 

이제 조직은 암살자에게 궁극적인 명예를 수여했다. 그는 그들의 손이 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그는 조직의 암살자이자 조직의 사자(使者)였다. 그의 사람들은 이런 자를 ‘말라크 알하크(Malak alhaq)’ 라고 불렀다. ‘진실의 천사’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