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기이한 방문이 시작된 중앙 홀로 다시 돌아왔을 때, 랭던은 비토리아와 콜러의 뒤를 따라 조용히 걸었다. 비토리아의 다리는 올림픽에 출전한 다이빙 선수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저토록 탄력적인 걸음새는 요가를 통해 얻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마치 슬픔을 정화시키는 노력인 양, 천천히 신중하게 내쉬는 비토리아의 숨소리가 들렸다.
랭던은 비토리아에게 유감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자신 역시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잃었고, 그때의 공허감을 잊지 못한다. 비가 내리고 온통 잿빛이던 장례식이 떠올랐다. 열두 살 생일이 이틀 지난 날 이었다. 집에는 사무실에서 나온 회색 양복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와 악수를 나눌 때, 사람들은 랭던의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모두 ‘심장병’과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의 어머니는 눈물어린 눈으로 농담을 했다. 그저 남편 손을 쥐고만 있어도 항상 주식 시장을 따라갈 수 있었노라고 말이다. 아버지의 맥박은 어머니의 개인용 티거 테이프였던 셈이다.(티거 테이프 : 증권시세 등이 인쇄된 티거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테이프)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랭던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일을 멈추고 장미꽃 향기를 맡으라’고 사정하는 것을 들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랭던은 아버지에게 유리로 만든 작은 장미 한 송이를 사다드렸다. 그 장미는 랭던이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햇빛이 장미에 닿으면, 일곱 가지 무지개가 벽에 펼쳐졌다.
“사랑스럽구나.”
상자를 열어보고 아들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면서 아버지는 말했다.
“장미를 놓아둘 안전한 장소를 찾자.”
그후 아버지는 거실의 가장 어두운 구석, 먼지 쌓인 높은 선반에 장미를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며칠 후에 랭던은 의자를 딛고 선반에서 장미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가게로 가져갔다. 아버지는 장미가 사라졌다는 것을 결코 눈치채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에 랭던은 현실로 돌아왔다. 비토리아와 콜러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랭던은 엘리베이터 문 밖에서 머뭇거렸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걱정하기보다는 서두르는 기색으로 콜러가 물었다.
“아닙니다.”
꽉 막힌 운반상자 안으로 자신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랭던은 대답했다. 그는 아주 다급할 때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이런 막힌 공간보다는 열린 공간의 계단이 훨씬 좋았다.
“베트라 박사의 실험실은 지하에 있습니다.”
콜러가 말했다.
‘훌륭하군.’
엘리베이터 문 사이를 건너며 랭던은 생각했다. 승강기의 지하 수직통로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바람이 그 틈새로 불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하강했다.
“지하 육 층이요.”
기계를 분석하듯이 콜러가 딱 잘라서 말했다.
랭던은 그들 아래 텅 빈 수직 갱도의 어둠을 떠올렸다. 바뀌는 층수를 나타내는 숫자 표지판을 응시하며, 랭던은 그 이미지를 지워버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표시판에는 오직 두 개의 목적지만 있었다. 지상층과 LHC.
“LHC는 무슨 뜻입니까?”
신경질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랭던이 물었다.
“거대 하드론 충돌형 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 입자가속기요.”
콜러가 말했다.
‘입자가속기?’
랭던은 어렴풋이 그 용어가 낯익었다. 케임브리지에 있는 던스터하우스에서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처음 들었다. 어느 날 밤, 물리학자 친구인 밥 브라우넬이 씩씩대며 저녁식사 자리에 나타났다.
“그 나쁜 놈들이 취소시켜버렸어!”
브라우넬이 악담을 퍼부었다.
“취소하다니, 뭘?”
모두가 반문했다.
“SSC!”
“그게 뭔데?”
“초전도 초대형 입자가속기(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누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버드가 그걸 지으려는 줄은 몰랐군.”
브라우넬이 소리쳤다.
“하버드가 아니야! 미국이라고! SSC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입자가속기가 될 참이었어! 금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 프로젝트가 될 뻔했다고! 이십억 달러가 거기에 들어갔는데, 상원에서 그 프로젝트를 날려버리다니! 빌어먹을, 성서 신봉자 로비스트들 같으니!”
마침내 브라우넬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자가속기란 커다란 원형 튜브로서 그것을 통해 원자의 구성요소인 여러 입자들이 가속된다고 설명했다. 튜브 안의 자석을 빠르게 껐다 켰다 반복하면, 입자들이 가공할 속력을 가지게 될 때까지 자석이 입자들을 주변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완전히 가속된 입자들은 초속 29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튜브를 순환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빛의 속도야.”
다른 사람이 일깨워주었다.
“빌어먹게도 그 말이 맞아.”
브라우넬이 말했다. 튜브 주위의 반대 방향에서 두 입자를 가속시킨 후에 서로 충돌시키면 과학자는 입자들을 깨부술 수가 있고, 그를 통해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들에 대해 약간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브라우넬이 선언했다.
“입자가속기는 과학의 미래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거야. 입자의 충돌은 우주의 블록 쌓기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거든.”
‘하버드 관저의 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조용한 남자, 찰스 프레트는 그다지 감동받은 얼굴이 아니었다. 프레트가 말했다.
“나한테는 오히려 과학의 네안데르탈인식 접근같이 들리는데…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 시계를 서로 부딪혀보는 거랑 비슷하잖아.”
브라우넬은 포크를 놓더니, 폭풍처럼 나가버렸다.
‘그럼 CERN은 입자가속기를 가지고 있는 건가?’
엘리베이터가 내려갈 때 랭던은 생각했다.
‘입자들을 부딪치기 위한 원형 튜브.’
랭던은 왜 CERN 사람들이 입자가속기를 지하에 묻었는지 궁금했다.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멈추자, 랭던은 발밑의 단단한 땅을 느끼며 안도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그의 안도감은 사라졌다. 그는 다시 한 번 완전히 이질적인 세계에 서 있었다.
길이 오른쪽과 왼쪽, 양쪽으로 끝없이 뻗어 있었다. 매끄러운 시멘트 터널이었다. 폭은 18구륜 화물트럭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그들이 있는 자리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지만, 통로의 끝으로 갈수록 칠흑처럼 어두웠다. 축축한 바람이 어둠 속에서 불어왔다. 지하 깊은 곳에 있다는 불안을 일깨워 주는 바람이었다. 랭던은 머리 위에서 맴도는 먼지와 돌의 무게가 느껴졌다. 즉시 그는 아홉 살 때로 되돌아갔다. 뒤에서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둠.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인 다섯 시간은 아직도 그를 괴롭혔다. 랭던은 주먹을 움켜쥐고 공포와 싸웠다.
잠자코 있던 비토리아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혼자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가 걸어가는 길 위로 형광등이 자동으로 켜졌다. 터널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효과는 자못 불안하기까지 했다. 마치 터널이 그녀의 모든 행보를 예측하는 것처럼 보였다. 뒤에서 거리를 두고 랭던과 콜러가 뒤따랐다. 그들 뒤에서 불빛이 자동으로 꺼졌다.
“입자가속기가 이 터널에 있는 겁니까?”
랭던이 조용히 물었다.
“저기에 있습니다.”
콜러가 왼쪽을 가르켰다. 터널 안쪽 벽을 따라 광택 나는 크롬 튜브가 있었다. 당황해하며 랭던은 튜브를 살폈다.
“저게 가속기입니까?”
그 장치는 랭던이 상상하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지름 90센티미터 정도의 직선으로 뻗은 튜브였다. 수평으로 쭉 뻗은 튜브는 터널을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랭던은 생각했다.
‘이건 뭐 첨단 하수관처럼 생겼잖아.’
“저는 입자가속기가 동그란 고리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콜러가 말했다.
“이 가속기도 원형입니다. 튜브가 똑바로 뻗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착시 현상입니다. 이 터널이 너무 길어서, 곡선을 지각할 수 없는 거죠. 마치 우리가 지상에서 지구의 곡선을 못 느끼듯 말입니다.”
랭던은 깜짝 놀랐다.
‘이게 원형이라고?’
“하지만… 그러면 가속기가 엄청나게 크다는 말인데!”
“LHC는 세상에서 가장 큰 기계예요.”
랭던은 다시 튜브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CERN의 조종사가 지하에 묻힌 거대한 기계얘기를 한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콜러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입자가속기 전체를 보면, 직경이 팔 킬로미터 이상에… 길이는 이십칠 킬로미터에 이릅니다.”
랭던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이십칠 킬로미터?”
그는 소장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앞에 있는 어둠 속의 터널을 응시했다.
“이 터널의 길이가 이십칠 킬로미터나 된다는 겁니까? 그건… 십육마일 이상이란 얘기인데!”
콜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소. 프랑스 쪽으로 뻗었다가 방향을 꺾어 바로 이 지점으로 돌아오지요. 완전히 가속된 입자들은 서로 충돌하기 전, 일 초에 만 번 이상을 튜브에서 순환합니다.”
입을 벌린 터널을 응시하고 있노라니, 랭던의 다리가 고무처럼 휘청거렸다.
“단지 아주 작은 입자를 부수기 위해 CERN이 수백만 톤의 흙을 파냈다고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까?”
콜러는 어깨를 으쓱했다.
“가끔은 진리를 찾기 위해 누군가는 산을 옮겨야 하는 법입니다.”
CERN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 어떤 목소리가 휴대용 무전기에서 지직거리며 흘러나왔다.
“좋아요, 저는 지금 복도에 있습니다.”
비디오 스크린을 모니터하던 근위병이 전송기 버튼을 눌렀다.
“팔십육 번 카메라를 찾아봐요. 맨 끝에 있을 겁니다.”
무전기는 오랫동안 침묵이었다. 답을 기다리는 근위병은 가벼운 진땀을 흘렸다. 마침내 그의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보고했다.
“카메라는 여기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느 받침대에 있었는지는 알겠어요. 누군가 카메라를 가져간 게 틀림없습니다.”
근위병이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고맙습니다. 잠시 거기에서 기다려주세요. 괜찮죠?”
근위병은 한숨을 쉬며, 자기 앞에 놓인 비디오 스크린의 바다에 다시 집중했다. 단지 내의 많은 건물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에도 무선카메라가 사라진 일이 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장난꾸러기가 기념품으로 카메라를 훔쳐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단지를 벗어나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신호가 끊기고 해당 스크린은 텅 비게 마련이다. 당황한 근위병은 모니터를 응시했다. 수정처럼 깨끗한 영상이 여전히 86번 카메라를 통해 전송되었다.
근위병은 의아했다.
‘만일 저 카메라가 도둑맞은 것이라면, 어떻게 신호가 수신된 걸까?’
물론 한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카메라는 아직 건물 단지 안에 있고, 누군가 카메라의 위치를 옮긴 것이다.
‘하지만 누가? 왜?’
근위병은 꽤 긴 시간을 들여 모니터를 관찰했다. 마침내 무전기를 집어들었다.
“그쪽 계단에 옷장 같은 게 있습니까? 혹시 선반이라든가, 어두운 구석은?”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없습니다. 왜요?”
근위병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는 무전기를 꺼버리고 입을 굳게 닫았다.
비디오카메라가 무선이라는 사실과 작은 크기를 고려해볼 때, 카메라 86번은 엄중한 경비를 자랑하는 단지 어느 곳에서건 영상을 전송 할 수 있다는 점을 근위병은 알고 있었다. 이곳은 반경 800미터에 걸쳐 32개의 건물들로 꽉 들어찬 곳이다. 유일한 단서는 카메라가 지금 어두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단서도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건물 안에 어두운 곳이라면 무수히 많으니까, 유지보수 장비를 넣어두는 함, 난방 송수관, 원예 장비보관 창고, 침실의 옷장, 아니면 미로 같은 지하 터널일 수도 있다. 86번 카메라의 위치를 찾아내려면 수 주일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찾아내는 건 내 소관이 아니야.’
근위병은 고민했다.
카메라의 재배치라는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당장 더 불안한 문제가 생겼다. 그는 고개를 들고, 사라진 카메라가 전송하는 화면을 쳐다보았다. 화면은 움직이지 않는 물체였다. 현대적인 장치 같은데, 난생 처음 보는 물건이다. 근위병은 화면에서 깜박거리는 전자 표시판을 관찰했다.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맥박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겁먹지 말자고 다짐했다. 분명 설명이 필요했다. 화면 보이는 물체는 너무 작아서 심각한 위험물체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단지 내부에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몹시 꺼림칙했다.
‘하고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오늘이라니.’
항상 보안은 고용주의 최우선 순위였고, 오늘은 지난 12년 동안의 어느 날 보다도 가장 중요한 날이다. 근위병은 오랫동안 그 물체를 응시했다. 그리고 멀리서 다가오는 폭풍의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감지했다.
근위병은 땀을 흘리며 상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