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가벼운 비행기 멀미에 시달리며 랭던이 햇살 가득한 활주로에 내렸을 때는 64분이 흐른 뒤였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재킷옷깃을 흔들고 지나갔다. 눈앞에 펼쳐진 전망은 훌륭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의 청정한 초록 계곡과 눈 덮인 산봉우리를 둘러보았다.
랭던은 혼잣말로 생각했다.
‘나는 꿈을 꾸는 거야. 몇 분 후면 깨어나겠지.’
“스위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X-33 분무형 고에너지밀도 엔진이 속도를 줄이면서 내는 소음사이로 비행기 조종사가 소리를 질러댔다.
랭던은 시계를 살폈다. 아침 7시 7분.
“랭던 씨는 지금 막 여섯 시간의 시차를 넘어 날아왔습니다. 이곳 시간은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었군요.”
조종사가 말했다. 랭던은 시계를 조정했다.
“기분은 어떠십니까?”
랭던이 배를 문질렀다.
“스티로폼을 먹은 것 같습니다.”
조종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산병입니다. 우리는 비행기로 해발 일천팔백 미터 상공에 있었으니까요. 거기에서는 삼십 퍼센트 정도 무게가 가벼워지지요. 단거리 비행이라서 운이 좋았습니다. 만일 도쿄로 가야 했다면, 훨씬 높이 비행기를 끌고 올라가야 했을 테니까요. 일천육백 미터 정도 더 높죠. 그럼 지금쯤 속이 울렁거리고 뒤집어졌을 겁니다.”
랭던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정도는 운이 좋은 것이라고 자신을 달랬다.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비행은 대체로 일반 비행기를 탔을 때와 비슷했다. 이륙할 때 뼈를 부수는 듯한 가속도를 별도로 치면, 비행기의 움직임은 전형적이었다. 가끔 미미한 난기류에 휘말리거나 상승할 때 압력 변화가 느껴졌지만, 시속 17,000킬로미터라는 감지하기 어려운 속도로 공간을 날아왔다는 걸 실감나게 할만한 별다른 점은 없었다.
기술자 한 무리가 X-33을 정비하기 위해 활주로를 허둥지둥 달려왔다. 조종사는 통제탑 옆 주차장에 있는 검은 푸조 세단으로 랭던을 안내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계곡 사이로 쭉 뻗은 포장도로를 빠르게 달렸다. 건물 단지들이 멀리 희미하게 보였다. 창밖으로는 푸른 초원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휙휙 지나갔다.
조종사가 자동차 속도를 시속 170킬로미터까지 올리는 것을 랭던은 믿을 수 없는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이 사람과 이 속도, 이게 다 뭐지?’
랭던은 의아했다.
“연구소까지 오 킬로미터 남았습니다. 이 분 안에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종사가 설명했다. 랭던은 무력하게 좌석벨트를 찾아 맸다.
‘우리가 살아 있는 채로 삼 분 안에 도착하면 왜 안 되는 걸까?’
자동차는 질주했다.
“레바를 좋아하십니까?”
카세트를 테이프 레이어에 넣으며 조종사가 물었다.
여자가 노래를 시작했다.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울 뿐이야…”
‘여기에는 두려움이 없다.’
랭던은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여자 동료들이 종종 자기가 수집한 박물관 수준의 공예품들을 보고 빈 집을 채우기 위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시도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놀리곤 했다. 그리고 자고로 가정이란 여자의 존재로 빛이 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랭던은 언제나 동료들의 말을 웃어넘겼다. 자신의 인생에는 벌써 세 가지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음을 친구들에게 일깨워주면서 말이다. 세 가지란 기호학과 수구(水球), 그리고 독신주의였다. 독신주의는 세상을 마음껏 여행하고, 자고 싶을 때 늦게까지 자고, 브랜디와 좋은 책과 함께 집에서 조용한 밤을 누리게 해주는 자유이기도 했다.
“우리 연구소는 작은 도시 같습니다.”
공상에 잠긴 랭던을 깨우며 비행기 조종사가 말했다.
“단순한 연구소는 아니죠. 연구소 단지 안에 슈퍼마켓과 병원이 있고 심지어 극장도 있으니까요.”
랭던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 앞에 불규칙하게 뻗은 건물들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았다.
“사실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큰 기계도 가지고 있답니다.”
조종사가 덧붙였다.
“정말입니까?”
랭던은 바깥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종사가 미소 지었다.
“밖에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지하 6층 깊이에 묻혀 있으니까요.”
랭던은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주의도 없이 조종사가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자동차는 연구소의 경비초소의 입구까지 미끄러졌다.
랭던은 그들 앞에 있는 안내문을 읽었다.
보안검사(SECURITE) 정지( ARRETEZ)
랭던은 갑자기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몹시 당황했다.
“이런 세상에! 여권을 안 가져왔습니다!”
“여권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스위스 정부와 영구 협약을 맺었으니까요.”
조종사가 랭던을 안심시켰다.
조종사가 초소 경비원에게 ID 카드를 건네는 것을 랭던은 말문이 막힌 채 지켜보았다. 입구 초소에는 신분 확인을 위한 전자장치가 있었고, 경비원은 ID 카드를 전자장치에 대고 그었다. 기계 불빛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승객 성함은?”
“로버트 랭던.”
조종사가 응답했다.
“누구의 손님입니까?”
“소장님”
경비원의 눈썹이 활처럼 휘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인쇄된 출력 정보를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자료와 대조해가며 확인 작업을 했다. 마침내 초소 창문으로 돌아온 경비원이 허락했다.
“편히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랭던 씨.”
자동차는 다시 내달렸다. 커브 로터리를 돌아 180미터쯤 달리자, 연구소의 현관이 나타났다. 유리와 강철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초현대적인 건물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랭던은 건물의 인상적이고 투명한 디자인에 감탄했다. 그가 항상 애정을 느끼는 분야가 건축이기도 했다.
“유리 대성당이죠.”
조종사가 말했다.
“교회란 말입니까?”
“맙소사, 아니에요. 이곳에 없는 단 한 가지가 바고 교회입니다. 이 주변에서는 물리학이 종교지요. 하고 싶은 대로 신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들먹여도 상관없지만, 쿼크와 중간자를 비방해서는 안 됩니다.”
조종사가 웃었다.
유리건물 앞으로 차를 주차하는 동안 랭던은 당혹스러워하며 앉아 있었다.
‘쿼크와 중간자? 국경 통제가 없다? 마하 십오로 나는 제트기?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지?’
건물 앞 화강암 석판에 답이 새겨져 있었다.
CERN-Conseil Europeen pour la Recherche Nucleaire
“유럽 입자물리학 연구소?”
자신의 번역이 맞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랭던이 물었다.
운전을 하는 조종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앞으로 내밀어 바쁘게 카세트 플레이어를 정리했다.
“여기가 랭던 씨의 종착지입니다. 소장님이 입구에서 당신을 기다리실 겁니다.”
랭던은 현관에 어떤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남자는 예순 살쯤 되어 보였다. 완고해 보이는 턱에, 몹시 말랐으며, 완전히 대머리인 남자가 하얀 실험실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정장용 구두는 휠체어의 발걸이를 단단히 딛고 있었다. 멀찌감치에서 봐도 남자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마치 두 개의 잿빛 돌멩이 같았다.
“저 사람이 소장님입니까?”
랭던이 물었다. 조종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랭던에게 불길한 미소를 건넸다.
“그럼, 저는 이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오는군요.”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심정으로 랭던이 차에서 내렸다.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랭던에게 다가와 차고 끈적끈적한 손을 내밀었다.
“랭던 씨? 우리, 전화상으로 얘기를 나누었지요. 제 이름은 막시밀리안 콜러입니다.”
CERN의 소장인 막시밀리안 콜러는 연구소에서 왕으로 불리었다. 휠체어라는 왕좌에 앉아 영토를 다스리는 인물에게 붙여진 왕이란 호칭은 존경심보다는 강한 두려움을 자아냈다. 개인적으로 그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그가 어쩌다 불구가 되었는지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는 CERN에서 전성이 되어 떠돌았다. 하지만 그의 신랄한 성격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순수과학에 대한 그의 공공연한 헌신을 나무라는 이도 없었다.
랭던은 짧은 순간 콜러 소장과 대면했지만, 이 남자가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인물임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랭던은 조용히 현관으로 들어가는 콜러의 자동 휠체어를 따라잡기 위해 종종걸음을 쳤다. 콜러의 휠체어는 랭던이 아는 일반 휠체어와는 전혀 달랐다. 다선 전화기, 페이징시스켐, 컴퓨터 모니터, 심지어 분리 가능한 소형 비디오 카메라까지 장착된 전자장치들의 집합지였다. 콜러의 휠체어는 왕의 이동 사령부 역할이었다.(페이징 시스템:주기억장치와 보조기억장치 간에 페이지를 교환하는 시스템.)
랭던은 자동문을 지나 CERN의 넓은 로비로 들어섰다.
‘유리 대성당.’
랭던은 천장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머리 위로 푸른빛이 도는 유리지붕이 오후 햇살에 아른아른 빛났다. 천장 유리를 통해 들어온 햇살은 허공에 기하학적인 빛의 패턴을 만들고, 로비 전체에 웅장한 분위기를 풍겼다. 흰 타일 벽을 가로질러 대리석 바닥까지 이어진 각진 그림자가 마치 정맥처럼 보였다. 로비는 깨끗하고 무균 상태의 공기 냄새가 났다. 과학자들 몇 명이 반향이 잘되는 널찍한 공간에서 발소리를 울리며 분주히 자나갔다.
“이쪽으로 가시죠, 랭던 씨.”
콜러의 휠체어가 타일 바닥을 뛰어넘을 것처럼 빨리 움직였다.
중앙 홀에서 여러 갈래로 뻗은 셀 수 없이 많은 복도를 지나치며 랭던은 서둘러 뒤따라갔다. 모든 복도마다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콜러를 본 과학자들은 놀란 눈초리로 랭던을 응시했다. 소장이 동반한 인물이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다는 투였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CERN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며 랭던이 말을 꺼냈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콜러의 짤막한 응답은 상대방을 충분히 무안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과학 연구 분야에서 유럽이 세상의 리더라는 것을 모릅니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 유럽을 그저 기묘한 쇼핑 구역쯤으로 여기지요. 아인슈타인, 갈릴레이, 뉴턴 같은 사람들의 국적을 고려해보면 이상한 사고방식이오.”
랭던은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는 주머니에서 팩스 종이를 꺼냈다.
“이 사진에 있는 남자, 이 남자에 대해서…”
콜러가 손을 휘저으며 말을 잘랐다.
“이런, 여기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신을 그에게 데려가는 중이오.”
그리고는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 종이를 가지고 있는 게 낫겠습니다.”
콜러의 휠체어가 급하게 왼쪽으로 돌더니, 상패와 표창장들로 장식된 넓은 복도로 들어섰다. 특히 눈에 띄는 커다란 명판이 복도 입구를 차지하였다. 랭던은 천천히 지나가며 황동명판에 새겨진 글을 읽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상 (RS ELECTRONIA AWARD)
디지털 시대에 문화적 기술혁신을 이룬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발명으로 팀 버너스 리와 CERN에게 이 상을 수여함.
‘완전히 엿 먹었군.’
명판의 글을 읽으며 랭던은 생각했다.
‘이 사람 말이 농담이 아니었어.’
랭던은 항상 웹이 미국인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책을 안내하는 웹사이트와 낡은 매킨토시 컴퓨터에서 온라인으로 탐색하는 루브르 박물관, 엘 프라도를 가끔씩 들여다보는 것이 전부인, 웹에 대한 그의 지식은 협소했다.
다시 기침을 하고 입을 닦으며 콜러가 말했다.
“웹은 재택 컴퓨터의 네트워크로서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부서의 과학자들이 일상의 발견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어요. 물론 온 세상은 웹이 미국의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인상입니다만.”
랭던은 복도 아래로 따라갔다.
“왜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지 않으십니까?”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콜러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소한 기술에 따르는 사소한 오해일 뿐이니까. 우리 연구소는 세상 모든 컴퓨터를 연결하는 것보다 위대한 일을 합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거의 매일같이 기적을 만들어내지요.”
랭던은 콜러에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적이요?”
기적이라는 단어는 확실히 하버드 대학교의 패어차일드 과학연구동 주변에 돌아다니는 어휘가 아니었다. ‘기적’은 신학대학을 위해 남겨진 단어였다.
“회의적인 것 같군요. 나는 당신이 종교기호학자라고 생각했는데. 기적을 믿지 않습니까?”
콜러가 물었다.
“기적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랭던이 대답했다.
‘특히 과학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기적에 대해서는 더더욱 생각해보지 않았지.’
“어쩌면 기적이라는 말을 내가 다른 의미로 쓴 것인지도 모르죠. 나는 그저 당신의 용어로 말하려고 한 것뿐입니다.”
“제 용어요?”
랭던은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실망시키려는 뜻은 아니지만, 저는 종교적인 기호학을 연구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사제가 아니라 학자라는 뜻입니다.”
콜러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더니 랭던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약간은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물론이오. 내가 이렇게 단순해요. 증상을 분석하기 위해서 암을 앓을 필요는 없지요.”
랭던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복도를 내려가며 콜러는 이해가 된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랭던 씨, 당신과 나는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것 같습니다.”
왠지 랭던은 콜러의 그 말이 미심쩍었다.
두 사람이 서둘러 가는 길에 랭던은 앞쪽에서 뭔가 깊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벽을 타고 진동하는 그 소리 또한 점점 분명해졌다. 소리는 복도 맨 끝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소리가 뭡니까?”
결국 랭던은 소리를 질러가며 물었다. 활화산에 접근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자유낙하 튜브.”
콜러의 공허한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미약하게 들려왔다. 콜러는 다른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랭던도 묻지 않았다. 그는 지쳤고, 막시밀리안 콜러는 방문자에게 따뜻한 환대를 베푸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랭던은 자기가 왜 여기 왔는지를 상기했다.
‘일루미나티’
이 거대한 시설 어딘가에 시체가 있다. 시체에 찍힌 낙인, 그 상징을 보기 위해 4,800킬로미터를 날아온 것이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발바닥으로 소리의 진동이 전해졌다. 이 과정을 지나니 오른쪽에 조망실이 나타났다. 두꺼운 창유리가 끼워진 입구 네 개가 벽에 파묻혀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잠수함의 창문 같았다. 랭던은 걸음을 멈추고, 입구로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랭던은 살면서 몇몇 이상한 것도 보아왔지만, 이것이 가장 기이했다. 랭던은 환각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의아해서, 서너 번 눈을 깜박거렸다. 그는 원형으로 생긴 거대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안에서는 사람들이 무게가 없는 듯 둥둥 떠다녔다. 세 사람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손을 흔들더니 공중에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이런 세상에. 내가 지금 오즈의 나라에 온 거로군.’
랭던은 생각했다.
방바닥에는 눈이 육각형인 거대한 철사망 같은 그물이 깔려 있었다. 그물망 아래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금속 프로펠러였다. 프로펠러는 눈으로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맹렬하게 회전했다.
랭던을 기다리기 위해 멈춘 콜러가 말했다.
“자유낙하 튜브는 실내 스카이다이빙 시설입니다. 직원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지요. 수직으로 움직이는 바람 터널입니다.”
랭던은 감탄한 채 들여다보았다. 자유낙하를 즐기는 사람들 중 한명은 뚱뚱한 여자였다. 여자는 랭던이 들여다보는 창쪽으로 다가오려고 움직였다. 프로펠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기류에 악전고투했지만, 여자는 싱긋 웃으며 기분이 최고라는 듯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랭던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여자에게 같은 동작을 취해주었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는 것이 남자의 왕성한 생식력을 자랑하는 고대의 남근 상징이라는 것을 여자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뚱뚱한 여자만이 낙하산 모형처럼 생긴 것을 입고 있음을 랭던은 놓치지 않았다. 여자 위에서 부푼 미니 낙하산은 장난감 같았다.
랭던이 콜러에게 물었다.
“여자가 달고 있는 저 작은 낙하산은 무슨 용도입니까? 낙하산 지름이 일 미터도 안 되어 보입니다.”
콜러가 대답했다.
“마찰이 공기역학을 줄여서 프로펠러 바람이 그녀를 들어올릴 수 있는 거지요.”
콜러는 다시 복도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 평방미터의 저항은 낙하하는 물체의 속도를 이십 퍼센트나 늦춰줍니다.”
랭던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랭던은 그날 밤 늦게,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다른 나라에서 콜러가 지금 말해준 정보 덕분에 자기가 목숨을 구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콜러와 랭던이 CERN 복합단지 후미에서 강하게 내리쬐는 스위스의 햇빛 속으로 나왔을 때, 랭던은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의 광경은 아이비리그 대학의 캠퍼스 같았다.
푸른 풀밭이 광활한 저지대 아래로 쭉 펼쳐졌다. 낮은 곳에는 벽돌로 지어진 기숙사들과 작은 길들이 있고, 기숙사와 길로 둘러싸인 안뜰에는 사탕단풍나무 군락이 여기저기서 자랐다. 학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책을 잔뜩 들고서 건물을 드나들었다. 머리를 길게 기른 히피풍의 두 사람이 프리스비를 이리저리 던지며 풀밭에서 놀고 있는 모습은 한결 대학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은 기숙사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말러의 <4번 교향곡>을 즐기면서 놀았다.
“이 건물들은 우리 연구소의 주거용 기숙사입니다.”
기숙사 건물 쪽으로 휠체어의 속력을 올리며 콜러가 설명했다.
“여기에는 삼천 명이 넘는 물리학자가 있습니다. CERN은 세계 입자물리학자의 절반 이상을 단독으로 고용했지요. 입자물리학자는 지상에서 가장 밝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독일 인, 일본 인, 이탈리아 인, 네덜란드 인, 어느 나라 사람이나 있을 거요. 우리 연구소의 물리학자들은 오백 개 이상의 대학교와 육십 개 나라의 국적을 대표하니까.”
랭던은 감탄했다.
“그럼 모두 어떻게 의사소통을 합니까?”
랭던은 과학의 보편적인 언어는 수학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 점을 내세워 논쟁하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길을 내려가는 콜러를 랭던은 얌전히 따라갔다.
기숙사 건물까지 반쯤 갔을 때, 젊은 남자가 랭던을 살짝 밀치고 지나갔다. 남자의 티셔츠에는 이런 메시지가 선명했다.
‘배짱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NO GUT, NO GLORY!)’
랭던은 신기해하며 남자의 뒤를 쫓았다.
“배짱(GUT)?”
“대통일이론(GUT: Grand Unified Theory), 모든 것의 이론이오.”
콜러가 빈정댔다.
“그렇군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랭던이 대답했다.
“입자물리학을 잘 압니까, 랭던 씨?”
랭던은 어깨를 으쓱했다.
“일반물리학에는 익숙합니다. 낙하하는 물체라든가, 그런 것이죠.”
젊은 시절, 고공 다이빙 경험을 통해 랭던은 중력이라는 놀라운 힘에 심오한 존경심을 품었다. 랭던이 물었다.
“입자물리학은 원자에 대한 연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콜러는 머리를 저었다.
“원자는 우리가 다루는 것과 비교하면 행성과 같아요. 우리의 관심은 원자의 핵이오. 원자의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콜러가 다시 기침을 해댔다. 어딘가 아파 보였다.
“CERN의 사람들은 시간이 시작된 이래, 인류가 계속 반복해온 똑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거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그런 질문이 물리학 실험실에서 나온다는 말씀입니까?”
“놀랐군요.”
“그렇습니다. 그런 것은 정신적인 질문처럼 보이니까요.”
“랭던 씨, 모든 질문이 한때는 정신적이었습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 정신과 종교는 과학이 이해하지 못한 차이를 메우기 위해서 함께 불려왔지요. 옛날에는 태양이 뜨고 지는 이유가 헬리오스와 불타는 전차 때문이라고들 생각했어요. 지진과 거대한 파도는 포세이돈의 분노이고요. 과학은 그런 신들이 허위 우상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모든 신을 가짜 우상이라는 것이 증명될 거요. 오늘날 과학은 인간이 궁금해 하는 거의 모든 질문에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해결 못한 몇몇 질문만 남았지요. 비밀스럽고 심원한 질문들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가? 삶의 의미와 우주는 무엇인가?”
랭던은 감탄했다.
“그러면 그런 질문들이 CERN에서 답하고자 노력하는 것들이란 말입니까?”
“그래요. 우리가 대답하고자하는 질문들입니다.”
두 사람이 주거용 기숙사의 안뜰을 돌아나가는 동안 랭던은 침묵에 잠겼다. 그들이 걸어갈 때, 프리스비가 머리 위로 날아와 그들 앞에 떨어졌다. 콜러는 무시하고 계속 갔다.
안뜰을 가로질러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던져주겠소?”
랭던이 돌아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 든 남자가 ‘파리 대학교’라고 씌어진 담복을 입고서 랭던에게 손을 흔들었다. 랭던은 프리스비를 집어 들어 정확하게 던졌다. 남자는 능숙하게 프리스비를 낚아채 몇 번 흔든 뒤, 어깨 너머로 파트너에게 날려 보냈다. 그리고 랭던에게 소리쳤다.
“고맙소!”
랭던이 마침내 콜러를 따라잡자 그가 말을 건넸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지금 노벨상 수상자, 조르주 샤르파크와 어울린 거요. 다중선 비례검출기의 발명가이지요.”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 좋은 날이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