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두 남자가 만났다. 방은 어두웠고 중세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돌로 만든 방이다.
“어서오게.”
방의 주인인 듯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는 보이지 않게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성공했나?”
“네,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거무스름한 형체의 인물이 대답했다. 그의 말투는 바위벽처럼 단단했다.
“그럼 누구의 책임인지 밝혀낼 의심도 여지도 없이?”
“없습니다.”
“훌륭해. 내가 요구한 것은 가지고 왔나?”
석유처럼 매끄럽고 검은 암살자의 눈이 번쩍였다. 그는 무거워 보이는 전자장치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어둠 속의 남자는 기쁜 듯 칭찬했다.
“잘했다.”
“조직에 봉사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입니다.”
암살자가 대답했다.
“곧 이 막이 시작될 것이다. 가서 좀 쉬거라. 오늘 밤 우리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캘러헌 터널을 가르고 빠져나온 로버트 랭던의 사브 900S 자동차가 보스턴 항구의 오른편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턴 항구는 로건 공항근처에 있었다. 방향을 살피던 랭던은 공항으로 가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낡은 이스턴 항공사 빌딩을 지나 왼쪽으로 차를 돌렸다. 진입로에서 270미터 떨어진 곳에 격납고가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격납고에는 ‘4’라는 숫자가 크게 칠해져 있었다. 랭던은 사브를 주차장에 세우고 차에서 빠져나왔다.
푸른 비행제복을 입은 둥근 얼굴의 남자가 건물 뒤에서 나타났다.
“로버트 랭던 씨입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어느 지방 사람인지 분간하기 힘든 억양이었다.
“제가 랭던입니다.”
자동차 문을 잠그며 랭던이 대답했다.
“완벽한 타이밍입니다. 저도 방금 착륙했거든요. 저를 따라오시죠.”
남자가 말했다.
두 사람이 건물을 돌아갈 때 랭던은 긴장되었다. 그는 비밀스런 전화나 낯선 사람과의 은밀한 만남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무슨 일을 부탁받을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평소 강의할 때의 옷차림으로 나왔다. 치노 바지에 터틀넥, 그리고 해리스 트위드 재킷. 얼굴이 둥근 남자와 함께 걸어가면서, 재킷 주머니에 넣은 팩스 종이를 생각했다. 그 장면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조종사가 랭던의 근심을 알아챈 것 같았다.
“비행기 타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죠, 안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랭던이 대답했다.
‘내게는 낙인이 찍힌 시체가 문젯거리지. 비행기 타는 거야 잘 처리할 수 있어.’
조종사는 격납고 끝으로 랭던을 안내했다. 두 사람은 구석을 돌아 활주로로 접어들었다. 행던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아스팔트 활주로에 서 있는 비행기를 멍하니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저걸 타는 겁니까?”
조종사가 싱긋 웃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랭던은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마음에 드느냐고요? 도대체 저게 뭡니까?”
그들 앞에 있는 비행기는 거대했다. 위를 깎아 완전히 평평하게 만든 점만 제외하면 언뜻 우주왕복선을 연상시켰다. 활주로에 버티고 있는 모습이 꼭 거대한 쐐기 같았다. 랭던은 처음에는 자신이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앞에 놓인 운송 수단은 비행이 가능한 뷰익자동차처럼 보였다. 이 비행기에는 날개라는 것이 없었다. 뭉툭한 지느러미 같은 것 두 개가 비행선 동체 뒤편에 달려 있고, 한 쌍의 방향타가 훔에 솟아 있을 뿐이다. 비행선의 나머지 부분은 그냥 선체였다. 약 60미터 길이에 창문도 없고 오로지 몸통만 있는 선체였다.
“이십오만 킬로미터를 비행할 수 있는 연료가 꽉 채워져 있습니다.”
갓 태어난 자식을 자랑하는 아버지처럼 비행기 조종사가 설명했다.
“수소 윤활유로 비행하는 겁니다. 비행선의 외피는 실리콘카바이드섬유로 만든 티타늄을 소재로 썼답니다. 단위 무게당 추진력이 이십이지요. 다른 대부분의 제트기는 칠이랍니다. 소장님이 랭던 씨를 급히 만나고 싶은 게 분명합니다. 소장님이 이놈을 내보내는 일은 흔치 않거든요.”
“이게 날아가는 겁니까?”
랭던이 무었다.
“네, 그렇습니다.”
조종사는 미소지었다. 그러고는 아스팔트 활주로를 가로질러 비행선 쪽으로 랭던을 이끌었다.
“좀 놀랍게 생겼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익숙해지실 겁니다. 앞으로 오 년만 지나면 랭던 씨가 보실 모든 비행기는 이놈들일 겁니다. HSCT, 초고속민간항공기(High Speed Civil Transport)의 약자죠. 우리 연구소가 첫째로 이놈을 보유한 측에 들 겁니다.”
‘어떤 연구소의 빌어먹을 작품이로군.’
랭던은 생각했다. 조종사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이놈은 보잉X-33의 표준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다른 명칭들이 수십 개 있어요. 미국은 미항공우주비행기, 러시아는 스크램제트, 영국은 호돌이라고 부르죠. 미래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공부문에 이용되기까지는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죠. 그렇게 되면 기존의 제트 비행기와는 작별인사를 하셔야 될 겁니다.”
랭던은 걱정스럽게 비행선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기존의 비행기가 더 마음에 드는데요.”
조종사는 트랩 위로 올라가라는 몸짓을 했다.
“이쪽으로 가시죠, 랭던 씨.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몇 분 후에 랭던은 텅 빈 객실에 앉아 있었다. 조종사는 랭던을 맨 앞줄에 앉히고, 비행기의 앞쪽으로 사라졌다.
비행기의 선실은 일반 비행기의 객실을 놀랍도록 넓힌 모습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창문이 없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랭던을 불편하게 했다. 그는 평생 동안 약간의 폐쇄공포증에 시달렸다. 어렸을 때의 사고 후유증에서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폐쇄공간에 대한 혐오감은 줄어드는 법 없이 항상 그를 좌절시켰다. 심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랭던은 라켓볼이나 스쿼시처럼 닫힌 공간에서 즐기는 스포츠를 피했다. 경제적인 학교 임원숙소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었지만, 통풍이 잘되고 천장이 높은 빅토리아 풍의 집을 구입하기 위해 거금을 기꺼이 지불했다. 랭던은 예술세계에 대한 자신의 관심이 박물관의 널찍하고 열린 공간을 사랑한 어린 소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가끔 생각했다.
아래에서 엔진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오며, 비행선 동체에 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랭던은 어렵사리 침을 삼키고 기다렸다. 비행기가 택시처럼 빠르게 출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 위에서는 컨트리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랭던의 옆 벽에 걸려있는 전화기가 두 번 삑삑거렸다. 랭던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랭던씨, 편안하십니까?”
“전혀 그렇지 못하군요.”
“그냥 마음을 편히 먹으세요. 한 시간이면 목적지에 도착할 겁니다.”
“그런데 목적지가 정확히 어디입니까?”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전혀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물었다.
“제네바입니다. 제네바에 있는 연구소입니다.”
엔진의 회전속도를 높이며 조종사가 대답했다.
“제네바라.”
기분이 나아지면서 랭던은 조종사의 말을 받았다.
“뉴욕 위쪽이군요. 세네카 호수 근처에 제 가족이 살긴 합니다만, 거기에 물리학 연구소가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조종사가 웃었다.
“뉴욕 주의 제네바가 아닙니다. 랭던씨. 스위스에 있는 제네바를 말하는 겁니다.”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스위스?”
랭던은 맥박이 뛰는 것을 느꼈다.
“연구소는 한 시간 거리라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랭던씨. 이 비행기는 마하 15로 나니까요.”
조종사가 껄껄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