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물리학자인 레오나르도 베트라는 살이 타는 냄새를 맡았다. 자기 살이 타는 냄새였다. 공포에 질린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어둠 속의 인물을 올려다보았다.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거요?”
“암호.”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재빨리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가지고 있지 않…”
침입자는 다시 하얗게 달구어진 물체를 베트라의 가슴 깊숙이 짓눌렀다. 살을 지지는 소리가 났다. 베트라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암호라는 것은 없소!”
베트라는 무의식의 세계로 자신이 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남자가 눈을 부라렸다.
“그것 참 유감이군.”
베트라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둠이 점점 밀려왔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라면 자신을 공격하는 남자는, 원하는 것을 결코 얻지 못할 거라는 점이었다.
남자가 칼을 꺼내들더니 베트라의 눈앞에 가져갔다. 칼날이 허공에서 맴돌았다. 신중하게, 그리고 정확하고 신속하게.
“신의 사랑을 위해!”
베트라는 소리쳤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집트 기자의 대 피라미드를 오르는 계단 꼭대기에서 젊은 여자가 웃으며 이름을 불렀다.
“로버트, 서둘러요! 좀더 젊은 남자랑 결혼할 걸 그랬어!”
어자의 웃음은 마술같았다. 로버트는 따라잡으려고 애썼지만 다리가 마치 돌처럼 느껴졌다. 그는 애원했다.
“기다려, 제발…”
피라미드를 오를수록 시야가 흐려졌다. 귀에서는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에게 닿아야 한다!’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여자가 있던 자리에는 썩은 이의 늙은이가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늙은이는 입술을 내밀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사막 너머까지 울려퍼지는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로버트 랭던은 악몽에서 번쩍 깨어났다. 침대 옆의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랭던은 멍하니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로버트 랭던 씨와 통화하고 싶습니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랭던은 침대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썼다.
“제가… 로버트 랭던입니다.”
디지털시계를 힐끔 보았다. 새벽 5시 18분.
“당신을 당장 만나야겠습니다.”
“누구십니까?”
“내 이름은 막시밀리안 콜러입니다. 입자물리학자요.”
“뭐라고요?”
랭던은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당신이 찾는 랭던이라는 사람이 제가 확실합니까?”
“당신은 하버드 대학교의 종교도상학 교수입니다. 그리고 기호학에 관한 세 권의 책을 저술했고…”
“지금이 몇 시인지 아십니까?”
“미안합니다. 당신이 좀 봐주었으면 하는 게 있는데, 전화상으로는 의논드릴 수가 없군요.”
이제야 감이 잡힌다는 투의 소리가 랭던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다. 종교기호학에 관한 책을 쓰는데 따르는 위험 중 하나는 광신자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이다. 그들은 신에게서 받았다는 기호를 랭던이 확인해주기를 바란다. 지난달에는 오클라호마에 사는 어떤 스트리퍼가, 만일 랭던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자기 침대에 신비롭게 나타난 십자가의 진위를 판별해주면, 그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멋진 섹스를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랭던은 그 침대 이불보를 ‘털사의 수의(壽衣)’라고 불렀다.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아셨습니까?”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랭던은 정중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인터넷에서요. 당신 책에 대한 웹사이트에서.”
랭던은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에는 집 전화번호 따위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분명 이 남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겠소.”
남자가 고집을 피웠다. 이제 랭던은 화가 점점 치밀었다.
“미안합니다만, 저는 정말…”
“지금 즉시 집에서 출발한다면, 아마 여기에…”
“나는 어디에도 안 갑니다! 지금은 새벽 다섯 시예요!”
랭던은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다시 잠에 빠져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잠은 달아났다. 랭던은 마지못해 가운을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랭던은 매사추세츠에 있는 빅토리아 풍의 집에서 맨발로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뜨거운 네스퀵 초콜릿우유 한 잔을 만들어 마셨다. 뜨거운 초콜릿우유는 불면을 다스리는 랭던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퇴창을 통해 스며드는 4월의 달빛이 동양산 카펫 위에서 노닐었다. 동료들은 가끔씩 그의 집이 일반 가정이라기보다는 인류학 박물관 같다는 농담을 던졌다. 선반에는 세계 도처에서 모은 종교 공예품이 가득했다. 가나의 에쿠아바(ekuaba), 스페인의 금십자가, 에게 해의 키클라데스 군도의 우상. 심지어는 젊은 전사의 상징인 보르네오의 진귀한 보커스(boccus)도 있었다. 이것은 영원한 젊음의 상징이다.
놋쇠로 만든 힌두교 수도사의 상자에 앉아서, 랭던은 초콜릿의 온기를 은미했다. 퇴창에는 그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유령처럼 뒤틀리고 창백한 이미지…
랭던은 생각했다.
‘나이 든 유령.’
그 모습은 자신의 활기찬 젊은 정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껍데기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을 잔인하게 일깨워주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보면, 랭던은 잘생겼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마흔 살의 랭던은 여자 동료들의 말대로 지적인 매력을 풍겼다. 굵은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잿빛 머리카락, 탐구하는 듯한 푸른 눈동자, 깊고 매혹적인 목소리, 그리고 대학 운동선수 같은 강하고 여유로운 미소,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내내 다이빙 선수였던 랭던은 여전히 수영선수 같은 몸매를 유지하였다. 183센티미터의 키에 잘 단련된 몸, 대학 수영장에서 하루에 50번씩 왕복 수영을 하며 세심하게 관리한 덕택이었다.
랭던의 친구들은 항상 그를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여겼다. 과거의 세월에 사로잡힌 남자. 주말에는 청바지를 입고 학생들과 컴퓨터 그래픽이나 종교 역사를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시간에는 해리스 트위드와 페이즐리 조기를 입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강의를 부탁받은 박물관 개관식에서 찍은 듯한 그의 사진이 고품격 예술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무서운 선생에다 엄격한 원칙론자이지만, 랭던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명중한 재미를 지닌 잃어버린 예술’로서 받아들인 첫 인물이었다. 그의 강의는 전염성이 강하고 열광적이었으며, 그는 휴식을 음미할 줄 알았고 학생들에게 동료애를 주었다. 캠퍼스에서 랭던의 별명은 ‘돌고래’였다. 유순한 천성과, 수영장에 뛰어들면 상대팀을 완전히 압도하는 수구 경기에서 보여준 전설적인 실력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랭던은 홀로 앉아 멍하니 어둠을 응시했다. 집 안의 고요가 다시 한 번 깨졌다. 이번에는 팩스가 울리는 소리였다. 짜증내는 것도 지쳐서 피곤한 너털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랭던은 생각했다.
‘신(神)의 사람들. 그들의 메시아를 기다린 이천 년의 세월,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기다린다.’
지친 기색으로 빈 우유 컵을 부엌에 갖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참나무 판으로 만든 서재로 걸어갔다. 방금 들어온 팩스가 수신함에 있었다. 랭던은 한숨을 쉬며 팩스 용지를 쳐다보았다. 즉시 메스꺼워졌다.
종이의 이미지는 인간의 시체였다. 알몸이었고 목이 완전히 뒤틀린 채 얼굴이 뒤쪽으로 돌아갔다. 희생자의 가슴에 심한 화상 자국이 보였다. 누군가 이 사람에게 낙인을 찍은 것이다. 단 한 단어. 랭던이 익히 아는 단어였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기분으로 랭던은 화려한 문자 도안을 응시했다.
“일루미나티.”
가슴이 두방망이질 쳐 말조차 더듬거렸다.
‘그럴 리 없어…’
자신이 목격한 것을 두려워하면서, 랭던은 느린 동작으로 팩스 용지를 180도 돌렸다. 그리고 글자의 위아래를 바꿔놓고 쳐다보았다.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트럭에 치인 것만 같았다. 자기 눈을 믿기 어려워 랭던은 종이를 다시 돌렸다. 화상 자국의 오른쪽이 위로 가게 해서 읽어보고, 다시 반대로 들고서도 살펴보았다.
“일루미나티.”
랭던은 중얼거렸다. 한대 얻어맞은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잠시 당혹스러웠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이 팩시밀리에서 깜박거리는 붉은 빛에 이끌렸다. 이 팩스를 보낸 자가 누구든, 아직 전화선을 붙들고 있었다. 대화를 기다리면서. 랭던은 오랫동안 깜박이는 불빛을 응시했다. 그런 다음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제 관심이 좀 생기셨습니까?”
마침내 랭던이 수화기를 들자 아까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습니다. 그쪽 말대로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아까 말하려고 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확고하며 감정이 없었다.
“나는 물리학자요.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요. 이 살인 사건은 우리 연구소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랭던 씨도 시체를 보았겠죠.”
“저를 어떻게 찾아낸 것입니까?”
랭던은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은 팩스 종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미 말했을 텐데요. 인터넷 웹사이트입니다. 랭던 씨의 책, <일루미나티 비밀결사의 기술>이라는 책의 웹사이트에서 알아냈습니다.”
랭던은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그의 책은 주류 독서계에는 별로 유명하지 않았지만, 온라인에서는 꽤 잘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건 남자의 주장은 앞뒤가 들어맞지 않았다.
“그 웹사이트에 저와 접촉할 수 있는 정보는 없습니다. 그 점은 확실히 알고 있죠.”
랭던은 대꾸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사용자 정보를 추출하는 데 매우 유능한 사람들이 우리 연구실에서 일하지요.”
랭던은 언짢아졌다.
“당신네 연구소가 인터넷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을 아는 곳처럼 들리는군요.”
남자가 되받았다.
“당연히 그럴 겁니다. 인터넷을 창조한 게 우리니까요.”
남자의 목소리에 담긴 뭔가에서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당신을 만나야겠습니다.”
남자가 고집했다.
“전화상으로 의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연구소는 보스턴에서 비행기로 고작 한 시간 거리요.”
랭던은 서재의 흐릿한 불빛 속에 서서 손에 든 종이를 분석했다. 종이에 담긴 형상은 엄청난 것이다. 세기의 금석학적인 발견일 수도 있다. 하나의 상징에서 그 동안 연구에 바친 10년의 세월을 확인받을 수 있는 이미지였다.
“급합니다.”
남자가 재촉했다. 랭던의 시선은 낙인에 사로잡혔다.
‘일루미나티’
랭던은 읽고 또 읽었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화석 같은 상징, 즉 고대 문서와 역사적 풍문에 바탕을 두고 있다. 랭던은 살아 있는 공룡을 대면하게 된 고생물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랭던 씨를 위해 비행기를 보내려고 미리 허가까지 받아두었습니다. 이십 분 후에 비행기가 보스턴에 도착할 겁니다.”
랭던은 입이 말랐다.
‘한 시간 비행…’
“앞서 행동한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랭던 씨가 곡 여기로 와 줘야겠습니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랭던은 다시 팩스를 보았다. 검은색 잉크로 찍힌 고대의 신화. 거기에 담긴 암시는 놀라웠다. 랭던은 멍하니 퇴창 너머를 응시했다. 뒤뜰의 자작나무 사이로 새벽이 밝아왔다. 오늘 아침의 정경은 어딘가 평소와 달라 보였다.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며, 랭던은 자기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자각했다.
“당신 말대로 하겠습니다. 어디에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