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
파리, 오전 5시
오전 5시는 파리의 거리들이 텅텅 비어 있을 시간이었다. 지하철 운행은 5시 30분이나 되어야 시작되었으므로, 앙리 까나락은 출근길의 교통수단을 그가 일하는 제과점의 수석 회계원인 아그네스 당불룽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그네스는 어김없이, 매일 아침 4시 45분이면 그의 아파트 앞에 5년 된 하얀색 시뜨로엥 승용차를 대기시켰다.
미셸 까나락은 매일같이 침실 창문을 통해 자기의 남편이 길거리로 나서서 시뜨로앵 승용차에 올라타고 아그네스와 함께 차를 몰아 떠나는 모습을 지켜 보곤 했다. 그런 다음에는 잠옷 끈을 조이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눈을 뜬 채로 누워서 앙리와 아그네스에 대해 생각하였다.
아그네스는 마흔아홉 살 된 노처녀로 안경을 쓴 회계원이었고,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여자는 절대로 못 되었다. 그런데 앙리가 미셸에게서 느끼지 못한 어떤 것을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을까? 미셸은 그녀보다 훨씬 더 젊었고, 열 배는 더 예뻤고, 거기에다 멋진 몸매를 소홀함이 없었다. 물론 그것이 마침내는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된 이유였지만.
미셸이 전혀 눈치챌 수 없는 것은, 앙리가 그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준 장본인이 아그네스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제빵공으로서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고용하도록 사장을 설득하기까지 해서 말이다. 그 제과점 주인은 르벡이라는 왜소하고 성질이 급한 사내였는데, 새 직원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특히 자기가 그를 가르치는 데 드는 비용까지 감당해야 될 경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그네스가 자기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는다면 그만두겠다고 위협을 하자, 그는 당장에 생각을 바꾸었다. 아그네스 같은 회계원을 특히 그녀처럼 세법을 피해 갈 방법을 아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앙리 까나락은 고용이 되었고, 빠른 속도로 일을 배웠고, 써보니 믿을 만했고, 다른 종업원들처럼 끊임없이 봉급을 올려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달리 말해서 그는 이상적인 고용인이었고, 그랬기에 르벡은 그를 중역으로 승진시킬 때도 아그네스와 실랑이를 벌일 필요가 없었다.
르벡이 제기했던 단 한가지 의문은 그녀가 어째서 앙리 까나락 같은 그저 그런 남자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려고까지 했느냐 하는 것이었지만, 아그네스는 그의 말을 한마디로 딱 잘랐었다.
“예스예요, 노예요, 르벡 씨?”
그 나머지는 과거지사였다.
신호등이 바뀌려고 깜빡거리자 아그네스가 속도를 늦추고 까나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가 차에 오를 때 얼굴에 멍이 든 것을 보았는데 그 상처가 이제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쳐 더욱 흉칙해 보였다.
“또 술을 마셨군요.”
아그네스의 목소리는 차갑고 냉혹하기까지 했다.
“미셸이 임신을 했어.”
그가 눈길을 앞쪽으로 고정시킨 채,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을 지켜보면서 대답했다.
“즐거워서 취한 거예요, 비참해서 취한 거예요?”
“취했던 게 아냐. 어떤 놈이 나를 공격했어.”
“누가요?”
아그네스가 그를 돌아보았다.
“전에는 본 적이 없는 놈이야.”
“그래서 어떻게 했죠?”
“달아났어.”
까나락은 여전히 앞쪽 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늙어서 철이 드는 모양이군요.”
“이건 얘기가 달라…”
까나락이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스텔라 레스토랑에 있었어. 생앙뜨완느 가에 있는 거 말야. 집으로 가던 길에 신문을 읽고 에스프레소나 한 잔 마시려고. 그런데 별안간 아무 이유도 없이 어떤 녀석이 달려들더니 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두들겨패기 시작하더라구. 웨이터들이 그 자를 떼어 냈고 나는 달아났어.”
“그 자가 왜 당신을 찍었죠?”
“모르겠어.”
까나락은 다시 길 앞쪽을 바라보았다. 동이 터오는 중이었고, 자동타이머들이 가로등을 끄고 있었다.
“그놈은 나중에도 내 뒤를 쫓아왔어. 센 강을 건너서 지하철 역까지 말야. 나는 간신히 그놈을 따돌리고 지하철에 올라탔어…”
아그네스가 개와 함께 걷고 있는 어떤 남자 앞에서 속도를 늦췄다가 그가 지나가자 다시 속도를 높였다.
“뭐라구요?”
“나는 지하철 창문으로 그놈이 경찰에 붙들리는 걸 봤어.”
“그러니까, 미친 사람이었군요. 그리고 경찰은 할일을 한 거구요.”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
아그네스가 그를 돌아다보았다. 그가 아직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어째서죠?”
“그놈은 미국인이었어.”
폴 오스본이 끌레베 가에 있는 그의 호텔로 돌아온 것은 새벽 12시 50분이었다. 그로부터 십오 분 뒤, 그는 자기 방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오스본의 고문 변호사는 그를 다른 변호사에게 연결시켜 주었고, 그 변호사는 자기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사람이 전화를 걸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1시 20분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파리에 있었고, 이름은 장 빠까르였다.
그로부터 다섯 시간 반이 약간 더 지나서, 장 빠까르는 오스본과 호텔 식당에 마주앉아 있었다. 마흔두 살 나이 치고는 보기 드물게 건장한 그는 짧게 친 머리에, 강인한 체격으로 헐렁한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넥타이는 매지 않은 채 와이셔츠 목 부분을 터놓고 있었는데, 오스본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목이 가로질러 대각선으로 난 3인치 가량의 들쭉날쭉한 흉터를 드러내려고 일부러 그런 것 같았다.
장 빠까르는 한때 외인 부대원이었다가 다음에는 앙골라, 타일랜드, 그리고 엘살바도르에서 용병 노릇을 했었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설 탐정 회사라고 알려진 콜브 인터내셔널 사의 직원이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객에게는 그거면 대체로 충분합니다.”
오스본은 빠가르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웨이터가 뜨거운 커피와 크라쌍(초승달 모양의 롤빵)이 담긴 조그만 쟁반을 가져다 놓고 갔지만, 장 빠까르는 어느것에도 손을 대지 않고 오스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 설명을 해드리지요.”
그가 말을 이었다. 그의 영어는 악센트가 엉망이었지만 알아들을 만했다.
“콜브 인터내셔널의 모든 조사자들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고 나무랄 데 없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직원으로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독립된 계약자로서 일을 합니다. 말하자면 지역 사무소에서 일을 의뢰받아 청구된 금액을 분할하는 거지요.
그 외에는 회사 측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 쪽에서 달리 요청을 하지 않는 한, 전혀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고객의 비밀은 우리에겐 종교나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를 일 대 일로 조사자와 고객 사이에서만 지킨다는 게 그걸 보장하지요. 선생께서도 때에 따라서는 최고 기밀에 속하는 정보라도, 그 정보를 얻기 위해 기꺼이 돈을 치르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게 그 정보가 이용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장 빠까르가 손을 들어 지나가는 웨이터를 불러세우고 프랑스 어로 물을 한 잔 청했다. 그리고 다시 오스본에게 콜브 사에서 수행하는 일의 나머지 과정을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어떤 조사가 완료된 뒤에는 부정적인 것들까지 포함해서 적은 것, 복사한 것, 또는 사진으로 찍은 것이 모두 고객에게 전해지고, 그 다음 조사자는 콜브 사의 지역 사무소에 시간 및 경비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사무소에서는 이를 토대로 고객에게 청구서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물이 왔다.
“메르시(고맙소).”
빠까르가 한 모금을 마신 다음,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오스본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선생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간단 명료하고 개별적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오스본은 미소를 지었다. 과정뿐 아니라 그 사설 탐정의 타입과 태도도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는 누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고 장 빠까르가 바로 그런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잘못된 사람에게 잘못 접근하면 그가 쫓는 사내는 도망을 치고 결과적으로는 모든 일을 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다른 문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오스본으로서는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장 빠까르가 먼저 말을 꺼낸 덕분에 그 곤란한 문제는 저절로 없어졌다.
“저는 선생께서 왜 이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지 묻고 싶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제게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겁니다.”
오스본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장 빠까르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40분 동안 오스본은 자기가 뒤를 쫓았던 남자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것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생앙뜨완느 가에 있는 레스토랑, 거기에서 그를 보았던 날짜와 시간, 그가 앉아 있던 테이블, 그가 마시고 있던 음료, 그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 나중에 그가 아무도 자기를 뒤쫓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택했던 길, 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그가 급하게 뛰어들었던 생제르맹 가의 지하철 역.
눈을 감고 그 사내를 눈앞에 그리면서, 오스본은 바로 몇 시간 전 여기 파리에서 보았던 그의 신체적 특징들과 여러 해 전 보스턴에서 자기 아버지가 살해되던 순간에 보았던 그의 모습을 기억이 나는 대로 상세히 열거했다. 그러는 동안 장 빠까르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간간히 질문을 하거나 세부적인 사항을 되풀이하게 했는데, 그러면서도 메모는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일이 끝나자 오스본은 기억을 떠올려 메모지에 그 사내의 얼굴 모습을 그려 빠까르에게 건네주었다.
깊숙이 박인 눈, 네모진 턱, 왼쪽 눈 밑에서부터 광대뼈를 가로질러 윗입술까지 날카롭게 그어진 들쭉날쭉한 흉터, 거의 직각으로 튀어나온 귀. 그 그림은 열 살짜리 아이가 그린 것처럼 조잡했다.
장 빠까르가 그것을 반으로 접어 상의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이틀 내로 제게서 보고를 받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물을 마저 마시고 걸어나갔다.
한참 동안 오스본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떻게 느껴야 할지, 또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도시에서 커피나 한잔 하려고 아무 생각 없이 들른 레스토랑, 그곳에서 생겨난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고, 그가 절대로 오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날이 온 것이었다. 갑자기 희망이 보인 것이었다! 단지 보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살인자가 그에게 선고했던 그 길고 끔찍한 속박으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거의 30년 동안, 사춘기에서부터 성인이 된 뒤에까지도, 그의 삶은 두려움과 악몽이 뒤섞인,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문이었다. 그 사건은 오스본의 생각 속으로 끈질지게 파고들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자기 잘못이며, 만일 자기가 좀더 나은 아들이고 좀더 주의가 깊었더라면 제때에 칼을 보고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는 자기의 몸으로 칼을 막아 내서라도 어떻게든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마음을 좀먹는 죄책감으로 사정없이 자신을 학대하면서 보낸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 나머지는 더욱더 어두웠고 훨씬 더 곤혹스러웠다.
소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여러 상담자들과 심리요법사들을 거쳐 전문직업의 성취라는 분명히 안전한 은신처로 들어선 뒤에도 그는 또 다른 아니, 어쩌면 더 지독한 악마와 아무 소득도 없이 싸워야 했다. 그 악마란 사랑이 얼마나 빨리 끝나 버릴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 준 그 살인자의 행위로 시작된, 몸이 마비되고 힘이 쪽 빠지는, 유기(遺棄)에 대한 공포였다. 그 두려움은 아버지가 실해되던 당시에도 현실이 되었고, 그 뒤로도 늘 현실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어머니 그리고 이모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다음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연인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도 그랬다. 그가 성인이 되어 보인 결함은 그 때문이었지만, 그로서는 비록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진실한 사랑이나 참된 우정이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이면 어디에서 인지도 모르게 그 사랑이나 우정이 또다시 자기에게서 가차없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솟아나 성난 파도처럼 그를 삼켜 버렸고, 그와 더불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불신과 질투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어떤 즐거움과 사랑과 신뢰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순전히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불시에 지워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거의 30년이 지난 뒤에 오스본은 그 질병의 원인이 밝혀졌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여기, 파리에서. 그리고 일단 발견된 이상 그는 경찰에 알리지도, 범인을 인도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고, 국가의 정의를 구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일단 발견된 이상, 이 사내는 질병 그 자체처럼 적발되어 신속하게 제거되어야 했다. 단 한가지 차이점은 이번에는 희생자가 살해자를 알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