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가 패주했다는 소식을 들은 진궁 역시 고순과 함께 정도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얼마 후 조조가 군사를 거느리고 정도성으로 갔을 때에는 이미 얼마되지 않는 여포군만 코를 훌쩍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미처 도주하지 못한 장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장료는 원술에게로 달아나 버렸다. 그 무렵 도망가던 여포는 뒤쫓아온 진궁 등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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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조조를 치러 간다!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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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주제 파악 좀 하시오! 그 정도로 털렸으면 깨닫는 게 있어야지!
지금 이 전력으로 조조와 싸울 수 있다고 보시는 게요!
지금은 도망갈 곳을 찾는 것이 급한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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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내키진 않지만 그 길 뿐인 것 같군. 
원소에게 다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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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람을 보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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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의 애처로운 SOS를 원소는 콧방귀로 답했다. 전령이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보고하자 여포의 눈에 핏발이 섰다. 쌍시옷을 곁들인 화려한 육두문자가 여포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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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서주로 가십시오.
지금 도겸에게 서주를 물려받아 다스리는 인물은 유비로 객을 극진히 대접한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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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나를 받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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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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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즉시 사람을 유비에게 보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서주가 발칵 뒤집혔다. 유비가 따뜻한 표정으로 여포의 사자에게 ‘웰컴 투 서주’ 라는 답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서주의 모든 관리들이 앞을 다투어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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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불가요! 그놈은 이리요! 늑대요!
도적놈이요! 사기꾼이요! 망할 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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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반대입니다! 여포는 이리 같은 놈입니다!
형님이 그를 서주에 들이면 반드시 검은 속을 들어내 서주를 삼키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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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여포는 의리를 모르는 인간입니다. 왜 스스로 화를 자초하려 하십니까.
즉시 군사를 보내 여포를 몰아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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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비는 속 좋은 소릴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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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포는 조조에게 패하여 갈 곳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모두들 그를 꺼리는데 나마저 버리면 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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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윽… 혀엉~님! 제발 정신 차리쇼! 여포는 숭악한 놈이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어찌하여 형님이 모르신단 말이오. 여포가 나쁜 놈인 건 상식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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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받아줄 것이니 더는 나서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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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뜻을 확고히 하자 서주의 관리들은 더는 말하지 못하였다. 머릿속으로 펼쳐지는 흉흉한 앞날에 침만 삼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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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그만 투덜거리고 나아가 여포를 영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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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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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서주성 바깥 30리 까지 나가 여포를 영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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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을 잃고 떠돌아 다닌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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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유비가 이상할 정도로 나긋나긋하게 대접하자 속으로 웬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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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따뜻하게 맞아주니 이 은혜를 어찌 갚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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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평소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공손히 답했다. 그렇게 여포와 더불어 서주로 온 유비는 곧 잔치를 열어 여포와 그의 군사들을 위로했다. 유비와 여포가 대청에 나란히 앉아 술잔을 서로 주고 받았고 서주의 관리들은 좌우로 길게 늘어앉아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술을 홀짝였다. 모두들 못마땅한 표정으로 여포를 쳐다보는 가운데 유독 인상을 구기고 있는 사내가 있었으니 그 이름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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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참으로 유쾌한 술판이오. 내 지금은 조조에게 패하여 떠돌아 다니지만 언젠가는 다시 천하를 도모할 것이니 그때 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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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같은 소리하네. 엉뚱한 짓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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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는 세상의 모든 불만을 다 짊어진 사람마냥 한껏 아니꼬운 눈으로 여포의 면상을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서주의 관리들도 장비를 도왔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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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먼 길을 오셔서 피곤하실 것이니 
소패성에서 후일을 도모하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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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패를 내어준다는 유비의 말에 서주의 관리들은 술이 목에 걸려 컥컥 거렸다. 그리고는 유비를 우러러 보았다. 그 끝없는 자비심에 경의를 표하면서… 그런 주위의 냉기류를 알 리 없는 여포가 눈치 없는 소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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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날 조조의 연주땅을 습격하여 오늘의 유비공이 서주를 차지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내가 조조의 뒤를 치지 않았다면 어찌 유비공이 서주를 차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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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좀이 쑤신 장비가 기어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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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썩을 놈아! 너 죽고 싶냐!
내가 네놈의 도둑놈 근성을 고쳐주마! 이리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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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썩하던 풍악이 멈추고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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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님께서 큰 인덕을 베풀어 인간 같지 않은 놈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거늘,
어디서 터진 주둥이를 놀리는 게냐! 나한테 죽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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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가 수염을 곤두세우며 여포를 노려보자 주위에 있던 서주의 관리들이 마음속으로 힘찬 응원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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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야, 무슨 실례냐! 
내가 모신 손님에게 이런 무례가 어디에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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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손님은 무슨 얼어죽을 손님! 안 그래도 마시는 게 술인지 물인지 입맛이 더러운데, 어디서 거지 같은 놈이 굴러와서 되지도 않은 소릴 지껄이지 않습니까! 형님은 저런 소릴 듣고도 뭐가 그리 좋아 허허~ 거리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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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험악해진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관우가 장비를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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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야, 네가 취한 것 같구나!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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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도 같은 심정 아니우! 도적놈이 우리 성 안에 있는데 어찌 잠인들 편히 오겠소!
두고 보시오! 다시 칼을 들고 우리에게 덤빌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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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버럭 소리 지르는 장비를 데리고 사라지니 유비가 여포에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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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우가 본시 술을 마시면 야성이 눈 뜨곤 합니다. 
여포공은 부디 너그럽게 이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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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원래 술먹은 미친개라는 말도 있지 않소이까?
오늘은 유비공과 이렇게 유쾌한 술자리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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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분위기를 돌리려고 술을 권하자 여포가 이를 받았다. 서주의 관리들은 유비의 따사로운 표정을 잠시 바라보았다. 흐르다 못해 철철 넘치는 유비의 저 인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는 다시 솥뚜껑 같은 손으로 술을 입 속에 털어 넣는 여포도 보았다. 언젠가는 저 무지막지한 손으로 자신들의 목을 조를 것이란 표정으로…

 

다음날이 되어 여포는 전날의 술대접을 보답하기 위해 숙소에 유비를 초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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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시오!
오늘 유비공과 더불어 거나하게 취해보고자 하니 어서 후당으로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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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후당으로 들어가니 여포가 곧 사람을 시켜 식솔들을 불러오라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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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와 딸을 소개할 터이니 인사를 받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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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한나라의 법도는 남녀구별이 심하던 시기라 극히 각별한 사이가 아니면 자신의 아내나 딸을 소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헌데 북방계 출신이었던 여포는 이러한 한족들의 기본 예법에 대해 무지했고 이것이 유비의 반감을 사 훗날 조조에게 사로잡혔던 여포의 참형을 조언했다는 설이 있다.

 

유비는 거듭 사양의 뜻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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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는 사양할 것 까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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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유비를 낮추어 부르자 장비의 분노게이지가 알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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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빌어먹을 놈아! 우리 형님은 황실의 종친인데 어찌 네놈이 아우라는 망발을 하느냐!
이따가 미팅 끝나고 좀 남아라. 죽여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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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장비를 꾸짖고 관우가 달래서 바깥으로 내보냈다. 분위기가 서먹해진 유비는 여포에게 사과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포가 그런 유비를 배웅하여 나오는데 장비가 말에 올라 창을 꼬나쥐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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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야, 나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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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그런 장비를 간신히 만류하고는 서주로 돌아갔다. 이튿날 여포가 찾아와 장비 등살에 못 살겠으니 그만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자 유비는 애써 말리며 잔뜩 주눅들어 있는 여포를 위로했다. 그리고나서 장비는 유비에게 불려가 한참동안 잔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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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나만 갖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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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산동 지방을 평정한 조조가 조정에 표문을 올려 경과를 보고하였고, 그는 건덕장군(建德將軍) 비정후(費亭侯)의 벼슬을 받았다. 비정후는 과거 자신의 할아버지인 조등의 작위였는데, 조조는 스스로 공적을 쌓아 할아버지의 작위를 이은 것이다.

 

이 무렵, 장안은 이각과 곽사의 무리들이 대사마(大司馬)와 대장군이란 벼슬을 마음대로 차지하고는 온갖 추태를 부리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태위 양표과 대사농 주준이 헌제에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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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조는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있으며 그 아래로 수많은 모사와 장수들을 두었습니다.
그를 얻으면 종묘사직의 안위는 물론이고 역도의 무리들도 토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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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된다면야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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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가지 꾀를 써 저 둘의 사이를 갈라놓을 것이니,
후에 조조에게 밀서를 보내어 부르시면 일이 진정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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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양표는 아내를 곽사의 집으로 보냈다. 양표의 아내는 온갖 수다를 다 떨다가 넌지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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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거 아시우? 요사이 곽장군이 이사마의 부인과 껄적지근한 사이래요…
매일 인근 모텔로 가서 밀애를 즐긴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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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의 아내가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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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인간이 나 몰래 바람을 피워!
요근래 어쩐지 수상쩍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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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사마가 이 사실을 알고 칼을 간대니 
조심 하도록 안사람이 내조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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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표의 아내는 적당히 분란을 만들어 놓은 후, 유유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 곽사의 집구석은 난리가 났다. 여기 저기서 집안의 잡동사니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작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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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여편네가 돌았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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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살아! 이 망할 영감탱이야!
내 미모로도 부족해서 바람을 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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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여편네야! 너는 거울도 안보니!
나니까 끼고 살지, 딴 놈 같으면 어림도 없어! 알고나 떠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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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 이거지!
조강지처를 버리면 어찌 되는지 오늘 깨닫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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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둘은 서로의 머리털을 잡고 씨름하며 밤을 보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이각의 잔치에 곽사가 초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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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눈이야…
이러다가 안경 써야 되는 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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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끝내준 걸 고맙게 생각해. 
성질 같아선 국물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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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가 나갈 준비를 하자 마누라가 이를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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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이는 분명 당신을 음해할 것이니 가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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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 사람과는 형제지간과 다름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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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혼자 해먹으려고 당신 술에다 독이라도 타 놓았으면 어쩔 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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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자고로 사내가 큰일을 하려면 의심을 지워야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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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는 아내가 부득부득 말리는 통에 이도 저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각의 부중에서 사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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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께서 오시지를 않으니 대감께서 술을 보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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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후당으로 들인 후, 곽사의 아내는 몰래 비상을 가져다가 술에 넣었다. 그리고는 모르는 척 곽사에게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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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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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마실래, 그냥 마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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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가 눈을 한번 흘기고는 술을 마시려 하자 곽사의 아내가 갑자기 술잔을 가로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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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여편네가 갈수록 태산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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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요. 
혹시 술에 독이라도 들어있으면 어쩌실 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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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의 아내가 기르던 개를 불러 술을 핥게 하였는데 과연 개가 꼴까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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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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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랬수. 
이각이는 나쁜놈이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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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는 이각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그날부터 하루하루 이각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며 의심을 키워가고 있던 곽사에게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조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곽사를 이각이 한사코 잡아 끌어 집으로 데려가서는 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곽사는 그동안의 의심을 풀고 서로 술잔을 주고 받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꼭지가 돌도록 취해 헤어졌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곽사의 배가 살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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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시 술에 독을 탔을 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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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의 아내가 급히 똥물을 퍼와 싫다고 바둥거리는 남편의 입속에 퍼부었다. 곽사는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아줌마의 파워를 어찌 당하리오. 잠시 토악질을 하던 곽사는 뱃속의 술을 모두 뱉어내고서야 배가 진정되었다.

 

곽사가 버럭 소릴 지르며 이각의 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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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한당 같은 놈! 내가 제놈과 더불어 천하를 도모하려 했는데 나를 배신하는 행위를 연출하다니! 아까도 어쩐지 살갑게 군다 싶었는데 그런 시꺼먼 속이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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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말 들어서 손해 본 적 있수. 
이각이 놈은 도둑놈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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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는 이각을 죽일 결심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은밀히 군사를 무장시켜 이각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 일이 금방 이각의 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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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놈이 나를 죽이려 한다고?
세상사 믿을 놈 없다더니 여기저기 도둑놈 뿐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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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은 즉시 군사를 일으켜 곽사에게 향했다. 곽사도 군사를 몰고 오다가 이각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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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숭악한 놈아! 도둑놈의 면상은 도둑놈처럼 생겼다더니,
왜 그동안 네놈의 인상이 도둑상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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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할 소릴 네놈이 지껄이냐!
강도 같은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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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서로 군사를 몰아 전투를 시작했다. 두 세력의 군사를 합해 몇만이나 되는 병졸들이 장안성 아래에 모여 죽기살기로 난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헌데 싸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집도 동시에 약탈하는 민첩함을 보였다. 둘이 피 터져라 싸우고 있을 그때, 이각의 조카 이섬(李暹)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궐을 둘러싼 후 천자와 황후를 수레에 태워 나갈 준비를 했다. 좌우로 가후와 관원 좌령(左靈)이 어가를 모시며 도성을 나서자 달려오는 곽사의 군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곽사는 천자가 타고 있건 말건 활을 비오듯 뿌려댔다. 주위를 호위하는 궁녀와 시위무사들이 모두 죽어나가고 천자가 벌벌 떨고 있었는데 이각이 달려왔다.

 

둘은 서로 왕을 차지하려 아웅다웅하다가 결말을 맺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각은 길가에서 뻘줌하게 서있는 어가를 호송하여 진영으로 돌아왔는데 곽사는 이각무리가 사라지자 다시 군사를 몰아서는 궁에 불을 지르고 남아있던 궁녀와 시녀들을 모조리 압송하여 돌아갔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천자가 이각의 손에 있다는 소식에 곽사는 길길이 날뛰며 이각의 진영을 덮쳤다. 안에 숨어있던 천자와 황후는 서슬퍼런 칼부림이 계속되자 무슨 변고를 당하는 것이 아닌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두 무장들은 한참동안 서로를 쥐어박으며 도성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감을 느낀 곽사가 결국 군사를 거두어 잠시 물러났다. 이각은 곽사가 물러나자 천자를 수레에 태워 지난날 동탁이 세웠던 미오별장에 수감시켰다. 명패만 황제이지 안팎으로 군사를 풀어 감시하였는데 죄인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전쟁포로도 밥은 준다는 협정을 이각은 몰랐나 보다. 별장에 가두는 것까진 이해하는데 도대체가 밥상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황제를 비롯한 여러 대신들은 연일 뱃속의 아우성에 미칠 지경이 되었다.

 

허기에 눈이 풀린 황제가 게슴츠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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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잖은 황제가 되어 별 거지 같은 경우를 다 당하는구나. 
이각에게 식은 밥도 좋으니 한 그릇 들이라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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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두 그릇을 부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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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은 소식을 전해 듣고 벌꺽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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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따뜻한 진지를 올리는데 뭔 개소리냐!
내가 밥 만드는 기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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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앞에 놓인 밥상은 참으로 과간이었다. 밥은 언제 했는지 누렇게 떴고, 김치는 쉬어 터졌으며, 고기는 썩어 악취가 풍겼다. 게다가 국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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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이것도 밥상이냐!
하지만 배가 고프니 이 유혹을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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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아무리 나라가 작살이 났어도 그런 진지는 드셔서는 아니 됩니다.
어찌 천자의 몸으로 노란 밥을 드시겠습니까. 제가 대신 먹어 충성을 다할 것이니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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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던 시중 양기(楊琦)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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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오! 이는 저의 몫이요. 
나만이 이걸 소화시킬 수가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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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시끄럽다!
자고로 윗자리가 본을 보여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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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떫은 표정으로 가까스로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이를 지켜보는 대신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지붕을 무너뜨릴 듯하다. 양기가 참지 못하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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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은 포악한 이리 같은 놈이니 괜히 신경 건드려 화를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폐하는 후일을 생각하시어 잠시 참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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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훌쩍거리며 밥을 넘겼고, 이것을 지켜보는 대신들은 참담한 심정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 사람 하나가 들어와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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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갈래의 군사가 나타나 폐하를 구하러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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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 만고의 영웅이 누구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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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사정을 알아본 대신 하나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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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라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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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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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허탈하여 천장만 바라보았다. 내심 기대했던 대신들도 곽사란 말에 기운이 쭉 빠졌다.

 

잠시 후, 바깥에서 함성이 일었다. 미오성을 뒤에 두고 이각은 군사를 정비하여 다가오는 곽사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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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를 박대하지 않았는데, 날 해치려 한 저의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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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같은 건 없다!
그냥 너 죽고 나 혼자 살기 위한 생존법칙을 추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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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는 내 손에 있다!
네놈은 역적이다. 나는 충신이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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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다시 내가 천자를 취해 내가 충신이 되고 넌 역적이 된다. 
그게 각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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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말 필요 없으니 서로 맞짱 떠 지는 놈이 조용히 동네를 뜨는 것이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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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오늘 임자 만난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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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가 서로 눈을 가늘게 뜨고 급소를 노려 창을 휘둘렀는데 10여 합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자 양표가 말을 달려왔다. 두 역적이 싸우던 말던 상관없는 일이지만 자칫 황제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까 염려되어 일단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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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머저리… 아니, 두 장군은 싸움을 멈추시오!
대신들과 논의하여 화해를 주선할 것이니 화를 참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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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는 싸움을 중지하고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양표는 조정의 관리들과 주준을 모아 먼저 곽사의 진영을 찾았다. 헌데 곽사가 들은 척도 않더니 양표와 주준을 비롯한 관리들을 모조리 가두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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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좋은 뜻으로 장군들의 사이를 진정시키려 왔는데 왜 가두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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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은 천자를 잡았다. 
그래서 난 너희들을 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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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나는 천자를 잡고, 
장군은 우릴 잡아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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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는 양표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들자 칼을 뽑아 죽이려 들었다. 옆에 있던 중랑장 양밀(楊密)이 가까스로 말려 겨우 양표와 주준만을 석방하고 나머지 관리들은 진영 구치소에 가두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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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징조올시다. 한 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원통합니다. 
신하 된 본분으로 황제폐하를 저리 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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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어쩌겠소.
아무도 나서지 않는 마당에 우리끼리 백날 머리 굴려봐야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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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럽게 울다가 헤어졌는데 주준은 집으로 가 ‘세상만사 다 싫다’ 며 근심하다가 결국 울화병을 얻어 죽었다. 그 후로 이각과 곽사는 매일 날만 밝으면 군사를 부딪쳐 서로 잡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결국 도성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원래 이각이란 자는 사교와 요술에 탐닉해 무슨 일이 있을 때면 무당을 불러 살풀이 하는 것을 좋아했다. 모사 가후는 무당을 멀리 하라는 충고를 몇 번이나 올렸지만 이각은 듣지를 않았다.

 

어느 날, 감금되다시피한 황제가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데 시중 양기가 황제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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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보기에 가후는 이각의 부하이긴 하나 아직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이 있사오니,
그를 불러 대책을 물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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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가후가 들어왔다. 황제는 가후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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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나? 난 요즘 이각의 무리들이 하도 닥달을 하는 통에 수명이 10년은 줄은 것 같으이. 날 도와줄 수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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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신은 예전부터 충심으로 폐하의 안위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사옵니다. 
소인에게 생각이 있으니 부디 걱정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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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감사했다. 헌데 가후가 물러나고 조금 지나자 이각이 허리에 칼을 차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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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 나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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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었으면 폐하는 곽사의 손에 벌써 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을 것입니다.
제게 감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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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가 있겠나!
(그 말 하러 들어온 거야? 망할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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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이 한참을 째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 나가니 황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황보력(皇甫酈)이 황제를 뵈러 들어왔다. 그는 황실의 행사를 치를 때 예식을 주도하는 일을 맡은 알자(謁者)들의 수장인 알자복야였다. 품계가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 행사 때에는 제아무리 높은 대신들이라도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했으므로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황제는 그가 이각과 같은 고향 출신이며 언변에 능한 것을 알았기에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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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가 서로를 물어대니 이젠 내가 못 살겠네.
경은 그 둘이 서로 화해하도록 주선을 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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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력은 즉시 곽사의 진영으로 들어갔다. 곽사는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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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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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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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하시오. 버텨봐야 서로 피곤한 일인데 왜 아까운 정력을 낭비하는 겁니까?
보약이라도 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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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이 놈이 천자를 내놓으면 나 역시 모든 대신들을 풀어 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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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력은 바로 이각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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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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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끝까지 싸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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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께서 귀공과 같은 고향 출신인 날 보낸 것은 이해득실을 따져 두 장군이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오. 곽사는 이미 천자의 뜻을 수용하였소이다. 귀공의 뜻은 어떠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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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포를 몰아낸 공로도 있고 지난 4년간 조정에 큰 공훈을 세운 공신 중에 공신이오. 그 사실 모르는 중국인 아무도 없고 인정하지 않는 이 또한 없소. 저 곽사놈이 조정의 공신들을 모조리 잡아 가두었으니 내 필시 놈의 목을 따 버릴 것이오. 놈은 내 세력을 개털이라고 했지만 내 수하들은 모두가 일당백의 용장들이오. 귀공이 보기에도 내 군사들이 얼빵해 보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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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소.) 어찌 장군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있겠소이까. 허나, 옛 하나라 때 유궁(有窮)의 후예는 활쏘는 재주만 믿고 정치를 소홀이 하다가 수하들에게 암살을 당했소. 가까이는 동태사가 천하를 호령하였으나 수양아들 여포에게 또다시 죽임을 당했소. 마땅히 강함은 부러지기 마련이고 쓸데없는 아집에 빠져 두루 세상을 살피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는 법이오. 장군은 이미 상장으로 높은 벼슬을 지내고 있지 않소이까. 그만하면 나라로부터 충분히 보상을 받은 터인데 더 무엇을 바라는 것이오. 두 분 장군이 나라로 받은 것이 이러한데 지금은 서로 나뉘어 천자와 대신들을 감금하고 있으니 누가 옳다고 어찌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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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시끄럽다!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천자가 너로 하여금 날 욕하라 일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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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은 황보력의 화려한 말발에 정신이 아득해지자 다짜고짜 칼을 뽑아들었다. 곁에 있던 기도위 양봉(楊奉)이 칼을 휘두르며 발광을 하는 이각을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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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곽사의 무리도 토벌하기 전인데 천자가 보낸 사람을 베면 도리어 곽사의 명분만 세워주는 꼴이 되고, 제후들까지 가세하면 일이 번거로워지니 참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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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던 가후 역시 애써 말렸다. 이각은 황보력을 노려보고는 밖으로 내쫓았다. 황보력은 내쫓기자마자 소리를 버럭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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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니 저놈은 한의 신하가 아니라 나라를 말아먹으려 드는 도적놈이다!
썩을놈 같으니, 제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 정말 한심하다 못해 짜증이 다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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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각이 듣기라도 하면 목이 날아가오. 진정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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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호막(胡邈)은 황보력이 소리치자 급히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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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들으면 대수냐! 어디서 돼지 뒷간 같은 면상으로 천자의 위를 넘보는 것이냐! 너도 똑같다! 저런 놈 밑에 기생하면서 눈치나 보고 있다니, 그러고도 네놈이 한나라의 시중이란 말이더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남자란 자고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말은 하고 살아야 하느니! 죽는 게 대수더냐! 호막아, 삶을 그리 살지 말거라. 저놈들이야 원체 분수도 모르는 양아치 같은 놈들이라지만 넌 꼴에 감투라도 썼으면 밥값은 해야 할 것이 아니더냐! 참으로 한나라 안에 인재가 이리도 없단 말인가. 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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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력은 호막이 자신보다 높은 시중의 직위를 가졌음에도 울화통이 치밀어 앞뒤 재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다. 황제는 이 소식을 전해듣고 급히 사람을 보내 황보력에게 즉시 고향인 서량으로 가라는 분부를 내렸다. 잘못하여 이각일당에게 목이 날아갈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황보력은 죽기를 각오하고 욕설을 멈추지 않다가 황제의 명을 받더니 ‘이놈의 짜증나는 세상’ 이라는 명언을 남기고는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후로 황보력이 서량땅을 돌며 ‘이각이는 숭악한 놈, 지 분수도 모르는 말코 같은 놈, 생긴 것도 더럽게 못생긴 놈’ 하면서 그 일대 군사들을 선동하고 다녔는데 아니나다를까 서량출신의 군사들은 하나같이 이각에게 손가락질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이각이 모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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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러지 같은 놈이, 저는 얼마나 잘생겼다고 그따위 소릴 지껄이고 다닌단 말이냐!
내 이놈을 요절내 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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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은 즉시 호분벼슬에 있던 왕창(王昌)에게 황보력을 잡아오라는 명을 내렸다. 허나 왕창은 오래 전부터 황보력의 의리와 인품에 대해 알고 있던 터라 주막에서 실껏 술만 퍼먹다가 한참 후에야 찾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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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숨바꼭질의 귀재입니다. 
머리카락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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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 후로 가후 역시 조용히 오랑캐 군사들을 충동질 하고 다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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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이 처럼 무능한 위인을 뭣하러 모시는가.
나 같으면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 마누라 끼고 호강하면서 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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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오랑캐던가. 가후의 악담에 오랑캐 군사들은 서서히 마음이 움직였다. 물론 그것은 가후의 험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각은 아랫사람에 대한 예우에 인색한 인물이었고 불만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탓이다.

 

그러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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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이란 놈은 욕심만 태산이지 꾀란 약에 쓸래도 없습니다.
지금 대다수의 군사들이 흩어져 군세가 약해졌으니 겁을 먹고 있을 것입니다.
높은 벼슬로 그를 꾀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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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제는 바로 이각을 대사마로 임명했다. 이각은 이미 대사마 행세를 하고 다녔으나 헌제로부터 정식으로 인증서를 받자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고는 이런 부귀가 모두 자신이 데리고 있는 무당의 덕이라며 갖은 보물을 내려 치하했다. 헌데 정작 일선에서 피터지게 싸워왔던 휘하 장수와 병사들에게는 땡전 한푼 베풀지 않았다.

 

기도위 양봉은 열이 받아 송과(宋果)와 함께 울분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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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있는가! 지금까지 온갖 허드렛 일은 다 시키고 궂은 일은 죄다 떠넘기더니 이젠 찬밥 취급을 해! 그래, 우리 공로가 저 무당년들보다 못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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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그 말이오! 지가 오늘날 이렇게 출세한 게 누구 덕분인데 썩을 놈!
이제껏 한마디 불평도 안 했더니 이놈이 겁 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이오.
저 역적 이각놈을 죽여 천자를 구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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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소! 오늘 밤에 그대는 안에서 진영에 불을 놓으시오!
난 밖에서 호응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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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어쩌랴! 양봉과 송과는 남몰래 자신들의 대화를 관전하던 불청객이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한쪽 구석에서 쥐새끼 한 마리가 두 사람의 쑥덕쑥덕을 모조리 듣고는 이각에게 쪼르르 달려가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일러 바쳤다. 이각은 머리끝까지 노기를 드러내며 당장 사람을 보내 송과를 잡아들이고는 한칼에 베어 버렸다. 양봉은 송과가 죽은 줄도 모르고 군사를 모아 대기하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불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불이 날 리가 없지.

 

참다 못한 양봉이 군사를 끌고 진영으로 다가갔는데 이각이 모든 군사를 모아서는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비밀이 발각된 것을 깨닫고 급히 돌격을 명했다. 나름대로 한판 붙어보리라 큰 맘 먹었던 양봉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한 이각에게 왕창 깨져서는 급히 서안땅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승리한 이각의 형편도 좋을 건 없었다. 주변의 군사들이 동요하여 하나둘씩 탈영하면서 이각의 형세는 급속히 줄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곽사마저 군사를 몰아 시시때때로 옆구리를 찔러대 이각은 걱정으로 밤잠을 설칠 지경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발꾼이 급히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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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가 대군을 거느리고 섬서땅에서 진군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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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팀을 이루어 찾아온다더니 가뜩이나 어수선해진 군세로 좌불안석이었던 이각은 갑작스러운 급보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발을 동동 구르는 이각에게 수하들이 곽사와 화해하여 연합할 것을 제의하자 그도 더는 어쩌지 못함을 깨닫고 사람을 보내 화해의 뜻을 전했다. 서로 천자와 감금중인 대신들을 석방할 것을 약속하니 곽사 역시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이런 소식은 황제에게도 전해졌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장제에게 표기장군의 벼슬을 내려 응원했다.

 

이각은 사태가 급함을 알고 즉시 군사를 수습해 황제를 호송하여 길을 나서려고 했는데 황제의 어가는 이각이 정신 없는 틈을 타서 어림군의 호위를 받으며 패릉땅으로 몰래 도주했다.

 

가을이 깊어 바람이 이는 가운데 앞에서 큰 함성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수백 명의 군사가 앞을 막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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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뇨? 어디서 왔느뇨? 그리고 어디로 가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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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폐하의 행차를 어느 놈이 막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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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곽사 장군의 명을 받아 이곳을 수비하는 군사들이올시다. 
정말 어가라면 황제폐하를 뵈어야 믿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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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가 어가의 주렴을 들어보이니 황제가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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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임페리얼. 
됐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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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의 휘하무장들은 이미 곽사와 이각이 서로 화해하여 어가를 호송한다는 기별을 받았던 터라 별다른 의심 없이 ‘만세!’ 를 외치면서 어가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얼마 후, 곽사에게 어가가 무사히 지나갔다는 보고를 올렸다. 물론 곽사는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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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놈이 황제를 그냥 풀어주었단 말이냐! 장제를 무찌른 후에 미오별장을 쳐서 어가를 납치할 생각이었는데 누구 맘대로 놔줘! 이런 생긴 대로 노는 멍청한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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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를 보냈던 두 병졸의 목은 바로 날아갔다. 곽사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황제의 어가를 추격했다.

 

황제의 어가가 한참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그리곤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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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는 멈춰라! 가지 마라! 가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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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사의 수하장수 최용(崔勇)이 고함을 지르며 맹추격하자 황제는 기겁을 했다. 그리고 훌쩍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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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굴 빠져나오니 호랑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는구나. 
내가 전생에 무슨 대역죄를 지었나? 우째 팔자가 이다지도 세단 말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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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을 먹은 건 황제뿐이 아니었다. 대신들도 사색이 되어 다가오는 군마들의 먼지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산 너머로 ‘둥둥둥!’ 북소리가 들리더니 장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이건 또 뭔가’ 하는 표정으로 올려다 보자 깃발에 ‘대한 양봉’ 이라 쓰여 있었다. 양봉은 송과와 함께 이각을 없애려다 실패하고 도주했었는데 황제의 어가가 도망한다는 소식에 급히 군사를 몰아 온 것이었다.

 

양봉은 군사를 이끌고 다가오는 곽사의 군사를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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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배신한 놈이 무슨 염치로 나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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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시네, 것도 주인이라더냐!
서황은 저 역적놈을 죽이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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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수 하나가 붉은 준마를 몰고 살벌하게 생긴 도끼를 휘두르며 최용에게 달려들었다. 최용은 칼을 뽑아 서황에게 맞섰지만 몇번 부딪쳐 보는가 싶더니 이내 가슴을 찍혀 말 아래로 떨어졌다. 양봉은 즉시 군사를 몰아서는 곽사의 군사들을 20리 밖으로 쫓아버렸다. 양봉은 사태가 진정되자 황제를 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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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 오늘 나를 구하니 한시름 놓이는구나. 
그대의 공을 잊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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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이 머리를 조아리니 황제가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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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의 목을 벤 장수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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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은 즉시 서황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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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동군 양현땅 출신으로 이름은 서황(徐晃), 자는 공명(公明)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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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서황의 공을 높이 치하했다. 양봉은 어가를 호위하여 화음현으로 들어갔다. 그곳을 지키던 장군 단외(段煨)는 어가를 맞이하여 곧 의복과 음식을 바쳤다. 그날 황제는 양봉의 영채에서 잠을 청했다.

 

한편, 첫 싸움에서 패하여 달아난 곽사는 다음날 군사를 다시 정비하여 화음현의 양봉 진영을 습격했다. 이에 서황이 맞서 나오자 곽사는 거느린 군사를 사면으로 둘러싸고 포위해 왔다. 진영 안에 있던 천자와 양봉은 큰 위기에 빠졌다. 서황 역시 홀로 외롭게 맞서다가 사방에서 조여오는 곽사군의 창칼을 뿌리치기에 정신이 없었는데 문득 동남쪽이 소란해 지더니 함성이 크게 일며 장수 하나가 일단의 군마를 이끌고 말을 달려왔다. 그가 쏘는 활은 곽사의 군사들을 마구 시살하며 전세를 다시 뒤집어 놓았다. 서황은 적의 위세가 수그러들자 다시 용기를 얻어 도끼를 휘두르며 곽사를 몰아냈다.

 

적군들이 물러나고 구원을 왔던 장수가 서황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천자의 외척인 동승(董承)으로 동 태후의 조카이자 헌제의 처남이었다. 뜻하지 않게 구원을 받은 황제는 크게 기뻐하다가 맥이 풀린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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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충을 겪으셨습니까.
신이 양봉과 합세하여 기필코 곽사와 이각의 무리들을 몰아낼 것이니 심려 놓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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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하루빨리 홍농으로 가자고 명을 내렸다. 이리하여 어가는 그 길로 다시 홍농으로 향했다. 두 번에 걸친 싸움에서 떡이 되어버린 곽사는 패잔병을 수습하여 돌아가는 중에 이각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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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과 동승이 천자를 홍농땅으로 데리고 가버렸으니 큰일이오. 그들이 산동에서 자리를 잡으면 천하의 모든 영웅들이 우릴 죽이려 들 것인데 이 일을 어쩌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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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제가 군사를 모아 장안을 점거했으니 간다해도 이길 수 없소.
이제 서로의 군사를 모아 홍농땅을 쳐서 천자를 죽입시다.
그리고 천하를 둘로 나누어 가지면 일은 해결되니 걱정할 일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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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전설처럼 전해오는 명언이 하나 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이각의 되지도 않을 의견에 곽사는 찬성했다. 이각과 곽사는 즉시 군사를 모아 홍농으로 황제의 어가를 쫓아갔다. 이들은 동탁의 후예답게 지나는 곳마다 약탈과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놈들이 지나는 길마다 남아나는 고을이 없으니 실로 훌륭한 동탁의 정통 후계자들이었다.

 

한편, 홍농에 도착하여 군사를 정비하던 양봉과 동승은 이각과 곽사가 군사를 합하여 쳐들어온다는 급보에 즉시 군사를 몰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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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사가 더 많으니 작전 따위는 없소. 
그냥 무조건 진격하면 적은 무너질 것이니 계속 앞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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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이 왼쪽에서, 곽사는 오른쪽에서 군사를 들이쳤다. 양봉과 동승은 밀려드는 적군을 겨우 막고는 있었으나 중과부족이었다. 죽기로 싸웠으나 형세가 계속 어지러워지고 더는 버티지 못하자 두 사람은 황제의 어가만 구출하여 겨우 달아났다. 미처 몸을 빼내지 못한 관원들은 죄다 목이 달아났다.

 

싸움에서 이긴 이각, 곽사의 무리는 홍농으로 들어가 노략질을 일삼는 한편, 군사를 나누어 어가를 뒤쫓았다. 어가를 모셔 달아나던 양봉은 적병이 다가오자 크게 당황하여 급히 이각과 곽사에게 강화를 요청하였고 황제는 은밀히 밀서를 하동으로 보내어 한때 황건적의 무리였던 한섬(韓暹), 이악(李樂), 호재(胡才)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 세 사람은 산으로 흩어져 산적질을 하고 있었는데 천자는 그런 자들에게까지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사태가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으랴…

 

한섬과 이악 등은 지난날의 죄를 용서하고 벼슬까지 준다는 천자의 밀서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세 사람은 즉시 산채를 버리고 군사를 거느려 급히 양봉과 동승에게 갔다. 이렇게 겨우 힘을 얻은 양봉과 동승은 다시 군사를 되돌려 이각, 곽사를 몰아내고 홍농을 차지했다. 이렇게 서로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던 형국에 이각은 잠시 군사를 물렸다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략질과 납치를 일삼고 젊은 남자를 잡아다 군사로 부렸다.

 

이각, 곽사가 다시 쳐들어온다는 급보에 이악의 군사가 위양땅으로 나아갔다. 이를 전해들은 곽사는 일부러 길에다 의복이나 값나가는 물건을 뿌려놓았는데 이악의 장졸들은 출신이 산도적 아니랄까봐 땅에 흩어져 있는 물건을 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당연히 대오는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이각과 곽사는 군사를 몰아서 이악의 졸병들을 닥치는 대로 밟아버렸다. 이악만이 겨우 달아날 길을 내달렸고 양봉과 동승은 천자를 모셔 급히 길을 떠났는데 뒤로 하얀 먼지가 천지에 진동하며 적들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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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급하니 천자께선 수레에서 내려 말을 몰아 먼저 달아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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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이 위태로운데 어찌 혼자 도망가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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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는 황제와 수레를 따르며 통곡하는 대신들, 그 광경은 참으로 참담하다 못해 웃기기까지 했다. 황제란 어르신은 감투만 썼을 뿐이지 이리저리 도망가는 형편이고 나머지 대신들도 발바닥에서 불이 나도록 뜀박질을 했다. 황제와 대신들은 마음 속으로 ‘거지같은 세상’ 을 원망하며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렸다. 그렇게 치열한 추격과 도주가 계속되는 가운데 후방에서 이각과 곽사의 군사를 겨우 막아내고 있던 호재가 물밀듯이 밀려드는 적군을 감당하지 못하다가 결국 칼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각과 곽사군은 마치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승냥이 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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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버틸 수 없사옵니다!
어서 수레를 버리고 뛰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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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를 죽여라!
잡는 놈에게 후한 상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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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서 자신을 죽이라는 고함소리를 들은 황제는 간이 철렁했다. 체통이고 뭐고 급히 수레에서 뛰어내려 허둥지둥 황하 언덕에 당도했다. 이악 등은 급히 조그만 배 한 척을 구해 황하강에 대었다. 당시는 한겨울이었는데 바람도 엄청 불어서 체감온도는 심장까지 얼어버릴 듯 세찼다. 강바람의 매서움은 직접 느껴본 사람만이 그 위력을 안다.

 

황제는 황후를 얼싸안고 부들부들 떨면서 언덕 아래 대어놓은 배로 급히 내려갔다. 하지만 그 언덕은 말이 언덕이지 벼랑이나 마찬가지였다. 깎아지른 절벽 같은 황하언덕을 조심스레 내려가는 황제의 뒤편으로 적군들이 코앞까지 밀려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양봉이 다급하게 소리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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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
모두 말고삐로 폐하의 몸을 묶어 아래로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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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교위 상홍(尙弘)은 천을 긁어모아 길게 엮어서는 즉시 황제와 황후를 매어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적군이 바로 언덕 꼭대기까지 들이 닥치자 수많은 이들이 서로 언덕을 내려가려고 줄에 매달려 몇 사람 겨우 지탱할 줄이 끊어질 지경이 되었다. 참으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이각과 곽사를 피해 도망했던 백성들까지 황제를 따르겠다고 몰려드는 바람에 황하언덕은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사방에서 엄청난 숫자의 피난민이 배를 타기 위해 아비규환을 연출하던 그 위급한 때에 극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뱃머리에서 사람들을 태우던 이악이 배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리자 살겠다고 갑판을 기어 오르던 사람들을 칼로 마구 쳐죽였던 것이다. 마침내 이각과 곽사의 군사가 배를 노리고 새까맣게 들이닥쳤다.

 

기겁을 한 이악은 서둘러 배를 출발시켰는데 미처 배에 오르지 못한 많은 이들이 이각과 곽사의 군사들에게 도륙을 당하였다. 여기 저기서 팔다리가 날아가고 수없이 칼질을 당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 참혹함을 본 황제는 눈을 감아버렸다. 이악이 겨우 숨을 돌리고 사정을 살펴보니 황제를 보필하는 대신들은 겨우 10여 명에 불과했다. 배가 반대쪽에 이르자 양봉은 소달구지 하나를 끌고 와서 황제를 태우고 대양땅으로 향했다.

 

뱃속에선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진탕 흘렸던 땀은 식어 찬바람을 맞으니 날씨는 죽여주고, 행색은 피난가는 난민보다 못한 꼴인 황제는 어느 기와집에 들어가 밤을 새웠다.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는데 시골영감 하나가 좁쌀 밥 하나를 진상하여 황제와 황후는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매일 윤기가 흐르는 쌀밥을 먹던 황제의 목에는 모래를 삼키는 것 같았으나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튿날이 되어 황제는 이악을 정북장군으로, 한섬을 정동장군으로 봉한 다음 길을 떠났다. 황제가 길을 떠나려 하자 대신 둘이 나와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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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 두 역적놈이 신의 말은 듣는 편인지라 죽을 각오로 그들을 찾아 설득시킬 것이니 폐하는 부디 용체를 보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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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융은 그 길로 떠나고 황제는 양봉의 진영으로 가 쉬었다. 곁에 있던 양표가 아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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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안읍현에 가셔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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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즉시 안읍현의 고을로 들어가 보았지만 그곳에도 번듯한 집은 없는지라 허름한 초가집에 둥지(?)를 틀고 앉았다. 헌데 이놈의 초가집은 방문도 없어서 겨울바람이 다 들어왔다. 할 수 없이 덤불 하나를 찾아 앞을 막고 겨우 바람만 피했다. 나머지 대신들은 뜰에 모여 앞날을 의논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얼마 전까지도 산적이었던 이악이 전권을 잡고 맘이 수틀리면 대신들을 걷어차고 욕설을 퍼붓는데 이각과 곽사의 무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황제에게는 일부러 잡곡밥과 쓰디쓴 술만 내놓으니 황제는 찍소리도 못하고 주는 대로 먹기만 했다. 이악과 한섬은 또 수하들의 이름을 적은 연명장을 내밀어 벼슬을 내려달라고 협박을 했다. 황제가 연명장을 받아보고는 한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해탈의 웃음을 보였다. 서글픔의 반작용이었을까.

 

이악과 한섬이 내민 연명장의 목록은 모두 도둑놈들, 잡놈들, 무당, 밑바닥 백정, 심복 졸개, 건달 등으로 이들이 그나마 나은 편, 연명장을 넘길 때마다 이름도 없던 온갖 뜨내기들의 가명, 개똥이, 소똥이, 말똥이 따위가 여기 저기 휘갈겨 적혀 있었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보던 황제는 앓느니 죽는다고 이들에게 모두 교위와 어사의 벼슬을 내리고 직인을 찍으려는데 옥새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충 마당에서 굵은 나뭇가지 하나 골라다가 적당히 칼로 파 찍어주니 황제고 나발이고 체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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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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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하직하고 떠났던 한융은 이각 일당을 찾아 온갖 말발로 그들을 설득시켰고 이각, 곽사는 잡아두었던 궁녀와 대신들을 석방하였다.

 

그 해 큰 흉년이 들어 곡식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가 되었는데 하내 태수 장양(張楊)은 쌀과 고기를 황제께 진상했고 하동 태수 왕읍(王邑)은 비단 옷감을 진상했다. 동승과 양봉은 서로 상의하여 사람을 낙양에 보내 궁을 손질하여 황제를 모시기로 했는데 이악 일당이 한사코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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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은 원래 한 나라의 오랜 도읍지요.
이곳은 다 쓰러져 가는 고을인데 언제까지 천자께서 이런 곳에 기거할 수는 없소이다.
하루빨리 어가를 모셔 환도하는 것이 도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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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가고 싶으면 맘대로 하슈. 
난 이곳이 좋으니 남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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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과 양봉은 즉시 어가를 모셔 길을 떠났다. 헌데 이악 일당이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다. 애초에 황제를 보낸 것도 시꺼먼 속이 있어서였다. 이악은 벌써 이각, 곽사 일당과 내통하여 황제를 중도에 납치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동승이나 양봉이 이런 시꺼먼 낌새를 알아채고 군사를 배치하여 어가를 빈틈없이 호위하여 기관땅으로 내달렸다.

 

이악은 계획이 누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졸개를 거느려 급히 황제의 뒤를 쫓았다. 밤새도록 달려 4시경 쯤이 되어 눈앞에 어가가 보이자 이악은 거짓으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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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를 모시러 이각과 곽사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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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이제 이각과 곽사라는 이름만 들어도 오장육부가 분해되는 느낌이었다. 놀라 졸음도 다 달아나고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던 그때 양편으로 솟아있는 산 위에서 불길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