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으로 보냈던 정탐 4명이 이레 만에 돌아왔다. 육로로 갔던 그들은 백성들이 버린 어선을 타고 돌아왔다. 보고는 길고 소상했고, 근접도가 좋았다. 명량에서 깨진 적의 잔당들이 퇴로에 다시 해남반도에 상륙해 백성들의 집을 모조리 불지르고 마을과 산속을 샅샅이 뒤져 숨어 있던 백성들을 씨가 마르도록 도륙했다는 것이었다. 해남에 상륙한 적들은 이틀 밤 이틀 낮을 불지르고 죽인 뒤 다시 바다로 나아가 경상 해안 쪽으로 이동했다. 그 대열은 50척 정도였다.

 

마을의 향리와 접장들이 진작부터 적과 내통했다. 백성들이 숨어 있는 곳을 밀고했으며 백성들이 감추어놓은 곡식과 소금을 적에게 인도했다. 흩어진 백성들은 적들이 물러간 뒤에도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 밀고자들 중 일부는 적과 함께 떠났다. 적의 시체와 백성의 시체가 연안과 마을을 뒤덮고 벌레가 들끓어 역질이 번졌다. 지방 관아는 모두 달아나서 살아남은 백성들은 다만 울부짖고 있었다. 녹도 군관 이철에게 군사 30명을 딸려 해남으로 보내, 백성의 뒷일을 수습토록 했다. 이철은 배로 떠났다. 이철의 배에 군량 30가마를 실어주어 우선 죽을 쑤어 먹이도록 했다. 군량은 명량에서 깨어진 적선에 올라가 빼앗은 쌀이었다. 모두가 적들에게 빼앗긴 연안 백성들의 쌀이었다.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대낮에 오한이 오면서 임진년에 총 맞은 왼쪽 어깨가 쑤셨다. 바람이 없는데도 먼바다에서 물결이 일었다. 내일, 바다에는 비가 내릴 것이었다.

 

이철을 보내고 나서 장졸들을 모아놓고 무기를 점검했다. 썩은 창자루를 갈아 끼우고 쇠갈고리의 낡은 줄을 바꾸도록 했다. 명량에서 돌아온 배들은 이음새가 어긋났고, 틈새에 벌레가 먹었다. 노 구멍이 문드러진 배들도 있었다. 배들을 묶어놓고 선실 안에서 연기를 피워 벌레를 잡았다. 벌어진 틈새에 나무 심을 넣었다. 개먹은 노 구멍 둘레에 쇠를 박았고 이 빠진 노 끝에 구리 버선을 씌웠다. 저녁때 백성들이 버린 밭에 월동 무씨 다섯 되를 뿌렸다.

 

명량 전투가 끝난 뒤 임준영은 이틀 동안 작전 해역을 수색했다. 나는 임준영에게 전선 2척과 어선 5척, 그리고 군사 50명을 맡겼다. 임준영은 이틀 후 군사를 인솔하고 암태도로 돌아와 보고했다. 임준영은 떠다니는 적의 시체 2천여 구를 건져서 묻었다. 연안 갯벌 쪽으로 다가오는 시체만을 정리했고 원양으로 떠내려가는 시체는 수습하지 못했다. 작전 해역에 역질이 돌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했다. 명량 물길이 하루에 네 번씩 거꾸로 바다를 쓸어내려서, 깨어진 적선의 쓰레기는 멀리 떠밀려갔다. 임준영은 반파된 적선의 내부를 수색해서 적의 군량 5백 석을 노획했다. 임준영은 적의 군량과 조총, 창검, 화포, 피복을 두 배 가득히 싣고 돌아왔다. 흘수선이 내려앉도록 노획품은 많았다. 돌아온 임준영과 그의 부하들은 적의 투구를 뒤집어쓰고 들떠 있었다.

 

임준영은 전선 뒤에 작은 어선 한 척을 줄로 묶어서 끌고 왔다. 그 어선 위에 조선 여자의 시체 다섯 구가 실려 있었다. 죽은 여자들은 철 지난 여름 치마저고리를 걸쳤다. 살아서 실려온 여자도 한 명 타고 있었다. 산 여자는 뱃전에 쪼그리고 앉아서 실성한 듯 벌려진 입으로 침을 흘리고 있었다.

 

“웬 송장이냐?”

 

“적장들의 선실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임준영의 부하들이 시체를 들어올려 선착장에 벌여놓았다.

 

가마니 위로 드러난 머리카락들이 불에 그을려 있었다. 죽은 여자들의 머리카락이 해풍에 날렸다. 이미 썩기 시작한 송장의 비린내가 훅 끼쳤다.

 

“어찌된 부녀들인가?”

 

“적에게 끌려가서 여러 적장들의 계집 노릇을 하던 부녀들입니다. 저 여인네를 심문하시면 아실 것입니다.”

 

살아서 끌려온 여자에게 더운 죽을 먹이고, 수군의 옷으로 갈아입혔다. 정신이 돌아온 여자는 진술했다. 해남 두륜산 심마니의 딸이었고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가족은 흩어졌고 여자 혼자서 적에게 잡혔다. 조선 여자 세명이서 적장 구루지마의 몸시중을 들었는데, 한 명은 해남에서 출항할 때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했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구냐?”

 

여자는 두 번째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열어라.”

 

군사들이 가마니를 걷어냈다. 키가 작고 어깨가 둥근 여자였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아득한 밤들과 달빛에 어른거리던 칼 무늬가 내 마음에 떠올랐다. 죽은 여자는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얼굴을 돌려라.”

 

군사들이 죽은 여자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고개를 돌려놓았다.

 

여진의 얼굴이었다.

 

“옷을 벗겨라.”

 

식칼을 든 군사가 죽은 여자의 옷을 찢어내렸다. 여자의 나신이 드러났다. 젖가슴은 말라붙어 있었고 메말라 보이는 음부가 이를 악물듯 닫혀 있었다. 빗장뼈 아래로 구렁이 같은 상처자욱이 이제 푸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살아서 끌려온 여자에게 물었다.

 

“저 여자 이름이 뭐라 하더냐?”

 

“여진이라 하더이다.”

 

“내력을 말하더냐?”

 

“구례 관아의 창기였다는데, 함평에서 순천으로 가는 산속에서 잡혔다 하더이다.”

 

죽은 여자는 여진이었다.

 

“덮어라.”

 

군사들이 가마니로 죽은 여진의 몸을 덮었다. 나는 임준영에게 물었다.

 

“이 송장들을 대체 왜 끌고 왔느냐?”

 

임준영은 머쓱해졌다.

 

“조선 백성들이기에 혹시라도 연고를 찾아서 시신이라도 보내줄 수 있을는지…”

 

“부질없다. 근본을 모르니 어찌 이 난리통에 임자를 찾겠느냐?”

 

“그래도 혹시나…”

 

“내다 버려라.”

 

수졸들이 여자들의 시체를 들어서 밭둑 위로 옮겼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은 피난민들의 시체 20여 구가 밭둑에 쌓여 있었다. 수졸들은 묵은 밭 가운데 커다란 구덩이를 파놓았다. 역질이 돌고 있었으므로 구덩이는 깊었다. 수졸들이 시체를 하나씩 구덩이 안으로 던졌다. 수졸들은 시체의 팔다리를 마주잡고 흔들다가 공중으로 휙 날렸다. 시체는 구덩이 안으로 떨어져 쌓였다. 여진의 시체가 공중으로 떴다가 구덩이 안으로 떨어졌다. 여진의 시체는 구덩이 한 구석에서 엎어졌다. 다른 여자들의 시체가 그 위에 포개졌다. 수졸 수십 명이 달려들어 삽으로 구덩이를 메웠다.

 

임준영이 살아서 끌려온 여자를 심문해서 결과를 보고했다. 해남 어란진의 적진에 끌려온 조선 여자는 30명이었다. 적장 구루지마가 세 명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적의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거나 죽였다. 구루지마는 3명의 여자를 번갈아가며 선실 안으로 불러들였다. 대낮에도 옷을 벗겼다. 여자 한 명이 물에 빠져 죽자 구루지마는 한 명을 보충했다. 명량에서 밀릴 때도 구루지마의 선실에는 여자 세 명이 다다미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배에서 구루지마는 차를 자주 마셨다. 여진의 고향은 밀양이라고 했다. 밀양은 임진년 초장에 무너졌다. 여진이 경상도 밀양에서 전라도 구례까지 흘러들어온 경위는 알 수 없었다. 적장의 씨가 몸에 붙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여진은 적장 몰래 울었다고 한다.

 

살아서 끌려온 여자는 일례라고 했다. 일례를 수영 주변 백성의 집에 얹혀주도록 군관에게 일렀다. 해남 어란진 포구 주변 후미진 바위 그늘에서 적이 실어내지 못한 군량 3백 석이 발견되었다. 다시 임준영과 군사들을 해남으로 보내 적의 군량을 실어오게 했다.

 

저녁때 나는 여진이 묻힌 밭둑에 나갔다. 시체가 묻힌 구덩이 위에 군사들이 모닥불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여진의 몸 속에서 꼴깍거리던 구루지마의 몸을 생각했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구루지마의 몸도 그때 여진의 몸 속에서 아늑했을까. 나는 치가 떨렸다. 여진의 몸 속 깊은 곳에서, 이 전쟁을 끝낼 수는 없을 것인가.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었다. 군사들은 모닥불에 생선을 구워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군사들은 구덩이 위에 술과 안주를 벌여놓고 절을 했다. 군사들은 상여소리를 불렀다. 내가 다가가자 군관이 술잔을 내밀었다.

 

“과음하지 말라.”

 

나는 겨우 말했다. 나는 개별적인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온 바다를 송장이 뒤덮어도, 그 많은 죽음들이 개별적인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여자가 죽으면 어디가 먼저 썩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그 썩음에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은 자는 나의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었다. 모든 죽은 자는 모든 산 자의 적인 듯도 싶었다. 내 몸은 여진의 죽은 몸 앞에서 작게 움츠러들었다.

 

나는 죽은 여진에게 울음 같은 성욕을 느꼈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물러간 적들은 또 올 것이고, 남쪽 물가를 내려다보는 임금의 꿈자리는 밤마다 흉흉할 것이었다.

 

그날 밤, 해남의 민촌으로 보냈던 녹도 군관 이철이 돌아왔다. 백성을 먹이고 시체를 묻고, 역질에 걸린 자들을 격리했고 무너진 백성들의 집을 일으켜 세웠다고 보고했다. 이철이 적과 내통해서 백성들을 밀고했던 접장과 향리 세 명을 붙잡아왔다. 이철은 조서를 제출했다. 그들의 죄는 명백했다. 새벽에 모두 목 베었다. 머리는 마을에 걸었고 몸통은 낮에 여진을 묻었던 구덩이에 함께 묻었다. 새벽에 종을 시켜 탕약을 끓여 마셨다. 초겨울의 물소리가 날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