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정유년 9월 14일 밤에 임준영으로부터 두 번째 첩보가 도착했다. 바람이 잠들어 바다는 고요했고, 달은 보름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섬 그림자가 물에 비치어, 물과 하늘이 뒤바뀐 듯했다. 임준영은 직접 오지 않고 그 수하의 척후병을 보냈다. 강진의 토병으로 열일곱이라고 했다. 토병은 마당에 엎드려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민가의 창호지를 찢어낸 종이에 언문으로 급히 쓴 글씨였다.
“적정이 다급하여 사람을 대신 보냅니다. 오늘 산에서 내려가 적의 포구에 바싹 다가갔습니다. 이제 적의 배는 3백여 척인데, 대부분이 전선인 것 같았습니다. 닻에 녹이 슬지 않은 걸로 보아 일본에서 새로 만들어 끌고 온 배인 듯싶었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적은 백성의 빈집을 돌며 장독을 몰아왔습니다. 적들은 장독에 물을 채워 배에 실었습니다. 적의 무리들이 갯가에 모여 대충 2백 명씩 패거리를 가르고 깃발을 세웠는데, 아마도 승선 대오를 갖추는 듯했습니다. 적들은 창검과 조총을 닦아서 모두 배에 실었습니다. 적에게 붙잡힌 조선 여자들은 30명쯤이었는데, 10명쯤은 묶어서 배에 태웠고 나머지는 갯가에서 목 베었습니다. 목을 벨 때 적의 병졸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염불을 외는 듯도 했고 노래를 부르는 듯도 했는데, 똑똑히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다음 임무를 지시하여 주십시오. 바라옵기는, 이제 수하를 거두어 우수영으로 돌아가 본대에 가세하고 싶습니다. 저와 저의 수하들을 배에 태워 적의 앞으로 내보내 주십시오.”
전령으로 온 토병 편에 임준영의 본대복귀 명령을 전했다. 밤에 온 토병은 벽파진에 머물지 못했다. 돌아가는 토병에게 쪄서 말린 쌀 두 되를 주었다.
“명량에서 적을 맞겠다. 우수영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기다리자. 오늘밤 전 함대는 발진하라.”
장졸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전율이 장졸들의 얼어붙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전율에, 나는 안도했다. 그날 밤 나는 전선 12척과 군사를 우수영으로 옮겼다. 그리고 전선의 고물에 백성들의 어선 30척을 밧줄로 매달아 함께 옮겼다. 새벽에 군관들을 풀어 우수영 주변과 갯가의 백성들을 산 위로 소개시켰다. 해남 쪽에서 넘어온 피난민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늙은이와 부녀자들이었다. 백성들은 쓰러져 뒹굴며 울부짖었다. 이부자리를 등에 멘 백성들은 개와 닭을 끌고 통곡하면서 산 위로 올랐다. 수영 마당 안까지 백성들이 몰려왔다.
“나으리, 이제 또 산 위로 가라 하시니, 짐승이 아니고서야 어찌 산 위에서 살 수 있겠소이까? 차라리 저희들을 다 죽여 주시오. 나라의 칼을 찬 장수가 어찌 이러실 수가 있소. 나라의 칼로 백성을 지키지 못할진대 나라의 칼로 다 죽여주시오.”
늙은 농부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내 마음속에 몇 방울의 눈물이 고여왔다. 나는 겨우 말했다. 거짓말이 되더라도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칼 찬 자의 죄가 실로 크다. 내 이번 싸움에서 기필코 이길 것이니 그때 너희들은 마을로 돌아오라.”
군사들이 백성들을 창으로 윽박질러 끌어냈다. 산 위로 올라갔던 백성들이 다시 무너지는 듯이 우르르 산 아래로 내려갔다. 가재도구를 다 내버린 백성들은 넘어지고 뒹굴면서 산 아래로 몰렸다. 산 위로 올라가는 백성들과 산 아래로 내려가는 백성들이 부딪혀서 뒤엉켰다. 군관을 보내 까닭을 알아오게 했다. 해남 쪽에서 넘어온 늙은 어부 한 명이 이미 적이 삼지원에 들어왔다, 적들은 육로로 들어와 이미 산꼭대기마다 진치고 있다, 산으로 가면 죽는다,고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산 위로 올라간 백성들이 가재도구를 다 버리고 맨몸으로 산 아래로 내려갈 때 그 늙은 어부는 피난민들의 가축을 훔쳤다. 군관이 늙은 어부를 붙잡아서 끌어왔다. 백성들 보는 앞에서 목 베어 걸었다.
새벽에 읍진 수령들과 군관을 숙사 안으로 불러모았다. 미로항 첨사 김응함, 평산포 대장 정응두, 거제 현령 안위, 녹도 만호 송여종 등이었다. 수령들은 방 안으로 들어와 둘러앉았고 군관들은 마루에서 열을 지어 앉았다.
“아마도 밝는 날에 싸워야 할 것이다. 격군들을 재우라.”
수령들은 대답이 없었다. 그들은 바다를 뒤덮고 달려드는 3백여 척의 적선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것이었다. 안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름이라, 바다가 사나울 것인즉…”
“피아간에 마찬가지일 뿐이다.”
송여종이 입을 열었다.
“바다에서 진을 어찌 펼치실 요량이신지…?”
송여종은 임진년에 내가 임금에게 보내는 장계를 품고 남쪽 바닷가 여수에서 압록강 물가 의주까지 여러 번 다녀왔다. 낮에는 적들을 피해 엎드려 있다가 밤에만 걸었다. 그는 여수에서 의주에 이르는 그 멀고 먼 길 위의 일들을 말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살아서 돌아왔다. 그는 서른다섯 살의 장년이었다. 그가 진을 묻고 있었다. 나는 되물었다.
“송 만호, 어떤 진이 좋겠는가?”
송여종은 머뭇거렸다.
“이제 배가 열두 척이온즉…”
안위가 말했다.
“열두 척으로 진을 짠다면 대체 어떤…?”
내가 말했다.
“아무런 방책이 없다. 일자진뿐이다. 열두 척으로는 다른 진법이 없다.”
수령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한참 후에 김응함이 입을 열었다.
“일자진이라 하심은…?”
“횡렬진이다. 모르는가?”
“열두 척을 다만 일렬횡대로 적 앞에 펼치신다는 말씀이시온지?”
“그렇다. 밝는 날 명량에서 일자진으로 적을 맞겠다.”
수령들이 다시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말했다.
“적의 선두를 부수면서, 물살이 바뀌기를 기다려라.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 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 개의 한 척일 뿐이다. 이제 돌아가 쉬어라. 곧 날이 밝는다.”
수령들은 돌아갔다. 나는 잠들지 않았다. 날 샐 무렵에 임준영이 그 휘하를 거느리고 우수영으로 돌아왔다. 임준영의 보고에 따르면, 그날 밤 적은 발진 준비를 끝내고 소, 돼지를 잡아서 병졸들을 먹였다. 적은 말을 베어서 대장선 이물에 말피를 발랐다. 나는 임준영과 그 수하를 안위의 배에 배치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우수영 뒷산에서 피난민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