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서 보이지 않는 적의 기척이 내 몸에 느껴지는 날들이 있었다. 적들이 수런거리는 기척은 새벽의 식은땀이나 오한처럼 내 몸 속에서 살아 있는 징후였다. 우수영에서는 보이지 않는 적들이 더욱 확실했다.

 

명량 해협에서 물은 겨울 산속 짐승의 울음소리로 우우 울면서 몰려갔다. 물은 물을 밀쳐내면서 뒤채었다. 말 잔등처럼 출렁거리는 물결이 수로의 가운데를 빠르게 뚫고 나가면, 밀려난 물은 흰 거품으로 소용돌이치며 진도 쪽 해안 단애에 부딪혔다. 물이 운다고, 지방민들은 이 물목을 울돌목이라고 불렀다. 우수영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해남반도에서 목포 쪽으로 달려가던 북서해류는 돌연 거꾸로 방향을 바꾸어 남동쪽으로 몰려가는데, 해협은 하루에 네 차례씩 이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했다.

 

물길이 거꾸로 돌아서는 사이사이마다 바다는 문득 기름처럼 고요해졌고, 그 고요한 잠시가 끝나면 물살은 다시 거꾸로 돌아섰다.

 

명량에서는 순류와 역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함대가 그 흐름에 올라탄다 하더라도 마침내 올라탄 것이 아니었다. 때가 이르러, 순류의 함대는 억류 속에 거꾸로 처박힌 것이었다. 명량에서는 순류 속에 역류가 있었고, 그 반대도 있었다. 적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여기는 사지였다. 수만 년을 거꾸로 뒤채이는 그 물살을 내려다보면서, 우수영 언덕에서 나는 생사와 존망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을 만한 한 줄기 역류가 내 몸 속의 먼 곳에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몸의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바람이었을까. 희미했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내 몸이 그 희미한 역류를 증거하고 있었다. 그것이 삶에 대한 증거인지 죽음에 대한 증거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여기는 사지였다. 일출 무렵의 아침 바다에는 늘 숨을 곳이 없었다. 사지에서, 죽음은 명료했고, 그림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역류 속에서 삶 또한 명료했다. 사지에서, 삶과 죽음은 뒤엉커 부딪혔다. 그것은 순류도 아니었고 역류도 아니었다. 거기서 내가 죽음을 각오했던 것인지, 삶을 각오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 모호함을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정유년 8월 말에 우수영을 떠나 물 건너 진도 벽파진으로 진을 옮겼다. 가벼운 이동이었다. 벽파진은 명량의 사지를 약간 비켜나서 등진 곳이었다. 벽파진과 해남반도 남단 사이에는 시각 장애물이 없었다. 나는 적이 울돌목의 사지로 들어와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전선 12척으로 적을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전략이었다. 전략이라기보다는 그 이외에는 아무런 방책이 없었다. 나는 그 사지가 적에게 공지(空地)로 인식되기를 바랐다. 벽파진은 내가 적을 맞을 해역이 아니었다. 나는 12척뿐이었다. 벽파진 동쪽의 넓은 해역은 나만의 사지였고, 울돌목은 적과 나의 사지였다. 나는 죽기를 위해 죽음을 각오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명량의 사지를 적에게 비워주고, 벽파진 쪽으로 적의 척후를 유도했다. 진을 옮긴 후 벽파진을 겨누는 적의 척후는 눈에 띄게 빈번해졌다. 적은 주력의 앞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적의 더듬이는 바쁘게 움직였다. 소규모의 산발적 야습으로 적들은 집적거렸다. 적들은 늘 달 없는 새벽에 왔다. 적들은 물 위에 비친 캄캄한 섬 그림자 속에 숨어서, 연안에 바싹 붙어서 이동했다. 잠든 함대를 깨워서 내보내면 적들은 더 이상 근접하지 않고 물러갔다. 그 너머에 복병이 있을 수 있었다.

 

“멀리 따라가지 말라. 다만 쫓아 보내라.”

 

나는 출동하는 함대에게 일렀다. 적들의 야습은 거의 매일 계속되었다. 일몰 후에는 망군을 촘촘히 배치했다. 망군들을 재울 수가 없었다. 야습의 목적은 교전이 아니라 탐색과 유인이었다. 그것들은 주력의 앞길을 평탄케 하려는 예민한 더듬이였고, 적의 더듬이는 벽파진 일대의 나루를 더듬거렸다. 울돌목의 사지는 비어 있었다.

 

내륙에서는 창녕, 합천, 웅치, 익산, 전주, 직산이 무너졌다. 육군은 한강 방어선까지 물러났다. 도원수부에서 오는 전령은 매일같이 전선 붕괴와 함락의 소식을 전했다. 추석이 지난 바다는 날마다 추워졌다. 다시 커져오는 달빛이 물 속 깊이 스몄다. 적은 밀물이 사나운 보름을 겨누어, 커져가는 달빛을 따라올 것이었다.

 

벽파나루는 물 건너 삼지원나루를 마주보고 있었다. 삼지원 포구마을 뒷산 옥매봉에서 연기가 올랐다. 임준영이었다. 임준영은 해남 달마산, 두륜산 일대에 박아놓은 척후장이었다. 달마산 꼭대기에서는 해남반도 남쪽 바닷가 적의 기지가 손살피처럼 내려다보였다. 임준영은 군관으로, 5명의 척후병을 인솔하고 있었다. 그는 달마산 꼭대기에서 삼지원까지를 반나절에 달렸다.

 

“배를 보내라.”

 

협선 한 척이 건너가서 임준영을 싣고 왔다. 나는 벽파나루 물가에서 임준영을 맞았다. 그는 농부 차림이었고 미투리 여러 켤레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수루로 올라가자.”

 

“아니올시다. 곧 임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적이 바삐 움직이고 있소이다.”

 

나는 물가 갯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임준영의 보고를 들었다.

 

“적선 쉰 척이 어제 해남 어란진에 들어왔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았습니다. 멀고 또 물 아지랑이가 흔들려서 쉰 척인지 쉰다섯 척인지 확실치 않지만 쉰 척은 넘었습니다. 그제도 열 척이 들어왔습니다. 모두 경상 해안 쪽에서 왔습니다. 산을 내려가서 포구 쪽으로 바싹 다가갔습니다. 군량과 화약도 어란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어란진에 모인 적선들은 부러진 노를 갈아끼우고 돛을 수리했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적들은 군량을 배에 싣기 시작했습니다. 밤이면 적장들끼리 모여 사로잡힌 조선 여자들에게 풍악을 잡히고 놀았습니다. 조선 여자들은 조선 노래를 불렀는데, 경상도 노래도 불렀고 전라도 노래도 불렀습니다. 밤늦게 적장들은 조선 여자를 하나씩 끼고 선실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더욱 바싹 다가갔습니다. 새벽에 이 방 저 방으로 여자들이 바뀌었습니다. 어제는 적에게 생포되었다가 도망친 조선 선비를 달마산 중턱에서 만났습니다. 그 선비는 일본말을 알아들었습니다. 그가 적의 진중에 묶여 있을 때 적장들이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는데, 진도 쪽의 조선 수군은 불과 열두 척으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물길을 따라 서해로 올라가 한강으로 들어가서 서울을 도모하자고 저희들끼리 말했답니다. 적들은 말린 생선을 군것질처럼 씹고 다녔고, 아무데나 똥오줌을 누었습니다. 해남에 백성들은 자취도 없었습니다. 적들은 달아난 백성들의 집에 불을 질렀고, 백성의 어린 자식들을 붙잡아 나무에 묶어놓고 조총 연습을 했습니다.”

 

임준영은 느리고도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나는 듣기만 했다.

 

“수고했다.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씩 매일 오너라. 네가 힘들면 너의 수하를 보내라. 적선들이 일제히 발진하는 날에는 동태를 감지한 즉시 미리 달려와서 보고하라. 유념해라.”

 

임준영은 타고 왔던 배로 물을 건너갔다.

 

적의 전략 목표가 서울이라면, 적의 주력은 벽파진으로 오지 않고, 울돌목으로 올 것이었다. 적들은 물이 목포 쪽으로 몰려가는 북서 밀물의 시간에 밀물 위에 올라타서 명량을 빠져나갈 것이었다. 아마도, 밀물이 가장 거칠게 밀리는 보름 전후에, 적들은 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보름 전후에, 적과 나의 사지에서 순류와 역류는 가장 거칠게 뒤채일 것이었다.

 

임준영은 벽파진에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갔다. 나는 갯바위 위에 앉아서 저무는 해남 쪽 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밤을 새울 망군들이 제 초소로 나아갔다. 번을 마친 수졸들은 바위틈에서 저녁의 잔광을 쪼이며 옷을 벗어 서캐를 잡았다.

 

그날 밤, 나는 조정으로 보내는 장계를 썼다. 며칠 전 도원수부에서 전해온 임금의 유시에 대한 답신이었다. 그때, 임금은 수군이 외롭고 의지할 데 없으니 해전을 포기하고 장졸을 인솔해서 육지로 올라가 도원수부의 육군과 합치라는 것이었다. 나를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 지 며칠 후에 임금은 또 그런 유시를 내려보냈다. 임금은 적이 두려웠고, 그 적과 맞서는 수군 통제사가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임금의 싸움이었다. 그날 밤 달은 상현이었다. 보름까지는 며칠이 남아 있었다. 그날 밤, 벽파진 수영에서 나는 간단히 썼다. 통제사가 된 뒤 두 번째로 쓰는 장계였다.

 

“이제 수군을 폐하시면, 전하의 적들은 서해를 따라 충청 해안을 거쳐서 한강으로 들어가 전하에게로 갈 것이므로, 신은 멀리서 이것을 염려하는 바입니다.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사온즉…”

 

그리고 나는 한 줄을 더 써서 글을 마쳤다.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