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헛것인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헛것들은 실체의 옷을 입고, 모든 실체들은 헛것의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젊은날, 여진족과 맞서 있던 두만강가 산속에서, 출렁거리며 대륙을 달려가는 산맥들은 보이지 않았고 남쪽 물가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눈보라 속에서는 눈과 바람의 저쪽이 보이지 않았지만, 크고 또 확실한 적들은 늘 보이지 않는 저편으로부터 몰려왔다.

 

임진년의 세월은 정초부터 흉흉했다. 그 전해에도 그랬고, 또 그 전해에도 그랬다. 길삼봉이라는 이름의 허깨비가 구름을 타고 돌아다니며 산천에 피를 뿌리고 있었다. 길삼봉이 지리산 피아골에서 역모의 군사를 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금부 나졸들이 거렁뱅이 두 명을 붙잡아왔는데, 그 거렁뱅이들이 ‘길삼봉’의 이름과 행적을 실토했다. 황해도에서 잡아온 거렁뱅이들이었다. 황해도 거렁뱅이가 지리산에 숨어 있다는 길삼봉의 행적을 소상히도 진술했다. 길삼봉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길삼봉을 보았다는 자들이 전국에서 속출했다.

 

길삼봉은 천안의 농갓집 종놈인데, 나이는 예순쯤 되었고 얼굴을 구릿빛이고 살이 쪘다고도 했다. 또 어떤 자들은 길삼봉은 나이가 서른 살이고 흰 수염이 허리에까지 내려왔으며 얼굴은 희다고도 했다. 길삼봉은 수괴가 아니라 역적의 졸병이고, 하루에 3백 리를 걷는다는 말도 있었다. 길삼봉은 성이 길가가 아니고 최가인데, 몇 년 전에 이미 산병(散兵)하고 함경도 북청에서 죽었다는 말도 떠돌았다. 길삼봉은 현 임금이 등극하던 다음해에 이미 군사를 거느리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곧 쳐들어올 일본군의 선봉대로 다시 바다를 건너오게 되어 있는데, 조선 왕이 항복하면 길삼봉이 일본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조선을 다스리게 된다는 말도 있었다.

 

길삼봉의 허깨비는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나 길삼봉은 어디에도 없었다. 헛갈리는 냄새는 짙었으나 자취는 없었다. 관군은 온 나라의 벽촌과 해안을 모두 뒤졌으나 길삼봉을 잡지 못했다.

 

마침내 길삼봉은 누구냐?라는 질문은 누가 길삼봉이냐?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질문의 구조가 바뀌자 길삼봉의 허깨비는 피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 길삼봉으로 지목된 사람은 정여립이었다. 그때 그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진안에 숨어 있었다. 금부 나졸이 닥치자 그는 아들과 측근들을 베어 죽이고 그 칼로 자살했다. ‘천하는 공물이라 주인이 따로 없다’라는 그의 글이 압수되어 서울로 올라갔다.

 

정여립이 자살하자 길삼봉의 허깨비는 실체로 둔갑했다. 그 다음에 길삼봉으로 지목된 사람은 진주의 선비 최영경이었다. 젊어서, 그는 한때 삼봉이라는 호를 썼다. 그는 임금이 불러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고, 우의정 정철을 벌레처럼 경멸했다고 한다. 의금부 형틀에 묶여 최영경의 몸은 걸레가 되었다. 길삼봉인지 아닌지 밝혀지기 전에 그는 옥에서 죽었다. 죽었으므로, 그는 길삼봉의 대접을 받았다. 감옥 안에서 그는 늘 벽에 기대는 일이 없이 단정히 앉아서 옷깃을 여미었고, 그의 낯빛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감옥으로 면회 온 가족들에게 그는 바를 정(正)자 한 글자를 써서 보여주었다.

 

“너희가 이 글자를 아느냐?”

 

그렇게 말하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정여립과 최영경에 연루된 자들 천여 명이 형틀에 묶여 죽었다. 가족 친척이 죽었고 함께 술마시며 음풍농월한 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은 자들과 그들을 두둔한 자들과 그들을 욕한 자들을 욕한 자들이 모조리 끌려와서 베어지거나 으깨졌다. 매일매일 가마니에 덮인 시체들이 시구문 밖으로 나갔다. 시체를 묻어준 자들도 끌려와서 베어졌다.

 

중국 산수화를 들여다보고 있던 임금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옥에 갇힌 자들을 끌어내서 죽였다. 팔십 먹은 노파를 곤장으로 쳐 죽였고, 여덟 살 난 남자아이와 다섯 살 난 여자아이를 무릎을 으깨서 죽였다. 목격한 사실을 자백하라는 위관의 심문을 아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때리고 꺾고 비틀고 지지면서 형리들은 울었고, 울던 형리들이 다시 형틀에 묶였다. 우의정 정철이 그 피의 국면을 주도했다. 정철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민첩하고도 부지런했다. 그는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근면히 살육했다. 살육의 틈틈이, 그는 도가풍의 은일과 고독을 수다스럽게 고백하는 글을 짓기를 좋아했다. 그의 글은 허무했고 요염했다. 임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삼봉은 천 명이 넘었으나, 길삼봉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무렵 나는 여수의 좌수영에 부임해 있었다. 이따금씩 서울에서 내려오는 선전관들과 그들을 수행한 하급 벼슬아치들에게 술대접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서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길삼봉. 나는 길삼봉을 떠올렸으나, 길삼봉은 떠올려지지 않았다. 길삼봉은 강력한 헛것이었다. 바다 건너의 적들처럼, 길삼봉은 보이지 않았다. 내 칼은 보이지 않는 적을 벨 수 없었다. 나는 두개골 속이 가려웠다. 나는 맑은 청정수를 들이켜고 싶었다. 이 세상과의 싸움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헛것은 칼을 받지 않는다. 헛것은 베어지지 않는다.

 

술취한 선전관으로부터 길삼봉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길삼봉은 임금 자신일 것이었다. 그리고 승정원, 비변사, 사간원, 사헌부에 우글거리는 조정 대신 전부였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는 길삼봉이 숨을 수 있는 깊은 숲이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풍수쟁이 남사고가 임진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선전관은 말했다. 남사고는 서울 관상감에서 천문학 교수를 맡은 인물이라고 했다. 어느 날 밤에 샛별이 흐려졌다. 남사고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던 늙은 감정이 ‘이것은 내가 죽을 징조다’라고 말했다. 남사고는 빙그레 웃었다. ‘죽을 사람이 따로 있다’라고 남사고는 말했다. 남사고는 며칠 후에 죽었다.

 

선전관들의 말에 따르면, 서울 도성 안에서는 유림 사대부 집 자식들이 수백 명씩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미치광이나 괴물의 흉내를 내며 히히덕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건을 쓴 젊은 선비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몸을 구부려 앞선 자의 허리춤을 붙잡고 뱀처럼 흔들면서 종로통을 휩쓸며 다니는데, 우는 자, 웃는 자, 실성한 자, 발광한 자, 술 취한 자, 토하는 자들이 뒤섞여 도깨비나 무당의 흉내를 냈다. 공맹을 외던 젊은 선비들이 대낮에 거리로 몰려나와서 짐승이 흘레붙는 흉내를 냈다. 그들의 놀이의 이름은 <등등곡>이라 했다. 도성 안 백성들은 남산, 관악산, 무악산에 모여 날마다 해가 지도록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복사꽃 피니 세상은 끝나네>가 그들의 노래였다고 한다. 도성 주변 모든 왕릉에서 밤마다 귀신 울음이 들려 수비하던 군사들이 놀라 흩어졌다고도 했다.

 

선전관 일행과 늦도록 술을 마시던 날 밤에 방답 권관 김옥천이 탈영했다. 아침에도 술이 깨지 않았다. 방답 만호가 수졸을 보내 보고해 왔다. 군사를 풀어 좌수영 관하의 모든 포구와 나루를 막았다. 그의 고향 강진에도 군관을 보냈다. 강진으로 가는 군관에게, 베어서 머리만 들고 오라고 일렀다. 김옥천은 오동도 나루에서 배를 타고 먼바다 쪽으로 달아났다. 여천 격군들이 바다에서 김옥천을 붙잡았다. 배에는 젊은 여자가 한 명 타고 있었고, 훔친 군량미 세 가마와 이부자리, 소금, 그리고 솥단지가 실려 있었다. 남녀가 함께 묶여서 끌려왔다. 김옥천은 작년에 무과 병과에 급제한 자였다. 스물두 살이었고, 태껸과 활 솜씨가 좋았다. 묶여 있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젊음의 힘이 빛났다. 콧날이 완강해 보였다.

 

“어디로 가려 하였느냐?”

 

“나는 단지 살고 싶었소. 여기가 아닌, 먼 섬으로 가려고 했소.”

 

동헌 노대석 위에 꿇어앉히고 군관을 시켜 베었다. 칼을 받기 직전에 김옥천은 고개를 들었다. 상대를 밀쳐내는 눈동자였다. 젊은 사내의 거친 힘이 끼쳐왔다.

 

“나으리, 민망한 말씀이오만…”

 

“말하라.”

 

“우리는 지금도 살고 싶소. 나를 죽이시고 저 여자를 살려주시오. 저 여자를 나으리께 바치리다. 곱고 착한 여자요. 거두어서, 죽이지는 마소서.”

 

나는 군관들에게 소리쳤다.

 

“집행하라.”

 

좌수영 선착장은 군사들의 출입이 빈번했다. 김옥천의 머리는 장대에 꽂혀서 선착장 기찰 초소에 세워졌다.

 

남자를 벨 때, 묶인 여자는 눈을 들어서 집행의 과정을 읽듯이 바라보았다. 여자의 얼굴은 고요했다. 허공을 가르던 칼이 남자의 목에 내려올 때, 여자의 맑은 시선은 칼을 따라 이동했다.

 

나는 여자를 풀어주었다. 풀려난 여자는 갯가로 내려가 해송 가지에 목을 매고 죽었다. 격군들이 여자의 시체를 동헌 마당으로 옮겨왔다. 격군들은 여자의 빼물린 혀를 입 안으로 밀어넣고 입을 오므려주었다. 여자의 죽은 얼굴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그 여자의 아비인 늙은 어부를 잡아들였다. 어부가 달아나는 남녀에게 배를 내주었다. 그 배는 수군에 징발된 목선이었다. 돛은 없고, 노만 있는 배였다. 돛 없는 배를 타고 젊은 남녀가 가려던 '먼 섬'이 어느 섬인지 알 수 없었다. 죽은 딸의 시체를 노려보는 어부의 눈빛이 타올랐다.

 

“그 배는 내 배요. 나으리 배가 아니오. 내 배를 내 딸에게 내준 것이오.”

 

늙은 어부는 형틀에 묶여서 소리쳤다. 곤장 스무 대를 때렸다. 어부는 힘겨운 일을 감당하듯이 겨우겨우 매를 감당했다. 스무 대째에 고개가 꺽여졌다. 동헌 문 밖에는 어부의 처와 아들이 지게를 지고 와서 기다렸다. 어부의 아들은 늘어진 아비를 지게에 싣고 돌아갔다.

 

방답진 색리가 묶여서 끌려왔다. 군관들의 조사에 따르면, 김옥천이 군량미 세 가마를 빼돌릴 때 이 색리와 공모했다. 여죄도 만만치 않았다. 징모 부정과 탈영자 은닉이었다. 군사를 보내 색리의 집을 수색했다. 곡식과 가축을 모두 끌어다가 수영 창고로 옮겼다. 색리를 베어서 그 머리를 방답으로 돌려보내 진중에 걸게 했다.

 

그날, 선전관 일행은 서울로 돌아갔다. 나는 수영 어귀까지 전송했다. 저녁때 사정에 올라가 활을 쏘았다. 열다섯 순을 쏘았다. 먼 바다 쪽에서 안개의 비린내가 몰려왔고, 표적 너머에서 길삼봉의 환영이 어른거렸다. 어디를 조준해야 하는지, 표적은 흔들렸다. 바람은 계통 없이 불어댔다. 화살은 거의 맞지 않았다. 어두워져서 사정에서 내려왔다. 표적은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