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군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사방으로 포위를 당한 여포는 밤잠 설치며 이각 무리들을 피해다녔다. 며칠 동안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여 세수도 못한 여포의 몰골은 거지꼴이었다. 금방이라도 함락될 것처럼 위태위태한 장안성에선 지난날 동탁의 무리였던 이몽(李蒙)과 왕방(王方)이 성 밖의 군사들과 내통하여 성문을 열었다. 이를 신호로 군사들이 물밀듯이 쳐들어가자 여포는 급히 말을 달려 왕윤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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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급박하니 대감은 말을 몰아 나를 따르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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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왕윤은 충신다운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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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천자가 계신 성이 적의 손에 넘어가는데 나 홀로 어찌 살 길을 도모하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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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계속 독촉하였으나 왕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때 모든 성문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다급해진 여포는 남은 기병 백여 명만 거느리고 그 길로 달아나 원술에게 갔다.
장안성은 마침내 함락 되었다. 이각과 곽사는 휘하의 군사들이 닥치는 대로 살육과 노략질을 일삼았지만 관군 중 누구도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곧 성안에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던 태상경 충불(种拂)과 태복 노규(魯頄), 대홍려 주환(周奐), 성문교위 최열(崔烈), 월기교위 왕기(王頎) 등이 칼을 들고 맞섰으나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 난리통에 장안성의 관원과 백성, 1만여 명이 비명횡사했다.
☞ 제사를 맡은 부서인 태상의 장관인 태상경과 황제의 말을 맡은 태복, 제후와 귀순한 이민족을 관장하는 대홍려는 다 삼공에 버금가는 벼슬이며 구경이라 부르는 고위 장관급이다. 이날 하루에 구경 중에 셋이나 죽었다. 다른 두 사람이야 동탁 제거에 관여했으니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충불은 스스로 ‘도적에게 몸을 의지할 수는 없다’ 며 칼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죽었다.
성문교위 최열은 십상시의 난 중에서 북망산으로 도망갔다가 걸식하는 소제와 헌제를 구해준 최의의 형님으로, 중평 2년(185년)에 구경의 하나인 정위 벼슬을 하다가 500만 전을 내고 삼공의 하나인 사도 벼슬을 샀다. 하지만 이름난 명사가 겨우 돈으로 벼슬을 샀다는 비아냥을 들어 다시 태위로 벼슬을 옮겼다. 허나 그 후 1억 전을 낸 조조의 아버지 조숭에게 벼슬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장안으로 수도를 옮겨온 후 수도의 성문을 책임지고 있다가 죽임을 당했다. 월기교위 왕기는 원래 경성을 지키는 것이 직책이었기에 역시 항거하다가 죽었다.
이각의 무리들은 궁중 내정을 둘러싸고 천자를 위협했다. 잠시 후, 헌제가 문루에 올라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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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어찌 미리 아뢰지 않고 장안으로 쳐들어오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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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태사는 전하의 충신이온데 왕윤의 간교에 넘어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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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제를 옆에서 보필하던 왕윤이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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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나라를 위해 계책을 쓴 것인데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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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이 곧 얼굴을 내밀어 이각과 곽사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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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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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은 어찌하여 동태사를 죽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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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놈의 방자한 행실은 만백성이 알고 땅이 알고 하늘까지 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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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난날의 죄를 사죄하는 우리는 왜 쥐 잡듯 했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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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참말로 많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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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는 즉시 칼을 들어 왕윤을 죽였다. 나라의 힘이 될 뜻은 있으되 너무 고지식한 것이 탈이었던 왕윤이었다.
☞ 후한 말기의 대표적인 충신 왕윤은 동탁 암살을 주도하면서 조정의 실세로 등장했으나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 바른 길로 가게 하는 일’ 에 매진하기는커녕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나라사정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동탁 암살의 주모자인 왕윤은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직하고, 옳고 그름이 분명했으며, 절개를 지켜 이름이 높았는데, 동탁도 왕윤의 대쪽 같은 기질을 꺼려하여 그의 비위를 맞추어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동탁을 죽이고 세상근심을 모두 털어내는 듯했던 왕윤은 사후처리에 있어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위 ‘바른 도리’ 에만 연연하다가 일을 그르치게 되었고, 이런 그의 실정으로 조정의 대신들도 그를 따르지 않았다는 기록이 여럿 있다.
동탁이 거느렸던 양주의 군사들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왕윤은 지나치게 보수적인 입장을 내세웠는데, 이들을 규합해 조정의 근간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실속없이 명분에만 집착하여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소설의 이야기와는 달리 왕윤은 동탁의 잔당세력들을 사면하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이 바뀌어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띄웠는데, 흔히 매도 맞을 때보다 기다릴 때가 더 무서운 것처럼 용서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잡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지지부진하게 세월만 죽이다가 결국 불안을 느낀 양주 출신의 무장들이 먼저 군사를 몰아 장안을 공격한 것이다.
왕윤은 군사를 쓰는 문제에서도 무능함을 드러냈다. 그의 계략으로 목숨을 잃은 동탁은, 소설에서 폭군의 대명사로서 인덕이나 지도자의 자질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무능한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그는 서량이라는 든든한 기반을 발판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황제를 내세워 3년이나 권력을 틀어쥐고 있었다. 189년에 낙양에 입성한 동탁은 자신이 거느린 양주 병사들과 정원이 데리고 왔던 병주의 군벌을 통합하여 거대한 세력을 이루었는데, 이 두 지방 사람들이 서로 융합되지 못하고 다시금 사이가 벌어졌으니 그것이 바로 여포의 세력이었다. 여포는 동탁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그의 경호대장이 되었으나 동탁이 거느렸던 양주 지방 장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해서 병주 출신인 왕윤의 이간계에 넘어가 동탁 암살에 앞장서고 만 것이다. 이 계획에 깊이 관여한 이숙 또한 병주 사람이다. 왕윤이 이각과 곽사를 막으라고 보낸 군사들이 하필이면 동탁이 거느렸던 양주 출신들이었고, 이들이 고향에서 같이 살았던 이각무리에 붙어버린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들 속에 섞여서 출정했던 다른 지방 출신의 병사들은 싸우다가 모두 몰살하고 만다. 어디 그뿐인가. 이각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파견된 대장은 정원의 휘하에 있던 여포였는데, 그가 거느린 군사들은 또 병주 출신이었다. 이렇게 일관성이 없이 국방력을 소모하였으니 왕윤이 몰락한 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왕윤의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충직한 성품’ 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지만 결과적으로 후한의 나라사정을 더욱 파탄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되기도 했으니, 그의 기분이 참으로 착잡하지 않을까.
왕윤의 친척 가운데 그 형의 아들 왕신(王晨)과 왕릉(王凌)만이 이각의 무리들을 피해 겨우 몸을 빼내어 고향으로 달아났다. 왕릉은 후에 조조에게 의탁하여 주부벼슬을 하다가 자사, 정동장군, 거기장군 등의 승진을 거듭했는데, 249년에는 나라의 최고위급인 태위에까지 올랐다. 그때 위나라를 다스리는 조방(曹芳)이 왕의 그릇이 아니라 하여 연주 자사 영호우(令狐愚)와 내통하여 조조의 아들 조표(曹彪)를 황제로 세우려다가 실패로 끝났고 왕릉은 가평 3년(251년)에 사마의(司馬懿)에게 항복하여 자결하고 말았다.
그는 죽기 전에 “여든의 나이로 몸과 이름이 함께 끝장나는구나!” 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이각과 곽사는 즉시 군사를 보내어 왕윤의 집안을 초토화 시키고는 모든 친족을 몰살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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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천자는 우리의 손에 있으니 이참에 죽여버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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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칼을 빼어 드는데 장제와 번주가 이를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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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천자를 베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따르지 않을 것이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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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제는 왕윤을 죽이고도 저들끼리 쑥덕거리고 있는 네 역적에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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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은 이미 죽었는데 어찌하여 너희들은 군사를 물리지 않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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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의 공을 인정하는 벼슬을 내려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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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들이 대체 무슨 공을 세웠다고 그런 되도않은 소리를…’ 이라고 황제는 말하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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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벼슬을 원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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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 곽사, 장제, 번주 등은 서로 눈알을 굴리다가 바로 글로 적어 황제에게 바쳤다. 황제가 읽어보더니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만다. 이각은 거기장군 지양후에 사례교위를 겸하고, 곽사는 후장군 미양후를, 번주는 우장군 만년후, 장제는 표기장군 평양후의 직위를 달라고 떡하니 적어놨다. 황제체면에 주먹을 쓸 수도 없고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요구를 들어주니 이각의 무리들은 그제서야 실실 웃으며 군사를 물려 홍농군에 주둔하였다. 그리고 역적들과 내통하여 성문을 열어준 이몽과 왕방에게도 각각 교위의 벼슬을 주었다.
황제를 손아귀에 넣은 이각의 무리들은 동탁의 시체와 목을 찾아 향나무로 유실된 부분을 만들어 넣었다. 그리고는 크게 제사를 지낸 후, 기일을 정해 미오땅에 장사를 지냈다. 헌데, 갑자기 하늘에서 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동탁의 시체가 관에서 빠져나와 바깥으로 드러났다. 이각은 다시 날씨가 맑아지기를 기다려 몇 번을 장사 지내는데, 다시 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면서 동탁의 시체를 헤집어 놓았다. 계속하여 장사된 시체가 드러나니 하늘이 동탁에게 벌을 내린다고 백성들이 수군거렸다.
☞ 이각 일당은 원래 그 벼슬이 교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중간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단번에 최고위급 장성들이 되었으니, 낙하산도 이만하면 로또급이었다. 이들은 절과 월을 얻어 썼는데, 이것이 뭔고하니, 황제의 특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조정의 군권을 독단으로 총지휘할 수 있는 일국의 수장을 말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악의 보스를 멸하고 이제 한시름을 놓는가 싶었던 장안의 백성들은 동탁의 그늘에서 추잡한 행실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똘마니 이각과 곽사 일파가 당당히 후계반열에 오른 후부터 동탁보다 더한 악정으로 고통받았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차라리 동탁이 건재했을 때가 이보다 나았다… 고 푸념하는 사람들.
그때부터 황제를 손에 넣은 두 사람은 권력을 남용하여 지들 맘대로 벼슬을 주고 뺐고 다시 내리고를 반복하였다. 이들은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주준(朱儁)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임금의 수레를 맡는 태복으로 임명해 정사를 보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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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량땅의 태수 마등이 병주 자사 한수(韓遂) 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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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과 한수는 먼저 장안의 시중 마우와 간의대부 충소(种邵), 좌중랑 유범(劉範)과 내통하여 역적을 토벌하기 위해 서로 긴밀히 연락을 주고 받았다. 시중이나 간의대부, 좌중랑장은 궁궐에서 일을 보는 관원들이라 황제를 뵙는 것이 어렵지 않아 쉽게 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헌제는 마등을 정서장군으로, 한수를 진서장군으로 봉하고 이각의 무리들을 치라는 밀서를 내렸다.
한편, 이각 일파는 마등의 침공소식에 모두 모여 대책을 협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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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은 먼 곳에서 원정을 오는 것이므로 호를 깊이 파고 성벽을 높이 쌓아 수비작전으로 나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저들은 자연 양식이 떨어질 것이니 우리는 성안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얼마 가지 않아 물러날 것이니 그때 군사를 이끌고 뒤를 치면 마등과 한수를 사로 잡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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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의 말에 이몽과 왕방이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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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 군사 만 명만 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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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은 당대의 호걸이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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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과 왕방은 끝까지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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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지고 돌아오면 군법으로 처벌을 받을 것이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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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고집을 부리자 가후가 이각과 곽사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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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서쪽에 주질산이 있는데 지세가 매우 험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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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는 가후의 의견을 따라 이몽과 왕방에게 군사 만 5천을 주었다. 이몽과 왕방은 군사를 거느려 장안을 벗어나서는 280리 밖에 진을 세웠다.
얼마 후, 서량의 군사들이 나타났다. 이몽과 왕방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앞을 가로막아 길게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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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역적질을 한 천하의 날파리 두 놈이 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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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범 같은 장수가 뛰어나가니 그는 마등의 아들, 마초(馬超)였다. 훗날 유비에게 투항하여 촉나라의 오호대장 중 한 사람이 되는 마초는 이때에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17살의 소년이었는데 나이를 짐작키 어려운 용맹함은 이미 유명세를 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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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의 똥파리들아! 나는 서량의 마초 맹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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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방은 새파란 애송이가 달려나오자 자만하여 앞으로 말을 몰아 나갔지만 몇 합을 겨루기도 전에 마초가 내지르는 창에 찔려 말 아래로 떨어졌다. 마초는 왕방을 죽이고는 더 머물지 않고 말을 돌렸다. 이 꼴을 본 이몽이 마초를 노리고 달려 나왔다. 그러나 마초는 뒤를 쫓는 이몽을 미처 보지 못한 척 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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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적장이 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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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초는 이몽이 바로 뒤까지 쫓아오자 가볍게 그의 멱살을 잡아 자신의 말에 태우고는 계속하여 달렸다. 한심한 두 대장이 죽고 사로잡히자 지휘관을 잃은 적의 군사는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지기 바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등과 한수가 추격하여 닥치는 대로 찔러 죽여 싸움은 하루도 못가 결판이 났다. 완벽한 승리에 마등과 한수는 크게 기뻐하며 이몽의 목을 베고는 협곡 어귀까지 나아가 영채를 세웠다.
한편, 장안의 이각과 곽사는 이몽과 왕방이 힘 한번 못쓰고 마등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전갈에 크게 놀랐다. 이에 가후의 수비계책을 신뢰하여 일체 성 밖으로 나오질 않고 수비에만 전념하였다.
과연 가후의 예견은 적중했다. 서량군은 불과 두 달이 못 되어 군량과 마초가 떨어져 고민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자신들과 내통하였던 이들이 전부 발각되어 이각 일파에게 목이 달아나자 마등과 한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영채를 뽑아 물러갔다. 이 소식은 이각과 곽사에게도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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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는 마등을, 번주는 한수를 추격하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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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량군은 군사를 모두 물려 퇴각하다가 뒤를 추격하는 장제의 군사들에게 대패하여 우왕좌왕했다. 마초가 후방으로 달려가 겨우 추격을 뿌리치고 장제를 물리쳤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한수가 번주의 추격을 피하느라 똥줄이 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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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대는 본래 한 고향사람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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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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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내가 군사를 일으킨 것은 나라를 위함이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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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주는 한수의 말을 듣더니 마음의 변화가 생겨 그가 달아나게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이 일을 이각의 조카 이별(李別)이 고해 바쳤다. 이각이 노발대발하여 군사를 일으켜 번주를 치려 하자, 가후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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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라가 뒤숭숭하니 군사를 자주 일으키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잔치를 열고 장제와 번주를 불러 노고를 치하하는 척 하다가 그 자리에서 번주를 잡아 죽이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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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은 즉시 잔치를 열어 장제와 번주를 불렀다. 두 장수가 술잔을 주고 받으며 한껏 취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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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에게 벼슬을 주고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거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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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주가 당황하여 대꾸도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도부수들이 일제히 달려나와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니 장제는 영문도 모른 채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허나 이각은 장제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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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주는 반역을 꾀하였기에 목을 베었지만 그대는 나의 심복이니 심려마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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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번주가 이끌던 군사를 장제에게 주어 곧 홍농으로 돌아가 군사를 주둔시키도록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서량군이 이각과 곽사에게 크게 패하여 도망하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각지의 제후들은 섣불리 군사를 일으키지 못했다.
조정을 손아귀에 넣은 이각 일당은 모사 가후의 의견에 따라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품과 동시에 어진 인물들을 등용하여 어수선했던 조정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헌데 청주땅에서 황건적이 일어나 곳곳을 노략질한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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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적을 토벌하기 위해 한 사람을 천거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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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누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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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맹덕이면 능히 황건적을 토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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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동탁을 추격하다가 대패하여 구사일생하였던 조조는 연주 동군의 복양현에서 도적들을 몰아내고 세력을 다시 일으켰다.
그 뒤 무양현에서 황건적의 잔당인 흑산군의 수령 우독을 깨뜨렸다.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기주 위군의 내황현에서 흉노를 맞아 전과를 올렸는데 주준은 이런 조조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이각은 즉시 조서를 꾸며 조조에게 보냈다. 제북의 상인 포신과 연합하여 도적을 치라는 칙명을 받은 조조는 곧 군사를 일으켜 수양땅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포신은 경솔히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그만 죽임을 당했다. 이에 조조는 군사를 모두 휘몰아 황건적을 토벌하여 제북땅까지 몰아내었다. 크게 패하여 궁지에 몰린 황건적은 곧 무기를 버리고 조조에게 투항했는데 그의 군세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조조는 그 중에서 날쌔고 힘이 좋은 자들만 뽑아 청주군(靑州軍)이라 부르고 나머지는 모두 각기 고향으로 돌려보내었다. 조조가 황건적을 크게 깨뜨렸다는 첩서를 받은 조정은 진동장군의 벼슬을 주어 조조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초평 3년(193). 연주땅에서 주둔하며 날마다 군사를 키워 세력을 확장하던 조조는 인재를 수소문하여 능력 있는 자들을 널리 등용하였는데 그 중에서는 영주군 영주현 사람인 순욱(荀彧)이란 당대의 지략가도 끼어있었다. 그는 순곤(荀昆)의 아들로서 원소를 섬기다가 조조에게로 등을 돌린 사람이었다. 조조는 날마다 순욱과 세상사를 논하였는데 그의 식견이 실로 놀라운지라 그를 부르기를 “순욱은 나의 장자방(한 고조 유방의 참모였던 장량)이다” 며 크게 중용하여 행군사마로 봉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순유(荀攸)였다. 순유는 일찍이 그 명망이 널리 퍼진 인재였는데 황문시랑의 벼슬을 지내다가 이를 버리고 고향으로 가 소일하면서 시간을 죽이던 중, 숙부 순욱과 함께 조조에게로 온 것이다. 조조는 순유를 행군교수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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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은 널리 인재를 등용하여 힘을 키우셔야 합니다. 이곳 연주땅에 어진 선비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사온데 지금도 머무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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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귀가 솔깃하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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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선비라니 그것이 누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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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군 동아땅 사람으로 정욱(程昱)이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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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즉시 사람을 시켜 찾게 하였더니 정욱이 산속에서 서책을 읽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전해왔다. 조조는 성의를 다하여 정욱(程昱)을 초청했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름에 응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대접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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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이리 대접하여 주시니 제가 주군께 한 사람을 천거하고자 하옵니다. 순욱공이 말씀하신 것과는 달리 저는 그리 큰 그릇이 못되지만 이 사람은 능히 주군의 곁에서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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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입이 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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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가란 인물로 당대의 뛰어난 선비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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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곧 사람을 보내어 곽가(郭嘉)에게 예로서 와줄 것을 부탁했다. 얼마 후, 곽가 역시 조조의 부름에 응하였고 곧 또 다른 인물을 천거했다. 광무황제의 적손인 회남 성덕땅 사람인 유엽(劉曄)이었다. 조조는 또 사람을 보내어 유엽을 불렀다. 유엽은 조조의 극진한 대접에 감사하며 다른 두 인물을 천거하는데 한 사람은 산양군 창읍현 출신인 만총(滿寵)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무성땅 출신의 여건(呂虔)이었다. 조조는 발 빠르게 움직여 둘을 초빙하고는 군부종사로 삼았다. 만총과 여건이 함께 한 인물을 천거하였는데 그는 진류군 평구땅 사람으로 모개란 자였다. 그렇게 인재가 꼬리를 물고 찾아오니 조조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질 날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장수가 군사 수백 명을 거느리고 찾아왔다. 그는 태산군 거평현 사람으로 우금(于禁)이었다. 조조는 우금의 활 솜씨와 무예가 절륜함을 보고 점군사마로 삼았다. 또다시 얼마 후, 하후돈이 덩치 산만한 자를 데리고 왔는데 전위(典韋)란 인물이었다. 조조가 그와 더불어 팔씨름 한판 하고 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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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그 옛날의 악래(은나라 때 주왕의 장수였고 힘이 천하의 장사였음)에 버금가는 인물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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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전위를 본영의 도위로 삼아 친히 비단옷과 좋은 말을 하사했다. 곳곳에서 몰려드는 인재를 바탕으로 산동 일대를 장악하면서 조조의 이름은 산동일대에 널리 퍼졌다.
세력을 불려가던 조조는 어느 날이 되어 우연히 늦은 저녁 연못가를 거닐다가 작은 연못에서 엄청나게 큰 잉어가 헤엄치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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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은 연못에 저리 큰 잉어가 살고 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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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큰 잉어는 그 기운을 가다듬고 하늘로 올라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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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천하는 지금 언제 갈라질지 모르는 형세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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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막하에는 지금 천하의 제사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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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원술에게 간 여포의 동정은 어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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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이야 원래 막 돼먹은 짐승 같은 놈이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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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불효로 치면 나 역시 여포 못지 않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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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조조의 생각은 즉시 행동으로 옮겨져 부친 조숭을 모셔오도록 사람을 보냈다. 조조의 아버지 조숭은 진류땅에 살다가 난을 피해 낭야땅에 숨어 있었는데 조조의 편지를 받고는 크게 기뻐하며 곧 집안 식구를 거느리고는 연주로 향하였다.
조숭 일행이 연주로 향하다가 서주땅을 지나게 되었을 때였다. 조조의 부친이 연주로 간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서주 태수 도겸(陶謙) 은 오래 전부터 조조와 화친하기를 희망하고 있었기에 직접 조숭 일행을 영접하여 성으로 모셔 큰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 조숭이 길을 떠날 채비를 하자 갖가지 진귀한 보물과 호위군사까지 딸려 보내며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다. 허나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조숭이 식구를 거느리고 화현땅과 비현땅의 경계에 이르니 큰 소나기가 내렸다. 이에 근처의 절에서 하루를 묵어가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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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지겨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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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숭의 호위를 맡은 대장 장개(張闓)는 원래 황건적이었다가 무리가 흩어지자 이리저리 떠돌다가 도겸의 막하 병사가 된 자였다. 장개가 한숨을 토해놓으니 불을 지펴 옷을 말리던 병사들 역시 불만 섞인 투정을 늘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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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따위 노인네나 호위해야 하다니 우리 신세가 어찌하다 이리 되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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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선동하자 전직 강도들이었던 무리가 두 손 들어 환영했다.
그날 밤, 조숭이 자지 않고 책을 들여다 보는데 주위가 소란해졌다. 조조의 동생 조덕(曹德)이 칼을 들고 나갔으나 문을 나서자 마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조숭은 크게 놀라 달아나려 했지만 궁둥이가 무거운 첩실을 데리고 담을 넘으려다가 장개의 군사들이 칼부림을 하자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장개는 조숭 일가를 모조리 몰살하고는 재물을 쓸어모아 회남땅으로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뒷간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응소는 원소에게로 가 몸을 의탁했는데 그의 병사 한 명이 조조에게 와 이 일을 보고했다. 조조는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다가 버럭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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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즉시 전 군사를 일으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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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순욱과 정욱에게 군사 3만을 주어 견성, 범현, 동아의 세 고을을 지키게 하고는 나머지의 군사를 모두 끌어 모아 서주로 쳐들어갔다. 명분은 아버지의 복수전이지만 기실 서주의 비옥한 땅이 목적이기도 했다. 드디어 천하를 둘러싼 제후들의 군웅할거가 시작된 것이다.
조조는 하후돈, 우금, 전위를 선봉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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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점령하는 즉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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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입에서 무서운 말이 튀어나왔다. 조조가 서주 쪽으로 칼부림을 하는 와중에 전갈이 왔다. 서주의 도겸과 평소 막연한 사이였던 구강 태수 변양(邊讓)이 군사 5천을 이끌고 구원을 나왔다는 것이었다. 조조는 크게 노하여 하후돈으로 하여금 나아가 싸우게 하였다. 서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던 하후돈이 중간에서 변양을 만나 그를 단박에 찔러 죽이고는 그 군사들을 고스란히 데리고 돌아왔다.
그 무렵, 지난날 동탁에게 쫓기던 조조를 도와준 진궁이 찾아왔다. 그는 동군에서 종사로 있었는데 평소 도겸과 사이가 두터웠던 터라 그를 변호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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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부친의 원수를 갚고자 군사를 일으켰다는 조조공의 마음은 모르는 바가 아니나 도겸은 원래 인자하고 어진 인물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리를 저버리는 자가 아니오. 사실을 따지자면 부친의 일은 장개라는 옛 황건적의 일당이 벌인 일이니 서주땅의 죄없는 백성들을 해하는 것은 어진 이가 하는 행동이 아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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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궁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지난날 여백사 일가를 몰살한 조조의 양심을 건드린 것이다. 조조는 가슴이 뜨끔하였지만 방귀 낀 놈이 성 낸다고 도리어 크게 화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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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지난날 나를 버리고 가더니 이제 무슨 염치로 와 그런 말을 입에 담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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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면 당신이 지난날 도륙한 여백사의 억울한 혼은 어쩌실 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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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할 말이 없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했다. 혀를 차던 진궁은 자리를 뜨면서 조조를 돌아보며 한소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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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 조금은 있는 인물인 줄 알았더니 그야말로 소인배가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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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궁은 도겸을 볼 낯이 없다며 그 길로 진류 태수 장막에게 갔고, 조조는 양심에 난 털을 남에게 보여준 것이 부끄러웠는지 서주땅에 이르러 가는 곳마다 아무 죄없는 백성들을 서주사람이라는 이유로 닥치는 대로 쳐죽이고 무덤을 파헤쳤다. 자연히 조조에 대한 온갖 악평이 쏟아졌고 그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러한 조조의 악행은 나중에 위 · 촉 · 오로 분열되어 천하를 다투던 무렵까지 이어져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편, 도겸은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서주의 백성들을 도륙한다는 보고를 받자 크게 탄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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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나의 백성들이 오늘날 이 같은 변을 당하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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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대군이 몰려오는 마당에 이렇게 넋 놓고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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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겸은 별수 없이 서주의 군사를 몰아 나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조조의 군사는 “보구설한(報仇雪恨) 원수를 갚아 한을 씻는다” 란 글자를 깃발에 새기고 있었다. 기병들이 열을 지어 늘어서자 그 사이로 조조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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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귀공과 사귐을 갖고자 군사를 풀어 호위를 맡겼소. 그 도적 놈이 사심을 드러내 일을 벌인 것이지, 내가 시킨 것은 결코 아니니 깊이 헤아려 주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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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영감! 우리 부친을 죽이고도 주둥아리를 놀리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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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돈이 창을 부여잡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에 도겸의 측근인 조표가 맞서 나왔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고 비바람이 쏟아져 시야를 가렸다. 하는 수 없이 각기 군사를 물리고 날이 개기를 기다렸다.
성안으로 돌아온 도겸이 관리를 모아 대책을 상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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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군세가 실로 대단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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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겸이 탄식하며 이야기하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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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은 이미 그 인덕이 널리 알려져 서주의 모든 백성들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조조는 부친의 죽음을 핑계하고는 있으나 실상은 이곳 서주를 집어삼킬 속셈이 분명합니다. 조조의 군사가 많기는 하지만 우리 서주성을 쉽게 취하지는 못할 것이니 백성과 더불어 굳게 지키십시오. 제가 계책을 써 저 간악한 조조 놈을 물리쳐 보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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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의외의 말에 놀라 돌아보니 동해군 구현땅 출신의 미축(靡竺)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