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의정의 뜰, 돌기둥을 사이에 두고 여포와 동탁의 쫓고 쫓기는 고전 코미디가 시즌2편을 촬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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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놈, 불륜의 현장을 보고야 말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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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달아났다. 동탁이 여포의 궁둥이를 보며 뛰어가려는데 이유가 이를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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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라! 저 무식한 여포놈이 나의 계집을 노리고 있다!
내 눈으로 봤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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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십시오! 태사께선 지금 계집에 빠져 큰일을 놓치고 있습니다! 여포는 태사의 가장 중요한 심복인데 어찌하여 계집 따위로 대사를 그르치십니까. 초선을 여포에게 주십시오. 그리하면 여포는 더욱 태사께 충성할 것이니 헤아려 살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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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를 여포에게 주라고? 그러는 너는 니 마누라 여포 줄 수 있느냐!
되는 소릴 해라, 떡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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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는 ‘절영지회(絶纓之會)’ 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지금의 태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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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말하는 ‘절영의 연회’ 가 무엇인가.

 

춘추시대 다섯 패자의 한 사람이었던 초나라 장왕은 무공을 세운 장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회를 열었다. 장왕은 궁궐에 화려한 잔치를 열어 장군들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는 연회석을 밝히고 있던 촛불을 모두 꺼버렸다. 사방이 어두컴컴해지자 사람들은 평소 하지 않던 장난기가 발동하여 여기저기서 웃고 떠들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첩 애희에게 기습 뽀뽀를 했다. 느닷없이 추행을 당한 애희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훔친 남자의 갓끈을 끊어 표시를 하고는 즉시 장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어 용의자를 잡아 때려줄 것을 주장했다. 자고로 왕의 여자를 탐하는 것은 대역죄이며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왕은 애희의 말을 듣고도 노여워하지 않고 도리어 모여 있는 모든 장군들에게, 모처럼의 술자리이니 모두가 갓끈을 떼어내고 맘 편히 술을 마실 것을 명했다. 불을 다시 밝혔을 때에는 이미 모든 장수들이 갓끈을 끊어낸 이후여서 누가 애희의 입술을 가져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장왕이 진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싸움에 대패하여 숱한 군사를 잃고 적에게 포위되어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휘하의 장웅(蔣雄)이라는 장수가 죽음을 무릅쓰고 장왕을 구해내고는 자신은 무수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장왕은 쓰러져 죽어가는 장웅에게 눈물로 고마움을 표시했는데, 장웅은 죽어가며 오히려 장왕에게 거듭 감사했다. 그가 말하길, 자신이 바로 애희의 입술을 훔쳤던 사람이며 그때 장왕이 보여준 넓은 도량에 감복하여 죽음으로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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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태사께선 여포라는 무적의 킬러를 거느리고 계십니다.
장왕이 보여준 처세술에 대해 느끼는 바가 없으십니까?
천하를 넓게 보고 현재의 상황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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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이 낮은 신음을 흘리더니 생각에 잠겼다. 오래 전에 활동을 멈추었던 뇌세포가 기지개를 켰고, 결국 초선을 여포에게 주기로 맘을 먹었는데 그러한 결심은 후당으로 들어가서 초선의 야시시한 표정을 보고는 바로 출장가고 말았다.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고, 남자는 으응~에 약하다던가… 여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말에 초선이 한껏 슬픈 표정을 지으며 눈물까지 보이자 동탁의 애욕이 다시 눈을 떴다.

 

한편, 온갖 구박을 당한 여포는 한쪽 벽에 기대어 서럽게 울었다. 초선 낭자를 생각하며… 이 우울한 심정을 누가 알아 주리오. 어여쁜 여자친구를 남에게 빼앗겼을 때의 굴욕과 수치는 남자의 자존심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절망과도 같다.

 

여포가 한참 벽 잡고 오열을 하고 있는데, 사도 왕윤이 여포의 어울리지 않는 감성연기를 보고는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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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장군은 어찌 벽에 기대어 청승을 떨고 계시오? 
누가 쥐어 박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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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왕윤을 보자 더욱 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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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공, 삶이 어찌 이리도 고단합니까!
나 여포 참으로 서글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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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훌쩍거리는 여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사나이들이 인생철학을 논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술상을 차리고선 내가 왕년에 어쩌구저쩌구 하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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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가 그런 짐승 같은 짓을 하다니…
내 딸이 지금쯤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오.
또한 장군은 아내를 빼앗긴 격이니 온 천하가 우릴 얼마나 비웃겠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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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화를 삭이지 못하고 술상을 발로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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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내 이 늙은 도적을 죽여버리고 말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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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지만 짐짓 놀라는 척하면서 두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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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자칫하면 우리 둘의 목이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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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요! 그 도둑놈이 지금 이렇듯 권세를 누리는 것이 나로 인함이거늘,
제놈이 나를 이리도 괄시를 한단 말이오! 사내 대장부가 어찌 더러운 놈의 지배를 받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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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여포 장군이 남의 지배를 받을 사람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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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이 은근슬쩍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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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동안 그 인간의 목을 따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소.
다만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맺었기에 세상의 비웃음을 살까 염려가 되었던 것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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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잘못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장군의 성씨는 여씨이고 태사의 성씨는 동씨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가 장군께 창을 던진 것이 어찌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정을 생각한 행동이겠습니까. 이는 장군을 수하에 두고 부리는 장수로 밖에 생각지 않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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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의 충동질에 여포가 폐륜의 바다로 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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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감께서 깊은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다면 앞날을 그르칠 뻔 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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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은 한나라의 충성스런 무장이 아닙니까. 
황제를 도우면 장군의 업적은 후세에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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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왕윤에게 절하며 결심을 털어놓았다. 연환계의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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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몸 여포, 대감의 뜻을 따를 것이니 계책을 일러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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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는 신중히 치루어야 합니다.
내 차후에 장군께 계책을 알릴 것이니 사전에 이 일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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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싸나이의 맹세를 하늘에 고하고는 돌아갔다. 왕윤은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손서(孫瑞)와 사례교위 황완(黃琬)을 은밀히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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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하늘이 한나라를 버리지 않았구려. 이제 그 동탁놈을 주살하는 것만 남았소이다. 요즘 천자께서 병으로 누워 계시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으니 동탁놈을 나랏일을 의논한다는 핑계로 꾀어 냅시다. 그리고 여포에게 조정 궁문에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동탁놈을 죽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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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에게 누굴 보내야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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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와 한 고향출신이며 동탁에게 불만이 많은 이숙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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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은 그 즉시 여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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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에 나를 꾀어 정건양을 죽이게 하고 동탁에게 섬기게 한 것은 이숙이었지요.
이숙이라면 동탁도 의심을 안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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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후, 왕윤의 부름을 받은 이숙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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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충동질하여 정건양을 죽이게 만든 자네이지만 그 책임은 묻지 않겠소. 지금 동탁이 위로는 천자를 속이고 아래로는 백성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소. 이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를 죽이려 하니 당신이 미오별장으로 가 동탁에게 궁으로 들라는 천자의 어명을 전하시오. 나라에 공을 세울 기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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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오래 전부터 그 도적놈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소이다.
마음이 맞는 자가 없어 생각에만 그쳤으나 이제 장군이 뜻을 세웠으니 동탁을 꾀어 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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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옆에서 둘을 번갈아 보던 왕윤이 이숙의 사기를 높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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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공을 세우면 내 천자께 아뢰어 그대에게 높은 벼슬을 내릴 것이니 걱정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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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숙은 미오 별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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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께서 태사로 하여금 나라를 잇게 한다는 말씀을 내리셨습니다.
선위교서를 내릴 모양이니 태사께선 속히 들라시는 조명을 받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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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은 뜻밖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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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에 용이 나를 찾더니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러했군. 
드디어 내가 하늘의 뜻을 이어받는구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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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뻐하며 이각, 곽사, 장제, 번주 등의 장수에게 미오성 수비를 맡긴 다음, 동탁은 수행하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궁으로 향했다. 계속 실실거리며 웃던 동탁이 30여 리를 갔을 때, 그가 탄 수레의 바퀴 하나가 갑자기 부러졌다. 동탁은 곧 수레에서 내려 말로 갈아탔다. 그렇게 다시 10여 리를 가는 중에 이번에는 말이 갑자기 발광을 하면서 고삐 줄을 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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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의 바퀴가 부러지고 말이 줄을 끊다니…
이게 무슨 징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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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태사께서 나라를 물려 받으시니 옛 것은 가고 새 것이 온다는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옥련과 황금으로 만든 천자의 안장에 오르실 증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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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동탁은 이숙의 말에 크게 기뻐하며 길을 재촉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또다시 하늘에서 광풍이 몰아치고 검붉은 안개가 하늘을 덮는 것이었다. 동탁이 불안하여 이숙에게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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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께서 용 위에 오르시면 반드시 붉은 광명과 안개가 일어나고 하늘에 그 덕망이 떨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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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의 놀라운 임기웅변에 동탁은 크게 웃으며 길을 재촉했다. 사탄의 몰락이 아쉬워 하늘이 그토록 숱한 계시를 주었건만, 결국 죽을 운명이었던 동탁은 곧 궁에 도착했다. 잠시 후, 여포가 시꺼먼 속을 감추고 동탁을 영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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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자의 자리에 오르면 여포, 너에게 천하의 병마를 통솔하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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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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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감사하는 절을 올리고 물러가자 동탁은 장전으로 물러가 잠을 청했다.
그날 밤, 어디선가 처량한 노래가락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千里草何靑靑 · 천리 풀이 어찌 푸를 것인가
十日卜不得生 · 열흘 넘어는 못 사느니

 

수십 명의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동탁의 귀에 들어갔다.

 

‘천리풀(千里草)’ 의 세 글자를 합치면 ‘동(董)’ 자가 되고 ‘열흘 넘어(十日卜)’ 는 ‘탁(卓)’ 자가 되어 오래 못산다고 했으니, 동탁이 죽는다는 소리였다. 이 노래를 들은 동탁이 급히 이숙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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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괴한 노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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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의 푸른 하늘이 망하고 태사께서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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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머리로 어떻게 권력을 쥐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단순한 동탁은 이숙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다음날, 동탁은 천자가 된다는 부푼 꿈에 꼭두새벽부터 샤워를 하고, 가지런히 무스를 바르고는 죽으러 궐로 들어갔다. 좌우로 길게 의장을 세우고 위풍당당하게 입궁하려는데, 난데없이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도사 하나가 손에 긴 장대를 들고 나타났다. 장대에는 10자 길이의 천(布)을 매달았는데, 양쪽 끝에 입 구(口) 글자가 쓰여 있었다. ‘입(구=口)’ 글자가 두 번이니 이것을 합치면 ‘여(呂)’ 자가 되고, 천은 한자로 ‘포(布)’ 이니 바로 여포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숙은 동탁이 돌아보자, 적당히 구워삶은 후 도사를 쫓아버렸다.

 

동탁이 풍악을 울리며 조정 앞으로 나아갔다. 헌데 저쪽에서 왕윤이 고리눈을 뜨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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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 이렇게 마중 나오다니 참으로 고맙구려…
근데 그 눈초리는 뭐요? 왜 째려보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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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역적놈이 왔거늘 무사들은 뭣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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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의 일갈을 신호로 숨어있던 무사 백여 명이 뛰어나왔다. 동탁이 순간 당황하여 달아나려 했지만 그 둔한 몸으로 뛰어봤자다. 사방에서 몰려든 무사들의 창을 이리 저리 피하고 다니던 동탁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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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내 아들 여포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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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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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고개를 한껏 쳐들고 동탁의 부름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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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여포, 이 놈들이 나를 해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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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소? 그럼 내가 좀 도와줘야겠군. 
당신의 그 두꺼운 살을 뚫으려면 웬만한 힘 가지고는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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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한 바탕 소리를 지르고는 그대로 동탁의 목을 찌르자, 옆에 있던 이숙이 머리를 단칼에 날려 버렸다. 동탁의 잘린 머리를 들고 여포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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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어명에 따라 역적 동탁을 죽였다!
그를 따르던 군사들에겐 잘못을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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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지고 여포가 다시 군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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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도적놈을 옆에서 도운 모사 이유놈을 잡아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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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유는 이미 하인들에게 붙잡혀 끌려 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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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도 동탁놈과 똑같이 나쁜놈이다!
어서 극형에 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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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상에서 온갖 호강은 다 누려보던 동탁과 이유는 행복했던 삶을 마무리했다. 잘린 목과 함께 거리에 던져진 몸뚱이는 불에 던져지고 이를 보던 많은 백성들이 돌아가며 정성껏 밟아주니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얼마 후, 황보숭과 이숙을 대동하여 미오 별장에 도착한 여포는 즉시 동탁의 동생 동민과 동황을 참하고 동탁의 모든 재산을 몰수 하였다. 미오를 완전 쑥밭으로 만들어놓고 초선을 자신의 집에 데려다 놓은 여포는 동탁 똘마니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군사를 정비했다.

 

동탁이 칼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각, 곽사, 장제, 번주 등은 크게 놀랐다. 그리고 곧이어 여포가 군사를 몰고 들이닥친다는 섬뜩한 급보가 날아들자 다들 사색이 되었다. 겁에 질린 네 장수는 군사를 몰아 밤낮으로 양주(凉州)땅으로 도망갔다.

 

왕윤은 미오성에서 거둬들인 재물을 풀어 그날로 잔치를 열었다. 모든 문무백관들이 도당에 모여 오랜만에 서로 크게 웃으며 즐기던 중에 군사 하나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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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가 거리에 버려진 동탁의 시체 앞에서 대성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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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이 크게 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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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모든 이가 오늘을 기뻐하며 동탁놈에게 침을 뱉거늘, 
어떤 놈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더란 말이냐! 당장 그놈을 잡아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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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사람 하나가 군사들에게 끌려왔는데 바로 시중으로 있던 채옹이었다. 대신들은 뜻밖의 인물이 끌려오자 크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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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큰 역적 놈이 죽었는데 너는 어찌하여 하늘에 통곡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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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어찌 하늘의 이치와 덕이 있는 자를 알아 볼 안목이며 대의명분을 모르겠소. 동탁은 나라를 배반하여 천자를 업신여기고 스스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어찌 그것을 모를 것이오만 지난날 나를 불러 크게 써준 은혜 또한 있소이다. 잠시 그 생각이 나 눈물이 나온 것 뿐입니다. 나의 이 마음을 알아주시오. 죄를 묻겠다면 달게 받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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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 백관들은 당대 문장가 채옹의 재주를 아껴 왕윤에게 용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태부 마일제 역시 왕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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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옹은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는 뛰어난 천재입니다. 그에게 계속 정사의 집필을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인 줄 아오. 그를 베면 천하의 인심이 돌아설 것이니 용서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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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역사서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반고(班固)가 저술한 《한서(漢書)》를 꼽을 수 있다. 《사기》는 중국의 고대 신화인 상고시대부터 기원전 2세기 전한의 무제 시대까지 쓰여졌고, 《한서》는 전한의 마지막까지 담았다. 헌데 그때까지 170년에 가까운 후한의 역사서는 한 편도 나오질 않았는데, 채옹은 자신의 일생을 걸어 《후한서》를 엮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대신들이 모두 채옹의 편을 들었으나 왕윤의 뜻은 단호했다. 태사였던 동탁이 죽었으므로 삼공보다 높은 벼슬은 태부밖에 없었다. 현재 조정에서 유일하게 왕윤의 벼슬보다 높은 것은 마일제 뿐이었는데, 동탁 암살의 거사가 모두 여포를 이용한 왕윤의 손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이제 한나라의 권력은 왕윤에게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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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들이오! 옛날에 효무황제(한 무제)께선 사마천을 죽이지 않고 사기를 쓰도록 하였기에 시국을 비난하는 글이 후세에 전해진 것이 아니오. 더구나 지금은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여 이를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일진데 저런 망령된 자를 살려두면 또다시 오늘의 일을 비난하는 어리석은 죄를 지을 것이니 다른 말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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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의 《사기》는 3천 년의 역사를 담은 걸작이지만, 일부 사학자들은 사마천이 무제 유철의 신하였음에도 그가 저지른 실정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적었다는 이유를 들어 주인을 업신여긴 책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왕윤이 막무가내로 채옹을 옥에 가두자 마일제가 자리에서 물러나와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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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혼란이 끝나지 않았구나!
왕윤 또한 일을 옳게 처리하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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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 백관들의 청을 거절하고 채옹을 가둔 왕윤은 조정의 대신들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서자, 그날로 은밀히 사람을 보내 채옹의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

 

한편, 동탁의 충실한 네 명의 잔당 이각, 곽사, 장제, 번주 등은 섬서(陝西)땅으로 도망가 있던 중, 사람을 장안으로 보내 천자께 표문을 올리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왕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표문을 집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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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의 팔과 다리 역할을 한 놈들이 망령된 글을 보내다니,
많은 죄인들을 풀어주고 죄를 사면하였지만, 그 똥파리들만은 용서할 수 없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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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은 노발대발하여 사자의 머리를 쥐어 뜯어놓았다.

 

☞ 손자가 저술한 유명한 병법서에 따르면 적을 무찌를 때에는 도망갈 길을 열어두어야 적의 예기가 꺾인다고 했다. 죽기살기로 덤벼드는 적만큼 무서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흔히 ‘쥐도 막다른 길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고 하지 않던가. 이른바 심리전에 대한 전략을 일컫는 것으로 지금 왕윤은 이점을 망각하고 있다. 적당히 안심을 시킨 후에 올가미를 씌우면 간단한 일을 쓸데없는 아집을 부려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왕윤이라는 인물은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대표적인 보수파 원로이다. 허나 나라를 구하고 다스리는 총기는 부족했던 것 같다.

 

왕윤에게 된통 당한 사자는 떡 진 머리를 감싸쥐고 즉시 이각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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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하지 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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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은 하늘로 날아오른 사자의 머리털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사방으로 뻗친 사자의 머리를 옆에서 감상하던 모사 가후(賈詡)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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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군사를 버리고 도망간다 하더라도 곧 잡힐 것이니,
이곳의 백성들을 선동하여 장안으로 쳐들어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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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실패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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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팔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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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은 즉시 서량주 일대에 “왕윤이 이 지방의 모든 이들을 몰살하러 온다” 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에 크게 당황한 백성들이 술렁거리자 이각이 곧 칼을 들어 선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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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랑 멍청히 앉아 있다가 죽을래!
아님 같이 반항 한번 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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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 일당은 따르는 백성들을 모아 군사 10만을 만들어서는 네 갈래의 길로 장안을 향해 쳐들어갔는데, 도중 5천의 군사를 거느린 동탁의 사위 우보(牛輔)를 만났다. 서로 진한 악수를 교환한 후, 계속하여 장안으로 길을 재촉하자 즉시 장안의 왕윤이 이 일을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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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은 심려하실 일이 아닙니다. 
이 여포가 있는데 그깟 쥐새끼들 쯤이 무엇이 두렵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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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즉시 군사를 몰아 나간 여포는 선봉으로 이숙을 세웠다. 그리고 얼마 후, 선봉인 이숙이 우보와 만나 싸움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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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인을 죽인 불한당 같은 놈아!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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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은 대꾸도 않고 그대로 군사를 몰아 우보를 크게 깨뜨렸다. 승리를 만끽하며 진을 치고 밤을 세우던 이숙은 도망갔던 우보의 야습을 받았다. 자다가 습격을 받은 이숙의 군사는 크게 흩어져 30여 리를 달아났는데 이숙은 패잔병 몇 명만 거느리고 여포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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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쓸모없는 놈!
네 어찌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돌아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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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이숙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군문 높이 매단 여포는 다음날, 군사를 거느리고 우보와 맞섰다. 몇 차례 군사를 부딪치다가 우보가 여포를 감당하지 못해 곧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니, 군사들 역시 여포에게 묵사발이 되었다. 꽁지가 빠져라 줄행랑을 놓은 우보는 멀찌감치 영채를 세우고 호적아(胡赤兒)를 불러 일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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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의 용맹에 당할 재간이 없으니 재물을 끌어 모아 달아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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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아가 응하자 그날 밤으로 황금과 재물을 닥치는 대로 끌어 모은 우보는 즉시 길을 달려 달아났다. 그러다가 한참 후, 강물이 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서로 옷을 걷어부치고 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호적아의 마음에 시꺼먼 안개가 피어 올랐다. 호적아는 앞서 가던 우보의 뒷통수를 노려보더니 순간 허리춤의 칼을 뽑아 단칼에 우보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우보의 목을 베어 여포에게 바쳤다. 여포는 우보를 칭찬하고 대접한 다음, 은밀히 그가 끌고 온 자들에게 이 곳까지 온 경과를 물었다. 그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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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돈 챙겨 도망가다가,
호적아 쟤가 우보 걔를 죽이고선 이곳까지 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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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크게 노하여 당장 호적아를 죽인 후 군사를 몰아 이각를 쳤다. 여포는 큰 함성을 지르며 창을 휘어 잡고 이각의 진형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사방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던 이각은 50여 리 바깥으로 달아나 산 위쪽에 영채를 세운 후 곽사, 장제, 번주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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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늘 여포를 만나 간담이 서늘했소. 저놈은 몬스터이니 계책을 써야겠소이다. 내가 여포를 꾀어 유인할 것이니 곽사 장군은 징소리를 신호로 여포의 뒤를 치시오. 여포가 군사를 돌리면 그때 북을 칠 것이니 그때 물러나시오. 그리고 그 틈에 장제 장군과 번주 장군은 군사를 몰아 장안으로 쳐들어 가면 여포는 갈 길이 막히니 필시 패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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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툴 때, 팽월은 항우가 거느린 초나라 군사의 후방을 습격해 전방에서 격전 중인 유방을 도왔다. 이각은 이전에 유비가 황건적을 상대로 썼던 북과 징 신호를 거꾸로 사용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여포의 힘을 빼기 위한 전술을 구상한 것이다.

 

여포는 군사를 거느리고 이각의 군사가 주둔 중인 산 밑까지 당도했다. 얼마쯤 가자 이각이 진을 치고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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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비듬 같은 놈아!
네놈이 양아버지를 죽이고서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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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크게 노하여 쳐들어가니, 이각은 군사를 돌려 산 위로 올라가서는 돌과 화살을 빗발치듯 쏘았다. 더는 전진을 못하던 여포에게 뒤로 곽사의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이에 군사를 몰아 곽사를 맞아 싸우는데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더니 곽사의 군사들도 날쌔게 뺑소니를 쳤다.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힘만 빼던 여포의 뒤를 다시 이각이 공격했다. 여포는 씩씩거리며 다시 이각에게 맞섰지만 또다시 징소리를 신호로 곽사의 군사들이 몰려왔다. 군사를 돌리고 돌격!을 외치려는 찰나, 곽사의 군사가 다시 사라졌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빈혈로 쓰러진 여포가 콧김만 내뿜고 있는데, 장안이 장제와 번주 등에게 공격을 당하여 위급하다는 전갈이 왔다.

 

급히 군사를 돌려 장안으로 향하려는 여포의 뒤로 두 마리의 똥파리 이각과 곽사가 일제히 뒤쫓았다. 여기저기서 장졸들의 신음소리가 들렸지만 여포는 싸울 경황이 없어서 달아나듯 장안으로 달렸고, 대장의 빠른 발을 따라잡지 못해 계속 뒤쳐지던 군사들 중 태반이 이각과 곽사에게 몰살을 당했다.

 

며칠이 걸려 겨우 장안성에 당도한 여포의 눈에 수많은 적군들이 나타났다. 새까맣게 꼬여있는 장제와 번주의 군사들, 거기다가 이각과 곽사의 추격, 안팎으로 고립된 여포의 군사들은 속속 적군에게 투항하여 여포의 군세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