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자려고 누워서 이리저리 TV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소개팅 프로그램을 봤다.
제목이 무슨 '총각 연애하다' 였던 거 같은데 이게 참 골때렸다.
한 남자가 여자를 소개받고 첫날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남자가 소개받은 여자에게 느닷없이 호텔에 가서 쉬었다 가자는 거다.
당연히 여자입장에선 황당한 표정으로 남자를 무슨 짐승 보듯하고 남자는 지 입으로 그런 말을 꺼내고도 뻘줌해한다.
나는 저 색히가 돌았나?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처음보는 여자한테 같이 자자는 소리를 할 수 있냐며 어이없어했다.
헌데 가만보니 이게 무슨 미션의 내용이었다. 남자가 정말 음흉해서 그런 요구를 한 것이 아니라 케이블 방송에서 시켰다는 소리다.
마치 몰래카메라처럼 여자와의 맞선을 주선하고 몇가지의 목표를 남자에게 달성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문제는 그 미션이라는게 참 어이가 달나라로 탈출하게 만드는 것 뿐이었다.
'뒤에서 껴안기'
'기습뽀뽀하기'
'호텔에서 쉬었다가기'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기'
껴안는 건 뭐고, 뽀뽀니 뭐니,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건 또 왠말인가.
저게 처음 소개팅하는 자리에서 할 행동들이냐.
변태취급 당하기 딱 좋은 조건들만 추려놓지 않았는가.
그걸 본 나는 방송사가 미쳤거나 프로그램을 제작한 PD의 정신상태를 의심했다.
생판 처음 본, 그것도 여자는 남자의 외모가 맘에 안 들어 싫은티를 팍팍 내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호텔에 가자니.
이 프로그램을 만든 PD나 방송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남자 출연자들에게 저런 요구를 했을까.
다음에 나온 남자는 아예 뽀뽀를 하려고 들이댔다.
정색을 한 여자는 남자를 뿌리치고 도망가버린다. 홀로 남은 남자의 축 늘어진 어깨와 민망한 표정이란..
이 프로의 컨셉이 참 묘했다.
예전에 공중파에서도 남녀짝짓기 프로그램이 많았던 터라 처음엔 그런 프로인줄 알고 봤는데 아니었다.
연애라고는 한번도 못해본 생판 초짜 순진남들이 주요 출연자들이고
반대로 소개팅에 나온 여자들은 거의 쭉쭉빵빵에 연예인 뺨치게 생겼다.
옷도 고급이고 멋이 철철 넘친다. 길거리 지나가면 누구나 한번씩은 돌아볼 그런 미모들.
그렇게 눈이 높다못해 하늘을 뚫고 승천할 여자들 앞에 후줄근한 차림새의 소위 폭탄이나 다름없는 소심한 남자들이 다가간다.
여자들은 당연 자신의 레벨에 맞는 남자를 예상했겠지만 눈앞에서 쭈뼛쭈뼛 다가오는 것은 그들의 말대로 괴물이었다.
영화였다면 백마탄 왕자님이 괴물을 물리치고 자신들을 구하겠지만 여기 나오는 여자들은
소개해준 사람의 낯을 봐서 마지못해 남자들을 따라간다.
평소 눈길도 주지 않는 사내들이 소개팅남이라랍시고 들이대니 여자들의 표정은 첫대면부터 어둡다.
남자들은 자기를 본 여자들의 첫인상에서 이미 실망의 기색을 읽는다.
때문에 쩔쩔매고 어쩔줄을 몰라한다. 평소에 잘 하던 것도 실수연발이며, 대화에서는 자신감이 사라진다.
여자들은 남자를 만난지 1초만에 이미 그 남자의 모든걸 판단해버린다고 한다.
성격이 좋아야하느니, 배려심이 있어야 하느니 뭐니 떠들지만
일단 그건 만난 다음의 일이고 세상의 모든 만남은 첫인상에서 판가름이 난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저기 출연하는 남자들도 문제가 크다.
데이트라는 걸 나가려면 어느정도 준비라는 걸 해야한다. 외모도 단정히 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헌데 여기 나온 사내들은 하나같이 어디 재래시장에 장 보러 가는 차림새다.
외모도 폭탄소리 들을만큼 쳐지는데 옷까지 후줄근하니 세상 어느 여자가 좋다고 반기겠나.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싫을 지경인데 말이지.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만큼의 여자들을 만나러 가면서
벙거지 모자는 왠말이며, 칙칙한 잠바는 또 뭔가.
이쯤되자 나는 이 프로그램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이건 연애를 못해본 총각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순진하다못해 바보처럼 보이는 남자출연자가
여자에게 어찌 무시당하고 굴욕을 당하는지를 보고 즐기는 일종의 관음증 프로였던 거다.
프로그램 막판에 여자들이 몇시간 동안 데이트를 한 남자들을 상품마냥 품평회를 하는데 이게 또 걸작이다.
외모는 몇점, 유머는 몇점, 섹스어필은 몇점...
그나마 점수라도 잘주면 감지덕지이고 대부분은 평가를 듣고 있을 남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짜증나요. 남자로 느껴지지가 않았어요. 같이 다니기 쪽팔렸어요. 생각도 하기 싫어요.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요."
태어나서 한번도 손질을 안 한 듯한 머리모양에 잠바 입혀서 내보내놓고는
여자들이 이래서 저 남자가 싫었네, 역겨웠네 이러고 있는걸
당사자에게 보여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씨앙넘의 색히들이 온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 할짓인가.
한 인간을 병신 만들며 낄낄 거리니 시청률이 잘 나오는 모양이군.
내가 보기엔 남자들을 일부러 초라하게 꾸며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밀어내는 느낌이다.
또 여자들의 평가를 잘 들어보면 데이트 실패의 요인이 전부 제작자가 시켰던 얼토당토 않은 미션 때문이다.
순전히 외모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저 여자들도 답이 없긴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치부를 듣고 얼굴이 벌개진 남자들에게 카메라를 줌인해서 들여다보게끔 하는 저질 케이블방송은
쥐색히 똥꼬에 낀 콩나물 대가리만도 못한 넘들이다.
아마도 저기 출연한 남자들은 평생의 상처가 될 터.
많은 사람들이 보는 방송에서 온갖 굴욕에 치부를 다 까발렸으니 그 처참한 심정은 오죽할까.
딴애는 연애 한 번 못해본 자신이 불쌍해서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예쁜 여자친구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힘든 용기를 낸듯한데
데이트는 고사하고 PD의 되도않은 요구 때문에 되려 치한으로 몰리기 일쑤요,
주제파악 못하는 병신으로 낙인까지 찍혔으니 그 치욕을 무엇으로 보상받으랴.
이들은 너무 순진해서 바보같다는 여자출연자들의 말처럼 너무 착하기에 방송사들의 요구를 마지못해 따르고
또 방송사의 의도대로 온갖 굴욕을 다 당하다가 종래에는 차이고, 또 자신의 낮은 평가보고서를 낯뜨겁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들에게 그런 방송행태에 대한 항의를 할 마음 같은 건 없어보인다.
모든게 다 자기 잘못같은 것이다. 여기 나온 남자들은 그만큼 순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친구들 뿐이었다.
요즘 세상은 착하다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착한것은 곧 바보이고 또 멍청한 것으로 여긴다.
여기 나오는 여자들은 너무 예쁜 자기 외모를 보고 설레고 두근거려 어쩔줄 몰라 쩔쩔매는 남자들에게 착하다고 한다.
이들이 말하는 착함이란 곧 수준이하의 다른 말이다.
아~ 불쌍한 남자들이여.
그대들은 왜 이런 프로그램에 나가 만인의 조롱과 동정을 받는가.
현실에서는 꿈도 못꿀 예쁜 여자들과의 하루저녁 데이트가 자신의 자존감과 맞바꿀만큼의 가치가 있단 말인가.
안타깝다... 순진한 남자들이여.
But. 의도를 알면서도 출연료나 데이트의 목적으로 기꺼이 나갔다면 출연한 자들이여, 니들은 정말 병신이다!
